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원경릉은 홍엽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큰 짐을 덜어낸 듯한 홀가분한 목소리에 이상하게도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 몰아쳤다.원경릉은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홍엽의 치료에 집중했다.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우문호와 서일이가 매우 걱정됐다.사식의 울음소리가 옆방까지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식이 인생에 그렇게 큰 좌절을 겪은 일이 여태껏 없었고 서일에게 시집온 이후로 매일 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둘은 백년해로를 약속했건만 만약 서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원경릉은 사식이가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상상도 안 갔다.원경릉은 이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이내 생각을 떨쳐버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상처를 계속하여 꿰맸다. 홍엽의 몸에는 꿰매야 할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그중 배에 찔린 상처가 가장 심각해서 단순히 상처를 꿰매는 걸로 될 만한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장이 파손된 것은 아닌지 자세히 검사해 봐야 했다.사식이가 상심에 빠져 있 한 시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홍엽의 상처 치료를 마쳤으나 상황은 별로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심장박동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다.다른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원경릉은 무의식중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못난이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못난이가 난리법석을 치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노해서 날아올라 못난이와 몇 수를 겨루더니 못난이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라 사식이는 아예 못난이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하마터면 못난이의 칼에 다칠 뻔 했다.다행히 안풍친왕비가 달려와 한 손으로 못난이의 검을 빼앗았는데 맨손으로 상대의 검을 빼앗는 초식에 사식이는 간담이 서늘해졌으나 방금 안풍친왕비의 손에서 늑대의 발톱 같은 게 뻗어 나가는 걸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못난이의 검을 빼앗을 수 있었나 보다.’못난이는 검을 빼앗긴 후 홍엽을 보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자, 안풍친왕비
서일이 깨어나길 기다리며“얼른 먹어요!” 원경릉이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털썩 기대 앉아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서일을 보러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못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안 먹어요. 공자를 위해 남겨둘 거예요. 전 아픈 게 두렵지 않아요.”못생긴 얼굴에 또 얼마나 고집이 센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여기 더 있으니까.”못난이는 진통제를 손에 쥐고 못 들은척 하면서 홍엽 곁을 지키고 있었다.원경릉이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일을 보러 나갔다.사식이가 서일 곁에서 지키는데 서일은 마치 흙 인형처럼 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서일을 알고 지낸 지금까지 늘 펄펄 날뛰는 모습만 봤는데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니 원경릉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원 언니, 왕야께서 그러시는데 그이의 의지에 달렸대요!” 사식이의 목소리가 사식이 것 같지 않게 울리고 떨렸다. “깨어날 수 있을까요?”“분명 깨어날거야. 서일이 널 얼마나 아끼는데?” 원경릉이 살며시 사식이를 안아주자 사식이가 원경릉의 품에 안겨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사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식이 착하지,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강해지는 거야. 서일에게 끊임없이 말 걸어주고 서일이 깨어날 수 있도록 격려하자. 서일에게 넌 이 세상에 남은 가장 큰 미련인걸, 아마 서일은 네가 한 말을 들을지도 몰라.”사식이가 천천히 원경릉을 놔주면서 심하게 부은 눈에 엄청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도 하고 이름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요.”