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조정 대신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세자 저하, 어찌 세자빈을 품에 안고 조회에 나오신 겁니까?” 세자 윤세현은 이를 악물고 답했다. “내 부인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혹여 잃게 되면 네가 책임질 거냐?” 세자빈 이경은 본래 전장에서 이름을 떨치던 젊고 빼어난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전생에는 믿었던 사내에게 배신당해 절벽 아래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다시 태어난 그녀는 이번 생에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쥐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 어느새 이경은 윤세현이 누구보다 아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상선이 허둥지둥 달려와 황제 이중명께 아뢰었다.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세자궁 사람들이 폐하의 후궁을 벌하였다 하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자 용상 아래로 숨어버리며 중얼거렸다. “괜찮다. 저 세자빈은 짐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니라...”
view more지금 북란관 밖은 창랑족 전사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늑대 같은 혈기를 품은 듯했다.관 밖에서 수년간 풍상을 겪으며 험난한 환경 속에서 고난과 추위, 빈곤에 시달려 온 이들이었다.그러나 그런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그들을 강철 같은 몸으로 단련시켰다.그들은 관 안에서 오랫동안 안일하게 지내 온 병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용맹했고, 마치 잔혹한 늑대와도 같았다.그런 이들과 관 안의 병사들이 과연 겨룰 수 있겠는가?성조차 지키기 어려운 지금, 성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공주 마마…”장암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말 위에 당당히 앉아 있는 구공주의 모습을 본 순간 끝없는 희망이 피어올르기 시작했다.그 가냘픈 몸속에는 마치 무한한 힘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방금까지만 해도 장암은 구공주가 병사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을 걱정했었다.그러나 그녀의 눈동자 속에 서린 차가운 빛을 본 순간, 장암은 몸을 떨며 누구보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무조건 그녀를 믿기로 한 것이다.병사들 중에는 망설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기꺼이 앞으로 나서는 자들도 있었다.주저 없이 곧장 앞으로 나선 이들이었다.하나둘씩 앞으로 나서자, 망설이던 다른 병사들도 뒤따라 앞으로 나섰다.자고로 전장에서는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되는 법이다.게다가 북란관에는 그들의 가족이 있었다.가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포들도 있었다.그들 모두 남진의 형제이자 자매이며, 모두 남진의 일원이었다.그렇기에 병사로서 남진을 지키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좋습니다. 형제분들의 결의와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삼천 명뿐입니다...”“이경,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거야?”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멀리서 다가왔다.막 화장을 마친 이서영이 천막에서 나와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기나긴 치맛자락이 걸음을 방해해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몸을 살짝씩 돌려가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이서영은 춤
“뭐라고요?”연지는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어디 감히! 제가 당장 가서 죽이겠습니다!”그가 막 몸을 돌려 달려 나가려는 순간, 이경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시 한번 이렇게 성급하게 굴면, 다음엔 내 비밀 안 알려 줄 거야.”비밀이라니…그 말에 연지는 순간 멍해졌지만, 내심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공주가 자신에게 말하는 비밀이라면, 세자는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여전히 화가 나는 것은 똑같았기에 당장이라도 남백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공주 마마, 왜 그놈을 살려 주신 겁니까?”“그래도 결국 나를 구하려다가 장풍을 맞고 다쳤잖아.”이경은 의자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일단 앉아. 나 목이 좀 아파.”연지는 곧바로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 키를 낮췄다.목이 아픈 공주가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하지만...”“그 사람의 진짜 목적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당분간 아무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으니, 너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약간의 긴장감을 줘 연지가 얼른 자신을 위해 움직이게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사실 이 비밀을 그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연지는 직설적이면서도 의외로 달래기 쉬운 사람이었다.“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남백훈도 제가 알고 있는 줄 모르겠죠. 그런데 만약 이 비밀이 새어 나간다면, 그건 공주 마마께서 소문낸 겁니다.”“그러니 마마, 안심하십시오. 죽어도 결코 한마디도 누설하지 않겠습니다.”그러나 이 비밀을 이렇게까지 감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이럴 때일수록 당장 남백훈을 쳐 죽이는 게 맞는 것 아닌가?만약 또 공주를 해치려 하면 어쩌려고?“걱정 마. 이번에 나를 죽이지 않고 도리어 구해 줬으니, 다음번에도 차마 해치지는 못할 거야.”이경은 연지를 가까이 끌어당긴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티를 내서는 안 돼.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남백훈은 눈을 감은 채 멀어지는 이경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괜히 마음 한쪽이 쓰리게 아파 왔다.그는 이경이 자신 곁에 머무는 데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방금 분명히 말했다.자신은 경계심이 아주 강하다고.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아마도 그녀는 남백훈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결국 이경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남남일 뿐이었다.그런데도 남백훈은 자신이 대체 무엇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알 수 없었다.이미 이런 외로운 삶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그는 지난 23년 동안 혼자서도 잘 살아왔다.그런데 요즘 들어 이경과 윤세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왜 이런 마음이 제멋대로 통제되지 않는 걸까.