온몸이 피로 물들여진 호존 민규현은 철사에 손과 발이 다 묶여져 있었다.게다가 어깨 쪽에는 단혼정까지 박혀져 있었다.피는 이미 말라서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하지만 그 남자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감옥 앞에는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4명이나 서 있었다. 네 사람 모두 대가 경지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문창정이 감옥 문 앞으로 도착하자 그들은 함께 경건하게 인사를 했다.하지만 문창정은 그들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감옥 문을 열어라!” “예!”한 부하가 신속하게 감옥 문을 열었다.그의 시선은 천천히 민규현에게로 향했다. 온몸이 피로 물든 민규현은 두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고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민규현를 한 번 쳐다본 후 감탄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암부의 호존은 용맹하고 호기로운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오늘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민규현은 두 눈을 꼭 감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두 명의 신급을 보내면 널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네가 이미 신급 중상급에 도달했을 줄이야... 정말 예상 밖이야.” “청룡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널 제압하지 못했겠지.”문창정이 계속 중얼거렸다. 갑자기 민규현이 붉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늙은 자식! 그럴 능력이 있다면 나를 죽여! 오늘 날 네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너를 죽일 거야!” 민규현이 분노하며 외쳤다. 그는 교활하게 웃었다. “민규현 지휘사, 화내지 말지? 내가 왜 널 죽이지 않았는지 알아?” “낚시를 하려면 미끼가 필요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가 낚이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암부의 삼대 사령관 중 하나인 민규현은 문창정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쁜 자식, 도대체 나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 거야!”민규현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할 거냐고? 아직도 모르겠어? 둘도 없는 친구로서 네가 곤경에 처했는데 어찌 구하지
“절정?”“이 두 늙은 자식이 절정 강자라고?”정태웅은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절정 기운을 느끼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절정이란 신급의 정점을 의미했는데 그 정점에 이르면 절정이라 불렸다.홀로 만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이를 절정이라 부르는 것이었다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의수 감옥에서 두 명의 절정 강자가 나타난 것이었다.두 명의 절정 강자를 바라보며 윤구주는 뒷짐을 잡았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제가 누군지 아시나요?”“인왕이시죠. 화진 제일인 구주 왕이시잖아요. 우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녹색 로브를 입은 정찬형이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계신다면‘곤륜 금기령’은 아시나요?”‘곤륜 금령’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찬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알고 있습니다...”‘곤륜 금기령’, 국가적 재난이 생기기 전에는 절정이 나타날 수 없다는 금기령이었다.나타나면 즉시 처형한다는 금기령이었다.이 금기령은 예전에 곤륜 영역에서 전 세계의 무인들에게 내린 사형 금기령이었다.이 금기령은 전 세계적으로 100년 동안 시행되었다.100년 동안 이 금기령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그 결과, 세상의 무인들은 신급 절정이라는 정점급 강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다들 잊어버렸던 것이다.절정에 도달하면 무술계에서 무적으로 될 뿐만 아니라 수명도 500세까지 연장된다고 했었다.이 정도 수준의 괴물들은 함부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었다.왜냐하면 이 강자들은 나타난 이상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전 세계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이것이 바로 예전의 무술 성지인 곤륜에서 ‘금지령’을 내린 이유였다.하지만 지금, 화진의 땅에서 두 명의 절정 강자가 나타났다.게다가 이 두 사람은 자신을 상대하려고 온 것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윤구주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곤륜 금지령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나타났다는 건가요? 자신의 가문에 영향이 가도 상관없는 건가요?”윤구주는
순간, 빨간 그림자가 번개처럼 빠르게 길우빈에게로 날아갔다.길우빈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신급밖에 안 되는 게 감히 내 앞에서 까불어?”이렇게 말하며 그는 손을 휘둘렀다. 수많은 기운이 모여져서 허공에 거대한 손자국이 생겼다. 그 손자국이 소리를 내며 바로 재이에게로 돌진했다.재이는 위험을 감지하고 다시 뒤로 피하려 했다.‘쿵!’무시무시한 손자국이 재이 앞까지 다가왔고 그 기운도 소용돌이치며 재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재이는 공중에서 뒤로 튕겨 나가며 열몇 걸음 물러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입가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길우빈은 준절정 강자다답게 한 방에 재이를 상처 입혔다.상처를 입었지만 재이의 눈에 담긴 살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늙은 자식, 다시 한번 해봐!”재이가 다시 공격하려 할 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재이 앞에 섰다.꼬맹이 남궁서준이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길우빈을 바라보았다.“제가 하죠.”이 말과 함께 남궁서준은 천하를 뒤엎을 검의 기운을 내뿜어 그를 감쌌다.길우빈은 준절정 강자로 문씨 가문 같은 대단한 인물이었다.그는 200년 가까이 살았으나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남궁서준의 검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검도에 재능이 있는 남궁 세가의 사람으로서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누군가가 형님을 막기만 하면 그 사람을 죽이는 게 남궁서준의 방식이었다.상대가 절정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 없었다.그에게는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었다.“감히 우리 형님을 막으려 하다니...”말을 끝낸 그가 손을 쓰려고 했다.그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자 검의 기운이 사방을 둘러쌌다.남궁서준이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황금색 검이 그의 손에서 날아올랐다.검을 쥔 그의 기세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그가 손에 든 검은 그저 일반 형태의 검이었다. 남궁서준은 그 검으로 스킬을 썼다.하지만 그 한 번의 스킬은 번개보다, 천둥보다 더 빨랐다.무시무시한 빛과 함께 검이 길우빈을
