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 나한테 묻는 거지?”나태현의 말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나태현은 다른 사람에게 고은지의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영이 뭐라고 하려던 때 배준우가 고은영을 막았다.“그러면 다른 걸 물어볼게요.”“다른 거?”나태현이 짜증을 내면서 얘기했다.“희주는 어디 있죠? 괜찮은 거 맞습니까?”고은지에 관해서 묻는 게 아니라 고희주에 관해서 묻는 것이었다.나태현은 량천옥과 대치하며 싸우느라 고희주에 대해서 까먹을 뻔했다.나태현은 한숨을 내쉬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입을 열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화 좀 받고 올게.”말을 마친 나태현은 두 사람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안에 남은 배준우와 고은영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배준우가 고은영의 머리에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너무 우쭈쭈해줘서 이렇게 된 거야?”“뭐라는 거예요. 내가 나태현 씨한테 사근사근하게 굴어야 할 필요도 없잖아요.”고은영이 씩씩 대면서 얘기했다.배준우와 나태현이 친한 사이라는 걸 알지만 고은지가 병원에 누워있는 걸 떠올리면 나태현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배준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은영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난...”“내가 물어볼 거니까.”배준우가 진지하게 얘기했다.아무래도 우정 때문인 것 같았다.고은영은 고개를 홱 돌리며 짜증을 나타냈다.밖에서 전화를 받던 나태현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소리 질렀다.“뭐라고?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다 죽는 줄 알아!”그 소리를 들은 고은영은 놀라서 몸을 흠칫 떨었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문이 닫혀있었기에 배준우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이윽고 나태현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가, 갔어요!”고은영이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배준우가 얼른 문을 열고 나태현을 찾았지만 나태현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고은영의 말대로, 나태현은 떠났다.고은영은 마음이 급해져서 얘기했다.“어떡해요...”
량천옥은 급하게 의사를 찾아왔다. 의사는 량천옥의 신분을 알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량천옥은 급하게 의사를 찾아갔다. “고은지 씨 병실로 갑니다.”의사들은 필요한 장비를 챙기고 서둘러 고은지의 병실로 향했다.량천옥도 황급히 따라나서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정록담이라는 걸어온 전화라는 걸 본 순간 바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사모님, 큰일 났습니다.”정록담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량천옥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뒤돌아보았다.의사들은 이미 고은지의 병실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량천옥은 조용히 몸을 돌리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야.”정록담은 웬만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니...정록담이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량천옥은 더욱 불안했다.량천옥은 애써 진정하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다그쳤다.“정확히 무슨 일인데?”“작은 아가씨가...” 량천옥은 숨이 턱 막혔다.고희주, 량천옥의 외손녀가...량천옥은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온몸의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정록담은 계속해서 해외에서 발생한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정록담이 말을 이어갈수록 량천옥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초점은 점점 흐려져 갔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정록담이 말을 마치자 전화기 너머로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량천옥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핸드폰이 손에서 툭 떨어졌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희주... 희주가...!’고은지는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의사는 청진기를 고은지의 가슴에 갖다 댔다.그 차가운 감각에 고은지는 숨을 참고 몸을 웅크렸다.“여기 아파요? 어떻게 아파요?” 의사의 질문에 고은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아픈 것은 아니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질식되는 기분이었다.그러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어머
의사는 고은지에게 말 몇 마디 한 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고은지는 의사의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고은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옥죄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손은 고은지를 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끌어가려고 하고 있었다....량천옥은 두 시간 후에 병실로 돌아왔다. 고은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량천옥의 표정은 꽤 좋지 않았다. 량천옥이 고은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의사가 뭐라고 했어?”“문제없대요.”고은지가 담담하게 얘기했다.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도 량천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량천옥은 그저 담담하게 얘기했다.“며칠 떠나야 할 것 같아. 병원에서 잘 있어. 어디도 가지 말고.”량천옥이 간다는 말에 고은지는 흠칫 굳어버렸다.그리고 무표정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왜? 왜 그렇게 보는 거야?”“또... 가는 거예요?”고은지의 말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런 고은지의 말에 량천옥은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다. 그리고 고은지의 손을 꼭 잡으며 얘기했다.“널 버리려는 게 아니야. 해외로 나가서 다른 일을 좀 봐야 할 것 같아.”