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21세기의 비혼주의자였던 서인경, 눈을 떠 보니 한남자밖에 모르는 연애 바보로 환생했다. 원주인이 하도 여기저기 적을 많이 만들고 다닌 탓에 그녀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딴 삶을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혼, 반드시 이혼해야 해! 전생에서 서인경의 가족은 누명을 쓰고 비참하게 몰살당했다. 서인경은 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복수도, 이혼도, 자유로운 비혼주의도 모두 되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존귀하신 왕야에게 조심스레 이혼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한발 양보해서 휴처(休妻: 고대에 혼인한 사내가 처를 집안에서 내쫓는 것)라도 해달라 했지만 그것도 거절. 결국 그녀는 스스로 이혼서를 써서 그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걸 본 사내는 문서를 갈기갈기 찢으며 분노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내 사전에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없다. 나와 헤어지고 싶다면 오직 사별뿐이지. 죽고 싶으면 어디 한번 해보거라.”
View More연풍이 아래로 내려가 살펴보고 돌아왔다.생사를 숱하게 겪어 온 그조차, 눈빛에 어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능지국 백성들 같습니다. 몸에 채찍질 당한 자국과 고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설장로가 끌고 와서… 유적을 짓게 한 듯합니다.”“참으로 천인공노할 짓이로군! 겉으로도 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할 줄이야…”서인경은 눈앞의 아름답게 지어진 이곳을 바라보았다.그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탐낼 만한 것이었다.옛날에도 바로 이곳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쟁탈전을 벌였고, 그로 인해 일불락 수십만의 백성이 설산에 묻혔다.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또 하나의 죄가 더해졌다.능지국의 수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백성들이 이곳에 묻혀 버린 것이다.“묻어주자.”서인경이 조용히 말했다.“일불락의 부흥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바깥 사람들처럼 새로운 터전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되살려야 할 것은 사람이지 재앙이 아니거든.”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끝없이 이어진 만인갱을 바라보며, 얼굴마다 깊은 비통과 참혹함이 서려 있었다.*반 달이 흐른 뒤, 설산에는 다시 한 번 눈사태가 일어났다.그러나 백 년 전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고, 어떤 생명도 희생되지 않았다.다만 설산의 용맥이 끊어지며 모든 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만수림의 모든 생명체는 막북 변방의 원시림으로 옮겨졌다.그 숲 근처에는 새로운 성이 하나 세워졌다.설성.그날 이후, 일불락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일불락에 대한 모든 것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그러나 그 혈맥만은 설성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살아 숨 쉬었다.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이들이 알게 되었다.그 성의 주인이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진국의 황제와 황후라는 사실을.*성루의 가장 높은 곳, 서인경은 연기준의 품에 안긴 채
설장로는 과연 오랜 세월 설산에서 수행해 온 자다웠다.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는 공기를 뒤흔들었고, 그 위력에 사람들은 일제히 팔을 들어 막아야 했으며, 더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곧이어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며 서인경을 향해 덮쳐들었다.“조심하십시오!”“어머니!”서인경이 손을 들어 막아냈지만, 설장로의 장력에 밀려 몸이 연달아 뒤로 밀려났다.설장로는 땅에 내려서며 핏기 어린 눈으로 서인경을 몰아붙였다.“왜냐고요? 말해 보십시오. 어째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 무공 비급을 당신 손으로 부숴 버린 겁니까?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서인경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규화비급을 익히려면 만인의 피를 마시고, 만인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그 안의 고충술 또한, 우리 일불락 사람들의 피로 길러야 하지요. 일불락은 그런 해악을 남길 수 없습니다. 남을 해치고 스스로를 망치는 그런 것 따위, 저는 원하지 않아요.”“하!”설장로는 비웃음을 터뜨렸고,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당신 조상과 다를 바 없군요. 일불락 수령 일족은 하나같이 겁 많고 나약하며 어리석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니 일불락이 천하를 통일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지요!”서인경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제야 알겠군요. 여와께서 처음 일불락을 세우실 때, 왜 수령 일족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셨는지. 당신 같은 사람이야말로, 일불락의 재앙이자 치욕입니다. 그리고 수령 일족은 바로 당신 같은 자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요.”“정녕 죽고 싶습니까!”설장로는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온 힘을 끌어모아 서인경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예상했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다.어느새 나타난 흰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공격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예상치 못한 반격에 설장로는 기운을 거두지 못한 채, 그대로 역류를 맞고 피를 토해냈다.연기준은 하얀 옷자락에 눈송이가 몇 점 내려앉은 채, 마
