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꽂히는 수많은 천둥, 번개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그곳에는 윤구주가 신처럼 우뚝 서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집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도 파괴되었다....먼 곳.윤구주가 설씨 일족을 도륙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망설이는 얼굴로 설씨 저택 밖에 서 있었다.자세히 보니 백화궁의 장연희였다.조금 전, 윤구주가 먼저 가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결국 떠나지 못했다.윤구주가 걱정됐기 때문이다.그가 혹시라도 이곳에서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이곳은 설씨 일족의 영지이고 설씨 일가 사람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펑!펑!펑!저택 쪽에서 천둥소리와 비명이 들리자 장연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가슴팍에서 비수를 꺼냈다.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설씨 저택을 바라보았다.“안 되겠어. 오늘 밤, 날 구해준 건 그 사람이야. 난 절대 그 사람이 혼자 설씨 저택에서 죽는 걸 지켜볼 수 없어!”그렇게 생각한 장연희는 비수를 들고 설씨 저택으로 달려갔다.그러나 설씨 저택 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눈앞의 광경에 넋이 나갔다.설씨 저택의 대문 앞은 피로 물들었고 여기저기 반토막 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그리고 설씨 저택 대문도 쪼개져 있었다.대체 어떻게 단칼에 대문을 쪼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양쪽 벽이 무너지고 주변이 폐허가 된 것만 보였다.그 광경에 장연희는 놀라서 멍해졌다.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쪼개진 대문을 바라보았다. 큰 충격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둘러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마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와 시체가 탄 냄새가 물씬 풍겼다.고개를 들어 보니 마당 중앙에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그 광경은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주 잔혹했다. 게다가 더욱 무시무시한 건 그 시체들을 제외하고 백여 구의 벼락을 맞아 탄 시체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점이다.결국 장연희는 참지 못하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토하기 시작했다.이곳은 이미 지옥이
오늘 밤 비바람이 불 것이다. 서남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설씨 가문 본거지도 오늘 밤 윤구주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백화궁을 상대하기 위해 파견된 설씨 일가 사람들은 윤구주가 이미 그들의 족장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설씨 가문은 이미 멸망한 셈이었다.그들은 여전히 백화궁을 진격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윤구주가 설씨 족장을 죽이고 본거지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인 후, 전쟁터에 있던 설씨 일가 사람들은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마치 불길한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 말이다.백화궁 고급 살롱 앞.백화궁 공격을 지휘하고 있던 종친장로 한 명이 갑자기 손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모두 멈춰라!”그의 명령과 함께 공격 중이던 설씨 일가 사람들은 모두 멈췄다.“만 장로님, 무슨 일이에요?”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달려와 물었다. 그러자 장로라고 불리는 노인은 음산한 두 눈으로 설씨 가문 본거지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왠지 느낌이 이상해.”“그럼 장로님의 뜻은?”부하가 물었다. 만장로는 거의 공략해 가는 살롱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내 명을 전하라! 즉시 철수! 오늘 밤, 여기까지만 하자.”“네!”그러자 파견된 설씨 일가 사람들은 모두 철수했다.정신없던 싸움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백화궁, 호화롭기 그지없는 살롱 내부.경국지색의 미녀들이 칼을 들고 로비에 모여있었다. 이때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설씨 가문 개자식들이 왜 갑자기 멈췄어?”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봤더니 화끈한 몸매의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 보였다.그녀의 청색 긴 치마에는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다만 그 피는 그녀의 피가 아니었다.“해민 언니, 몇 분 전 그 개자식들이 갑자기 모두 철수했습니다.”한 미녀 성원이 대답했다.“철수?”그 말을 듣자 인해민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개자식들, 백화궁과 사투를 벌이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어? 왜 갑자기 철수하지?”인해민이 다시 묻자 로비에 있던 미녀 타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됐어
설씨 가문의 본거지는 사라졌지만 파견된 구성원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몰랐다. 늦은 밤 그들은 마침내 본거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모든 사람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만 장로님, 무슨 일이 생겼죠? 보세요. 대문까지 파괴되었는데요.”한 구성원이 대문이 망가뜨려져 있고 심지어 가운데 칼자국이 나 있은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남은 200여 명의 구성원들도 눈을 부릅뜨고 칼자국이 난 대문을 바라보았다.본거지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고 영원히 예전 휘황찬란했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피비린내와 시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빌어먹을! 빨리 집으로 가보자!”만장로라고 불리는 어르신은 소리를 지르더니 즉시 사람을 데리고 본채로 돌아갔다. 