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 막 함께 모여서 움직이려고 할 때 이 무시무시한 사사들의 포위 공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삼천 명의 사사는 과거 화진의 최고 문벌이었던 윤신우가 이끄는 자들이었다.황씨, 당씨 일가는 그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밤하늘 아래 윤신우는 고고하게 서 있었다.그의 뒤에는 열 명의 윤씨 일가 노인이 서 있었다.그 노인들이 내뿜는 기운을 보면 모두 신급 중상급인 듯했다.그 밖에도 윤씨 일가의 윤창현, 윤정석도 윤신우의 곁에 서 있었다.삼십 년 전, 과거 서울 최고의 미남이라고 불렸던 윤신우는 황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의 질문을 무시하고 덤덤한 눈빛으로 용하 산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주 쪽은 끝난 것 같아.”“그러네요, 형님! 하하하하! 빌어먹을 문씨 일가의 늙은이는 겨우 신급 절정 강자 다섯 명으로 우리 조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죠? 열 명, 스무 명 더 보내도 아무 소용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윤창현은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창현아, 넌 틀렸어.”윤신우가 갑자기 말했다.“틀렸다고요? 뭐가 틀린 거죠?”윤창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윤신우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얼마나 음험한데. 그 늙은이가 우리 아들의 실력을 모를 리가 없지. 그가 오늘 신급 절정의 강자 다섯 명을 보낸 건 분명 의도가 있어.”“의도요?”윤창현은 그 말을 듣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형님, 전 잘 모르겠어요. 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신급 절정 다섯 명을 죽으라고 구주에게 보낸다는 거죠?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아니, 그 늙은이는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모든 문벌이 우리 아들을 적으로 돌리게끔 하기 위해서야. 문벌이 반란을 일으키면 세가, 종문 또한 똑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렇게 되면 화진 무도는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러면 화진의 무대 대통합의 국면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고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 아들이 세상의 모든 무인을
윤신우가 살기등등하게 자신들을 바라보자 서울의 신예 문벌 황씨, 당씨 일가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윤신우, 뭐 하려는 거야?”황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이 두려워하면서 물었다.어쩔 수 없었다.그는 윤신우가 내뿜는 짙은 살기를 느꼈다.그 살기는 언제든 그들을 찢어발길 듯했다.장발의 윤신우는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다. 비록 이제 중년이긴 했지만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강한 기운과 30년 전 서울 최고 미남이라고 불렸던 얼굴 때문에 그는 여전히 멋있어 보였다.“우리 윤씨 일가는 지난 18년 동안 정치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어. 그래서 다들 우리 윤씨 일가가 몰락했다고 생각하며 한때 우리 윤씨 일가가 일궈냈던 화려한 성과들을 잊었지. 그런데 이젠 당신들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까지 나 윤신우의 아들을 건드리려고 해.”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황씨, 당씨 일가 고수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과거 천하를 호령하며 문벌 중 최고라 일컬어졌던 윤씨 일가는 당시 수많은 문벌 중 단연코 최고였다.18년 전, 윤씨 일가의 영광은 이미 종문과 엇비슷했다.그러나 18년 전 이후로 윤씨 일가는 더는 정치 싸움에 관여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맹호가 마침내 깨어나려고 했다.“뭐라고? 당신 아들이라고?”황씨, 당씨 문벌의 고수들은 윤신우의 말을 듣자 의아해했다.“윤신우, 제대로 말해. 우리 황씨, 당씨 일가가 언제 당신 아들을 건드렸어?”한 당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멍청하긴! 이제 곧 죽을 텐데 아직도 모르네.”윤창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에 황씨 일가의 섹시한 옷을 입은 황연주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창현을 바라보았다.“설마 그 천하무적의 구주왕이 윤씨 일가의 자손인 거야? 윤구주가 윤신우의 아들인 거야...?”“그래도 당신은 그나마 머리가 좋군. 맞췄어.”윤창현은 크게 웃었다.그 말에 황씨, 당씨 일가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화진 최고의 왕 구주 군신이 윤씨 일가
