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별하고 몇 년 뒤, 회사 회의실에서 자신의 아이 아빠인 전 남친 권지헌을 다시 마주치게 된 허설아. 허설아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를 빼앗길까 두렵고 모든 걸 잃게 될까 두렵다. 허설아는 애초에 두 사람은 그냥 장난이었다는 권지헌의 말을 떠올리며 직장 내 상하급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권지헌은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이 단 한 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처음 허설아를 다시 본 순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자신을 버리고 바로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허설아가 아파하길, 후회하기를 바라며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허설아가 벼랑 끝에 선 순간 겉에 다가간 권지헌은 허설아가 앞으로 아이와 함께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진실을 알게 된 그 순간, 권지헌은 줄곧 복수하고 있던 상대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네가 나한테 거리를 두라고 했잖아." "거리는." 권지헌이 허설아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마이너스일 수도 있는 거야."
View More허설아가 짧게 대꾸했다.권지민이 왜 여기 왔는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뒤에 수업이 남았던 김지유는 허설아에게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다.권지헌이 다가와 허설아의 손을 잡았다."가자, 캠퍼스 좀 둘러보자.""그래."캠퍼스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전에 둘이 함께 걸었던 곳들을 다시 걸어보는 거였다.-한창 둘러보던 중.허설아가 신이 나서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가더니 밑에 있는 권지헌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리고 뛰어내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나 받아줘!"권지헌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연애할 때, 싸운 뒤면 허설아는 권지헌에게 화해할 명분을 주려고 했었다. 계단 위로 올라가 권지헌이 안아서 내려주게 하는 게 화해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권지헌은 그런 명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오히려 휙 돌아서 가버렸다.체면이라곤 눈곱만큼도 봐주지 않았다.지금 허설아가 다시 그 자리에 서서 권지헌을 향해 손을 뻗었다.권지헌도 당연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다가가 허설아를 단단하게 받쳐 품에 안은 채 한 바퀴 빙 돌았다."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사실 가서 받아주고 싶었는데 강시우랑 애들이 있어서 놀림받을까 봐 겁났었어."어릴 때는 늘 체면과 자존심을 신경 썼다.여자친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오히려 고개 숙일 기회를 찾고 싶어 안달이었다.허설아를 내려놓는데 앞쪽 갈림길에 휠체어를 탄 남자가 멈춰 서 있었다.권지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하지만 피하지도 않았다.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권지민을 봤다고 굳이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두 사람이 다가가자 권지민이 인사를 건넸다."큰형, 형수님. 여기서 보네요."권지헌이 권지민을 쳐다봤다."상처는 다 나았어?""다 나았는데 며칠 전에 다리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서 당분간은 휠체어 신세 져야 해." 권지헌이 짧게 답했다."치료에 필요한 게 있으면 조 비서한테 말해. 준비해 줄 거야.""형도 참,
즉흥적이었던 허설아의 발언에 비하면 권지헌은 훨씬 더 전문적이었다.이런 강연은 권지헌한테 식은 죽 먹기였다.다만 상대가 후배들인 만큼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웠다. 발표가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선배님, 전에 게시판에 올리신 글 진짜예요?"단상 아래에서 웃음이 터졌다.여자친구가 헤어진 뒤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를 물었던 권지헌의 게시글을 묻는 것이었다. 한때 건영대에서 화제가 된 글로 건영대판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권지헌도 따라 웃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진짜예요. 잠시 이성을 잃고 올렸습니다만, 후기까지 봤다면 아마 저희가 결혼도 했다는 걸 알 겁니다." "선배님은 호구 소리 듣는 게 겁나지 않으세요?"허설아는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역시 경제학 전공답게 날카로웠다.정곡을 콕 찌르는 질문이었다. 권지헌도 화내지 않고,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잡고 허설아를 차분히 바라봤다."그럼 집에 가서 아내한테 물어봐야겠네요, 호구 좋아하냐고요."웃음이 터진 학생들 사이에서 또 누군가 물었다."선배님, 자존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권지헌이 고개를 들며 웃었다.권지헌은 학창 시절부터 잘생기기로 유명했다. 조각 같은 얼굴에 몸매까지, 그때는 집안 배경만 빼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지금은 한층 성숙한 남자의 매력까지 더해졌다.행동 하나하나에 매력적인 우아함과 여유가 배어 있어서 건영대 기념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빛나는 존재감이 가려지지 않았다. 밑에서 여학생들이 얼굴을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권지헌이 입을 열었다. "대학 때는 제 아내가 저를 쫓아다녔어요. 그땐 어려서 진심 어린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죠. 어쩌면 평생 모든 걸 너무 쉽게 얻어서 오히려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하지만 저도 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는데 여러분이 보신 그 글 내용이에요. 그때 비로소 이 넓은 세상에서 만나는 건 어려워도 헤어지는 건 너무나 순식간이라는 걸 깨달았죠