그의 손은 여전히 자신의 심장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심장이 다시 아려 오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한편 이경은 자신의 영막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마침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지를 발견했다.“안에 있어?”영막 안에는 아직 작은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하는데, 병사들은 하나같이 철인이라도 된 건지 도무지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반면 이경은 이미 지쳐 죽을 것만 같았다.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공주 마마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전해.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난 앞으로 한 시간 동안 남백훈의 영막에 남아 있겠다고.”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녀의 목소리는, 연지가 굳이 전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누군가의 귀에 또렷이 들어갔다.이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영막의 문이 활짝 열렸다.윤세현의 얼굴은 먹구름이 잔뜩 낀 듯 몹시 어두웠다.“아직도 부족해?”금방 다른 사내의 영막에서 나왔으면서, 다시 또 들어가겠다는 거야?이경은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윤세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이상하게도 화가 났을 때의 윤세현은 안색이 더 좋아 보였다.정말 신기했다.“남백훈이 부상을 입었어. 게다가 나를 구
그 순간, 남백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고충도 아닌데… 대체 뭐지”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대체 왜 이렇게 아픈 거지?마치 칼로 세게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너무 아픈 나머지 거의 경련이 날 지경이었다.“그럼 뭔데?”이경은 다시 몸을 앞으로 숙였다.놀란 남백훈은 뒤쪽에 놓인 긴 의자 위로 아예 주저앉고 말았다.민망한 마음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이경의 섬세한 이목구비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거리가 어찌나 가까운지, 그녀의 숨결마저 순식간에 그를 완전히 감싸 버렸다.“고충 맞지?”그녀는 날카롭게 물었다.“아니야…”“그럼 대체 뭔데!”이경은 더욱 바짝 다가갔다.두 사람의 얼굴은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절정고야!”남백훈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 앞을 막으며 다급히 말했다.“더 이상 다가오지 마!”너무나도 아팠다.온몸이 쑤실 정도였다.이서영에게 이마를 맞아 피가 나던 그때보다도 수천만 배는 더 아팠다.어느새 그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린 것을 넘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이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그윽하고 맑던 그녀의 향기도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남백훈은 가쁘게 숨을 골랐고, 간신히 심장의 고통도 가라앉았다.눈앞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이경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태연히 자신의 약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날 놀린 거야?”남백훈의 표정은 어두웠다.그는 손끝까지 떨릴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꺼져!”“그냥 범인을 심문할 때 쓰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이경에게는 누군가를 심문하는 수단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방금 보인 수단은 그중에서도 가장 온순한 편이었다.정말 잔혹한 수단은 누군가는 어쩌면 평생 볼 기회도 없을 정도였다.이경은 입가에 가득하던 장난기 어린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절정고라면, 말 그대로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혈육의 정, 우정,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다 가져서는
구공주 이경의 뒤에 서 있던 연지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가녀린 몸으로 강한 장궁을 거침없이 당기는 그 결연한 눈빛과 손끝에는 두려울 것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분명 작고 여린 여인일 뿐인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연지는 이경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차가운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고 싶을 만큼 경외심이 들었다. 이경이 활을 들어 당길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 화살이 공중을 가를 때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은 정말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하찮은 궁녀가 감히 고귀한 공주를 해치려 들다니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이경은 잠시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겉으론 아무런 감정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초아는 이경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줄 알고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려들려 했다.“누구 없어요? 공주마마를 해치려 합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초아가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사이 궁녀의 발길질이 이경
귀를 때릴 듯한 뺨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 곁에 있던 이경이 순식간에 이서영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뺨을 힘껏 후려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이서영은 그 힘에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져 책상에 부딪혀 바닥에 고꾸라졌고 입을 열 틈도 없이, 너무 아파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고 숨소리조차 작아질 만큼 정적이 흘렀다.구공주인 이경이 현주인 이서영을 그토록 사납게 때린 것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만에야 임수연이 놀라 정신을 차
초아는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우리 공주마마께서 친히 황명을 받들어 출정하신 몸이시거늘, 어찌 세자 저하와 나란히 입성하지 못한단 말입니까!”만일 지금처럼 입성할 때조차 공주마마를 세자 곁에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군의 장졸은 물론 멀리 변방 백성들까지 모두 공주마마를 업신여기게 될 터였다.문정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송구하오나, 소인은 세자 저하의 뜻을 전할 뿐이니 감히 거역할 수 없사옵니다. 그리고 공주마마, 이곳은 황명이라 하나, 군영 안에서는 세자 저하 말씀이 곧 법이니 소인이 전한 뜻을 받으시옵
Mga Ratings
Rebyu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