“계속 얘기 해야지, 계속 부르고.” 원경릉이 청진기를 대고 서일의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안풍친왕이 어떤 묘약을 썼는지 금방 여기로 보내졌을 때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확연히 좋아졌다.사식이가 침대에 엎드려 서일의 귓가에 대고 말을 끊임없이 하는데 서일은 당연하게도 반응이 없었다. 이때 사식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사식이의 임신사식이가 이 말을 듣고 창백해진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아뇨, 서일이랑 상의해서 다 평안해진 뒤에 아이 낳는 거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그럼, 둘은 피임하는 거야?”“제가 피임약을 먹고 있어요.”원경릉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생리대를 꺼내서 사식이를 부축해 작은 사랑채로 데려갔다.사식이가 병풍 뒤에서 정리하고 와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확실히 달거리네요.”사식이가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갈아입고 아랫배 통증이 더욱 심해진 것을 느끼고 서둘러 말했다.“일단 서일한테 가서 거기서 쉬고 있을게요.”원경릉이 부축해서 나가는 와중에도 아파하는 모습에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서일 방에 돌아와서 약상자를 열어 뒤져보는데 과연 진짜로 임신 테스트기가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혹여라도 정말 임신했을 까봐 걱정이 되었다.원경릉이 임신 테스트기를 사식이에게 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쳐 주었다.사식이가 요강을 들고 병풍 뒤로 들어가 잠시 후 임신 테스트기를 가지고 나와 원경릉 말 대로 평평하게 놓고 잠시 있자 빨간 두 줄을 볼 수 있었다.“사식아, 너 임신했어.”사식이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전 계속 피임약을 먹었는데?”“너 나한상에 누워서 움직이지 마.” 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사식이가 눈가에는 또 눈물이 차오르면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정말 안돼요. 이럴 때 임신하면 안돼요. 서일이 깨어날 때 까지 제가 곁을 지켜야 해요.”“사식아 내 말 들어!” 원경릉이 사람을 오라고 해서 사식이를 나한상에 눕는 걸 도와주었다. “네가 여기서 서일을 지켜도 똑같아. 그럼, 나한상을 옮겨서 둘이 같이 누워 있어. 내 말 좀 들어. 여기에 너랑 서일의 아이가 있다고. 경솔하게 굴어서는 안 돼. 너 방금 못난이와 싸우고 지금 피를 봤잖아. 분명 아이한테 영향이 갈 거란 말이야.”사식이가 마음이 어지러워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약 상자와 머리의 빛약상자를 다시 열어 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원경릉은 당황스러운 게 이 약상자라면 생각대로 바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약상자인데 어째서 이번엔 효과가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너 중요한 순간에 꼭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곤란해. 사식이라고, 사식이란 말이야. 사식이 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절대 안 돼.” 원경릉은 거의 우듯이 애원했다.원경릉이 반복해 몇 번이고 애원했으나 약상자는 미동조차 안 했고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 약상자 안의 약품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원경릉은 정확한 까닭을 몰라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만두를 찾아갔다. 만두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엄숙하게 물었다.“우리 만두, 엄마 좀 봐, 엄마 머리에 아직 빛나는 거 있어?”만두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있어요!”“있다고?” 그거 좀 이상한데, 왜 약 상자는 원경릉의 의지대로 변하지 않지?“응, 있어요, 여기요!” 만두가 손가락으로 원경릉의 오른쪽 머리를 가리키며 가리키는 김에 꾹 눌렀다.원경릉이 만두에게 뽀뽀해주며 말했다.“그래, 좋아, 아참, 방금 엄마가 너에게 물어봤던 거 아빠에게 말하면 안 돼.”만두가 두 손을 소매속에 넣고 작은 얼굴을 치켜들더니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말 안 해요. 아빠랑 할 말도 없고.”“그러면 못써, 아빠가 그러셨어. 큰 위기가 해결되면 너에게 사과 하시겠다고.” 원경릉은 우문호가 만두에게 무섭게 군 일을 기억하고 있다. 만두는 건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이 아주 여린 아이였다.만두가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나가며 말했다. “좋으실 대로!”엄마가 그날 만두에게 대신 변명해서 화가 나지 않았지만, 아빠가 자신에게 무섭게 굴 때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화가 났다.만두가 문 앞에 와서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잠시 쭈뼛쭈뼛하다 말했다. “엄마, 엄마 머리에 빛나는 거 방금 잠시 끊어졌어요.”“끊어졌어? 지금은 있니?” 원경릉이 또 가슴이 철렁했다.“지금은
