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서 모두 죽었을 거야! 빨리, 빨리 대문을 열어, 내가 가서 신께 고마움을 전해야겠어!”그러자 곁에 있던 교도관이 얼른 가서 무거운 강철 대문을 열었다!감옥 밖에서.광경은 처참했다.땅위에는 타다 남은 잿더미들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뿐이었다.시체 중에는 제1교도소 교도관도 있고, 암부원들도 몇 명 있었지만, 당연히 제일 많은 것은 판인국의 자객들이었다!무려 40여 명의 블랙 첩보 조직 자객의 시체가 전부 이곳에 있었다!바로 그 순간.우레와 같은 고함이 멀리서 들려왔다.“판인국의 새끼들아, 내가 왔다!”호랑이처럼 울부짖는 이 소리와 함께 건장한 남자가 멀리서부터 쏜살같이 날아왔다.자세히 보니 이 사람은 바로 암부 3대 지휘사 중의 한 사람인 호존 민규현이었다!다만.민규현의 손에는 아직 피범벅이 된 사람의 머리가 들려져 있었다!한 사람은 여자였다!다른 한 사람은 흑인 남자였다!두 머리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고 심지어 피가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며 흐르고 있었다!민규현은 한 손에 머리를 들고 한 손에 칼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지휘사 님이 오셨어!”암부원들은 멀리서부터 오고 있는 민규현을 보고 전부 그를 향해 달려갔다.민규현은 빠른 걸음으로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물었다.“판인국 그 새끼들은?”이 말을 들은 오소룡이 나서서 말했다.“지휘사 님, 이미 전부 죽었습니다!”“뭐라고? 다 죽었어?”민규현이 놀라움에 차서 물었다.“맞아요! 윤 형님께서 우리를 도와 처리해 주셨어요! 형님이 없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아마도...”오소룡은 말하면서 숭배하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향해 바라보았다.민규현은 윤구주라는 이름을 듣고서 눈을 크게 뜨고 윤구주를 찾았다. 윤구주를 발견하자 그는 얼른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저하! 인사를 올립니다!”하지만 윤구주가 말했다.“여기에 사람이 너무 많아! 예의를 차리지 마!!”“네!”그제야 민규현이 몸을 일으켰다.“저하, 어찌하여 여기에 계십
반면에 윤구주는 그렇게 많이 신경 쓰지 않았다.그에게는 판인국 같은 작은 나라뿐만 아니라 십 국이 손을 잡았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윤구주는 십 국을 상대하는 것이 급하지 않을 뿐이었다!그가 상대해야 하는 건 바로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문씨 세가 그리고 윤구주를 죽이려는 문아름이었다!바로 이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교도소의 두꺼운 강철 대문이 마침내 열렸다.안으로부터 강성시 시장 임기준을 비롯해 시청의 간부들과 제1교도소의 교도관들이 먼지투성이인 얼굴로 걸어 나왔다.강성시 시장 임기준은 걸어 나온 후 빠른 걸음으로 윤구주를 향해 달려왔다.“신님!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임기준이 윤구주에게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임기준은 올해 새로 부임한 강성시 시장이었고 부임 후에 줄곧 업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오늘에 제1교도소로 온 것도 자신의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판인국의 습격을 당할지는 생각도 못 했다!만약에 그가 오늘 여기서 죽었으면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민 지휘사님, 당신네 암부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판인국에서 침입한 자객들조차 처리하지 못해요? 암부가 강성으로 온 후에 우리 강성시 전부가 있는 힘을 다해 당신들의 일에 협조해 주었어요. 성을 봉쇄하라면 저희는 봉쇄했고 조사하라면 저희는 조사했죠, 하지만 당신네는요? 말해 보세요, 오늘 만약에 신님께서 이 자리에 없었다면 우리 강성의 간부들은 아마도 전부 여기서 죽었을 것이 아니에요?”임기준이 민규현을 보자 화가 난 목소리로 비난하기 시작했다.그러자 민규현은 쳇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임 시장님은 죽음이 그렇게 두려우세요?”“저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단지 당신들이 과거에 자랑했던 화진의 제1암부가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임기준이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감히 우리 암부가 약하다고?”민규현은 분노가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호랑이처럼 한 걸음 재빨리 나아갔다. 그는 마치 강성시 시장을 손에 잡아
