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우리 세가의 사람을 죽여?” 염수천이 검으로 그 세가 노인의 목을 자른 모습에 나머지 사람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염수천은 추호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염수천은 강철로 주조된 검을 들고 무심하게 서서 말하였다. “너희를 죽이는 게 뭔 큰 일이라고. 난 금위군 통령 염수천! 죽는 게 두렵지 않은 놈은 나한테 덤벼도 좋아.” “금위군?” “이 자식이 바로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라고?” 염수천의 말에 세가 성원들의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황성 금위군이 국주의 친위군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들은 선참후계 및 격살물론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국주 단 한 사람한테만 충성한다. 30만의 금위군을 거느리는 금위군 통령이 지금 이 시각 윤구주의 편에 서 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염수천 나리, 금위군 통령으로서 우리 세가의 일에 끼어드는 건 좀 타당치 않다고 봅니다만.” 마동한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내가 굳이 끼어들겠다면 어쩔 건데?” “잘 들어라, 구주왕은 나 염수천의 왕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누가 나의 왕한테 무례를 범한다면 그놈의 명줄은 내가 끊어놓을 것이다!” 이 말이 나오자 모든 세가 성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염수천 나리의 기세는 참으로 대단하지만 아쉽게도 구주왕은 더 이상 우리 화진의 왕이 아닙니다! 게다가 오늘 우리 세가들은 내각 8명의 장로의 지시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일개 금위군 통령이 감히 내각 나리의 명령을 거스르겠다는 겁니까?” 마동한이 말했다. “내각으로 날 짓누를 생각은 말아! 딱 한 마디만 더 한다. 설사 은성구가 온다 해도 똑같이 베여버릴 거야!” 이 한마디에 마동한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제길! 어쩌면 윤구주의 주변에는 나사 풀린 인간들만 모여있는 건지! 먼저는 공씨 가문의 공수이가 시비를 걸더니 이젠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 난리를 피우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허허!” “염수천 나리가 작정하
외팔 절정의 말에 모든 사람이 흠칫 놀랐다. 이 기괴한 절정들이 다 윤구주와 아는 사이라고? 무슨 상황이지? 민규현, 정태웅 그리고 천현수조차 얼굴에 깊은 곤혹감으로 가득하였다. 외팔 절정의 물음에 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 “6년 전에 너희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더니 지금 다시 기여 나와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6년 전? 쿵! 이 말에 모든 사람이 얼 빠졌다! 전에 본 적 없는 이 절정들이 다 6년 전 사람이란 말인가! “하하하”“그렇네! 벌써 6년이 지났어!” “내 팔이 인왕한테 잘리고 난 후로 난 인왕을 단 하루도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네.” 외팔 절정의 얼굴에는 살기가 어렸다. 원래 이들은 6년 전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으로 칭할 때 그의 칼날에서 살아남은 세가 절정이었다. 이 외팔 노파의 이름은 채청화, 채씨 가문 세가 사람이다. 얼굴에 지네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는 장영록 역시 기북의 장씨 가문 세가 사람이다. 6년 전 윤구주는 자신의 주먹으로 천하를 얻었다! 그의 앞길을 막는 자는 모조리 베여버렸다! 눈앞의 장영록이든 채청화든 모두 6년전 세가의 잔당들이다! 채청화의 끊어진 한쪽 팔과 장영록 얼굴의 그 칼날자국 모두 윤구주가 남긴 것이다. 당시 윤구주가 천하의 왕으로 된 후 그들의 목숨은 살려주었다! 하지만 6년 전 윤구주의 앞길을 막아섰던 세가의 잔당들이 또다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채청화, 장영록과 그 뒤에 서 있는 십여 명의 세가 잔당을 바라보며 윤구주가 말했다. “나를 대적하기 위해 꽤 머리를 쓴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나머지 놈들도 다 기여 나오거라!” 외팔 노파가 깔깔 웃어대며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인왕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숨지 말고 나오거라!” 