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설국 본토를 향해 나아가던 때,하진의 수도, 황성 금란전에서는 맑고도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부황! 아직도 병력을 보내 윤구주를 돕지 않으시는 건가요? 지금 그 바보가 혼자서 온 나라를 상대하고 있다고요!”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붉은 비단 치마를 두른 하진의 육공주, 이홍연이 용좌에 앉아 있는 하진 국주를 향해 항의하듯 말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기산에서 돌아온 이후 이홍연은 매일 윤구주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그가 설국으로 떠난 지 어느덧 일주일. 그녀의 걱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용포를 입은 국주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가 구주를 걱정하고 있구나?”“당연히 걱정되죠!”이홍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생각해 보세요. 혼자서 나라 하나를 상대하고 있는데, 걱정 안 하면 제가 사람이겠어요?”국주는 딸의 투덜거림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다. 이것 봐라. 방금 전선에서 도착한 전황 보고인데, 네가 직접 읽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이홍연에게 건넸다.이홍연은 서둘러 펼쳐 보고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우리 왕께서 이미 설국 흑여 산맥의 십여 개 군영을 평정하셨으며, 적군 2만여 명을 전멸시켰습니다. 현재 왕께서는 설국 본토로 진군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이홍연은 보고서의 내용을 보고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그 바보, 정말 대단하잖아! 벌써 설국 병사 2만 명을 쓸어버렸다니!”옆에서 지켜보던 대신 육도진이 나서서 말했다.“공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구주왕께서는 설국의 여러 군영을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설국 군신 세나스의 딸을 포로로 삼으셨습니다.”“뭐라고요? 그 바보가 여자를 잡았다고요?”이홍연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육도진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공주님, 그 여인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그분의 이름은 세나미로, 설국 제일의 미인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설국 군신 세나스의
“설국은 비록 벌레와도 같은 보잘것없는 나라지만 광명 신전과 그곳 제사장들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어. 게다가 구주 혼자 설국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아.”말을 마친 뒤 국주가 갑자기 말했다.“육도진, 명령을 내리겠다.”“네, 국주님!”“직접 북방군 40만 명을 이끌고 지금 당장 흑여산맥 국경 지역으로 향하도록 해. 만약 구주를 만난다면 바로 설국을 공격하도록 해.”명령을 받은 육도진은 서둘러 말했다.“명 받들겠습니다!”육도진이 명령을 받자 망포를 입은 국주는 심오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이제 시작이겠구나.”...설국은 국토가 설국의 10분의 1로 그리 크지 않았다.설국은 아주 추운 지역이었고 인구 또한 겨우 수천만 명뿐이었다.설국은 화진과 달리 여러 개의 도시가 아닌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다.이때 설국의 한 도시 국가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는데 길가에는 여전히 행인들이 있었다.그곳은 설국의 낙일성이었다.낙일성은 사시사철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설국인들은 이런 엄동설한에 일찌감치 익숙해져서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행인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길게 울렸다.경보음은 귀청을 찢을 듯한 음량으로 낙일성 상공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그리고 곧이어 군복을 입은 설국 병사들이 길가 양측에 모습을 드러냈다.병사들의 손에는 총과 같은 무기가 들려 있었고 그들이 나타나자 시민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어떻게 된 일이지? 저 사람들 우리 설국의 가장 강력한 군대 아니야?”“그런 것 같은데? 세상에, 뭔 일이래? 저 사람들이 왜 낙일성에 온 거지? 게다가 경보음까지 울리다니.”“설마 전쟁이라도 난 걸까?”설국 국민들이 의논이 분분할 때 갑자기 긴 밍크코트를 입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여러분의 추측이 맞습니다.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설국은 곧 화진과 싸울 거라고 합니다.”‘뭐?’“화진과 싸운다고요? 왜죠?”그 말에 근처에 있던 설국 국민들은 전부 경악한
벼락들이 꿈틀거리면서 낙일성의 상공에 갑자기 나타났다.우르릉, 쾅.끊임없이 이어지는 천둥소리에 설국인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의아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이때 수많은 벼락 사이에서 누군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벼락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윤구주가 온 것이었다.낙일성 시민들은 윤구주의 모습을 본 순간 전부 얼이 빠졌다.“저기 봐요. 누군가 벼락 사이에서 걸어 나왔어요.”“세상에나, 사람 맞대요? 아니면 신일까요? 어떻게 벼락 사이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걸까요?”아래에 있는 설국 시민들과 설국 병사들은 윤구주가 벼락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 속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보고 전부 충격에 빠져서 숨을 쉬는 것마저 잊었다.윤구주가 나타나자 곧 그의 뒤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다.여자는 생사인의 통제를 받고 있는 세나미였다.한때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세나미는 얼굴이 창백한 채로 노예처럼 윤구주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세상에, 다른 사람도 있네요?”“놀랍네요. 저 두 사람 누굴까요? 왜 하늘에서 나타난 걸까요?”설국 시민들이 놀라워하고 있을 때 하늘에 있던 윤구주는 눈을 빛내면서 광활한 낙일성을 바라보았다.“이곳 꽤 괜찮네. 여기로 정해야겠어.”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폭탄처럼 상공에서 지면으로 빠르게 내려왔다.쿵.그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주변에 있던 설국 시민들은 모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그와 동시에 세나미 또한 허공에서 내려와 윤구주의 뒤에 섰다.그녀는 낙일성 시민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악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우리 설국 시민들조차 가만두지 않으려는 거야?”그동안 세나미는 사람들을 죽이는 윤구주의 모습을 계속 봐왔기에 이미 무감각해졌다.그러나 그가 낙일성에 왔을 때 세나미는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그녀는 윤구주가 마치 미친놈처럼 낙일성의 수백만 명 되는 시민들을 도륙할까 봐 두려웠다.윤구주가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무고한 백성들은 절대 죽이지 않으니까.”윤구주의 말에 세나미는 그