창을 손에 든 준절정 강자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손에 든 창도 그의 기운에 따라 일렁였고 창끝이 허공을 찌르자 패기 넘치는 기운이 천둥의 빛으로 변했다. 몇 줄기의 빛이 유성처럼 남궁서준에게로 날아갔다.준절정 강자다운 실력이었다.이 패원창만으로 많은 신급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빛은 천둥과도 같이 무섭게 남궁서준의 주변을 향하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남궁서준은 그 빛들에 에워싸여 완전히 삼켜졌다.“서준아!”남궁서준이 폭발에 휘말리는 것을 본 정태웅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비록 정태웅은 평소에 남궁서준을 놀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니 그 누구보다 걱정이 되었다.“걱정 마. 내 동생은 괜찮을 거야.”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웃으며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윤구주의 말에 정태웅도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연기와 먼지가 걷혀지자 15살에 불과한 녀석이 그 자리에 당당히 서 있었다.폭발로 인해 주변은 깊은 구덩이로 변했지만 윤구주가 말한 대로 남궁서준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이 장면에 준절정의 길우빈조차 안색이 어두워졌다.‘방금 스킬은 내가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스킬이었는데 15살짜리 어린애가 막아냈다고?’‘진짜 괴물 아니야?’“꼬맹아, 더 이상 실력을 숨기지 마!”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남궁서준은 순진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형님!”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준절정 강자인 길우빈에게로 돌진했다.“남은 스킬 다 써보세요! 전 스킬로 반드시 당신을 죽일 거예요!”남궁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200년 가까이 산 준절정 강자의 귀에 들어갔다.이를 들은 길우빈은 눈꺼풀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말도 안 돼, 아직 실력을 숨기고 있다니? 진짜인가? ’길우빈은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믿기 어려웠다.문씨 가문에서 훈련된 준절정 강자인 길우빈은 100년 전에 이미 신급에 도달했으나 그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머지 100년 동
문씨 일가의 신급 절정 강자가 죽임을 당했을 때 정찬형과 다른 신급 고급 강자 은석현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세 사람은 윤구주를 제압하라고 보내졌다.그런데 지금 윤구주는 손을 쓰지도 않았고 꼬맹이 한 명이 혼자서 신급 강자 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을 죽였다.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이젠 두 사람 차례예요!”눈이 까맣게 변해서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는 남궁서준은 길우빈을 죽인 뒤 살벌한 눈빛으로 정찬형과 은석현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순간 겁에 질렸다.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무서웠다.금지술 칠성!공격 한 방에 신급 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을 죽였는데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꼬맹아, 넌 일단 물러나.”이때 윤구주가 갑자기 걸어왔다.“형님, 이 사람들은 안 죽일 겁니까?”꼬맹이는 검을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물어야 할 것을 다 묻고 죽여도 늦지 않아!”“알겠습니다, 형님!”꼬맹이는 말을 마친 뒤 윤구주의 뒤로 물러났다.윤구주의 횃불 같은 눈빛으로 정찬형과 은석현을 바라보았다.“말해. 내 형제 민규현은 지금 어디에 갇혀 있지? 얘기한다면 살려줄 수도 있어.”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오늘 의수 감옥에 온 이유는 민규현 때문이었다.윤구주는 자신을 막는 사람들을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상대가 몇 명이든, 강하든 약하든 전부 죽일 것이다.민규현이라는 말에 신급 고급 강자인 은석현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우리들은 구주왕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민규현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말하지 않겠다? 그러면 죽어!”윤구주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일그러진 속박의 힘이 은석현을 감쌌다.신급 고급 강자인 은석현은 윤구주의 기운에 속박당하자 경악했다. 그는 서둘러 온몸의 내공을 끌어와서 윤구주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신급 절정과 엇비슷한 실력을 갖춘 사람을 보내면 날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거야