지나가는 길에 시체가 널려있었다. 시체들은 끔찍했고 온전한 주검이 하나도 없었다. 더 무서운 것은 집 내부에는 수백 구의 검게 그을린 시체가 쌓여 있다는 것이다.지옥 같은 광경을 바라보던 만장로와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누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우리 본거지까지 무너뜨리다니...”그는 무기력하게 중얼거렸고 마음속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옆에 있던 구성원들은 숨조차 감히 크게 쉬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1,000 묘 남짓한 본거지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족장님은요? 족장님도 죽었단 말입니까?”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말도 안 돼! 우리 족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데 어찌 죽을 수 있겠는가? 모두 내 명을 받들라! 당장 찾아,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내라고! 어느 개자식이 우리 종족을 망쳤는지 밝혀낼 거야.”만장로는 피를 토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든 구성원은 본거지를 수색하며 살아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시체와
그 말을 듣자 자리에 있던 구성원들은 모두 멍해졌다.“이 개자식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설씨 가문은 수백 년 동안 군형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어떻게 멸족당할 수 있어?”만장로가 포효하며 피투성이가 된 그 남자를 걷어찼다.“정말입니다. 사실입니다.”그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자세히 말했다.그는 설씨 가문 방앗간 제자였다. 오늘 마침 일이 있어 외출하는 바람에 죽음을 면했다. 그가 본거지에 도착하자 대문 앞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겁에 질린 그는 즉시 집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마침 그 “마귀”을 보게 되었다.“그 마귀가 혼자의 힘으로 우리 모든 사람을 죽였어요... 심지어 우리 족장님까지도요.”만장로는 도저히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이 개자식이 정말 허튼소리만 하고 있네!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어?”“정말이라니까요. 그 자식이 뇌법으로 죽였어요.”“뇌법?”“네! 뇌법입니다. 순간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번쩍이고 땅을 내리치더니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그리고 그는 땅바닥에 쌓인 그을린 시체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보세요. 이 시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두를 죽였습니다.”그가 다시 말하자 만장로와 구성원들은 그을린 시체가 쌓인 쪽을 바라보았다. 시신에는 모두 번개에 그을린 흔적이 있었다. 심지어 집과 땅마저도 번개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타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만장로는 갑자기 몸을 심하게 떨었다.“이럴 수가... 우리 설씨 가문은 군형에서 몇백 년 동안... 어떻게 하루아침에 멸족당할 수... 심지어 우리 족장님까지...”만장로 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제자들도 눈앞의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 자식이 누구인지 말해.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그 자식 말이야!”만장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눈에서 피가 흐를 지경이였다. 그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그 남자를 덥석 잡으며
윤구주가 설씨 가문을 모조리 죽인 그날 밤, 사실 백화궁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큰 살롱 안, 백화궁에서 바깥에 있던 모든 구성원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그녀들은 설씨 가문 사람들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만단의 준비해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백화궁의 미녀들이 하나둘씩 소환되고 있었다.바로 그때.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살롱 앞에 나타났다.그녀는 키가 크고 치마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바로 혼자 돌아온 장연희였다.“연희 언니예요? 아직 살아 계셨군요!”입구에 서 있던 백화궁 여자가 장연희를 보고 바로 달려왔다.그러자 장연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소아야, 해민 언니는?”“해민 언니는 지금 대전에 계셔요. 전에 사람을 보내서 언니한테 계속 연락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실 줄은 몰랐어요.”소아가 말했다.“가자. 날 해민 언니한테로 데려다줘. 알려드려야 할 큰일이 있어.”“네!”소아는 즉시 장연희를 데리고 대전을 향해 걸어갔다.큼지막한 백화궁 대전 안.수십 명의 백화궁 최정예 고수들이 대전 안에 서 있었다.잔혹한 나찰이라 불리는 인해민이 가장 중앙에 있었다.“해민 언니, 연희 언니가 돌아왔어요!”소아는 장연희를 데리고 대전에 도착하자 즉시 인해민에게 말했다.인해민도 장연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자 즉시 몸을 날려 그녀의 곁으로 가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연희야, 네가 아직 살아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난 네가 사고가 난 줄 알았어.”“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해인 언니.”장연희가 다급히 말했다.“네가 별일 없으면 됐어. 그건 그렇고. 너와 함께 다니던 자매들은?”인해민은 장연희 자매들의 안부를 물었다.“해인 언니. 설씨 가문 사람들이 제 자매들을... 다 죽였어요!”장연희는 가슴이 아팠다.그 말을 듣자 인해민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말했다.“빌어먹을 것들! 이 피맺힌 원한은 맹세코 꼭 갚을 거야!”“해민 언니, 그러실 필요가 없는 게 설씨 가문은 이미 멸족
