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국에서 천 년 가까이 존재해 온 스사노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난 뒤, 하치카미 산은 산을 봉쇄하기 시작했다.구불구불한 산길 위, 참배 준비를 하던 신도들은 갑자기 멈췄다.그들은 조금 전 멀리 있는 신전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지옥의 목소리를 들었었다.“서윤아, 들었어? 저 목소리 엄청 무시무시해.”하치카미 산으로 향하는 산길 중앙, 부성국에 여행하러 온 장윤형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겁에 질린 얼굴로 먼 곳에 있는 신전을 바라보며 반서윤에게 말했다.대학생인 반서윤의 얼굴 또한 창백하게 질렸다.그녀도 조금 전에 아주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를 들었다.그것은 사람 목소리 같지 않고 괴물 목소리 같았다. 그래서 반서윤은 아직도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소름이 돋았다.“나도 들었어.”반서윤이 대답했다.“서윤아, 이 아메 신전 아무리 봐도 이상한 것 같아. 우리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장윤형은 조금 겁이 났다.하지만 반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돌아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산꼭대기까지는 올라가 봐야지.”반서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신전 쪽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반서윤이 고집을 꺾지 않자 장윤형은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그녀를 따라갔다.두 사람이 겨우겨우 산꼭대기까지 도착했을 때, 신전에 참배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막혀 서 있었다.문가에는 가리기누를 입고 고모를 쓴 음양사들 수십 명이 서 있었다.“무슨 상황이지? 왜 앞이 막혀 있는 거지?”장윤형은 궁금한 듯 전방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반서윤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오늘 그녀는 아메 신전을 참관하고 기도를 올릴 생각이었는데 거의 꼭대기에 도착할 때쯤 가로막힐 줄은 몰랐다.“내가 가볼게.”반서윤은 부성국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에 앞으로 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다.문 앞에 서게 된 반서윤은 부성국 언어로 물었다.“안녕하세요, 여기 무슨 일 생긴 건가요? 왜 아메 신전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거죠?”한 젊은 음양사가 차가운 눈빛으로 반서윤을 힐끗
윤구주는 부성국에 여행 온 대학생인 그들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여기서 만나네요. 제가 전에 얼른 귀국하라고 말했을 텐데요?”반서윤은 싱긋 웃었다.“솔직히 그날 공항에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모든 비행기가 이륙을 금지당했거든요. 그래서...”윤구주는 곧바로 이해했다“윤구주 씨, 윤구주 씨도 아메 신전에 참배하러 온 거예요? 윤구주 씨를 또 만나다니, 우리 인연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네요.”공항에서 윤구주와 작별한 뒤, 사랑에 빠진 반서윤은 매일 밤 윤구주를 그리워했다.그런데 윤구주도 아메 신전에 올 줄은 몰랐다.그녀는 윤구주도 아메 신전에 참배하러 온 건 줄 알았다.“참배요?”윤구주는 시선을 들어 음기로 휩싸인 아메 신전을 바라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이런 같잖은 부성국 귀신은 제 참배를 받을 자격이 없죠.”“네? 윤구주 씨는 참배하러 온 게 아닌가요? 그러면 왜 온 거예요?”반서윤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윤구주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면서 살기를 드러냈다.“신을 베러 왔죠.”“신을 베러 왔다고요?”반서윤은 윤구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윤구주는 당연히 그녀에게 더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서윤 씨, 이곳은 곧 혼란에 빠지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는 게 좋을 거예요. 최대한 신전에서 멀어져요.”반서윤은 윤구주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장윤형이 먼저 나서서 선수를 쳤다.“윤구주 씨, 우리가 하산하든 말든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어요.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장윤형, 그 입 닥쳐! 윤구주 씨는 좋은 마음으로 얘기해준 건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반서윤은 옆에 있는 장윤형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질투심이 극에 달한 장윤형이 말했다.“좋은 마음은 무슨. 부성국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가 있어?”“장윤형, 또 한 번 윤구주 씨를 모욕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반서윤도 무척 화가 났다.오늘 어렵사
윤구주가 신전 대문 쪽으로 걸어가자 반서윤은 서둘러 그를 뒤따랐다.“윤구주 씨, 어디 가는 거예요? 조금 전에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신전을 봉쇄했으니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어요.”윤구주는 웃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들여보내 줄 거니까요.”반서윤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는데 옆에 있던 장윤형이 말했다.“또 허세를 부리네. 자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신전 측에서 신전을 봉쇄한다고 했는데 한낱 외부인인 그가 어떻게 들어간다고.”반서윤은 비록 장윤형의 말을 듣고 짜증 났지만 내심 윤구주가 너무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했다.아메 신전은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신전인 데다가 오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그런데 윤구주는 굳이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윤구주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기다렸고, 윤구주는 이미 신전 문 앞에 도착했다.그들의 주변에는 아메 신전에 참배하러 온 신도들이 아주 많았기에 윤구주가 신전을 지키고 있는 음양사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반서윤은 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신전을 지키던 음양사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곧 안으로 보고하러 들어가는 걸 보았다.