외팔 절정의 말이 끝나자 잠긴 목소리가 서쪽에서 전해져 왔다. “주씨 가문, 인왕을 뵙니다!” 말소리와 함께 백발의 한 노인이 휠체어에 탄 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도 역시 7, 8명의 절정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통일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배씨 가문의 세자 배도천이였다! 제자백가 중의 배씨 가문 인원으로써 배도천은 이제껏 중립을 유지했다. 윤구주의 변태 같은 실력을 직접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곁에 서 있던 배씨 가문 붉은 얼굴의 절정 노인이 생각 많아 보이는 눈길로 그들을 훑으며 답했다. “세자는 모르겠지만 이 자들 모두 6년 전 살아남은 세가의 잔당들이야!” “6년 전이요?” 배도천은 깜짝 놀랐다. “그래!” “당시 인왕이 곤륜에서 왕으로 칭하고 무력으로 천하를 얻었지. 하지만 자네는 모를걸세. 왕으로 칭하기 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지를 말이야.” 배씨 가문 절정이 유유히 말했다. “셋째 장로님의 뜻은 이들 모두 당시 윤구주를 막아 나섰던 사람들이란 겁니까?” 배도천이 재차 물었다. “그렇고말고!” “저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늙은 괴물 보이나? 저 자는 주형권이라고 주씨 가문의 선조일세! 주씨 가문은 북방에 웅거하고 있지. 비록 제자백가의 이름난 대표는 아니지만 주씨 가문의 음양진은 도문중에서 명성이 자자하지! 심지어 예씨 가문도 주씨 가문 현문진법의 위력을 인정하였어!” “바로 윤구주가 이 주씨 가문 선조의 두 다리를 베여버렸어!” 이 말에 배도천은 오금이 저려났다. “그리고 저 나호봉의 사도인!” “나호봉은 우리 세가 서열에 속하여 있지 않아. 나호봉은 악행을 서슴지 않는 철저하게 나쁜 종문이지. 나호봉 사람들은 사람의 정기와 피를 빨아먹으며 사악한 무술을 연마해! 사도인은 6년 전 윤왕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이 자들이 아직도 살아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배도천은 눈앞의 절정 강자들을 쓱 훑어보았다. 방금 모습을 드러낸 새 얼굴의 절정만 하여도 30여 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세가의 절정도 합하면 50명은 족히 넘는다! “망했어!” “이렇게 많은 절정이 인왕 하나를 죽이기 위해 모인 거라니! 큰 심혈을 기울였네!” 배도천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6년 전 세가 잔당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윤구주 뒤에 서 있던 형제들의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두렵지는 않았지만, 오늘 이 노룡산에 이토록 많은 절정 고수가 숨어있었을 줄은 몰랐다. 이 자들은 어디서 나온 거지? 그리고 이 자들은 도대체 누구지? 윤구주 이외 나머지 사람은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제길, 마씨 가문이 언제 이토록 강해진 거지? 이 많은 절정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공수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죽여버릴, 절정의 수가 우리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어!” 안색이 어두워진 염수천도 한마디 하였다. 곧이어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 “저하! 명만 내려주신다면 제 10만 금위군들을 불러 모아 이 역적들을 말살해 버리겠습니다.” 윤구주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이 많은 세가의 절정이 그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괜찮다!” 그는 담담하게 이 세글자를 내뱉었다. “하지만...”염수천이 뭐라 더 말하려고 하다가 연구주의 표정을 보고 말을 삼켰다. 흰 옷차림의 윤구주가 늠름하게 서서 6년 전 세가 잔당들을 훑어보았다. “장씨 가문!” “채씨 가문!” “주씨 가문!” “그리고 나호봉!” “6년 전 내가 너희들의 목숨만은 살려두었건만 6년 후 감히 내 앞에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윤구주의 목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곳곳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6년 전 세가 절정들이었음을 말이다!“인왕이 저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저희가 이 몇 년 동안 날마다 인왕을 그리던 보람이 있습니다.”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장씨 가문의 절정 장영록이였다. 그는 당시 윤구주의 칼날에 긁혀 미간부터 입가까지 흉터가 생겼다. 본디 금창약으로 없앨 수 있는 흉터지만 본인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흉터를 보면서 윤구주를 향한 원한을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장영록, 인왕과 쓸데없는 말 그만해! 우리 이 늙은이들이 인왕
