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장로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만장로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그를 안으로 모셨다.커다란 염씨 문전 안에는 음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20여 명의 경비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만 장로님, 여기서 잠시 쉬세요. 제가 우리 족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한 여씨 가문 책임자가 말했다.“그래.”여씨 가문 구성원들이 떠난 후, 만장로 일행은 대전에 앉아 족장님이 오기를 기다렸다.“한해야, 류씨, 길씨, 전씨 가문 쪽은 소식이 없어?”만장로는 자리에 앉더니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사실 설씨 가문이 멸족된 후, 만장로는 즉시 다른 군형 4대 가족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4대 가문 족장님을 초대하여 윤구주를 대항할 방법을 논의하려고 했다.“길씨, 전씨 가문과는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류씨 가문에서만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입니다.”“흥! 잘난 체하는 구류족들, 오만하게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고 믿고 우리 네 종족을 멸시하다니.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구나.”만장로가 엄하게 말했다.군형 5대 가문에서 류씨 가문 실력이 가장 강하다. 그리고 류씨 가문은 군형 구류족의 후예이다. 제일 오리지널한 혈통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5대 가문 중에서 제일 강했다. 심지어 신급 경지인 강자 한 명을 보유하고 있다.비록 만장로가 투덜거리는 척했지만 감히 정말 류씨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족장님 오셨습니다.”이때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여씨 족장이 도착하자 홀에 앉아 있던 만장로가 얼른 일어섰고 뒤에 있던 부하들도 모두 공손히 일어섰다.그리고 잠시 후 검은 가운을 입고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드러낸 염씨 가문 구성원들이 걸어들어왔다.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염씨 일가 족장이었다.그는 알록달록한 여씨 가문 전통 복장을 하고 손목에는 금으로 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가문 장로급인 인물 10여 명이 뒤따랐다.5대 가족 중의 하나인 여씨 일가 족장이 도착하자 만장로는 빠른
여씨 대장로는 설만수가 이토록 당황해하는 걸 보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설만수가 설씨 멸족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뭘 또 그렇게 서둘러요. 우리 전씨 가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대전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람진 체격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 짐승 가죽을 외투로 삼았고 노출된 구릿빛 피부에는 이상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전씨 가문이야?”그들이 나타나자 대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섰다. 이 사람들은 바로 군형 5개 가문 중 하나인 전씨 가문이다.“아이고 전 족장님, 오랜만이네!”전씨 가문 사람들이 나타난 후, 여씨 족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백발의 건장한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인은 우람진 체격에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냈다.그는 호랑이 가죽을 외투로 입고 있었고 근육 진 두 팔뚝에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기괴한 요술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그 노인이 바로 전씨 가문 족장이었다.“오랜만이야. 여 족장님. 갈수록 젊어지네!”“아니야, 하하하! 여봐라, 족장님에게 자리를 마련해.”두 사람이 수다를 떠는 사이 여씨 가문 구성원들은 서둘러 전씨 족장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지금 군형 5대 가문 중 3개 가문이 모였다. 아직 길씨와 류씨 가문이 도착하지 않았다.“길씨 뱀할매도 부르긴 불렀죠?”전씨 가문 장로들이 자리에 앉은 후 족장이 설만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설만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족장님, 이미 뱀할매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그래! 그럼 곧 도착하겠네!”그리고 전씨 족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십여 분이 지난 후, 갑자기 비린내가 진동하면서 거센 바람이 대전을 향해 휘몰아쳤다. 바람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불어왔다. 바람이 스치자 사람들은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때 전씨 족장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길씨네가 왔네!”대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곳을 향해 쳐다봤다. 그러자 몸집이 나무
