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과 제왕여러차례 고민 끝에 제왕은 역시 가기로 했다.박원은 미리 원용의를 따돌렸는데, 그러니까 이 얘기는 두 남자들끼리 나눈 것으로 다른 사람은 없었다.날이 이미 추워져 큰 일을 겪은 후라 박원은 원래보다 몸이 많이 약해져서 안색이 아직 예전의 붉고 윤기나는 모습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눈가가 아직 창백하다.박원이 직접 술을 데워 제왕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불렀다.박원은 시원시원한데 반해 제왕은 쭈뼛쭈뼛, 제왕은 말도 신중하고 깍듯하게, “평안후 작위를 받으신 걸 미쳐 축하 드리지 못했습니다.” “고마워요!” 박원이 씨익 웃자, 비로서 예전의 빛나는 기백이 느껴졌다. “평안이란 두 글자가 각별하게 느껴지네요.”“예.” 제왕이 딱히 할 말도 없고 앉아서 술만 마셨다.박원은 제왕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왕야께서 제 귀에 주절주절 쉬지 않고 얘기해 주시는 것도 좋았는데.”제왕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다 들었습니까?”“정말 신기하죠, 다 들렸어요.” 박원이 웃으며 갈수록 명랑해 지더니, “그리고 왕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 속에 남았죠, 하지만 안심하세요. 동생한테 말한 적 없으니까요.”제왕은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들 수 없는 게 그때 한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박원이 듣지 못하는 줄 알고 반응할 리 없어서 편하게 말한 건데, 그걸 전부 듣고 있었고 심지어 기억하고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왕야께서 동생을 깊이 연모하는 마음에 저도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왕야는 행동이 유약해서 얕잡아 보기도 했어요.” 제왕은 단숨에 술을 털어 넣더니, 술을 마셔서 얼굴이 빨갛게 된 것처럼 속으로 깜짝 놀란 걸 숨기며, “그……그러니까 정말 남녀로서 감정이 없는 겁니까?”박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처음엔 확실히 가슴 떨림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죠. 만약 내가 이생에 아내를 맞아야 한다면 그녀 같은 여자를 맞겠다고. 그리고 우리 두 집이 정혼을 하고 우리 관계가 확정되자 전 오히려 좀 망설여
박원의 점괘박원이 만족스럽게 제왕을 향해 웃으며, “왕야, 그러시다면 왜 지금 누워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십니까? 좋은 여자는 점 찍어 둔 사람이 많은 법이죠, 이 마을을 지나면 이 가게는 다시 없습니다. 잃어버린 뒤에 후회하지 마세요.”박원이 갑자기 제왕에게 다가가더니 비밀스런 미소를 지으며, “왕야, 아가씨를 대할 때는 줄곧 학구적이고 예의 바른 태도만 취하시면 곤란합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다른 방법도 시험해 보세요.”제왕이 또 다시 눈이 커지며 얼굴이 붉어지더니 살짝 역정을 내며, “생각이……생각이 너무 발칙하군요, 어찌 여자에게 강경한 수단을 쓴다는 말입니까?”박원이 똑바로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왕야 지금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세요? 제가 건의 드린 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잃을 것도 없다는 건데. 왕야께서 몸을 사리지 않으시면 세상에 못 가질 미인이 없습니다.”“그……그럴까요?” 제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박원이 방금 한 말은 일리가 있고,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아는게 있어 보인다. 어디 한 번 믿어봐?박원이 경성을 떠나기 전 절에 부처님께 인사 드리러 갔다.불당은 세밑을 맞아 사람이 아주 많았고, 박원은 운세를 하나 뽑아 해석해 주는 곳에 가져가서 해석을 부탁했다.해석하는 사람이 운세를 받아 들고 보더니, “잃어버린 가족은 북쪽에 있고, 찬찬히 조사하되 서두를 필요 없으며, 가을 겨울에 이를 차지하면 찾기 어렵고 봄여름이 다가오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오네. 공자께서는 뭘 구하셨습니까?”박원이 앉으며 작은 소리로, “출행을 할까 해서요.”해석하는 사람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이것은 대길로 안정 속에서 승리를 구할 운입니다. 공자께서 출행하시면 반드시 큰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공자님께 한말씀만 드리자면 밖에서는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박원이 미소를 지으며, “만약 무슨 변고가 생길지 알 수 없는데 그럴 때 선생은 곤경에서 나올 비방이 있습니까?”그 선생이 의미심장하게