그리고 잠시 뒤, 가리기누를 입고 고모를 쓴 음양사 수백 명이 하나둘 신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제일 앞에 선 사람은 아메 신전의 최강자 치히로 신이치였다.걸어 나오는 치히로 신이치의 눈에서 어두운 자줏빛이 번뜩였다.그는 곧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멈추었다.윤구주는 뒷짐을 진 채 마치 신처럼 서 있었다.그는 단지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를 바라볼 때 부성국의 음양사 수백 명 모두 엄청나게 압도적인 기운이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최강 음양사인 치히로 신이치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윤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당신이 바로 우리 부성국 기타가와 신사를 멸문시킨 범인인가요?”“맞아요, 접니다.”윤구주는 아주 깔끔하게 인정했다.치히로 신이치는 윤구주가 이토
그 목소리가 들려온 뒤 스사노오 조각상 뒤에서 부성국 겐지 시대의 귀족들이 입는 긴 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은 회색 망토의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노인은 여윈 듯 보였는데 기괴하게도 한 눈에 두 개의 동공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걸어오면서 엄청나게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었다.윤구주는 그를 덤덤히 훑어보더니 그의 맞은편에 놓인 방석 위에 조용히 앉았다. 마치 기괴한 노인을 마주하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난 스사노오 료우라고 해. 동쪽에서 귀한 손님이여, 날 찾아온 것이 맞는가?”스사노오 료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미소 띤 얼굴로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스사노오 료우는 화진 말을 아주 유창하게 했지만 말투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져서 마치 고대에서 타이슬립해 온 노인 같아 보였다.윤구주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여윈 노인을 보자마자 그가 부성국 최강 귀신의 본체임을 눈치챘다.“맞아요. 전 당신을 만나러 부성국에 온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이런 귀신의 상태로 천 년 가까이 존재했을 줄은 몰랐네요.”윤구주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눈앞의 여윈 노인을 바라보았다.사실 윤구주의 눈에 눈앞의 여윈 노인은 그저 흐릿한 허상이었다. 그것은 스사노오가 만들어낸 허상이었기 때문이다.“역시 눈치가 빠르군.”여윈 노인은 다시 한번 웃었다.스사노오 료우는 부성국 겐지 시대의 바쿠후 번왕으로 스사노오 왕이라고 불렸었다.천 년 전, 번왕들이 패권을 다투느라 전쟁이 난무하던 시대, 스사노오는 가장 강한 번왕이었다.그는 군대를 이끌고 사방으로 출정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후세에 부성국 궁극의 살신이라고 불렸었다.그뿐만 아니라 그는 천 년 전 그 시대의 가장 강한 음양사였다.그러나 그 뒤로 그는 너무도 많은 살육과 악행을 저질러 부성국 공공의 적이 되어 생매장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무시무시한 스사노오 번왕의 영혼이 너무도 강했던 탓에 그를 생매장하기 전, 부성국 군주는 본국의 가장 강한 70여 명의 음양사들에게 진법을
스사노오 료우는 웃으며 말했다.“하늘의 길은 통하지 않으니 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했었지.”“불로장생이라고요? 한낱 귀신 따위가 불로장생을 입에 담은 건가요?”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내가 틀린 말을 했나? 세상 만물이라면 뭐든 때가 있는 법이지. 하물며 꽃도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야. 속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 세상 풍경을 다 보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불로장생을 원했고 말이야. 설마 너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인가?”스사노오는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천 년 전, 나는 번창했던 동쪽 땅에 가본 적이 있어. 그때 화진은 확실히 우리 부성국보다 몇만 배는 더 부유했었지. 동쪽 땅에서 지냈던 시절, 나는 동쪽 땅의 황제가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단약을 만들려고 한 걸 본 적이 있어. 그리고 또 화진의 곤륜 성지에 가서 대단한 실력을 갖춘 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불로장생의 방법을 갈구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고 내가 신급 강자가 되었을 때는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어. 아무리 강해져도 신선의 경지가 되기는 어려웠었지...”거기까지 말한 뒤 스사노오는 한숨을 쉬었다.그의 말을 들은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당신이 육지의 신선의 경지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당연히 알고 있지! 화진의 곤륜 성지에, 신급 강자 절정에 다다르게 되어 육지 신선이 된 전설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힘들게 찾아봐야 했지. 킥킥, 그리고 이제 그 방법을 찾은 거야!”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괴하게 웃었다.“당신이 말한 불로장생의 방법이 설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영혼으로 자기 영혼의 배를 불리는 겁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살겠다고요?”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더니 발밑의 청석판을 가리켰