드디어 길씨 가문도 도착했다. 군형 5개 가문 중 길씨, 전씨, 여씨, 설씨 가문은 모두 도착했고 가장 실력 있는 류씨 가문만 남았다.뱀할매와 장로들이 자리에 앉은 후 대전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찾았다. 이 안에는 거의 모두가 장로급의 고수들이었다.“군형 5대 가족이 이렇게 성대하게 모인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지금 류씨네만 남은 것 같네요.”여씨 족장이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류씨 가문 사람들은 언제 오려나?”전씨 족장도 말을 이어갔다.“흥! 류씨 가문 사람들은 눈만 높아서 우리 네 가문을 멸시해 왔습니다. 보아하니 오늘 회의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도 기다리지 맙시다!”뱀할매가 차갑게 말했다. 현장에 있는 4대 가문은 모두 류씨 가문의 실력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류씨 가문은 나머지 네 가문을 늘 멸시해 왔었다.뱀할매가 이렇게 말을 했지만 다들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됐어요. 만 장로님, 이제 말할 수 있죠? 왜 봉화 신호를 보냈죠? 설씨 가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여씨 족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전 중앙에 있는 설만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설만수를 쳐다봤다. 이번 회의는 설씨 가문에서 주최한 것이기에 다들 그 이유가 궁금했다.“세 족장님께 아뢰옵니다. 사실... 이틀 전 우리 설씨 가문은 이미 멸족되었습니다.”설만수는 갑자기 눈이 빨개지면서 목이 메었다.뭐?“멸족?”그 단어를 듣자 4개 가문 장로와 세 족장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족장님은 그럼?”우람진 체구에 짐승 가죽을 입고 요술 타투를 잔뜩 새긴 전씨 족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족장님은 이미... 이미... 죽엇습니다!”살해당했다고?설만수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만약 멸족당했다는 것이 농담이라면 지금 족장님까지 죽었다고 하니 절대 농담일 리가 없었다.“족장님이 어떻게... 어떻게?”전씨 족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
그 말을 듣자 4대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나빠졌다.“한 명이? 설씨 가문 전체를 멸족시켰다고?”줄곧 말을 아끼고 있던 뱀할매마저 입을 열었다.“네!”“그럴 수가? 족장님이 그래도 태허 경지에 이른 고수인데. 그리고 설씨 가문에도 장로급 고수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한 사람에게 몰살당할 수 있어?”“뱀할매에게 아뢰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바닥에 쌓인 시쳇더미를 보았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을 죽인 그 자식이 뇌법을 사용했더라고요.”“뇌법?”세 족장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바로 뇌법입니다.”설만수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화진에서 뇌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용호산 천암사 제자들뿐인데. 그들이 수련한 오뇌정법은 화진의 유일한 정통 뇌도야. 그 자식이 뇌법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그럼 걔가 용호산 천암사 사람이야?”뱀할매가 물었다.“뱀할매 말이 맞아. 천암사의 오뇌정법은 화진에서 공인한 가장 강력한 뇌술이야. 하지만 천암사의 대가들이 온다고 해도 혼자의 힘으로 한 가문을 멸족시킬 수는 없는데. 심지어 족장님까지 말이야. 만약 천암사 진성 대가님이 직접 오신다면 몰라도.”여씨 족장도 한마디 덧붙였다.“제가 말한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식이 누군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저 백화궁의 그 계집애들과 관련 있는 것 밖에요.”백화궁 얘기가 나오자 세 족장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왜 또 백화궁이야? 제대로 말해. 설만수.”전씨 족장이 물었다. 그러자 설만수는 백화궁과 설씨 가문의 협상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 사람들의 안색이 모두 변했다.“그럴 리가! 백화궁에 이런 대단한 인물이 있을 수 없어. 연씨 그 마녀도 그럴 능력이 없다고!”여씨 족장이 말했다.모두가 설만수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차가운 목소리가 대전 안쪽에서 흘러나왔다.“누군지 알 것 같아.”이 말이 나오자 모두 고개를 돌려 그