민규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눈을 부릅뜨고 임기준을 노려보았다!만약 윤구주가 곁에 없었다면 그는 강성시 시장 임기준을 혼내주었을 것이다.“윤 선생님,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아직 제때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먼저 자리를 떠날게요! 제가 이 일을 끝내면 직접 윤 선생님을 찾아뵙고 목숨을 구한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임기준이 정중하게 윤구주에게 말했다.이번 일로 강성시 시장 임기준은 윤구주에게 완전히 굴복했다!결국 자신의 목숨과 강성시의 간부들의 목숨은 윤구주 한 사람이 구해준 셈이니 말이다!만약에 윤구주가 없었다면 그들은 분명 이미 죽었을 것이다.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바쁘시다면 먼저 일 보세요!”“네. 윤 선생님,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임기준은 공경한 태도로 윤구주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강성시의 기타 간부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떠나면서도 임기준은 곁에 있는 간부들에게 말했다.“윤 선생님 같은 신께서 우리 강성시를 지켜주시니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가 우리를 침범하는 게 두렵지 않을 거야!”이 말이 민규현의 귀에 들어오자, 민규 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런 젠장! 임기준 이 새끼가 정말 재수 없네! 감히 우리 암부를 원망해?”윤구주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이 일은 확실히 네 탓이야! 누가 너 보고 제때 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라 했어?” 어찌 됐든 저 사람은 강성시 시장이잖아!”“그냥 시장인 주제에 자기가 뭔 줄 알고! 다만, 휴... 이번에는 확실히 제가 소홀했어요. 제가 생각이 깊지 못해서 저딴 판인국 새끼들을 제거하는데 저하께서 직접 나서서 손을 쓰시게 했어요!”민규현이 자책하자 윤구주가 손으로 암부원들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됐어, 그만 자책해. 얼른 가서 암부원 형제들을 챙겨!”이 암부원들은 수백 번의 전투를 거쳐 온 사람들이었다!게다가 서로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이번의 침입으로 인해 네 명의 암부원들이 목숨을 잃었고 중상자도 일고여덟 명에 달해서
소씨 저택.윤구주가 소채은에게 화정석으로 만든 호신용 목걸이를 주자 소채은은 너무 좋은 나머지 목걸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침대에 누운 그녀는 그 화정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실.소채은의 눈에는 이 화정석은 보통 노점상들이 파는 싸구려 목걸이와 다름없었다!하지만 이 목걸이는 윤구주가 그녀에게 준 것이었으니 그건 의미가 완전히 남달랐다!설령 윤구주가 그녀한테 준 것이 정말 평범한 돌멩이였을지라도 그녀의 마음속은 행복했다!그녀가 윤구주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소채은이 목걸이를 만지며 행복하게 놀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목걸이를 만질 때마다 열에너지가 한 가닥씩 그녀의 몸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이 화정석은 그야말로 타고난 보물이었다!여자에게는 더욱 몸보신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이런 효능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소채은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그녀가 신나게 목걸이를 손에 쥐고 놀고 있을 때 밖에서 천희수가 밥을 먹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소채은은 목걸이를 낀 채 식탁 앞에 앉았다.소채은은 어릴 적부터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지 않았고 게다가 그녀는 윤구주가 준 화정석 목걸이를 일부러 옷 밖에 놓았기에 천희수는 즉시 소채은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발견했다.“채은아, 네 목에 걸려 있는 거 뭐야?”천희수는 요리를 꺼내오면서 소채은의 목에 있는 화정석 목걸이를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구주가 저한테 준 선물이에요!”소채은이 기쁜 심정으로 말했다.“뭐라고? 이게 윤구주가 너한테 준 거라고? 괜찮네! 그 윤구주가 너한테 선물 할 줄도 알아?”천희수는 소채은의 말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화정석 목걸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채은아, 이건 무슨 목걸이야? 보기에는 평범한 듯한데.”천희수도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지금 이 화정석 목걸이가 그냥 평범한 수정석인 것을 보자 의아한 듯 물었다.“엄마! 선물이 비싸든 안 비싸든 뭐가 중