탕양과 작전회의“응, 어쩔 수 있나, 조금이라도 더 신중한 게 낫지. 명단을 전해줬으니 됐어. 내일 계획대로 자네는 외부에 소식을 뿌려, ‘박원을 다치게 한 사람은 넷째인데 폐하의 자식이니 차마 추궁하지 못하는 거다.’ 하고.”탕양이 찐빵을 한입에 삼키며, “안왕 전하를 보호하실 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보호 같은 소리 하네,” 우문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넷째가 성심성의껏 박씨 집안에 사죄를 했으면 나도 지켜주려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했어? 꼴랑 편지 한 장에 미안하다는 몇 마디 쓰고 끝이야. 사람을 핫바지로 알아?”탕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네요, 하지만 이렇게 소문을 퍼트렸다간 폐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까요? 목숨이 달린 큰 일을 폐하께서 금족령만 내리신 건, 자식을 싸고 돈다는 느낌이 들 텐데요. 항간이 시끄러워지면 폐하께서 전하를 벌하실 겁니다.”우문호가 안됐다는 눈빛으로, “탕양아, 내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어디 한두 번이냐? 한 번 더 그러나 안 그러나. 그냥 이렇게 밀고 가자.”탕양이 피식 웃으며, “전하 최근 농담이 느셨습니다.”“사는 게 힘드니까, 살아보자고 그런 거지!” 우문호가 마지막 찐빵을 삼키더니 차를 마시고, “다른 방법이 없어, 미움을 받던 아바마마의 위엄을 상하게 하던 박원에게 길만 잘 깔아줄 수 있다면 야, 박원이 선비로 가서 목숨이 다른 사람 손에 있는 판인데 더 신중해야지 안 그래? 홍엽과 독고흥이 다 만만한 인간들이 아니야, 다행히 지금 아무도 박원이 무공을 회복한 걸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무과 장원이란 끈을 폐하께 알려야 하지 않을 까요?”“안돼!” 우문호가 한 마디로 거절하며, “아바마마 곁에 귀신처럼 적이 숨어있어. 나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신중한 편이 좋아. 이번에 풀어놓은 사람은 한 명도 아바마마께 알리지 않을 거야.”“순탄하게 임무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탕양도 걱정이 됐다. 이제 사람을 깔기 시작한데다 임무는 또 어렵고도 막중한데
위왕을 보내고위왕이 다시 경성을 떠나는 날은, 많지는 않았지만 첫눈이 소복하게 내려 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었다.위왕은 준마를 끌고 성문 앞에 서 있고, 멀리서 시위가 오는 게 보인다. 위왕은 우문호가 말을 달려 오는 것을 보고 모자를 눌러쓰고 숨을 내뱉는데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우문호가 성문에 도착해 말에서 내리더니, 말 등에서 술 한 단지를 꺼내 위왕에게 건네며, “북군영은 춥고 힘들 텐데, 경성의 맛있는 술이 어쩌면 한기를 좀 몰아내 줄지도 모릅니다.”위왕이 웃었다. 입술이 갈라져 피가 베어 나오는 바람에 미소가 악간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술을 받아 들고 말 등에 묶더니, “술이 이렇게 조금이면 북방까지 안 남아 나. 길에서 다 마시고 치우겠는걸.”우문호가 위왕을 보고, “언제 다시 와요?”“나한테 화 안 났어?” 위왕이 반문했다.“지난 일이예요.” 우문호가 담백하게 말하며, “형제 사이에 불쾌한 일은 기억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형이 절 크게 도와줬으니 제가 감사해야죠.”“나야말로 울분을 풀 수 있었어. 이 일은 굳이 내가 아니라 누가 맡아도 되는데, 호야, 몇 년만 기다려, 다시 돌아와서 같이 술 한잔 하며 형제의 정을 나누자.” “혼자는 외로운데 새 사람을 찾을 생각은 해봤어요?” 우문호는 위왕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말하면 안되는 걸 알지만 역시 형 곁에 챙겨줄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만다.“가당치 않아!” 찢어진 입술로 단호하게 말했다. 가볍게 말했지만 천금의 무게다.우문호가 가슴이 저릿해서, “두분 되돌릴 방법은 정말 없는 거예요?”위왕이 낮게 깔린 하늘처럼 무거운 눈빛으로, “더욱 가당치 않아!”위왕이 말을 타더니 우문호에게 등을 돌리고 손을 흔드는데 고생이 느껴진다. “나같은 사람은 죽는 것도 아까워. 죽어서도 혼백이 영원히 쉬지 못할 거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 그녀에게 더 잘해. 최선을 다해서. 안 그러면 후회한다.”말발굽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리더니 검은
아이들에게 죽음이란“아빠!” 세 꼬맹이가 우문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기뻐하며 소리쳤다.“전하, 이거 말이 이상합니다.” 탕양은 여전히 진지하게, “오늘밤 태자비 마마께 여쭤보려고요.”“그래,” 우문호가 세 아이들에게, “너희들 아빠와 황조부께 가는 건 어떠냐?”“좋아요!” 세 꼬맹이들이 좋아라 소리쳤다.오늘 셋째형이 가고 아바마마 마음이 서글플 텐데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 뵙는 게 도리일 것이다.마차로 궁에 들어가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우문호는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아바마마께 효도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1:3일때는 말이다.“태조모 궁에 녹두과자 참 맛있어, 태조모는 제일 맛난 걸 나한테 먹으라고 주신다.” 경단이가 태조모와 먹는 걸 하나로 연결시켜 그리워했다.만두가 첫째라고 어른스러운 척하며, “태조모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너한테 과자를 먹여 주셔?”“태조모한테 돌아오시라고 하면 되잖아?” 경단이가 말했다.“죽었는데 어떻게 돌아올 수가 없어? 죽은 건 죽은 거야. 땅에 묻는다고.” 만두가 시무룩하게 말했다.찰떡이가 머리를 들이밀며, “땅에 묻는다고? 그럼 너무 괴로운데, 숨 쉴 수 있어? 숨 막히면 힘들어.”“바로 땅에 묻는 거 아니야,” 만두가 아는 것도 많은 지, “우선 태조모를 나무 상자에 잘 넣어야 하는 거야. 나무 상자니까 숨을 쉴 수 있지.”“그런 거구나, 그런데 혼자 나무상자에 있으면 엄청 심심하겠다. 말 할 사람도 없고.” 찰떡이가 문득 태조모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조모가 찰떡이에게 잘 해 주신 걸 기억하고 있다.“그럼 우리가 다음에 가서 태조모랑 얘기하자.” 경단이가 우문호의 어깨를 흔들며, “아빠, 다음에 저 데리고 태조모에게 가요, 녹두 과자 먹고 싶어요.”우문호는 경단이의 천진한 눈빛에 가슴이 아린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다음에 가자.”“서일 아저씨가 그러는데 할머니도 돌아가셨데요, 하지만 전 할머니가 싫어요.” 경단이가 말했다.“나도 싫어요!” 만두와 찰떡이