윤씨 일가 삼웅이라는 엄청난 강자들도 있었다.“가주님, 같은 문벌로서 저희 두 가문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희를 용서해 주신다면 황씨, 당씨 일가는 앞으로 가주님 말씀을 따르고 구주왕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윤신우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용서해달라고? 우리 아들은 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어 천하를 통일하면서 이미 한 번 문벌을 용서해 주었어. 그러니 이번에는 죽어야지!”윤신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움직였다.어둠 속.옆에 있던 열 명의 윤씨 일가 강자들이 일제히 튀어 나갔다.그 강자들은 신급 중상급 강자였고 그중 두 명은 거의 신급 절정에 달한 수준이었다.그들은 윤씨 일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당시 윤씨 일가는 천하를 놀라게 했으니 그 저력이 얼마나 대단했을까?특히 윤신우는 소문에 따르면 18년 전 이미 신급 절정에 달했다고 한다.그러나 그는 지난 18년간 나선 적이 없었다.드디어 대전이 시작되었다.윤신우가 손을 움직이자 곁에 있던 강자들이 일제히 튀어 나갔다.그리고 황씨, 당씨 두 가문의 고수 수십 명은 윤씨 일가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자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해야 했다.“죽여버리겠어!”황연주는 더는 피할 수가 없자 목숨 걸고 싸우려고 했다.그렇게 대전이 시작되었다.그러나 서울의 신 3대 문벌 황씨, 당씨 일가는 윤씨 일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특히 윤씨 일가에는 두 명의 신급 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있었다.잠깐 사이 황씨, 당씨 일가에는 겨우 몇 명만 남았다.당씨 일가의 신급 고급 수준의 조상도 윤씨 일가의 흰 망토를 입은 신급 절정에 달한 노인에게 팔 한쪽이 잘렸다.“우리 당씨 일가가 이렇게 망하는 건가!”당씨 일가 조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는 두 눈이 벌게져서 남은 세 명의 당씨 일가 부하들을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내공을 이용해 윤씨 일가의 흰 망토를 입은, 신급 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에게 달려들었다.“죽고 싶은가 보군!”흰 망토를 입은 노인은 오른손을 휙 움직였
그날 밤 일로 서울 전체가 떠들썩했다.윤구주가 밤에 의수 감옥에 침입하여 다섯 명의 고대 문벌 신급 절정 강자를 죽이고 민규현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용하 산맥의 진국 신수 원귀를 깨웠기 때문이다.게다가 서울에 수백 년간 존재해 왔던 황씨, 당씨 문벌이 멸문했다.서울 무도계가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이렇게 큰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니 서울 전체가 들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러한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비록 이번에 서울에 와서 구주왕이 돌아왔다는 걸 세상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증명해야 했다.그것은 윤구주가 살아있는 한 아무도 그의 형제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윤구주의 형제들을 건드린 사람은 모두 죽을 거라는 것이었다.이튿날, 날이 밝았다.허름한 집 안.윤구주는 어젯밤에 돌아온 뒤로 줄곧 민규현을 치료했고 지금까지 아무도 민규현이 대체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문 앞.정태웅, 천현수, 남궁서준, 재이 등 사람들은 밤새 서 있었다.다들 윤구주가 민규현을 치료하는 걸 기다렸다.그러나 이미 이튿날 오전이 되었는데도 윤구주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태웅은 점점 더 걱정되었다.그는 문 앞에서 계속 서성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현수야, 형님 위독하신 건 아니겠지?”“위독하긴! 불길한 말 할 거면 입 다물어!”천현수는 다짜고짜 욕했다.“왜? 난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형님은 그 못된 놈들 때문에 저 꼴이 됐잖아. 심지어 몸에 네 개의 철심이 박혔지. 그런데 내가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정태웅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정태웅이 평소에는 얄밉고 짓궂게 굴어도 그가 의리를 가장 중요시한다는 건 다들 아는 일이었다.특히 그는 민규현을 친형처럼 여겼다.셋째인 천현수는 당연히 정태웅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해했다.그러나 그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걱정은 무슨. 저하께서 계시잖아! 저승사자가 와도 저하께서 규현 형님을 구할 거야!”정태웅은 그 말을 듣자 더는 말하