천희수는 소채은이 목걸이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소채은이 목걸이를 몇억 원이 되는 보물처럼 항상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보자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했다.“채은아, 엄마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사실대로 알려줘!”“네. 엄마 물어보세요!”소채은이 대답하자 천희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채은아, 너 혹시 정말 그 윤구주를 좋아하는 거야?”“네, 맞아요. 엄마! 저는 구주가 너무 좋아요!”천희수의 물음에 소채은도 사실대로 대답했다.“좋아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해, 엄마도 젊었을 때가 있었지! 하지만 이 말 한마디만 기억해,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생각해 봐, 지금 너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미래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엄마가 걱정하는 거야! 네가 준비가 다 된 거 맞아? 예를 들면 네 미래의 짝에 대해서 말이야. 넌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또는 그가 예전에 뭘 했는지? 앞으로는 뭐 할 건지? 이런 것들은 모두 네 생활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약에 네가 단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뿐이라면 내가 충고하는데 빨리 끝내는 것이 좋아!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천희수가 쓴소리로 말했다.소채은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데 엄마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소채은은 고개를 들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미 잘 생각했어요! 제가 윤구주와 함께 있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저는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말씀하신 도리를 저도 다 알아요! 하지만 인생은 짧고 저도 언젠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만약에 한평생 동안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기 딸이 이렇게 말하자 천희수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엄마도 아무 말 하지 않을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 결국 생활을 하
‘큰일났다.’‘이건 무조건 충돌이야!’소채은이 눈을 감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다.쿵!큰 폭발음이 들려왔다.사람들은 실성한 채 달려오는 밴을 보며 소채은이 치어서 튕겨 나가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미친 듯이 질주해 오던 차는 갑자기 생겨난 하얀 방패를 들이받았다.그 방패는 소채은의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었다.거대한 충격에도 하얀 방패는 끄떡없었지만 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돌진해 오는 차를 보며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소채은의 어머니인 천희수였다.혼비백산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소채은에게 뛰어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채은아, 우리 딸...”소채은은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그녀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빛은 위험이 지나가자 안개처럼 천천히 사라졌다.“채은아, 어때? 괜찮아?”“대답해, 채은아.”“엄마 놀라게 하지 말고.”천희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며 소채은을 꼭 끌어안았다.소채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눈이 휘둥그레서 찌그러진 밴과 자신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사라지는 걸 바라봤다.하얀 기운은 그렇게 천천히 흩어지더니 그녀의 목에 걸린 화정석 목걸이로 들어갔다.“엄마, 난 괜찮은 거 같아요.”소채은이 대답했다.“진짜야? 엄마 놀라게 하지 마. 어디 봐봐.”천희수는 이렇게 말하며 딸 소채은의 몸을 검사했다.소채은이 정말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엄마 천희수는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이때 밴을 운전하던 기사도 얼른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폈다.소채은이 멀쩡한 걸 보고 운전기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다행인 건 오늘 배달이 급해서 차를 그렇게 빨리 운전했다는 거고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까 분명히 무언가를 쳤고 차도 찌그러졌는데 앞에 있는 예쁘장한 여인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저기요. 차를 어떻게 운전하는 거예요?”“하마터면 우리 딸이 치일 뻔한 거 알아요?”천희수는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를