바로 이때 윤구주가 팔을 저으며 말했다. “꼬맹이, 너희들 뒤로 물러서! 이들과 나 사이의 원한에 끼어들지 마!” “하지만 형님...”공수이는 뭐라 더 말하고 싶었다. 윤구주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말 들어!” 그는 그제야 윤구주의 뒤로 물러섰다. “윤구주, 내 두 다리를 이렇게 만든 값은 톡톡히 치러야겠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주씨 가문 노인은 냉랭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구주는 시선을 그한테 돌리지도 않은 채 덤덤하게 답했다. “네가? 무슨 능력으로?” “너...”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 노인은 분노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감히 뭐라 대꾸하지는 못하였다. 윤구주는 시선을 마씨 가문 일원들한테로 돌렸다. “네가 바로 마씨 가문 세자냐?” 윤구주는 마씨 가문 세자 마동한을 바라보면서 질문하였다. 마동한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였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매번 윤구주를 마주할 때면 마치 많은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렇소. 그러면 뭐요?” 마동한이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해. 이 6년 전의 세가 잔당을 누가 불러 모은 거지? 문씨 가문이냐?” 윤구주는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물음에 마동한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윤구주의 말대로 이 세가 잔당들은 문씨 가문이 불러 모은 것이다! 마씨 가문 혼자서는 이걸 해낼 능력이 없다! 하지만 마동한은 사실대로 말할 수 없거니와 감히 말할 용기도 없다. “아무 말도 안 하면 네가 묵인한 거로 여길게!” “하지만 넌 마씨 가문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했어. 왜냐하면 오늘부터 너희 마씨 가문은 주자백가에서 지워질 거거든!” 윤구주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였다. 윤구주의 이 말에 마동한이 분노하며 말했다. “윤구주,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네가 정녕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을듯싶으냐?” “문벌을 도살하고 우리 무도 3대 서열을 억압하고 또 서울에 혼란을 준 죄, 넌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오
배씨 가문의 말에 마동한의 안색이 점점 더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곧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 이 자리에 제자백가 중 최소 열몇 개의 가문이 왔다! 게다가 30여 명이나 되는 6년 전의 절정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씨 가문 하나 없다고 두려워할 것 없다. “반씨 가문은요? 혹여 배씨 가문처럼 왕위도 없는 폐인한테 빌빌 길면서 살 건가요? 잊지 마세요, 6년 전 그가 우리 화진 3대 서열을 짓눌렀다는 것을. 6년 전에 그랬듯이 6년 후에도 여전히 그럴 겁니다!” 마동한은 고개를 들어 이제껏 아무 말도 없는 반씨 가문을 바라보았다. 반씨 가문 역시 제자백가의 10대 세가중 하나였다. 게다가 반씨 가문은 싸움에 능하다. 하지만 싸움에 능하다고 하여 막무가내로 싸울 줄만 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으로 칭할 때 종문 서열조차 그를 막지 못하였는데 세가가 막을 수 있을 리가! 반씨 가문의 절정 노인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마동한 공자는 우리를 추동시키려 하지 마시오! 우리 반씨 가문은 줄곧 조정에만 충성하고 화진을 위해서만 일하오! 오늘의 일은 저희도 배씨 가문과 같은 입장이요. 우린 끼어들고 싶지 않소!” 이 말에 마동한은 기가 찬 나머지 폭소하였다. “반씨 가문은 사나이다운 면모를 지녔다고 여겼거늘 두려움 앞에서 벌벌 떠는 강아지 같구려!” “그래!” “반씨, 배씨 이 두 가문 모두 나서기를 꺼리니 오늘 내가 이 쓸모없는 왕을 처리해 버리지!” 마동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세가 성원이 차가운 시선으로 윤구주를 쳐다보았다. 오늘의 싸움은 더는 물러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오늘의 이 싸움은 본디 문씨 가문 세가가 짠 판이다! 6년 전 세가 잔당 절정의 손으로 윤구주를 대적하려는 속셈이다. 지금 6년 전의 세가 절정만 하여도 30여 명이 넘었다. 게다가 마동한의 편인 10여 개의 가문까지 더하면 절정 강자의 수가 50여 명을 넘겼다. 그중 오악 절정이 9명이나 되였다! 이번 싸움은 이제껏 윤구주가 상대했