태상황의 병우문호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단 명원제에게 갔다. 명원제는 손자들을 보고 즐거워서 전대미문으로 정사를 다 내려놓고 우리 떡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명원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중시해서 아이들이 글을 알기 시작했다는 말에 목여태감을 시켜 책을 한권 가져오게 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짚어 나가며 글자를 알려주는데 놀랍게도 7~80%는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명원제가 화들짝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옆에서 태연한 얼굴로 있는 우문호에게, “네가 어릴 때도 이렇게 똑똑하지는 않았어.”“원 선생을 닮았겠죠, 원 선생이 똑똑하잖아요.”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명원제가 고개를 흔들며, “걔가 똑똑한 건 둘째 문제 치고 성격이 고약해서 요령이 없어, 고집이 어찌나 센지, 특히 네 후궁 문제는 한 발자국도 양보를 안 한단 말이지. 그런데 이 고집은 네 황조부도 마찬가지야. 병이든지 그렇게 오래 되셨으면서 한사코 너희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시고, 전에는 기침만 한번 해도 태자비를 들라고 하시더니 이번엔 저렇게 위중한데 알리지도 말라고 하시니.”우문호가 긴장하며, “황조부께서 아프십니까? 심각하세요?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심각하셔,” 명원제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우문호와 밖으로 나가서 깊은 한숨을 내 쉬더니, “네 황조모께서 서거하신 뒤로 황조부가 넘어지시더니 도무지 낫지 않으시고 밤에는 기침이 심해서 눕지도 못하시는 게 누우면 숨을 못 쉬셔.”“숨을 못 쉬신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어의는 뭐라고 했습니까?” 우문호가 다급하게 물었다.“어의 말이 천식이라고. 계속 약을 드리는데 차도가 없고 나아지는 기미조차 없구나.” 명원제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네 황조부도 연세가 드셔서요 몇년간 계속 몸이 안 좋으셨어, 안 그랬으면 퇴위하실 필요도 없으셨지. 2년전에 심장 질환이 발작해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 하셨고. 다섯째야, 너도 정무로 바쁜 걸 알지만 최대한 짬을 내서 곁에 있어 드려. 어의 말이 이번 약을 드시고도 효과가 없으면 붕어하실
태상황과 꼬맹이단지…… 우문호가 침울하게 밖을 보니 이미 석양이 비춰 들고, 엷은 빛은 작열하던 광채를 잃었다. 우문호가 조용히, “그럼 소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황조부께 문안 드리러 가겠습니다.”“인사도 좋고 곁에 있는 것도 좋지만 폐하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명원제가 경고했다.우문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 떡들을 데리고 나갔다.대전을 떠나자 만두가 혀를 내두르며, “황조부 너무 무서워. 이렇게 무서운 거 처음 봐.”“황조부는 황제 시니까 당연히 무섭지.” 경단이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놀라 죽을 뻔 했어.” 찰떡이가 조그만 목을 움츠리더니 경악한 눈빛을 지었다.우문호가 무서운 눈빛으로, “어른을 함부로 말하면 혼난다.”세 꼬맹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넷이 건곤전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태상황의 기침소리는 가래를 동반해 끓는 물 소리처럼 쿨룩쿨룩했다.궁인이 들어와 보고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상선이 나와서 우문호와 우리 떡들을 보고 눈웃음을 지으며, “어머나, 오늘 전하께서 어떻게 시간을 내셔서 세자 저하와 입궁하셨습니까?”“태감,” 우문호가 안쪽으로 흘끔 눈짓하고, 안에서는 기침소리가 들리지만 많이 잦아들었는데 일부러 참는 듯한 느낌이다. “황조부는 어떠신가?”“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아직 괜찮으십니다. 그저 얼마전에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는데 어의에게 보였으니 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상선이 차분하게 답하고 웃음 띤 얼굴로 예를 취하는 게, 거짓말 하는 것도 감추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우문호가, “그럼 우리가 들어가서 인사를 여쭙겠네.”상선이 웃으며 막더니, “전하께서 들어가시는 것은 괜찮고 세자 저하들은 여기서 노시게 하시지요. 태상황 폐하께서 병세가 중하니 아이들은 접근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괜찮네, 쟤들은 아주 건장해.”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상선이 막지 못하고 따라 들어가며, “아이고, 전하 좀 기다리세요. 이렇게 밀고 들어가시면 안됩니다.”우문호는 이미 세 아이