그러나 그 방어막이 나타나자마자 윤구주는 백옥 같은 손으로 방어막을 만졌다.“술현지, 열천!”쿠궁!봉왕팔기 중 다섯 번째 술현지에는 세 가지 기술이 포함되었다. 윤구주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그것으로 8명의 문벌 신급 강자를 해치웠다.당시 그가 썼던 것은 술현지의 반산과 진해였고, 지금 윤구주가 쓴 것은 술현지의 열천이었다.열천이 나타나자마자 방어막에 닿은 윤구주의 손바닥에서 굉음이 나면서 방어막이 폭발했다. 그것은 마치 폭탄처럼 어마어마한 여파를 일으키며 주위를 휩쓸었다.주변에 있던 십여 명의 신급 강자들이 전부 충격에 날아갔을 뿐만 아니라 정찬형의 앞에는 3m 정도 되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그 공격은 하늘과 땅을 가를 수 있는 대단한 공격이었다.연기가 흩어졌다.신급 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정찬형은 가엽게도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오장육부가 파괴되어 구덩이 안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윤구주를 막으라고 보냈던 세 고수 모두 살해당했다.그 광경에 의수 감옥 문 앞의 남은 수십 명의 검은 복면을 쓴 고수들은 전부 두려워졌다.어쩔 수가 없었다.신급 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의 강자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이는 사람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윤구주는 세 고수를 죽인 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둠을 바라보았다.“이래도 안 나올 건가?”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노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역시 천하무적의 구주왕답군요!”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불길 하나가 반짝이며 천천히 나타났다.그것은 도깨비불처럼 녹색이었다.녹색 도깨비불과 함께 구부정한 노인이 나타났다.노인은 뼈만 남은 것처럼 앙상했고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절뚝거리며 도깨비불과 함께 나타났다. 그의 시선이 윤구주에게 닿았다.진정한 절정이 나타났다.“문벌 길영삼, 구주왕을 뵙습니다!”앙상하게 마른 노인은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다섯 명의 신급 절정 강자들을 본 윤구주는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문씨 일가가 참 일을 크게 벌였군. 단번에 5대 고대 문벌을 전부 불러내다니 말이야!”제일 처음 도깨비불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뼈만 앙상한 길영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는 나이가 들어 썩은 나무와 다름없습니다. 저승에 반쯤 발을 들인 사람이죠. 만약 저하께서 세간의 문벌을 전부 처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다면 저희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하하, 문벌이 정치에 간섭하는 것은 대역죄지! 나 윤구주가 그들을 죽인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윤구주는 당당하게 말했다.“저는 저하의 말씀에 반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국에 파다하게 퍼졌었죠. 세가도, 종문도, 문벌도 전부 저하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죠.”길영삼은 묵묵히 말했다.“그래서 당신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멋대로 설쳤다는 말인가? 그래서 문씨 일가의 편에 서서 기회를 틈타 정치에 참여하여 내 형제까지 죽이려고 했고?”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었다.그의 말에 길영삼은 침묵했다.당시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그는 봉선의식에서 자신이 있는 한 종문, 세가, 문벌은 정치에 간섭할 수 없고, 정치에 간섭한 자들은 그 일족까지 모조리 죽일 거라고 했었다.무인이 정치에 간섭하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무인이 정치에 간섭하면 조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천하의 질서도 어지럽혀질 수 있었다.그러나 윤구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벌들은 곧바로 문씨 일가의 편에 서서 정치에 간섭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사람들을 데리고 윤구주의 암부 형제들을 죽였다.천하무적의 윤구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윤구주가 말을 끝맺기 무섭게 천희준이 유유히 앞으로 나섰다.“저하, 암부는 반역죄를 저질렀습니
그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살기를 내뿜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가 손을 쓰자 다른 네 명은 일제히 입을 열었다.“저하... 노여움을 가라앉히세요! 저희 문벌은 저하와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하, 부디 화진 무도에 전란을 일으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희 화진의 무도에 큰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화진 무도는 종문을 필두로 세가, 문벌을 두었다.천하의 무도에는 문벌이 가장 많았고 천하의 무인 중 7할은 세속 문벌에서 나왔다.문벌 출신의 노인들 말대로 만약 오늘 윤구주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천하의 모든 문벌과 적이 되는 셈이었다.그것은 화진 무도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었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윤구주는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현장에 있는 문벌 출신의 신급 절정 강자 다섯 명을 바라보았다.“6년 전, 난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봉왕팔기로 종문, 세가, 문벌을 제압하여 화진 무도의 통합을 이룩했어. 그때로부터 겨우 6년이 지났는데 문벌은 감히 공공연히 나서서 반역을 저지르려고 해? 오늘 난 말했어. 당신들이 화를 자초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그때처럼 도륙해 주지!”윤구주는 그 말을 할 때 온몸의 살기가 극에 달했다.화진의 왕으로서 윤구주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신과 생사를 함께한 형제들이 자기 사람 손에 죽는 것이었다.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문벌이 소란을 피우려 한다면 윤구주는 다시 한번 그들을 처단할 생각이었다.“저하, 저희 문벌은 비록 3대 서열 중에서 말단이지만 설마 저희 천만 문벌을 정말 다 처단할 생각입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저하께서 이미 돌아가신 줄 압니다. 심지어 종문, 세가 대부분이 국방부의 편에 섰습니다. 저하,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저하께서 포기하신다면 저희 문벌은 저하를 존경하고 저하를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가장 처음 도깨비불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길영삼이 입을 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종문, 세가를 언급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