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민규현은 가장 용감하고 전투에 능했다.만약 민규현이 단전의 기해가 봉인되어 더는 내공을 쓸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단전 기해의 봉인을 뚫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저하, 그게 뭡니까?”정태웅이 서둘러 물었다.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긴장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신급 절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윤구주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귓가에 박혔다.‘절정이 된다고?’화진의 무도는 무인에서부터 무사, 대무사, 대가, 그리고 가장 마지막인 천인 신급 강자로 나뉘었고 그것은 단전 기해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다.현재 민규현의 단전 기해는 문창정의 단혼정으로 봉인되었고 그걸 푸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민규현의 실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절정이 되는 것이었다.오로지 신급 절정이 되어야만 단전 기해의 봉인을 풀 수 있었다.민규현을 신급 절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정태웅과 천현수 등 사람들은 순간 흥분했다.“저하! 형님께서 실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신급 절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내가 있으면 가능해!”윤구주는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화진 제일의 왕이자 봉왕팔기를 가진 윤구주라면 민규현이 절정이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었다.세상 사람들은 신급 절정은 금기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더욱이 한 지역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현재 윤구주는 민규현을 도와서 그가 신급 절정이 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윤구주는 민규현을 신급 절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방 안.상처투성이인 민규현은 여전히 병상 위에 누워있었다.견갑골, 가슴에 박힌 네 개의 검은색 단혼정은 이미 그의 체내에 들어갔다.윤구주의 소생술로 몸은 괜찮아졌지만 단전 기해가 봉인된 탓에 민규현은 여전히 아주 허약해 보였다.윤구주는 안으로 들어온 뒤 자신의 형제 민규현을 보았다.민
신급 절정이 되게 도와주겠다니.윤구주가 그 말을 하자 절망에 빠졌던 민규현은 순간 동공이 커졌다.“저하! 신급 절정이라고 하셨습니까?”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네 단전 기해는 봉인되었어. 신급 절정이 되어야만 다시 단전을 쓸 수 있어. 만약 내공을 회복을 싶다면 이 방법밖에 없어!”그 말을 들은 민규현은 당황했다.“하지만 전 지금 신급 중급일 뿐인걸요. 절정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민규현은 당연히 자신의 내공을 잘 알고 있었다.절정이란 무엇인가?천인 이상이어야만 절정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한 지역의 조상이야말로 절정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금기시되는 신화만이 신급 절정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일단 절정이 되면 수명이 500년까지 늘어난다는 점이었다.화진 무도에서 신급 절정인 자가 과연 몇 명일까?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지만 일단 신급 절정이 되면 나라의 보물이 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그동안 곤륜에서는 국난이 닥치지 않는 이상 신급 절정 강자는 세상에 나오면 안 된다는 금지령을 내렸다.그 이유는 신급 절정의 무시무시함이 일반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신급 절정이 나타나면 전 세계 군대 구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그것이 곤륜에서 신급 절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금지한 이유였다.그런데 윤구주가 민규현을 절정으로 만들어서 화진의 보물이 되게 도와주겠다고 하니 민규현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저하, 제가 정말 신급 절정이 될 수 있을까요...”민규현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윤구주에게 물었다.“내가 있다면 가능해!”윤구주가 말했다.“감사합니다, 저하!”윤구주의 형제인 민규현에게 신급 절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이 무공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그렇게 된다면 윤구주를 위해 힘을 쓸 수가 없었고, 윤구주를 위해 전쟁에 나설 수가 없었다.그것이 그가 가장 걱정하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1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드디어 민규현의 모든 뼈가 다 으스러졌다.