고은지는 손을 빼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아까 한 말을 후회했다.아마도 아파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그저 며칠 같이 살고 아침을 같이 먹었을 뿐인데 왜...’세상이 너무 가혹해서, 량천옥의 온기라도 붙잡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 온기를 욕심내도 되는 것일까?량천옥은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고은지에게 나태현과 만나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간호인에게 고은지를 잘 간호해달라고 당부했다.그리고 간호인에게 일주일에 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간호인은 그 금액을 듣고 바로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제가 열심히 모시겠습니다.”량천옥은 병실 밖에 서서 누워있는 고은지를 쳐다보았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다 못해 해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눈물을 슥 닦은 량천옥이 바로 길을
강성에 피바람이 불었다.순식간이었다. 누가 먼저 일으킨 폭풍인지는 몰랐으나 밀려오는 검은 폭풍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포효했다.오후 네 시.고은지의 병실에 누군가가 도착했다.바로 량의였다.량의를 본 고은지는 놀라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랐다.량의는 본인의 손녀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리고 고은지 침대맡에 앉아서 한숨만 푹 내쉬었다.“아이고...”고은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량의는 붉어진 눈으로 고은지를 향해 뭔가를 물으려고 했지만 순간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또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얘기했다.“너 때문에 네 엄마가 나를 미워하고 있어. 하지만... 그럴 만도 하지.”“...”미워한다고?량천옥이 다른 사람을 미워할 줄도 알았던가?고은지는 량천옥이 그저 돈과 명예를 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해도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줄 알았다.량천옥과 량의는 강성에서 유명한 모녀다. 그것도 아주 위험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량의는 머리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량천옥이 지금 이렇게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이유도 다 량의가 량천옥의 인생을 계획해 주었기 때문이다.강성의 사람들은 량천옥이 이런 엄마를 두고 있다는 것에 부러워했다.하지만 량천옥이 량의를 미워한다니...량천옥이 그녀에게 수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사람을 미워한다니.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지는 량천옥에 대한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지의 정신은 온통 고희주의 일에 팔려있었다. 나태현이 고은지에게 고희주가 폐 쪽에 감염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준 순간부터 고은지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두 눈을 꼭 감은 고은지는 악몽을 지우려 애썼다.그리고 눈을 뜨고 량의에게 물었다.“미워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요?”고은지는 눈앞의 사람이 자기 외할머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것도 직접 고은지를 내다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바로 고은지의 어린 시절을 완전히
량천옥이 고은지의 어머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량의가 ‘아버지’의 얘기를 꺼내니 고은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제 아버지요?”“그래, 네 아버지.”“그 사람은 어디 있어요?”고은지가 설마 하면서 물었다.고은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량의는 고은지를 보면서 얘기했다.“죽었어.”“...”량의의 속도 좋지는 않았다.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까지만 해도 량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되돌아보니 그게 얼마나 나쁜 짓이고 얼마나 힘든 짓인지 알게 되었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량의가 가볍게 얘기했다.“...”고은지는 싸늘한 시선으로 량의를 노려보았다.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이 사람이 바로 고은지의 외할머니라는 것이...고은지는 무서웠다. 눈앞의 외할머니라는 혈육이 이런 악마였다니...고은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물었다.“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고은지는 본인 아버지의 죽음이 량의와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했다.량의가 죽인 것일까?량의와 량천옥이 강성에서 무섭기로 소문났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럴 만도 했다.량의는 량천옥을 위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다.량천옥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량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량천옥의 요구를 만족시켜 준다.그래서 고은지는 자기 아버지의 죽음이 두 사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량의는 고은지의 질문을 듣는 순간 표정이 약간 변했다. 고은지는 그 변화를 바로 캐치해냈다.결국 량의는 심호흡을 하더니 얘기했다.“그건 몰라도 돼.”“그럼 제가 알 수 있는 건 뭐가 있죠?”고은지가 차갑게 얘기했다.왜 고은지의 혈육들은 다 이런 악마일까.고은지는 자기한테서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네가 미워해야 하는 사람은 나라고, 네 엄마는 널 여전히 사랑한다고, 널 계속해서 찾아왔다는 것만 알면 돼.”“날 찾으면서 날 죽일