태상황의 결심“그래, 다들 일어서서, 태조부가 좀 보게 이리 오너라.”우리 떡들은 두껍게 입어서 기우뚱하면서 일어나 뒤뚱뒤뚱 오리처럼 걸어가더니 태상황 곁에 달라붙었다.찰떡이는 자상해서 통통하고 조막만한 손을 태상황의 생기 없이 파리한 얼굴에 얹고, “손이 따듯 따듯”태상황은 마음에 한없는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기침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 지고 가슴에선 쿨룩거리는 소리가 울려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태상황은 손을 들어 상선을 오라고 하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게 했다.아이들이 태조부가 아프신 것을 알고, 얌전하게 하나씩 상선을 따라 나가 탕후루를 받아 먹었다.태상황이 계속 기침을 했으나, 아이들이 휘장 가리개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머리가 아래로 쳐지며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쟤들이 벌써 가겠다는 말을 하는구나.”우문호가 침대가에 앉아 태상황의 가슴을 치며 가볍게 진기를 불어넣자 태상황의 기침이 심해졌지만 이번 기침으로 가래가 나와서 오히려 훨씬 편해졌는지 가슴에서도 컹컹 울리는 소리가 별로 나지 않았다.태상황이 우문호에게, “왜 말이 없어? 이렇게 조용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우문호가 걱정스레, “왜 이렇게 심하게 기침을 하세요? 원 선생에게 와서 좀 보라고 할까요?”“그럴 필요 없어.” 태상황이 하지말라는 손짓으로, “별 거 아냐, 괜찮아, 어의 약을 먹었으니 이제 약효가 듣겠지.”“그런데 기침이 아직 이렇게 심한데요.” 우문호가 태상황의 얼굴을 보니 원래도 말랐는데 지금은 더 심하게 말라서 가죽밖에 없다.“기침 한다고 안 죽어,” 태상황이 많이 괜찮아 져서 몸을 살살 일으키더니, “과인을 저기 좀 앉혀줘, 너무 오래 누워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지겠어.”이불을 젖히고 발을 침대 끝에 뻗더니 손으로 우문호의 어깨를 누르는 힘으로 일어나려고 했으나 우문호가 태상황을 번쩍 안아 올렸다.갑자기 허공에 붕 뜨자 태상황이 화들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우문호의 팔을 꽉
안왕은 깜짝 놀랐다.“그가 꿈을 꿨다고? 셋째 형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예!”“언제 꾼 꿈이더냐?”원경릉은 많이 지친탓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아마 저녁 해시쯤 인 것 같습니다.”안왕이 물었다.“저녁 해시? 강북부에 있던 것이냐? 해시에 꿈을 꿨는데, 어떻게 자시가 되어 도착한 것이냐?”원경릉은 멈칫하다가, 그제야 무심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며칠 전에 꾼 꿈이라고 수습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다섯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왔기 때문이다.안왕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그는 황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황후에 관한 일은 늘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안왕은 셋째 형님의 일로 마음이 무거운 터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 사실, 더 캐묻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황후가 대단하다 해도, 그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해칠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는 다만 셋째가 위험에 빠진 것을 다섯째가 꿈에서 알았다는 것이 놀라왔다. 게다가 그 꿈 하나로 황후를 먼저 급히 보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꿈을 꾸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교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황후를 심야에 먼저 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는 예전에도 다섯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그들의 형제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원경릉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주사를 놓았다.큰 상처들은 처리했지만, 얼굴과 손에 있는 작은 상처들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원경릉은 생리식염수를 꺼내 천천히 상처를 닦아주었다.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에 특히 많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강북부에서 병사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며 텃
