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는 분명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던 온사, 하지만 아버지가 동생을 데려온 뒤로 모두의 사랑을 빼앗겼다. 새 여동생에게 뺏긴 사랑을 되찾고자 했지만 오라버니들은 그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큰오라버니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했고, 둘째 오라버니는 두 손 두 발을 잘랐고, 셋째 오라버니는 모진 고문을 했으며, 막내 오라버니는 체면을 구기고 악명을 떨치게 했다. 심지어 아버지마저 그녀를 쫓아내고, 결국 온사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의 손에 죽게 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포기하기로 하고 집을 나와 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오라버니들이 후회하고 그녀에게 무릎 꿇고 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온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미타불, 온씨 가문? 온사? 사람을 잘못 보셨군요.”
View More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온권승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진국공 어르신, 당신은 철두철미한 위선자였으니까요. 당신은 제 어머니인 란자군에게 고개를 들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신뢰를 배반하였고 지금까지 모두를 기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불안감이 들었다.그는 온사가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대체 원하는 게 뭘까?“아버지, 반성하고 계신다고 하셨죠? 그럼 잘됐네요. 마침 저도 아버지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제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신다면, 저도 개명을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대신들은 더 이상 부녀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온사는 온권승의 곁으로 다가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강압적으로 물었다.“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 두려우신가 봅니다?”온권승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온사가 자신을 도발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가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네가 아비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니 아비로서는 차라리 기쁘구나. 네가 아비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일 테니.”고개를 든 온권승은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사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던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머니께서 난산으로 병에 걸리셨고 그 병으로 사망한 게 진짜 사실인가요?”“물론이지.”온권승은 주저없이 답했다.“경성 사람이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네 어미가 위독할 때 내 직접 궁중의 어의를 불러다 진찰하게 하였지.”“예, 성녀 전하. 신도 제 저택의 전담 의원을 마님께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마님은 그때 확실히 중병을 앓고 계셨어요.”“예,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문관 중 두 사람이 앞다투어 나서서 증명하듯 말했다.“그래요? 그럼 아버지는 과거에 어머니께 미안한 일을 하신 적이 정녕 없단 말인가요?”“물론이다.”온권승은 여전히 대답에
그의 고육지책은 온사만을 저격한 게 아니었다.온권승은 황제가 온사의 편에 설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일부러 폐하를 향해 감정을 호소하며 온사의 개명을 막으려 한 것이다.이미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이 나라의 황제가 황권으로 압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온권승의 속셈을 간파한 황제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이런 능구렁이가!’아마 이렇게 되면 황제는 물론이고 섭정왕 북진연도 온사의 편에 서서 주장을 펼칠 수가 없었다.‘이제 성녀가 어떻게 할지에 달렸군.’생각이 많은 황제에 비해 북진연의 표정은 평온하고 담담했다.황제는 그제야 뭔가가 떠오른 듯,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성녀에겐 마지막 수가 있었지.’황제는 이 부녀의 이어질 대결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성녀 전하, 진국공께서도 이리 반성을 하고 계시는데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떤가요?”“그래요, 성녀 전하. 진국공은 순간의 판단 착오가 있었을 뿐입니다.”“예전에 진국공께서 전하를 얼마나 총애하셨는지 성녀 전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는 진국공이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지요.”“사람이 어찌 실수 한번 안 하고 살겠습니까. 진국공께서도 잘못을 시인하셨으니 부녀 사이에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성녀 전하, 진국공께 기회를 한번 주시지요.”“어쨌거나 아버지 아닙니까?”드디어 기회를 잡은 문관들이 분분히 나서서 의견을 피력했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그들이 진심으로 온사를 위해서 이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만약 온사가 아이를 바꿔치기하려 시도했던 그 사건을 몰랐다면 어쩌면 저들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진국공 어르신.”온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가 주절주절 떠드는 대신들의 입을 막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온권승을 바라보며 느긋한 어투로 말했다.“소승은 이미 출가한 몸이나, 금일 진국공께서 굳이 아버지로서 저에게 충고하시려 한다면 저도 딸로서 진국공께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
역시나 조정에서 섭정왕을 제외하고 삼대 원로인 왕 태사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왕 태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평온한 표정의 온사와 진국공을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솔직히 말해 성녀의 개명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어젯밤 진국공이 일전에 신세를 진 일을 빌미로 도움을 청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싸움에 낄 생각이 없었다.그는 이미 최선을 다했고 여기서 더 얘기하다가는 황제와 척을 지게 될 것이다.아마 그렇게 되면 양 상서와 다를 게 없는 말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어쩌면 차라리 양 상서가 나을 수도 있었다. 그는 단지 폐하에게 밉보였을 뿐이지만 왕 태사는 진국공에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 섭정왕까지 화나게 했으니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오래전에 진 신세 때문에 자신과 일가족의 목숨까지 바칠 수는 없었다.왕 태사의 뜻을 알아들은 온권승은 음침한 얼굴로 어사대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오늘 어사대부가 조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어떻게 된 일이지?온권승은 곧바로 장남인 온장온을 노려보았다. 온장온은 어사대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선을 느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시선을 돌렸다.온권승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어사대부의 불참석에는 분명히 온장온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정성을 들여 가르친 적장자마저 자신을 배신한 상황이니,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폐하.”온권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는 앞으로 나서더니 공손히 예를 행하며 말을 이었다.