"제가 단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항상 초심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스스로를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거예요."허설아가 눈을 깜빡였다."물론 나중에 저희 회사, àl'aube 주얼리와 봄날 주얼리에 이력서 넣는 것도 환영이에요."아래 앉아 있던 학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àl'aube는 요즘 한창 잘나가는 브랜드였다.때문에 이 브랜드를 아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한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선배님, 저희 졸업하고 나면 선배님 브랜드는 바라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허설아도 따라 웃었다."그럴 리가요, 실력만 있으면 낙하산을 태워서라도 입사시킬게요."학생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설아가 내려가고 다른 졸업생이 이어서 발표했다.허설아는 몸을 숙여 앞에 있는 학장과 손을 맞잡고 몇 마디 나눈 뒤 인사하고 뒷문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던 권지헌에게로 걸어갔다."너는 끝났어?""아직 시작도 안 했어. 우리 자기부터 봐야 한다고 좀 기다려달라고 했어."권지헌이 가볍게 웃었다."네가 여기 서 있는 거 처음 보는 건 아니야.""또 언제 봤는데?""대학 입학식 때, 너희 학과에서 공연했잖아."입학식 때는 관례상 각 학과 학생들이 공연을 하는데 예대가 특히 주축을 맡곤 했다.그때 허설아도 참가한 건 사실이었다. 다만 다른 학생 여러 명과 함께였다.허설아는 권지헌이 봤다는 걸 믿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말해봐, 나 그때 무슨 공연했는데?""피아노 쳤잖아. 파란색이랑 흰색 섞인 튜브톱 원피스에 머리에는 반짝이는 머리핀도 했잖아."권지헌의 디테일한 설명에 허설아도 멍해졌다.확실히 그날 옷차림이었고 피아노 치는 역할을 맡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건 입학 첫날이었다.권지헌이 그때부터 눈여겨봤다고?"진짜 나 봤어?""응, 네가 앉아서 피아노 치고 있을 때 지나가다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봤어." 그때 백스테이지에 문제가 좀 생긴 탓에 학생들이 다투고 있었다.아마 드레스 문제인 듯했다. 허설아는
건영대 학술 강당.성공한 동문 여럿이 단상에 올라 소감을 전했다.지금 재학 중인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허설아는 단상에 서서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한창 청춘인 후배들을 내려다보았다.곧이어 목을 가다듬고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졸업하고 몇 년이나 지나서 이 자리에 처음 서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학교 다닐 때는 학장님이 저한테 항상 야망이 없다고 하셨어요."아래 있던 후배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지금 학장은 허설아에게 그림 기법을 많이 가르쳐준 예전 은사였다. 그때부터 허설아의 재능을 높이 사며 계속 그림에 매진하도록 키우고 싶어 했다."저는 저희 학과의 도시 벽화를 전공했는데요. 그때는 연애에만 빠져 있느라 공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허설아가 웃으며 말했다."학과 정문 벽화, 그거 제 작품이에요."아래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허설아의 재능에 호기심만 가졌던 학생들은 전부 놀라 얼어붙었다.학과 정문 벽화는 고구려 비천상을 그린 그림으로 명화를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직접 디자인한 작품이었다.그 벽화는 지금도 건영대 홈페이지 배경 화면으로 쓰이고 있었다.아래에서 한 학생이 물었다."선배님, 그거 몇 학년 때 작품이에요?""여러분과 같은 1학년에 막 입학했을 때예요. 학장님이 그리라고 하시길래 그냥 갔는데 어디 쓰일지도 몰랐어요."허설아가 말을 이었다."그때는 연애할 생각만 하느라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않은 게 좀 아쉬워요."권지헌 꽁무니만 따라다닐 때라, 벽화를 과제 정도로 생각했다. 매일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권지헌 쫓아다니기만 바빴다. 지금 보면 확실히 완벽하지는 않았다. 아래 있던 학생들은 말문이 막혔다. 저런 재능을 가진 선배라니, 진짜 사람이긴 한 걸까? "선배님,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지금 주얼리 회사 대표고요, 취미로 그림도 그려요. 여러분이 아실 수도 있는데 온라인에서는 서풍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요."일러스트 업계에서 서풍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팔로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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