이기고 돌아온 우문호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자니 그동안의 모든 비바람과 고난이 파노라마처럼 싹 지나갔다.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후 다시 옷을 벗고 상처를 살펴봤다. 옷을 벗자 원경릉은 또 눈시울을 붉혔다. 우문호의 몸에서 일고여덟 군데 상처가 나 있는데 아주 심각한 상처는 아니지만 군데군데 뼈가 보이는 곳도 있었다.“괜찮아, 전부 다 잘 됐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숙인 얼굴에 키스했다.“응!” 원경릉이 눈물을 삼켰다.“서일이랑 홍엽은 어때?” “안풍친왕께서 서일을 한 번 쓱 보시더니 깨어날지는 서일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고 홍엽 상황은 좀 심각하긴 한데 심장박동이랑 맥박은 그래도 그나마 안정적이야.”“그건 못난이가 홍엽에게 약을 먹였고, 홍엽 본인도 내공의 고수라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 내력을 남겨두어 심맥을 보호했을 것이야.”그러면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서일이었다. 원경릉이 한숨을 쉬자 우문호가 말했다.“서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상을 치료하는데 가장 뛰어난 건 역시 안풍친왕이시니까 서일이가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치료만 잘 받으면 결국 방법이 있을 거야.”“정말?” 원경릉이 순간 기뻐서 외쳤다. “하지만 안풍친왕께서 모든 것이 서일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는데.”“약 쓰셨어?”“약은 안 쓰시고 내력을 전해 주셨다고 하셨어.”“그럼 됐네, 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우문호도 안심했다.그런 말을 듣고 원경릉은 우문호가 비록 평소에 서일을 많이 혼내긴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일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우문호가 지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걸 보면 틀림없이 진짜였다. 원경릉의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우문호의 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사식이가 임신 했어.”우문호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말했다. “이 자식 복도 많지. 큰 전쟁이 막 끝났는데 또 바로 아빠가 된단 말이지.”“서일이 어서
무용담과 서일우문호는 만두를 안고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정자로 나오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흐물흐물 춤을 췄다.우문호가 만두를 정자에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만두의 작은 손을 잡고서 만두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아빠가 전에 너한테 너무 지나치게 얘기했지? 아빠가 미안해. 이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만두가 부끄러워서 어색해하며 덧니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었다. “그래요, 용서할게요!”우문호가 만두를 확 끌어안으며 외쳤다.“우리 아들 착하지!”만두는 우문호가 이렇게 안아주는 걸 아주 즐거워하며 조용히 아버지의 품에 쭉 기대 있었다.부자는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상당히 따스했다.원경릉이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사실 만두는 또래보다 철이 많이 들어서 가끔은 다 큰 어른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었다. 물론 웃고 떠들 때도 있지만 만두는 다른 두 동생에 비해 감성이 확실히 더 예민한 편이었다.그리고 만두는 동생들을 정말 많이 아꼈다.우문호와 만두의 독대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만두를 다시 방으로 데려다주려고 했지만, 만두가 두어 걸음 가다 말고 멈추자 우문호가 뒤를 돌아서 물었다.“응? 왜 안가? 안 졸려?”만두가 우문호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아빠 또 아까처럼 절 안아서 돌아가 주시면 안 돼요?”우문호가 당황하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만두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좋지, 아빠가 안아주마.”만두는 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빠의 어깨 뒤로 얼굴을 감추고 돌아가는 길을 실컷 만끽했다.방으로 돌아와 우문호도 자지 않고 전황을 세세하게 빠짐없이 원경릉에게 설명해주었다. 원경릉이 들으면서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연신 우문호의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았다. 전에 기다릴 때는 위험한 방면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실 이렇게 위험했다는 것을 알고 우문호의 얘기를 듣는 순간에도 그때 급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진짜 자기가