수술실은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고, 원경릉은 직접 소독했다. 소독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그 후 위왕을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사람들도 전부 소독을 마쳤다.문이 닫히는 순간, 본격적인 대수술이 시작되었다.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과거 사생활은 그렇다 해도, 그는 정말 훌륭한 신하였고, 뛰어난 장군이자 좋은 형제였다.수년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그가 속죄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속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속죄의 방법은 다양하다. 1년, 2년 정도 고생하면 본인과 타인에게도 속죄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십여 년 동안 매일 이 춥고 황량한 변경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속죄하려는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원경릉은 북당의 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비록 예전엔 그에게 화가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존경과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수술 중 그의 옛 상처와 새로운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안왕의 도움도 컸다. 변경의 바람과 모래가 그들 형제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이끌었다.그때 태상황이 그를 변경으로 보낸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기회였고, 북당에도 십 수년의 안정을 가져다 준 일이었다.위왕의 복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어깨와 등에도 칼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부상 당시 출혈도 심각해 생명이 위태로웠다.수술이 끝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원경릉은 혼자 수술을 집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 수술은 유난히 위험했다. 그녀는 행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위왕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가 이번에도 버텨내길 바
위왕의 병사들이 저택 문 앞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위왕은 오랜 세월 병사를 이끈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의 모든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일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모습과 안왕비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려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병사들도 애타는 마음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주변의 백성들 역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저택 밖에 몰려들었다. 위왕은 평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친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사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러 몰락한 왕인 척했고, 그런 모습 덕에 백성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한편, 저택 안에서는 안왕이 위왕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심맥을 지키고 있었는데, 곧바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원경릉은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다섯째의 꿈이 사실인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큰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위왕의 이름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이가 정말 셋째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위왕이 북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도 절실히 느꼈다.그녀는 워낙 빠르게 달려온 터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말을 세우고, 서둘러 가려고 했지만 가득 찬 인파에 가로막힌 탓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의원입니다, 비켜주세요!”그 외침에 사람들은 바로 길을 내주었고, 원경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사는 안왕과 함께 경성에서 온 사람이라 원경릉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기쁨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황후마마께서 오셨다니…! 위왕은 무탈할 것입니다.”병사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직접 뛰어오셨다니? 그리고 다들 그제야 마음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