응?“방씨 삼영이야?”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방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방지형의 얼굴을 보자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외부에서는 방씨 삼 형제를 군형 삼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군형에서는 방씨 삼 형제를 방씨 삼영이라고 부른다. 세 형제의 실력도 대단하고 명성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군부대와 몰래 결탁하면서 5대 가문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다.군형 5개 가문 사람들의 눈에는 방씨 삼 형제는 마치 신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들은 세 형제를 존경하고 군형의 자랑으로 여긴다.방지형은 음산한 눈빛으로 설만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설만수는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아까 설씨 가문을 멸족시키고 족장님을 죽인 그 젊은이가 뇌법을 사용한다고 했지?”“네. 네!”설만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누군지 알 것 같아!”방지형의 목소리가 살짝 달라졌다.“누군데요?”그가 이렇게 말하자 세 족장은 하나같이 방지형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그러자 방지형은 얼굴에 두른 두루마기를 천천히 걷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남부 강성에서 왔어. 복수를 위해서 말이지.”“복수?”모든 사람은 어리둥절해졌다.“그래! 이 원수는 우리 삼 형제와 맺은 것이지. 왜냐하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우리가 만든 혈충 고독에 걸렸기 때문이야.”사람들은 혈충 고독이라는 단어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이는 군형에서 제일 강한 독으로 알려졌다.“지형 선배, 우리 설씨 가문을 멸족시킨 그 새끼를 아세요?”설만수가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방지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아는 정도가 아니지. 내 두 동생이 그의 뇌법에 맞아 죽었는데. 그 자식이 재가 되어도 나는 알아볼 수 있어! 이 원한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방지형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응?군형 삼마중 남은 두 사람이 살해당했다고?그 말을 듣자 4대 가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그 자식이 도대체 누군데요? 뇌법으로 방씨 형제를 죽이다니.”전씨 족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방지형은 강성에 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덜덜 떨렸다.그날 밤, 윤구주는 봉왕팔기 중 하나인 뇌왕인을 사용하여 방씨 일가의 두 형제를 죽였다.방지형이 마지막에 필사적으로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그도 죽었을 것이다.“세상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뇌법이 있다니, 정말 충격적이군요.”여씨 일가 족장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흥!”“그 뇌왕인이 강하면 뭐 어때요? 우리 군형 5대 가족이 그 무명의 젊은 놈을 두려워해야 해요?”뱀할매가 호통을 쳤다.“ 뱀할매 말이 맞아요. 우리 5대 가족은 형제자매와 다름없어요. 그리고 방씨 형제는 우리 5대 가족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강성에서 온 젊은 놈이 감히 대놓고 우리 서남에 쳐들어와 우리 5대 가족에 대항하려고 했어요. 난 그 세상 물정 모르는 놈에게 우리 5대 가족의 실력을 보여줄 겁니다!”여씨 일가 족장이 화를 내며 말했다.“여씨 일가 족장님 말이 맞습니다. 저도 동의해요!”“우리 군형 5대 가족은 서남에서 수백 년간 군림해 왔어요. 난 그놈이 우리 5대 가족의 근간을 뒤흔들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여씨 일가 족장이 매섭게 고함을 질렀다.“3대 족장 모두 같은 의견인 듯하니, 그 자식이 신급 강자라 할지라도 우리 5대 가족이 그 자식을 죽여서 제 두 형제의 복수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방지형이 주먹을 꽉 쥐었다.형제들이 윤구주에게 죽임을 당한 뒤 방지형은 군형으로 돌아왔다.그런데 윤구주가 군형까지 쫓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형제를 위해 복수하고 싶었다.“좋습니다!”“지금부터 우리 5대 가족은 연맹을 맺는 겁니다. 우리 5대 가족의 실력으로 외부인 한 명 죽이지 못하겠습니까?”뱀할매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맞아요. 우리 5대 가족은 지금부터 연맹인 겁니다!”여씨 일가, 전씨 일가, 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이 일제히 일어났다.“뱀할매, 류씨 일가는요? 류씨 일가는 오늘 사람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에게는 어떻