서일이 아빠?어렵사리 서일에게 사식이가 임신한 사실을 설명하자 서일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계속 사식이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식이는 피임약을 먹어서 임신할 리가 없는데.’화가 나서 원씨 가문의 노마님도 서일이 다쳤다는 걸 무시하고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물었다.“이 바보 멍청이야, 피임약이 그렇게 완벽해?”“할머니!” 사식이는 마음이 아파서 급히 남편을 감싸며 물었다.“왜 때리세요? 안 그래도 머리가 나쁜데 더 때려서 머저리가 되면 누가 배상해 줄 건데요?”다들 깔깔 웃었다.원씨 가문의 노마님은 바로 항복했다. “힘들게 딸 키워서 시집보낸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편 편만 들고, 이래서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말했다.“그렇게 말씀 하시면 안 되죠. 만약 서일과 사식이라 그러면 전 사식이 같은 딸을 원하지, 서일 같은 아들은 필요 없어요. 바보잖아요.”서일이 그제야 태자를 봤다는 듯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전하, 독고는……”“독고는 완전히 패했어.”서일이 감격에 겨워서 외쳤다.“정말입니까? 너무 잘됐네요!”“서일!” 원경릉이 주의를 주었다.“지금 네가 아빠가 되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서일이 사식이를 보고 말했다. “나도 알아 다들 내 기분을 맞춰주는 거지.”“네 기분을 왜 맞춰줘? 진짜라니까, 사식이가 네 아이를 가졌다고! 네가 아빠가 될 거란 말이야.” 원용의가 매부에게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한마디 했다.“언니!” 사식이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됐어, 내가 직접 얘기할게.”서일이 그제서야 표정을 가다듬고 사식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입술이 부르르 떨며 물었다.“정말이야?”사식이가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빨개져서 답했다.“정말이야, 네 아이를 가졌어.”“아!” 서일은 이번에 정말 감격해서 앉아서 사식이를 안으려고 애쓰며,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지?”이 둔탱이 같은 머리로는 당분간 이해하기는 글러
위왕 홍엽 탕양 북막의 군대가 국경에 주둔한 일로 호 대장군은 이미 군대를 이끌고 변경을 지키고 있으나 전쟁이 일촉즉발 상태라 대군도 일찌감치 출발해야 했다.위왕이 출정 전에 정화를 찾아갔다.위왕이 정화에게 물었다.“내가 이참에 확 변해서 돌아오면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어?”정화는 맨손으로 차를 집어 위왕 앞에 올려주며 말했다.“차로 술을 대신해 대장군의 개선을 기원합니다!”위왕은 차를 받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있냐고?정화가 눈을 내리 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전 이 생에 다시 시집갈 수 없어요.”위왕이 정화를 보고 말했다.“그럼 나도 이생은 다시 아내를 맞지 않겠어. 라라(羅羅)야, 넌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어. 너한테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너의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지만 이생에서 가장 영광이었던 건 널 왕비로 맞았던 거고, 이생에서 가장 불행한 건 내가 네 손을 놓은 거야.”정화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부가 아니어도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죠.”위왕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어떤 형태로든 이번 생은 난 당신 곁을 지킬 거야. 당신이 싫어해도 증오해도 좋아 날 쫓아내지만 마,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 줘.”위왕은 말을 마치고 갑옷을 여미고 떠났다.정화는 위왕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정화는 아직 위왕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화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위왕을 내려놓지 못하는 만큼 위왕이 저지른 짓을 잊지 못했던 것이었다.사람은 정말 모순덩어리다.모든 시비가 가라앉고 명원제가 직접 태상황을 조정으로 돌아오시도록 맞아들이고 안풍친왕 부부는 평남왕 세자를 데리고 벌써 떠났다. 이는 태상황이 허락한 것으로 명원제와 우문호에게 모두 묻지 않았지만 세자는 평남왕을 이용했고 안풍친왕 부부가 가장 아끼는 것이 평남왕으로 평남왕을 다치게 한 자를 쉽사리 용서할 리가 절대 없기 때문이었다.홍엽의 상처도 서서히 나아져 깨어났고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