원래 뼈가 다 으스러진 순간, 윤구주의 오른손에서 갑자기 아주 눈부신 생명의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팔기지, 소생술!”소생술을 쓰자 녹색 빛이 윤구주의 손바닥에서 나와 민규현의 몸에 있는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팔기지의 소생술은 봉왕팔기 중 유일한 치료술이었다.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아니었다.소생술은 백골에 살이 자라고 사람을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윤구주가 팔기지를 사용하자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던 민규현의 몸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모든 뼈와 관절이 재조립되는 듯한 선명한 느낌과 함께 탁탁 소리가 들려왔다.뼈가 재조립되는 긴 과정과 함께 민규현의 기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심지어 얼굴과 몸에서 내뿜던 기세도 달라졌다.“민규현, 네 근골은 이미 완벽히 재조립되었어. 이젠 너를 신급 절정의 문까지 데려다줄게.”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으로 기괴한 수인을 맺은 뒤 민규현을 눌렀다.크엉!고대 용의 울음소리가 윤구주의 체내에서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곧이어 눈부신 금빛이 윤구주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금빛 용이 나타나자 방 전체가 금색으로 물든 것 같았다.구양진용결이었다.“세상에, 어서 저길 봐요! 주인님 방 안이 금색이 되었는데요?”마당에 서 있던 붉은색 치마를 입은 재이는 눈부신 금빛이 윤구주의 방을 완벽히 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 넋이 나갔다.철영과 용민은 시선을 들었다가 완전히 얼이 빠졌다.오직 윤구주의 형제만이 그 광경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저하의 가장 강력한 구양진용결이네!”“구양진용결이요?”정태웅이 이상한 이름을 읊자 재이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굴리면서 고개를 돌렸다.“하하, 맞아요! 전설에 따르면 저하가 수련한 봉왕팔기보다 더 강하다고 해요. 그리고 곤륜의 최고 무도 기공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저하께서 오늘 구양진용결을 선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정태웅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더욱 무시무기한 것은 그의 기운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 폭등한다는 점이었다.그렇게 약 한 시간 뒤.쿵!민규현의 몸은 마치 탈바꿈이라도 한 듯,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그의 모공에서 흘러나왔다.완전히 환골탈태한 것이다.절정이 되면 무도가 절정에 달할 뿐만 아니라 몸에도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현재 민규현이 그런 상태였다. 그는 절정의 문 앞에 서 있었다.기운들이 민규현의 몸에서 나타나 엄청난 기세로 마치 거대한 기둥처럼 하늘 높이 치솟았다.윤구주가 은닉 진법을 이용해서 방과 밖을 차단했다고 해도 엄청난 위력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윤구주가 민규현을 데리고 절정의 문에 발을 들이고 있을 때, 서울의 어느 곳.넓고 웅장한 저택 안에는 가부좌를 틀고서 저택 안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명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곧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저택 지붕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치솟은 엄청난 기운을 바라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울에서 어떤 이가 신급 절정 강자가 되려는 거지? 심지어 이렇게 큰 기척을 내다니!”노인이 그 절정의 기운을 보았을 때 서울의 수십 곳에서 동시에 강자가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먼 곳에서 윤구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서울에 또 신급 절정이 된 강자가 생겼군. 얼른 조사해 봐! 대체 어느 집안의 조상인지 말이야!”절정이 얼마나 강하냐면, 천인조차 비교할 수 없었다.그것이 바로 진정한 절정이었다!현재 민규현은 윤구주의 구양진용결의 도움으로 억지로 절정의 문을 열었다. 그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절정이 한 명 생기게 되면 한 지역의 조상 대접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황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같은 시각, 민규현의 몸에서 뿜어지는 폭발적인 기운이 절정을 돌파할 때쯤.도성 안.정자에 앉아 있던, 백발이 성성하고 손에 검은색 바둑을 든 노인은 그곳에서 바둑을 들고 있었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