그 말을 들은 인해민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휘둥그레졌다.머릿속에는 잘 생기고 우람한 윤구주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그... 호텔에 있던 잘생긴 그 남자 말이야?”“네! 맞아요.”장연희는 오늘 밤 윤구주가 설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전부 죽여버린 사실을 말했다.그리고 윤구주가 호텔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실도 알려줬다.나중에 윤구주가 그녀에게 설씨 가문의 본거지로 안내하라 했고 홀로 설씨 가문으로 쳐들어가 그들의 집을 부숴버리고 설씨 가문을 멸족했다고 알려주었다.장연희가 윤구주의 모든 일을 말하자 백화궁의 여자들은 놀라서 멍해졌다.인해민도 포함해서였다.“어머! 그 잘생긴 남자가... 혼자 힘으로 설씨 가문을 멸족하다니!”인해민은 감격한 나머지 말하는 목소리가 떨릴 정도였다.윤구주의 무서운 실력이 떠올랐고 그가 호텔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그 멋진 오빠가 정말 날 속인 게 아니었군! 정말로 5대 가족을 멸족하러 왔던 거야.”주변에 있던 백화궁 여자들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혼자서 군형 5대 가족 중의 설씨 가문을 없애버리다니!”“세상에.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야?”“그러게 말이야!”“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그 오빠가 엄청나게 잘생겼대.”“정말이야?”“그럼. 잘생긴 건 둘째 치고, 그 오빠는 타고난 왕처럼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대. 못 믿겠으면 연희한테 물어보세요.”“아이고. 난 왜 그런 잘생긴 오빠를 본 적이 없지?”“으악! 그 오빠가 너무 좋아. 누가 그 잘생긴 오빠를 좀 소개해 줘봐.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나도, 나도!”오늘 밤.원래 백화궁의 여자들은 모두 슬픔에 잠겨져 있었다. 하지만 장연희가 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고 하자 이건 복수를 한 것이었다.그리고 설씨 가문을 멸족한 사람이 바로 잘생기고 멋진 윤구주라는 말에 모든 여자는 몹시 흥
“휴. 아쉬운 건 그 잘생긴 자식에겐 여자가 있는 것 같더라고.”인해민은 갑자기 스스로 중얼거렸다.그녀는 머릿속에 윤구주의 방에서 본 소채은이 떠올랐다.비록 그녀는 소채은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그 여자가 바로 윤구주의 여자 같았다.“쳇. 하지만 그의 아내가 될수 없다면 애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잘생긴데다가 기질도 훌륭하지. 가장 중요한 건 그의 경지는 정말 놀랄 정도로 뛰어나단 말이야.”인해민이 자기 생각에 잠겼을 때 옆에 여자들이 물었다.“해민 언니, 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멸족을 당했다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그러자 인해민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설씨 가문이 멸족당했다 해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돼. 너희들도 알다시피 군형 5대 가문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야. 그 잘생긴 녀석이 설씨 가문 사람들을 죽였다해도 다른 4대 가문이 있다는 걸 잊지말아야 해. 게다가 다른 4대 가문의 실력도 모두 약하지 않아. 그래서 내 생각이 맞다면 이제 곧 군형의 남의 4대 가문에서 그자식한테 추살령을 내릴거야!”“네? 그럼 어떡하죠? 우리 백화궁에서 그 잘생긴 오빠를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 가요?”대전에 있던 여자들이 물었다.그 여자들은 지금 분명히 윤구주를 이미 자기 편으로 여기고 있었다.그러자 인해민이 대답했다.“도와야지. 물론 도와야해. 다만 이 일은 반드시 궁주님께 알려드려야 해. 군형의 다른 4대 가문들과 싸운다는 건 큰 일이야.”“해인 언니 뜻은 지금 바로 궁주님께 출관하시라고 통지를 보낼까요?”여자들이 묻자 인해민은 아름다운 눈으로 먼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궁주님께서도 이젠 곧 출관하실 때가 되었어. 어찌 됐든 궁주님은 이미 화진 최고의 왕의 죽음을 위해 반년 동안이나 폐관했잖아. 휴.”...
서남의 산악 지역.태양이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몇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서남의 유명한 성녀봉을 향해 굽이치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성녀봉은 사방 100리 안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였다.웅장하고 높이 솟아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성녀봉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 여자들은 다름 아닌 백화궁의 여자들이었다.선두에서 걷고 있는 여자가 바로 뛰어난 몸매를 자랑하는 잔혹한 나찰로 불리는 인해민이었다. 청록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드러냈다.비록 산길은 울퉁불퉁했지만 대가 3품의 경지인 그녀에게는 평지를 밟는 것처럼 식은 죽 먹기였다.그녀들이 이번에 성녀봉으로 가게 된 이유는 백화궁의 궁주를 출관시키기 위해서였다.반년 전.백화궁의 궁주는 갑자기 장례복을 입고 폐관을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왜 폐관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그녀가 누구를 추모하는지도 아무도 몰랐다.유일하게 들은 소문은 바로 그녀가 이번 생에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위해 장례복을 입었다는 것이다.하지만 궁주의 남자가 누군지 백화궁의 여자들은 역시 아무도 몰랐다.나중에 인해민의 입에서 비로소 그녀들이 존경하는 궁주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바로 천하제일의 왕일 뿐만 아니라 또한 화진의 9주 군신이라 불렸던 그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궁주가 천하제일의 왕을 위해서 폐관했다는 말을 듣자 그녀들은 비로소 깨달았다.그녀들의 궁주와 어울리는 남자가 있다면 무조건 구주왕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어야 했다.연규비도 원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연규비에 관해서 떠도는 소문은 정말 너무 많았다.그녀를 화진의 제일 마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호의 최강 여도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심지어 그녀가 기생집 출신이었으나 우연히 신비한 사람을 만나서 최고의 무술을 수련했다는 말도 있었다.아무튼 연규비에 대한 소문은 많고도 많았다.그녀는 과 에서 11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자였다.또한 십국전쟁시기에 그녀는 국방부에 3년 동안 있었다.그 3년 동안 그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