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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1화

Author: 십일
현빈은 조수석 앞 수납함에서 초대장을 건네준 뒤,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있던 포장된 음식을 꺼내 들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같이 올라갈게요.”

“아니야, 아니야! 이 정도는 내가 들 수 있어. 괜히 바쁜데 시간 뺏으면 안 되지.”

소진헌은 손사래를 쳤지만, 현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이모부, 오늘은 시간 괜찮습니다.”

소진헌은 결국 현빈에게 음식을 맡기고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현빈은 한참 말이 없었다.

‘요즘 애가 좀... 어른스러워졌네.'

소진헌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3층에 도착하자, 소진헌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현빈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 안 갔어?”

현빈은 가볍게 웃으며 손에 든 스티로폼 상자를 살짝 들어 보였다.

“잊을 뻔했네요. 외할머니가 차에 넣어주신 거예요. 과수원에서 딴 포도래요. 오늘 아침에 수확하셨는데, 정은이랑 같이 먹으라고 하셨어요.”

소진헌은 순간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모님 참 세심하시네... 괜히 너만 번거롭게 했네. 내가 들고 올걸.”

현빈은 손을 살짝 뒤로 빼며 웃었다.

“아니에요. 여기까지 온 김에 같이 올라가죠.”

“그래, 그럼.”

...

7층에 도착해 소진헌이 열쇠로 문을 열었다.

현빈은 기다리는 동안 살짝 고개를 돌려 맞은편의 재석 집을 힐끔 쳐다봤다.

문이 열리자, 소진헌이 환하게 웃으며 현빈을 맞았다.

“들어와, 들어와! 편하게 있어. 그냥 네 집이라 생각해!”

“아빠, 다녀오셨어요. 나...”

정은이 방에서 나와 인사했다.

그녀는 집에서 입는 편한 차림에, 머리는 집게 핀으로 대충 올려 묶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툭툭 흘러내리는 잔머리들 사이로 살짝 붉어진 볼이 보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나른한 느낌이었다.

정은은 거실로 나와 현빈을 보자 깜짝 놀랐다.

“오빠? 출장 갔다 왔어?”

“응.”

현빈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소진헌은 들고 있던 포장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고, 얼른 현빈이 들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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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23화

    강서원은 다른 사모님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역시 사모님은 복도 많으세요. 큰아들은 회사 물려받았고, 둘째는 이름난 변호사, 막내는 아직 젊은데도 대학교수에 학자라니요.”“오늘 대강당에서 강좌가 열린다고 들었는데, 설마 연사가 사모님 아드님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부러워서 죽겠어요.”시호는 두 사람에게서 채 삼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대화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시호의 주먹은 이미 꽉 쥐어져 있었고, 손가락 마디는 힘이 들어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강서원과 그 사모님은 시호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시선을 주지도 않고 곁을 지나갔다.시호는 강서원을 노골적으로, 숨김없이 바라봤다.그러나 강서원의 시선은 끝내 시호를 스치지도 않았다.그동안 시호는 ‘강서원’이라는 이름을 잊으려 애써왔다.장호구가 마음속에 심어 놓은 독을 품은 가시를 외면하며 살아왔다.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강서원이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재벌가에 시집가 남편은 공경하고, 자식들은 효도하고, 모든 걸 다 가진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시호는 깨달았다.‘이 독가시... 이건 평생 못 뽑아.’그 독가시는 빠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어 결국 상처를 썩게 만들고, 심장 전체를 망가뜨릴 거라는 걸.그날 이후, 시호는 강서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자연스럽게, 강서원 뒤에 있는 조씨 집안까지 파고들게 됐다.‘그래서였군.’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재벌가에 시집간 이유.조씨 집안 같은 집안이라면, 유혹을 견딜 여자가 몇이나 될까?강서원을 무너뜨리는 것.조씨 집안을 끝장내는 것.그것이 시호가 스무 살 이후 세운 유일한 목표였다.그래서 오랜 시간 숨어 있었고, 한 발 한 발 계산하며 여기까지 왔다.이제 거의 다 왔다.승리는 눈앞이었다.그런데 강서원이 뭐라고 했는가?시호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강서원은 눈앞에서 무너져 가는 듯한, 광기에 가까운 얼굴의 남자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너 정도 인맥이랑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22화

    시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아니야...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시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분노에 휩싸인 맹수처럼 시호는 거의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어릴 적부터 장호구는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시호는 친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라는 말이었다.시호는 믿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장호구는 허리띠를 풀어서 들어 올렸다.한 번 내리치며 매질할 때마다, 장호구는 같은 말을 내뱉었다.“네 엄마 이름은 강서원이야. 그년은 잘살겠다고 우리 부자를 버린 년이야. 천하의 걸레 같은 년이지.”“그리고 너는 그년이 낳은 자식이야. 똑같이 더러운 놈이라고.”그 폭력은 시호의 유년기 전체를 관통했다.시호의 몸은 채찍 자국이 남긴 고통을 기억했고,귀는 장호구가 퍼붓던 저주와 욕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했다.‘강서원... 널 버린 여자...’장호구는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집안 형편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그래서 시호는 열 살도 되기 전에 도둑질을 배웠다.몸집은 작았고, 동작은 빨랐다.웬만해선 들키지 않았다.학교에 갈 수 없었다.주민등록조차 없었다.시호에게 유일한 배움의 창구는 텔레비전이었다.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고,국가 제도와 법률, 그리고... 미성년자 보호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열두 살이 되던 해, 장호구는 늘 그렇듯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그리고 사흘 뒤, 장호구의 시신이 한 저수지에서 발견됐다.경찰은 조사를 거쳐, 술에 취해 실족한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했다.그 시각, 시호는 집에 없었다.경찰은 시호를 찾지 않았다.장호구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장호구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었고,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확인된 집 안에서는 아이가 함께 살았다는 흔적을 끝내 찾아낼 수 없었다.그렇다. 시호는 그 집에서 12년을 살았지만, 옷 한 벌, 개인 물건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이웃들도 집단으로 기억을 잃은 듯 침묵했다.경찰 앞에서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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