공수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세가라고 자칭하는 놈들이 이런 짓을 벌이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지? 사람 모아서 형님을 죽이려고 해? 제길! 오늘 소생이 맹세할게. 내가 오늘 너희들 다 죽인 후에 공씨 가문 사람들을 불러 너희 조상 18대의 무덤을 다 파헤치도록 할 거야.” “저하를 보호하라!” 염수천,민규현, 정태웅, 천현수 모두 앞으로 나와 경계 태세를 취하였다! 이때 윤구주가 갑자기 말하였다. “너희들은 물러서거라! 오늘 나 혼자서 저들을 모두 처리하겠다.” “네? 저하?” 염수천은 윤구주가 혼자서 이 많은 세가 절정을 상대하겠다는 말에 멈칫하였다. “내 말에 따르거라! 모두 물러서!” 윤구주는 다시 한번 패기 가득한 어투로 말하였다. “모두 형님 말에 따르도록 해! 형님이 혼자서 해치우겠다고 하시니 우린 그저 앉아서 좋은 구경할 준비나 하면 되!” 공수이는 그 누구보다도 윤구주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는 윤구주가 걱정되지 않았다! 당시 곤륜산에서 싸울 당시 상황이 지금보다 몇십 배는 더 엄중하였으나 윤구주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은 공수이의 걱정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고서야 지시대로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역시 천하무적의 인왕 다워. 배짱 하나는 여전히 대단해!” “혼자서 5, 60명의 절정을 상대하겠다는 거야?” 얼굴에 흉터를 지닌 장영록이 비웃으며 말했다. “인왕 풍채가 남다르니 그저 탄복할 따름이야! 하지만 세가를 억압하고 우리 사람을 죽인 죄로 오늘 반드시 목숨값을 치러야 할 것이야!” 외팔의 채씨 노파가 말하는 와중에 검붉은색의 절정 기운이 그녀의 온몸에서 슴베였나 왔다.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저놈부터 먼저 죽이자! 6년 전의 원한을 제대로 갚아보자고!” 검은 도포로 온몸을 뒤덮은 나호봉의 사도인이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죽음의 기운이 해골로 변하여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 드디
윤구주가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였다. 하늘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에서는 번쩍거리는 번개가 가득한 뢰의 연못이 있었다. 이 뢰의 연못이 하늘을 뒤덮자 검은 소용돌이 속에서 기둥처럼 굵은 번개들이 이리저리 쳐대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건 봉왕팔기의 뇌왕인이다! 조심해!” 얼굴에 지네 같은 흉터를 지닌 장씨 가문 절정 장영록이 소리를 내었다. 6년 전, 곤륜에서 왕으로 칭할 때 윤구주는 스스로 창작해 낸 팔기지로 무도 3대 서열을 이겼다.지금 윤구주의 팔기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든 이가 팔기지의 무서움을 안다. 팔기지의 일부만 깨우쳐도 신급에 발을 디딜 수 있고 무도의 절정에 도달할 수 있다. 현재 윤구주의 뇌왕인의 출현과 함께 무수히 많은 천둥번개가 미친 듯이 쳐댔다. 마치 온 하늘이 천둥번개로 뒤덮인 듯 하였다. “윤구주, 네가 팔기지를 쓴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다리가 잘린 주씨 가문의 절정이 새빨개진 두 눈으로 거의 절규하다시피 소리 질렀다. 그가 가슴을 툭 치자 구릿빛의 나침반이 튀어나왔다. “현문쌍사진 열리거라!” 이 주씨 가문 선조는 왕년에 윤구주가 왕으로 칭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절정 중 하나이다. 후에 그는 곤륜산 아래에서 윤구주의 검에 의해 두 다리를 잃었다! 이 6년간 윤구주를 향한 원한은 나날이 깊어져갔다! 이젠 복수를 할 때다. 그 나침반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 절정의 산그림자가 그의 뒤에서 아른아른 비쳤다! 절정중에서 전삼중천은 하등급이다! 전삼중천의 경지를 뛰어넘으면 비로소 절정을 현상할 수 있다! 지금 주씨 가문 선조 뒤에 나타난 우뚝 솟은 5개의 산그림자는 그가 오악 절정임을 알리는 상징이다. 고동으로 만들어진 그 나침반은 허공에서 신속히 커지기 시작하여 3층 건물 높이만큼 커졌다.나침반 속 괴이한 주술 문양이 반짝거렸다. “변!” 주술이 반짝일 때 오악 절정인 주형권이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치자 무수한 주술이 순식간에 두 마리의 커다란 이무기로 변하였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