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와 음모가 득실대는 궁중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복수! 쌍둥이 동생이 순결을 잃고 수모를 못 참아 자결한 뒤, 봉구안은 집안의 지시로 갑옷을 벗고 동생 대신 이 나라의 황후가 되었다. 폭군에게는 오래전 죽은 첫사랑이 있었고, 후궁 비빈들은 첫사랑의 대체품에 지나지 않았다. 첫사랑과 닮은 곳 하나 없는 봉구안이었기에 모두 그녀가 폭군에게 처참히 버려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혼인한 지 이듬해, 황제가 황후와 이혼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황제가 황후를 폐하는 게 아니라, 황후가 황제에게 이혼장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폭군은 황후의 옷자락을 꽉 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 “갈 거면 짐의 시체를 밟고 가라!” 뭇 비빈들도 처량하게 울며 황후에게 매달렸다. “마마,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가실 거면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view more서태상은 열정적이고 호방한 인물이었다.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손수 마구간을 오가며 말들에게 여물을 먹였다.소무는 사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불타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방심하지 않았다.서태상이 마구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그는 몰래 지켜보며, 사료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이튿날, 섣달 그믐날.봉구안과 소욱은 본래 이날 아침에 떠날 예정이었다.하지만 서태상의 간청과 함께, 제석 당일 밤엔 성문이 닫히는 탓에 성 밖을 나서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제석이 되자, 서태상의 집은 금세 활기를 띠었다.그의 동생 서태고가 앞장을 서며 문을 활짝 열었다.“형님! 형수님과 조카를 모셔왔습니다!”서태고는 갓 스무 살 안팎 나이로, 수염도 없고 흰 옷을 곱게 입은 탓에 아직 소년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봉구안은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서태상과 서태고를 부자로 착각할 만하다고 여겼다.두 사람의 겉모습이 그만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서태상의 부인은 본래 친정에서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으나, 제석이 가까워지자 혹시 모를 유적의 소란에 대비해 서태고와 여동생 서소현이 직접 나서 데려온 것이다.그들이 집에 들어오자, 마당이 순식간에 북적이고 웃음소리가 퍼졌다.서태상은 부인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갔다.“부인, 길이 험했을 텐데, 춥진 않았소?”서 부인은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으로 그를 밀어내며 투덜거렸다.“말로는 그럴듯하게 하시더니, 정작 직접 데리러 오시진 않더군요.”서 부인은 부드러운 기질보다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말을 마친 그녀는 집에 낯선 손님이 있다는 걸 알아채자, 이내 환한 웃음으로 돌아섰다.“근데 이분들은 누구시죠?”서씨 집안의 사람들은 누구도 봉구안과 소욱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서태상은 얼른 양쪽을 소개하려 했지만, 잠시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제후께서 미복으로 행차 중인데 함부로 신분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이럴 때 어설프게 가명을 지으려다
남제 북부, 섣달 말.눈발은 날로 거세어지고, 백성들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였다.많은 여관들이 문을 닫는 탓에, 봉구안은 교우인 서태상의 집에 몸을 의탁하였다.서태상은 넓은 어깨에 짙은 턱수염을 기르고, 거뭇한 얼굴에 강호기질이 가득한 인물이었다.그는 표국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여러 나라가 남제에 패하고 상로를 개방한 뒤로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서태상은 봉구안의 신분을 알고 있었으나, 서로는 강호의 친구로 통했고, 지금은 제후가 사복 차림으로 나선 길이라 외부의 눈에 띄는 것을 꺼려 존칭도 쓰지 않았다.봉구안이 소욱을 소개했다.“서태상은 10대부터 표객 일을 하셨습니다. 강림과도 자주 거래하며 강가의 물류를 도맡아 처리하지요.”서태상은 무심결에 소욱을 향해 예를 갖추려 했고, 소욱은 먼저 강호식 예를 올렸다.“반갑소.”밖에서는 황제란 이름을 내려두고 사람으로서 예를 다해야 했다.서태상은 그 예를 감히 받을 수 없어 살짝 몸을 피하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문 앞에서 서성이지 마시고,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그는 호방한 성정답게 이미 좋은 술과 음식을 준비해놓고 있었다.소욱은 봉구안의 말로 서태상이 자신과 또래라 들었을 때, 눈을 크게 떴다.그는 속으로 그가 최소한 마흔은 되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봉구안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서태상의 외모는 젊지 않아 보였고, 소욱의 추측은 꽤 빗나간 셈이었다.그러나 그도 할 말은 있었다.남제의 사내들은 대부분 스무 살 즈음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고, 서태상은 그보다 더 이른 나이에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표객으로서의 체통, 부하에 대한 위엄, 타인에 대한 기세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그녀가 처음 서태상을 만났을 때도 그의 나이가 실제보다 훨씬 들어 보였다.사실 턱수염을 기르면 원래 더 늙어 보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또한 서태상은 턱수염에 이어 구렛나루까지 길렀기에 더욱 나이가 들어 보였다.그는 하필 턱수염 기르는 걸 즐기며, 밖에서 바람과 볕을 맞고 다녔으