소채은이 멍을 때리자 엄마 천희수가 옆에서 관심했다.“아니요!”소채은이 대답했다.“근데 아까 분명히 네가 차에 치이는 거 같았는데 왜 멀쩡한 거지?”천희수도 마음속에 드는 의문을 털어놓았다.소채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목에 건 호신용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화정석으로 만든 목걸이는 아까 소채은을 보호하면서 촉발되는 바람에 표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소채은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손바닥이 뜨거워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어휴, 아무렴 어떻든 간에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다 괜찮아.”“놀랐어. 정말 너무 놀랐어.”천희수는 이렇게 말하며 소채은을 끌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소채은은 핸드폰을 꺼내 윤구주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벨소리가 먼저 울렸다.‘잉?’“구주가 먼저 연락왔네?”화면에 뜬 윤구주의 이름에 소채은은 궁금해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채은아? 혹시 무슨 일 있었어?”전화를 받자마자 윤구주가 물었다.그 말에 소채은은 넋을 잃었다.차 사고가 날 뻔했다고 윤구주에게 말할 참이었는데 윤구주가 그녀보다 한발 빨랐다.고민 끝에 소채은이 대답했다.“구주야, 어떻게 알았어?”“일단 이건 제쳐두고, 빨리 말해. 다쳤어?”윤구주의 관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헤헤.”“괜찮아. 나 매우 멀쩡해.”“근데 진짜 신기하다. 구주야, 나 사고 난 거 어떻게 알았어?”소채은이 물었다.윤구주는 자기가 그녀에게 선물한 화정석 목걸이에 직접 여든한 개의 주술을 걸었다는 걸 말해줄 리가 없었다.이 주술은 윤구주의 신념과 이어져 있었다.까놓고 말하면 화정석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윤구주가 바로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이다.아까도 화정석이 촉발되었기에 윤구주는 바로 소채은이 위험하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윤구주가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그래, 괜찮다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윤구주가 말했다.“바보 같긴. 네가
용인 빌리지.전화를 끊은 윤구주도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비록 자기가 만든 ‘화정석 호신용 목걸이’에 자신감이 넘쳤지만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될 때마다 소채은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윤구주의 마음도 다시 차분해졌다.“저하, 채은 아가씨는 별일 없는 거죠?”옆에 있던 백경재가 얼른 물었다.“다행이야. 호신용 목걸이를 준 덕분에 무사해.”“그렇군요. 저하의 호신용 보물을 채은 아가씨가 가지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넘기시고 늘 평안하실 거예요.”백경재가 감탄했다.“하지만 채은 아가씨는 모르잖아요. 저하께서 힘들게 만들어주신 덕분이라는걸요.”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윤구주는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뒷산으로 향했다.이때 왜소한 몸집 하나가 뛰어왔다.두나희였다.두나희는 윤구주를 따라다니면서부터 염치를 무릅쓰고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있다.이에 윤구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두나희는 그저 7, 8살밖에 안 되는 아이였다.때릴 수도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하여 윤구주는 최대한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두나희는 뛰어와서는 백경재에게 말했다.“어르신, 방금 우리 구주 오빠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백경재도 두나희가 별로 달갑지 않은지라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어린애가 그런 건 알아서 뭐 하게?”“흥!”“당연히 알아야죠. 커서 구주 오빠와 결혼할 건데.”두나희는 심술이 났는지 양손을 자신의 허리에 차고 말했다.“...”백경재는 말문이 막혔다.“내가 어리다고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요. 아까 분명히 구주 오빠가 그 여자한테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맞죠?”“나쁜 어르신, 사실대로 말해요. 아까 구주 오빠랑 통화한 사람 이름이 소채은 맞죠?”“잉?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백경재가 의아해서 물었다.두나희는 소채은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역시 또 그 여우 같은 여자였어. 아악! 진짜 너무 짜증 나. 구주 오빠 왜 또 그 불여우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