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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作者: 안나 스미스
택시에 올라서 먼저 5년 동안 살았던 집의 주소를 기사에게 말했다. 현관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옷걸이에 걸린 박성준의 코트였다.

그 옆에는 연한 색의 얇은 여성 재킷 하나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걸려 있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재킷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거뒀다. 챙길 짐은 많지 않았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 돈 대부분을 박성준의 회사에 쏟아부었다. 여권을 꺼내려고 서랍을 여는 순간, 손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작은 상자가 스쳤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가느다란 은팔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작은 장식 하나가 달려 있었지만 값이 나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8년 전, 박성준이 빈티지 숍에서 사준 팔찌였다. 그날 밤, 박성준은 직접 내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며 말했다.

“영미야,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이런 변변치 못한 선물밖에 못 해주지만... 언젠가는 이것보다 훨씬 좋은 걸 선물하겠다고 약속할게.”

그날 밤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었다. 그 팔찌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증표였다.

누군가가 정해준 관계도 아니었고, 이해관계로 맺어진 인연도 아니었다. 누구와도 상관없이 오롯이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나는 박성준의 말을 믿었다. 너무도 굳게 믿었기에 할아버지를 찾아가 다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 8년이다. 그때까지 그 녀석이 너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다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때는 내가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처음부터 틀렸던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닌 바로 나였다. 상자를 닫으려던 순간, 현관문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박성준이 우산에 묻은 빗물을 털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침실에 펼쳐진 내 여행 가방을 보자 박성준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박성준은 내 쪽으로 다가와 여행 가방 위에 손을 올렸다.

“정말 가는 거야? 이런 일 하나 때문에?”

나는 박성준의 손을 떼어냈다.

“이 일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뭐 때문인데?”

박성준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도 출장은 여러 번 다녔지만 한 번도 이러지 않았잖아. 강지영은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야. 난 그냥 챙겨주는 것뿐이라고. 예전의 넌 다 이해해 줬잖아. 회사를 막 시작했을 때 밤낮없이 함께 일하면서도 넌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잖아.”

박성준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예민해진 거야? 예전엔 늘 ‘다녀와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날 안심시켜 줬는데. 환불도 안 되는 비행기표 얘기를 했다고 넌 날 떠나려고 짐까지 싸고 있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를 위한 거야. 나는 회사가 더 커질수록 우리 삶도 더 나아질 거라고 믿어.”

“강지영은 아직 어려. 회사 일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혼자 버겁게 감당하게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예전엔 당신도 늘 내게 다른 사람을 좀 더 배려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당신 말대로 하는 건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박성준은 마치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것처럼,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없이 박성준의 눈을 마주한 나는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박성준의 눈에는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 인내와 희생이, 이제는 불행조차 느껴선 안 될 이유가 되어 있었다.

“성준 씨...”

나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 모르겠어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박성준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핸드폰 화면에 빛이 반짝거렸다.

박성준은 메시지를 힐끗 확인하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짧게 한 글자로 답장을 보낸 뒤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회사 일이야.”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박성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며칠 서연시에 다녀올 거야. 내가 돌아오기 전까진 어디 가지 마. 돌아오면 우리 바로 결혼하자. 이번엔 진심이야.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다 들어줄게. 그러면... 됐지?”

나는 박성준을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성준 씨. 우린 이제 결혼하지 않아요.”

박성준은 그 말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침 그 순간, 내 핸드폰에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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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는 사양하겠습니다   제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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