“당신 헛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 현혹할 수 없어요!”윤구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스사노오 료우는 눈빛이 어두워졌다.“화진의 젊은이여, 난 좋은 마음으로 얘기해준 것이니 너무 건방지게 굴지는 마.”윤구주가 말했다.“그래요? 조금 전 당신이 말했다시피 귀신이 되어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건 꽤 유혹적이에요. 절 제외한 다른 신급 강자였다면 아마 이런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들었겠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수백 년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유혹적인 일이었다. 윤구주에게 살해당한 고진용, 무사시, 류이치 등 사람들 모두 그런 유혹을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스사노오는 한 가지 잘못을 범했다. 그는 눈앞의 윤구주를 잘못 보았고, 그의 실력 또한 잘못 알고 있었다.윤구주는 소매를 휙 털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당신은 꽤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당신의 신도가 되길 바랐던 것뿐이에요. 내 육신이 욕심났기 때문이겠죠. 맞죠?”‘응?’윤구주의 말에 스사노오의 동공에서 무시무시한 핏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그... 그... 그걸 알아봤단 말이야?”스사노오는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스사노오는 윤구주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육신을 노리고 있었다.윤구주는 젊을 뿐만 아니라 잘생겼고 심지어 신급 강자였다. 이렇게 좋은 육신을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윤구주는 그런 그의 속셈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렇게 덜떨어진 수작이 나한테 먹힐 줄 알았나요? 귀신이 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수백 년을 존재할 수 있는 것 같겠죠. 하지만 신의 힘이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무고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방법으로 존재하는 악귀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여 살아가는 귀신이 어떻게 신령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죠? 까놓고 말
윤구주가 부성국에 온 이유가 그의 음령 때문이라고 하자 천 년 된 귀신인 스사노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건방진 것! 난 너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어. 나의 환생에 쓰일 몸이 될 기회를 말이야. 하지만 너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렇다면 난 네 육신을 빼앗고 네 영혼을 파괴할 것이다. 난 너의 기억을 얻은 뒤 너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야! 킥킥, 그때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건방을 떨 수 있을까?”천 년 된 귀신 스사노오는 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속셈을 간파하자 결국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사실 그저 원혼이었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남의 몸에 빙의해야 했다.신급 강자인 윤구주의 몸을 본 그는 더욱 탐욕스러워졌다.그는 윤구주가 되고 싶었고, 그의 몸을 얻고 싶었다.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두 동공에서 핏빛 기운을 내뿜었고 동시에 그의 주위로 엄청난 혈기가 나타났다. 혈기들이 나타나자마자 그는 윤구주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혈기 속에서 아주 거대하고 흉악한 귀신의 발톱이 튀어나왔다. 귀신의 발톱은 엄청난 혈기를 머금은 채로 윤구주를 습격했다.“악귀 따위가 감히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다니,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보네요!”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고 검을 든 손으로 공격했다.주변 현기가 10미터쯤 되는 검으로 변했다. 그 검이 나타나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스사노오 료우의 귀신 발톱이 허공에서 부서졌다.“화진 놈, 역시 신급 강자가 된 화진의 강자답군! 하지만 겨우 신급 강자 수준으로 나와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스사노오 료우는 말을 마친 뒤 갑자기 두 손을 휘둘렀다. 그 수간 그의 주변으로 혈기가 교차하면서 다시 한번 엄청나게 거대한 귀신 발톱이 나타났다.귀신 발톱은 아주 거대했다. 그것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에서 윤구주를 공격해 왔다. 마치 윤구주를 짓눌러서 고깃덩이로 만들려는 듯이 말이다.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윤구주의
“빌어먹을 화진 놈, 감히 우리 아메 신전까지 찾아와서 우리를 도발하고, 우리 스사노오님을 도발하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군요!”“저 화진 놈이 무슨 자격으로 저희 스사노오님과 싸운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저희끼리 연합하여 저 건방진 놈을 죽였어야 합니다!”키 크고 마른 음양사 한 명이 사납게 말했다.“주인님이 저 자식을 신전 안으로 들였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치히로 신이치가 덤덤히 말했다.“설마 주인님께서 저 화진 놈의 육신을 원하는 건 아닐까요?”살짝 통통한 음양사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치히로 신이치는 기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럴지도 모르지. 생각해 봐. 저 화진 놈은 혼자서 기타가와 신사를 없앴어. 심지어 기타가와 참격의 야나가와 류이치도 죽였지. 저 정도 실력이라면 적어도 신급 강자일 거야. 신급 강자의 육신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하하! 치히로 대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 화진 놈은 지금까지 신급 강자라는 이유로 나대고 다녔겠지만 저희 스사노오님은 이미 일찌감치 신급 강자 수준을 넘어섰죠!”밖에 있는 백여 명의 음양사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엄청난 폭발음이 신전의 오래된 문에서 들려왔다.펑펑펑!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고 두께가 30cm가 넘는 신전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 뒤 곧 형언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번개가 음양사들의 시야에 나타났다.그리고 곧 그들은 짙은 혈기로 감싸인 무언가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오는 걸 보았다.“아!”그것이 수많은 번개를 맞고 나오는 순간, 모든 음양사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온 사람이 윤구주가 아니라 그들의 주인 스사노오였기 때문이다.“주인님!”주변에 있던 치히로 신이치와 다른 백여 명의 음양사들 모두 스사노오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왔을 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스사노오는 밖으로 나온 뒤 눈으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번개를 몸에 휘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