설장로는 싸늘한 눈으로 막효연을 노려보았다.“애송이가 감히 어른에게 이 따위로 말하는 것이냐? 봉은노, 당신 손녀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요!”그 말에 봉 대장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 손녀를 어떻게 가르칠지는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다만, 방금 효연이 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군요.”그 한마디로, 봉 대장로는 분명히 설장로의 반대편에 섰다.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쏠리자 설장로의 얼굴이 마침내 일그러졌다.그녀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냉소를 흘렸다.“이 혹한의 설산을 백 년이나 지켜왔습니다. 헌데 당신들은 제가 이대로 남의 밑에 들어가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까?”그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역심을 품었군요.”“역심?”설장로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수령에게 복종하지 않겠다고 하면 곧 역심인 겁니까? 우리 여족은 천 년을 수령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이 설산을 지켜온 유일한 부족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도 스스로 문을 세우고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숨결에 기대어 사는 건, 당신 같은 종이나 하는 짓이예요!”봉은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았다.“여족이 재난을 당해 거의 멸족 직전까지 갔을 때, 살아남은 건 단 한 명의 족장뿐이었습니다. 그때 수령께서 자신의 수명 오십 년을 깎아 그 족장을 살려냈고, 그 덕에 여족의 혈맥이 이어진 겁니다. 누구도 여족에게 복종을 강요한 적은 없어요. 그때 무릎 꿇고 스스로 귀순을 택한 건, 당신 족장이었습니다. 설산을 지켜온 백 년 동안, 당신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었겠지요. 헌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수령의 보호 아래 안정을 누리면서, 남에게 짐을 떠넘기고, 뒤에서는 왕이 되려는 속셈이나 꾸미다니… 수령을 당신 사병쯤으로 여긴 겁니까? 세상에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그 말을 듣자 설장로의 얼굴은 점점 더 음침하게 가라앉았다.“입
꼬막이는 작은 손으로 눈을 한 움큼씩 퍼서, 연기준의 몸 위에 덮어 올렸다.작은 얼굴은 울다가, 다시 찬바람에 말라붙기를 반복했고, 여린 피부는 이미 갈라져 터져 있었다.그는 울부짖듯 외쳤다.“아버지! 아버지 돌아오세요! 콜록… 콜록…!”목소리는 이미 쉰 지 오래였고, 한 번 외칠 때마다 격하게 기침이 터져 나왔으며, 온몸이 떨렸다.그는 겨우 한 살짜리였다.봉한설의 심장이 죄여들었다. 그녀는 달려가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연풍은 이미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자신의 망토를 벗어 꼬막이의 몸에 감싸 주었다.그러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연기준 곁으로 기어갔다.“주군… 소인이 마지막 길을 모시겠습니다!”뒤에 있던 암위들 또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주군을 배웅하겠습니다!”우렁차면서도 비장한 목소리 속에는, 억누르지 못한 울음이 스며 있었다.그 장면 위로, 슬픔이 한 겹 더 내려앉았다.사람들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설장로만은 끝내 믿지 못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눈으로 직접, 눈구덩이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이렇게 죽었다고? 목족의 유일한 혈맥이… 이렇게 사라졌다고?“언제 죽은 겁니까?”설장로가 서인경에게 물었지만, 서인경은 묵묵히 눈을 덮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설장로는 성큼 다가가 서인경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흔들었다.“제가 묻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죽었냐고!”서인경은 초췌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언제 죽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당연히 중요하지요!”설장로의 목소리가 조급하게 떨렸다.“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한 시진 안이라면 몸속의 피는 아직 따뜻합니다. 말하십시오. 언제 죽은 겁니까?”서인경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젯밤 오시에 죽었습니다. 설장로, 실망하셨겠네요.”“아닙니다!”설장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무너져 내리듯 외쳤다.“그럴 리 없습니다! 그는 목족의 마지막 혈맥인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습니까!”서인경이 굳이 더 말하지
그 안에 누군가 살고 있기는 한 걸까?그 시각, 정채의 침실.잠들어 있던 연기준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단숨에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다. 세차게 뛰는 가슴은 한참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았다.그로부터 두어 장 거리 떨어진 다른 침상 위. 달빛에 어렴풋이 드러난 실루엣 하나가 아직도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잠들지 않고 있었다.연기준의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사정없는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당신처럼 평생 전장을 전전한 사람이 갑자기 악몽에 놀라 깨다니요? 전장에서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귀신이 찾아온 겁니까?”연기준은 그
서인경은 기가 차 말문이 막혔다.“네 피로 봉한설을 치료한 건, 네가 스스로 동의한 일이었어. 그 대가로 단 가가 경성에 발붙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고 온갖 편의를 제공했지. 그건 명백한 보상이었어. 엄밀히 말하면 너희는 서로 합의한 거래 관계였던 거지. 네가 봉한설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기준이 다른 방법을 택한 거야. 그때 이미 네가 쓸모 없어졌다고 해도 그는 단 가에 준 것들을 단 한 번도 거둬들이지 않았어. 너희가 스스로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에 단 가가 오늘의 처지에 이른 거지. 그리고 네가 황궁에 들어와
그녀는 늘 냉담한 태도로 어느 후궁과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열여덟 째 공주와는 나이를 잊은 벗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마치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망년지교 같았다.마침 금수 대장공주의 사람이 열여덟 째 공주를 데려간 지 반 시각쯤 되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어화원에서 놀고 있을 터.열다섯 째 황자는 잠시 생각을 굴리더니 소주방에 들러 열여덟 째 공주가 좋아하는 부용떡 몇 개를 챙겼다.“어화원으로 돌아서 가자.”어화원에서는 열여덟 째 공주가 금수 대장공주와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익숙한 그림자가 눈에 들
진방옥은 진가이가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특히 여국에 머물던 시절 자신을 협박하며 내뱉었던 말들을 생각할 때마다,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어릴 적,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주고 싶었던 그 둘째 누나는 이미 기억 속의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 시절, 현대에서 읽었던 수많은 청춘 통증 소설 속에서 귀가 닳도록 보았던 단어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물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달라졌다.그때는 아무 감흥 없이 넘겼던 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뜻이 얼마나 잔인한지 뼛속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그럼에도 진방옥의 마음속에는 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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