그러한 의심이 드는 순간 량의는 숨이 턱 막혔다.고은지가 차갑게 웃었다.“사랑... 하하...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거든요.”“그럼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사랑은 나의 것을 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걸 주는 게 아니에요.”“...?”“량천옥 씨를 그렇게 만들고 나서 우월감을 느끼셨죠.”“...”“량천옥 씨를 사랑하는 거예요, 아니면 량천옥 씨와 함께 누리는 삶을 살고 싶은 거예요.”강성에서 량천옥의 소문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사람들은 다 량천옥이 얼마나 잔인하고 독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게다가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도 알고 있었다.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량천옥의 손에서 산산조각 났다.배항준도 배준우의 어머니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니었는가.그리고 량천옥 뒤에서, 량의는 이 모든 것을 같이 누렸다.이게 바로 량의가 말한 사랑이었다.량의는 고은지의 말을 듣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로 고은지를 쳐다보았다.“만약 정말 사랑했다면 모든 수를 써서라도 같이 행복한 삶을 살려고 했을 거예요. 그리고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겠죠.”“...”“량천옥 씨가 아끼는 가족을 걸림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요.”“...”창백했던 얼굴이 고은지의 말을 듣고 더욱 창백해졌다.장애물이라는 단어가 량의의 가슴에 박혔다.그렇다면 량천옥을 향한 사랑은 정말 잘못된 걸까?의심이 량의의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점점 커져만 갔다.량의는 멍하니 고은지를 보면서 물었다.“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한번 물어봐요. 량천옥 씨는 나를 위한답시고 희주를 버리진 않을 거예요.”“...”희주를 버린다고?희주는 량의의 증손녀였다.량천옥은 고은지가 본인 딸이라는 것을 알고 고희주에게도 많은 신경을 썼다.“제 아이는 식물인간이니... 아마 또 걸림돌로 생각하시겠죠.”“아니야... 그게 아니야...”고은지의 질문에 량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고희주는 장애물이 아니었다.량의는 고희주가 얼른 낫
고은지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고은지는 귀를 막아서라도 량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량의는 그런 고은지를 보면서 몸을 약간 떨었다.량의도 고은지의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가슴 쪽에서 고통이 퍼져나갔다.량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얘기했다.“먼저 가마. 몸 잘 챙기고. 난...”량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량천옥에게 미안한 것보다 고은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컸다.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고은지의 태도에 량의는 가슴이 먹먹했지만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미움받는 건 당연했다.여태껏 그래왔던 일이니까......량의가 떠난 후 병실에는 고은지 혼자 남았다. 고은지는 이불 끝자락을 움켜쥔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일부러 버린 것이라니.하.전에 비슷한 기사를 봤을 때 고은지는 믿지 않았다.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하지만 량의가 그런 사람일 줄은...량의는 그저 아름답고 젊은 딸을 이용해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다.량의는 돈과 명예를 향한 욕심을 사랑이라 치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다른 한편.량천옥은 이미 공항에 도착했다.량천옥은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어 고은지를 잘 보살펴달라고 했다.갑자기 량천옥이 해외로 나간다는 말을 들은 고은영은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량천옥 씨가 전화를 건 거야?”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전화를 건 사람이 여자라는 건 알 수 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한테 언니를 잘 보살펴달라고 했어요. 자기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요.”량천옥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을 들은 고은영은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했다. 아마도 예전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두 사람은 량천옥이 해외에도 많은 사업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으니까 말이다.천의는 빙산 일각에 불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고은영은 놀라서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그 귀여운 모습에 배준우는 입꼬리를 올렸다.“여보세요.”“대표님...”전화기 너머에서 기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기성훈이 전화한 거라면... 아마도 고희주의 일 때문일 것이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의식하며 시선을 돌렸다. 고은영은 이미 휴게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기성훈이 뭐라고 더 얘기하자 배준우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두 눈은 얼음장같이 차가울 뿐이었다.돌아온 고은영은 차가운 기운을 뿜는 배준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결혼한 이후로 부드러운 배준우의 모습만 봤으니 지금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준우 씨...”고은영의 목소리에 배준우는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시선에 고은영은 더욱 겁을 먹었다.“왜 그래요?”고은영이 얼른 배준우를 향해 걸어갔다.설마 량천옥이 해외로 떠난 것이 정말 배준우를 공격하기 위해서인가?이런 상황에도 배준우를 해치울 생각만 하다니.고은영은 량천옥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량천옥은 그만큼 독한 사람이니까 말이다.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나태현이 고은지에게 저지른 일들을 떠올랐다.나태현의 모든 행동은 량천옥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다.만약 량천옥이 정말 나태현을 뒤엎을 결심을 한다면, 나태현은 1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배준우 곁에 쪼그려 앉은 고은지가 따뜻한 작은 손을 배준우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량천옥 씨가 정말 준우 씨를 노리는 거예요?”이런 계모가 있다는 것도 저주라면 저주였다.량천옥이 배준우의 새엄마라는 것을 떠올린 고은영은 약간 흠칫했다.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자 고은영의 언니다. 량천옥은 또 배준우의 계모다.족보가...“아니야.”배준우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한숨을 돌렸다.만약 량천옥과 배준우가 정말 싸운다면 그건 힘든 전쟁이 될 것이다.“그럼 무슨 일이에요?”“희주가...”겨우 입을 연 배준우가 뜸을 들였다. 그리고 더욱 진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