“당신들은 멋대로 우리 낙일성에 침입하여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어. 그런데 우리를 보고 물러나라고? 여봐라, 이 두 사람을 당장 체포해!”선두에 선 병사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뒤에 있던 병사들이 윤구주를 잡으려고 나섰다. 그러자 세나미가 크게 외쳤다.“안 돼...”세나미는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늦었다.촤악!아무런 예고 없이 나타난 검기가 설국의 두 병사가 가까워지기도 전에 그들의 몸을 베었다.“으악!”두 설국 병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몸이 갈라졌다.“아... 아... 아까는 이 사람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잖아.”세나미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난 설국 백성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설국 병사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어.”윤구주는 떳떳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세나미는 넋이 나간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리고 윤구주의 행동에 남은 수십 명의 설국 병사들까지 전부 얼이 빠졌다.“감히 백주대낮에 우리 사람들을 죽여? 총을 쏴서 죽여버려!”선두에 선 병사가 명령을 내렸고 곧 그들은 윤구주를 향해 총을 쐈다.그러나 겨우 총 따위로 윤구주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윤구주는 소맷자락을 휘날리더니 체내의 구양진기로 순식간에 금빛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금빛 보호막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큰 손으로 그것을 눌렀다.“죽어!”쿵!어마어마한 구양진기가 그를 향해 쏘아진 총알들에 충격을 주어 다시 날려 보냈다.“끄아아악!”되돌아간 총알들은 설국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고 그 순간 수십 명의 설국 병사들이 전부 피바다 위로 쓰러졌다.그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었다.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설국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본 세나미는 그저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윤구주가 사람들을 순식간에 죽여버리자 근처에 있던 설국 시민들은 겁을 먹고 주변으로 흩어졌다.그들은 달리면서 외쳤다.“사람
설국의 절정 강자인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운 무홍의 기운이 마치 우뚝 솟은 기둥처럼 어마어마한 기세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노인은 육신을 단련한 초극 절정 강자였다.일반적인 상황에서 절정을 돌파하려면 술법으로 돌파해야 했다.오직 육신의 힘만으로 절정에 다다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눈앞의 노인은 육신을 단련하여 무도의 절정에 오른 강자였다.비록 그 노인은 겨우 절정 삼중천 경지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홍의 기운은 술법 절정 오악 수준이었다.“길든 할아버지!”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붉은 머리의 세나미가 놀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그와 아는 사이였다니.길든이라고 불린 노인은 세나미를 바라보았다.“나미 아가씨, 아가씨께서 무사하신 걸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요.”“길든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세나미는 궁금한 듯 물었다.길든이라고 불린 노인은 사실 설국의 유명한 초극 절정 강자로 한때 설국 부대의 무도 교관이었다.그러나 길든은 실력이 향상되면서 교관직을 그만두고 폐관 수련을 시작했다.육신을 단련한 초극 절정인 그가 지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길든은 세나미의 질문에 웃으며 말했다.“전 세미나 아가씨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특별히 세나미 아가씨를 찾으러 온 겁니다.”군대의 신인 세나스의 명령이라니.사실 세나스는 딸이 살아있고 윤구주에게 억지로 끌려갔다는 정보를 얻은 뒤 곧바로 육신을 단련한 초극 절정인 길든에게 연락하여 자신의 딸 세나미를 구해달라고 했다.그래서 설국 초극 절정인 길든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화진의 청년인 네가 우리 설국의 존귀한 세나미 아가씨를 납치했던 것이냐?”하늘을 찌를 듯한 무홍의 기운을 내뿜는 길든이 이때 드디어 천천히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납치? 이 여자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 지금 이 여자는 내 노예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야.”윤구주가 직설적으로 말했다.그의 말에 육신을 단련한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은 화가 났다.“빌어먹
“육신?”윤구주는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과거 윤구주는 17세 때 육신의 힘으로 절정 후삼품 서열에 올라섰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눈앞의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은 윤구주의 무시무시한 점을 몰랐다.“내가 묻잖아. 이놈아, 넌 대체 누구야?”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은 윤구주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길든 할아버지, 이 사람이 바로 화진의 왕, 구주왕이에요.”이때 세나미가 서둘러 윤구주의 신분을 밝혔다.‘뭐라고?’“화진의 왕, 구주왕이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길든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네, 네, 네가 바로 화진의 구주왕이라고? 그럴 리가! 소문에 따르면 구주왕은 죽음의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던데!”길든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 또한 윤구주를 두려워하는 게 티가 났다.“아뇨, 죽지 않았어요. 이 사람은 정말로 구주왕이에요. 길든 할아버지, 꼭 조심하셔야 해요!”세나미는 계속해 길든을 걱정했다.세나미가 다시 한번 윤구주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자 눈앞의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은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네가 바로 6년 전 전투에서 우리 사형을 죽였던 것이냐?”길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당신의 사형이라고?”윤구주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내 사형은 광사열륭이라고 불렸었지.”그 이름을 들은 순간 윤구주의 머릿속에 불현듯 6년 전 설국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장 처음 죽였던 절정 강자가 떠올랐다.그 사람은 노란색 머리에 몸은 호랑이처럼 건장했으며 얼굴은 사자와도 같았다.