설씨 일가를 멸족시킨 뒤 윤구주는 줄곧 서남의 호텔에 머물러 있었다.그는 다른 4대 가족을 찾아가서 복수하지 않았다. 군형 5대 가족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그들은 분명 알아서 그를 찾아올 것이다.그렇다면 굳이 귀찮게 자신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호화로운 호텔 안.윤구주는 소채은을 치료한 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백경재가 안으로 들어왔다.“저하, 소채은 씨는 어떻습니까?”안으로 들어온 뒤 백경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대 위 소채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부드러운 눈길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채은이 체내에 시독이 퍼지는 걸 막는 게 고작이야... 채은이가 정신을 차리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아.”“휴! 채은 씨도 정말 힘들겠어요.”백경재는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군형 삼마 그 자식들 때문이에요! 그들만 아니었어도 소채은 씨는 저하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신혼생활을 했을 텐데 말이에요!”군형 삼마 얘기를 꺼내면서 백경재는 주먹을 꽉 쥐었다.“저하, 저희 언제 5대 가족을 찾아가 복수하는 겁니까? 그 세 놈들은 언제 죽이실 겁니까?”백경재가 물었다.윤구주가 말했다.“급할 것 없어. 그들이 알아서 날 찾아올 테니 말이야.”백경재는 윤구주의 말뜻을 이해했다.윤구주가 당당하게 5대 가족 중 하나인 설씨 일가를 없앴으니 4대 가족도 분명 이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군형의 악랄함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분명 이제 곧 복수하러 찾아올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백경재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그 자식들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당장이라도 소채은 씨의 복수를 하고 싶거든요.”윤구주와 백경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똑똑똑 두드리니 소리가 들렸다.노크 소리에 백경재는 직원이 문을 두드린 줄로 알고 다가가서 물었다.“누구세요?”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문을 열었다.스위트룸 문
백경재가 떠난 뒤 윤구주는 그제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말해 봐.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야?”“당연히 보고 싶어서 왔죠! 그거 알아요? 저번에 오빠가 제 옷을 다 벗긴 뒤에 전 오빠에게 푹 빠져버렸어요. 매일 밤낮 할 것 없이 눈만 감으면 오빠가 떠올라요. 오빠의 잘생긴 얼굴과 오빠의...”인해민이 말을 이어가려는데 윤구주가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닥쳐! 또 한 번 헛소리한다면 이 호텔 25층에서 밖으로 내던질 줄 알아, 알겠어?”그 말에 인해민은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윤구주가 말한 것은 꼭 지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인해민은 입을 비죽이면서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왜 그렇게 사납게 굴어요? 전 정말 보고 싶었다고요!”윤구주가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렸고, 인해민은 겁을 먹고 다급히 손으로 앵두 같은 붉은 입술을 가렸다.“알겠어요, 장난 안 칠게요. 오빠도 참! 얼굴은 이렇게 잘생겼으면서 좋아하게도 못하다니, 정말 나쁘네요!”인해민이 중얼거렸다.윤구주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멋진 오빠, 제 부하가 그러길 오빠 혼자서 설씨 일가를 멸족시켰다면서요?”인해민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웃는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응!”윤구주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와! 정말 대단하네요? 혼자서 설씨 일가를 상대한 거예요? 게다가 그들의 장로들까지 전부 죽였잖아요! 오빠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군형에는 왜 온 거예요?”인해민이 궁금한 듯 물었다.윤구주는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왜, 나한테서 뭘 알아내고 싶어서 그래?”“아뇨,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전 그저 오빠가 너무 대단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인해민은 연약한 소녀처럼 굴었다.윤구주는 당연히 그녀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굳이 그렇게 뭔가 캐물어 보려고 할 필요 없어. 네가 알고 싶은 건 다 알려줄 수 있으니까.”“정말요?”인해민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럼!”“역시 호쾌하시네요! 그러면 그냥 물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