“왕 태사께서는 연세가 드셔서 불효자가 아비를 벌이는 일을 차마 두고만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을 대신하여 성녀를 꾸짖은 것이니,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신다면 신에게 화풀이를 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모두 신이 부덕한 탓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온사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조정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대신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도 왕 태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동시에 성녀의 과감함에 혀를 찼다.그 발언은 왕 태사가 황제를 배반했다고 선언한 것과 같았다.그러나 맥락은 왕 태사가 온사를 매국노로 몰아가려 했던 것과 너무도 흡사했다.왕 태사는 추측만 있을 뿐이지만 온사가 한 말은 근거가 있었다. 딴마음을 품은 게 아니라면 왕 태사가 굳이 이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오늘의 싸움은 결국 진국공과 성녀의 싸움이고 황제는 성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왕 태사가 먼저 나서서 성녀를 공격한 꼴이었다.이는 진국공의 지시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허튼소리!”왕 태사가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신은 삼대 군왕을 모신 원로로서 태상황에 이어 선황, 지금의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쳤도다! 죽어서도 주인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다. 성녀는 어찌 폐하를 향한 내 충심을 이런 식으로 모함하는가!”“폐하, 성녀가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음으로 저의 충심을 증명할 수밖에 없습니다!”“왕 태사,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황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삼대 군왕을 모신 원로께서는 사실을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이를 앞세워 어린 후배를 까내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 목숨으로 폐하를 협박하시니, 대체 왕 태사가 말한 죽음으로 증명한다는 말은 무엇을 위한 증명이며,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북진연은 황제와 입장이 달랐다. 그는 나라를 위해 혁혁한 공훈을 세운 사람으로, 그가 피로써 이루어낸 업적은 삼대 원로라는 칭호보다 위에 있었다.그가 병사를 이끌고 출정을 떠나 외란을 평정하지 않았더라면 왕 태사의 삼대 원로의 자리는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러니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왕 태사에게 따질 수 있었다.‘곧 관짝에 들어갈 영감 따위가 감히 성녀에게!’“섭정왕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신이 언제 나
북진연이 복귀하기 전부터 양 상서는 어린 황제에게 나라의 율법과 질서를 들먹이며 반기를 들던 인물이었다.황제는 진작부터 양 상서를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다만 섭정왕이 복귀한 이후로 어쩐 일인지 이 늙은 능구렁이는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지내며 중립을 고수했다.해서 황제도 그의 목을 칠 적절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 성녀가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으니 황제로서는 이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양 상서, 자네에게 참으로 실망하였네. 그래도 조정을 위해 헌신한 것을 봐서 피를 보지는 않을 테니, 관직을 내려놓고 일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게.”양 상서는 감히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만약 일가족을 데려가란 말이 없었더라면 어떻게든 궤변을 늘어놓았겠지만 황제가 사고를 친 아들의 죄를 사하여 주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기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이때 침묵만 지키던 북진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양 상서, 가기 전에 아들에게 이혼서를 쓰게 하는 것 잊지 마시게.”온사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북진연이 대신해주자 곰곰이 생각에 암겼다.어젯밤 그녀의 대문 앞에 서신을 두고 간 자가 있었다. 온사는 독충을 풀어 그자를 쫓았으나 그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 부랴부랴 경성을 떠났다.독충들은 그자가 멀리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왔고 서신에는 진국공과 손을 잡은 자들의 명단이 쓰여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양 상서였다.온사는 유성을 시켜 서신의 진위를 확인한 후에 서신에 적힌 사람들을 상대로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었다.그렇게 그녀는 손쉽게 아버지의 오른팔을 잘라낼 수 있었던 것이다.온사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 진국공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진국공은 무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아직도 흔들림이 없는 그 표정을 보아 하니,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폐하, 양 상서가 죄인이기는 하나, 일전에 성녀에게 한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녀는 대명을 대표하는 신분이기도 하니 더욱 더 만민에게 본보기를
이는 명백한 몰아가기였다. 성을 개명하는 사람이 나라에 성녀 한 명뿐이 아닌데 아버지인 진국공은 조정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녀에게 불효와 불경의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있다.일반인에게는 중죄가 아닐 수 있지만 성녀라면 얘기가 달랐다.구경하던 대신들은 속으로 혀를 찼고 용상에 앉은 황제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양 대인.”온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양 상서를 불렀다.양 상서는 오만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온사를 바라보았다.성녀가 어떤 변명을 하든 그는 자신의 변론에 자신이 있었다. 종족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나라의 예법을 무시한 성녀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온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예부상서이시니 예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것은 대인의 직책이죠. 그러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물이 흐려졌는데 무슨 수로 예법과 질서를 수호하실 건가요?”양 상서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성녀는 말을 조심하십시오. 신은 관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정직하게 율법을 수호해 왔으며, 이는 조정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어찌 윗물이 흐렸다고 말씀하십니까? 성녀는 신을 모함하고 계신 겁니까?”적어도 오늘 나서서 성녀의 소원을 반대하기 전까지 양 상서는 조정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이 장군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양 상서는 여전히 뻔뻔하게 계속해서 온사를 압박했다.“성녀, 조정의 대신을 모함하는 건 중죄입니다.”그는 이렇게까지 하면 성녀가 위협을 느끼고 알아서 물러날 거라 생각했지만, 온사는 피식 비웃음을 짓더니 말했다.“오해이십니다, 양 대인. 저는 양 대인을 모함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오늘 황궁으로 오는 길에 대인의 막내 아드님께서 포졸들에게 잡혀 대리사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알아봤더니 대인께서 가장 총애하시는 막내 아들이 글쎄 다른 사람의 부인을 겁탈하려다가 실패하니 검으로 사람을 다치게 해서 끌려갔다 합니다. 참으로 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그 부인의 부군은 심각한 부상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