흰옷을 입은 윤구주는 마치 산처럼 제자리에 우뚝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다른 사람에게 있어 눈앞의 육신을 단련한 초극 절정 강자는 괴물일지 모르지만 윤구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싸우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놀아주도록 하지!”윤구주의 말을 들은 길든은 거칠게 울부짖었고, 그의 백발은 마구 휘날렸다.“건방진 놈! 너도 죽어!”그 말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길든은 자신의 거대한 검을 힘껏 휘둘렀고 무시무시한 무홍의 기운이 길든의 공격으로 인해 아주 긴 검은색 검망이 되었다. 검은색 검망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윤구주를 뒤덮으려고 했다.그 공격은 오악 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육신을 단련한 무도 절정 강자다운 실력이었다.길든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주변 기운이 싸늘한 검기로 바뀌었고 그 검기로 인해 옆에 서 있던 세나미는 피부가 콕콕 쑤시는 통증까지 느꼈다.세나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윤구주는 길든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걸 보더니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주먹을 뻗었다.검으로 주먹을 상대하려고 하다니, 게다가 윤구주의 주먹은 조금 전 주먹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평범했다.그러나 그의 주먹으로 인해 공간 전체가 시간이 멈춘 듯했다.쿵!윤구주의 주먹이 길든의 검망과 부딪쳤다.두 힘이 부딪치는 순간, 공기 속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쿠구궁!엄청난 충격파로 인해 길든은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흰 옷을 입은, 마치 신과 같은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주먹으로 검을 막아? 심지어... 내 공격을 막아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잠깐의 놀라움 뒤, 길든은 몸이 멀리 날아감과 동시에 갑자기 공격을 바꾸었다.“한풍참!”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길든의 뒤에 있던 무홍의 기운이 갑자기 서로 교차하면서 놀랍게도 소용돌이들을 만들어냈다.그 소용돌이들이 나타나자 길든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고, 크기가 제각각인 소용돌이들이 사방에서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윤구주는 꿈쩍하지 않고 서서 차가운
“설마 겨우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거야?”윤구주가 갑자기 비웃었다.“화진 놈, 건방 떨지 말고 내 공격을 어디 한번 감당해 봐!”길든은 고함을 지르더니 두 손으로 검을 쥐고 휘둘렀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없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손을 뻗었고, 무시무시한 파멸의 기운이 그의 손바닥에서 퍼져나갔다.곧이어 은색의 긴 창이 윤구주의 손 위에 생겼다.그것은 용혼한위총이었다.용혼한위총이 나타나자 그것에서 하늘과 땅마저 파괴할 듯한 힘이 느껴졌다.“창?”윤구주의 손에 용혼하위총이 들리자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은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엄청난 위기감이 순간 그의 몸을 감쌌고 길든은 미처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물러났다.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큰 검을 휘둘렀고 검은색 무홍의 기운 사이에 검기가 섞이며 그의 주변으로 아주 거대한 검은색 보호막을 만들었다.길든은 그 보호막으로 윤구주의 용혼한위총을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막을 수가 있을까?당연히 불가능했다.윤구주가 용혼한위총을 사용한 이유는 첫 번째 관군후 의지의 힘을 위해서였다.당시 전호병은 용혼한위총을 들고 흉노족들을 물리쳐서 그들이 다시는 화진 땅을 침략하지 못하게 했다.지금 윤구주 또한 마찬가지였다.창은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을 향해 날아들었다.푹.창은 마치 용처럼 길든의 앞에 놓인 검은색 보호막을 들이받았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길든을 보호해 주던 보호막이 파괴되었다.“뭐야?”보호막에 균열이 가면서 파괴되자 옆에 있던 세나미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길든 할아버지, 조심하세요...”세나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윤구주의 용혼한위총은 길든이 만든 보호막을 파괴한 뒤 무시무시한 기세로 길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길든이 어떻게 그 치명적인 일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피했다.그러나 그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마자 윤구주가 들고 있던 창을 멀리 던졌다.쉭!용혼한위총은 잔영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