남방의 한 외곽 작은 마을.서왕은 완부옥과 함께 조용한 객잔에 머물고 있었다.완부옥은 벌써 태중의 아이가 다섯 달째 접어들어, 불러오는 배와 함께 얼굴도 둥글게 변해가고 있었다.그녀는 예전보다 통통해진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한때 황궁의 총애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을 뺐던 시절이 생각나, 지금의 몸은 그녀 스스로 견디기 힘든 변형이었다.이런 신체의 변화는 그녀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종종 예고 없이 화를 터뜨리는 원인이 되었다.서왕은 책에서 읽은 대로, 임신한 여인의 감정은 갈대처럼 흔들리기 쉽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화를 내도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받아들이며, 한 마디 원망도 하지 않았다.완부옥은 어느 날 불쑥 말했다.“제가 너무 뚱뚱해졌어요… 이런 몸이라면, 그냥 이 아이를 없애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그녀의 말이 거칠어질 때마다, 서왕은 늘 한결같은 말로 답했다.“어디가 뚱뚱하단 말이냐. 이건 풍만한 거야. 다른 이들은 부러워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그 말은 가끔 그녀를 달래는 데 통했으나, 그녀는 자주 그에게 다시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이죠?”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마음 놓을 수 있도록 눈빛 하나까지 부드럽게 했다.하지만 완부옥은 남방에 그저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온 진짜 이유는 남강의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고, 자신의 사문이 연루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남경에 도착한 후, 그녀는 사람을 남강으로 보내며 신중하게 모든 걸 준비했다.약쟁이의 동태를 살피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면서도 사문에 위치를 알렸다.심지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간단한 남강어까지 가르쳐가며 세심하게 대비책을 세웠다.서왕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외모에 독한 기질을 가진 여인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녀는 상황을 장악할 줄 알았고, 전략적 판단도 명확한 사람이었다.“
상성, 객잔.무애산 제자 소무의 말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것이었다.그러나 '믿을 수 없다' 하기엔 그의 사부가 예지에 가까운 통찰을 지닌 자였고, '믿는다' 하기엔 그 경고가 너무도 막연하였다.소욱은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이미 위험이 예견된 이상, 봉구안과 아이들을 그 위험 속에 끌어들일 순 없었다.하지만 봉구안 또한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다.그녀는 소욱의 안배에 단호히 반박하며 곧바로 말했다."아이들은 황성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폐하께서 변방으로 향하신다면… 신첩 또한 반드시 함께하겠습니다.”소욱의 미간에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이 일은 장난이 아니야.""알고 있습니다."봉구안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러섬 없는 의지를 드러냈다.그녀는 단 한 번도 위험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칼산화해라 한들, 그는 반드시 함께할 것이었다.소욱은 그녀의 성정을 잘 알았다.그녀를 억지로 떼어낼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차라리 순순히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좋다. 그럼… 녀석들은 먼저 돌려보내자."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 어른의 일에 있어 무거운 짐이 되기 마련이었다.봉구안이 조심스레 제안했다."폐하, 이곳은 황성과의 거리가 멀어 도중에 변고가 생길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먼저 상성의 맹가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소욱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황성은 비록 겹겹이 지켜진다 하나, 세작들의 손길까지 완전히 차단할 순 없었다.만일 황궁 내부에까지 손을 뻗어, 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와 구안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손쓸 수 없다.차라리 맹가로 비밀리에 보내는 편이 나았다.맹 부인은 지혜로우며, 의술 또한 뛰어나니, 분명 아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다만 그는 호위 중 일부를 떼어내 아이들을 무사히 호송할 준비도 함께 해야 했다.그날 밤, 눈은 조용히 내렸다.하룻밤 새 땅 위엔 두텁게 쌓였다.다음 날 아침.소욱은 창문을 열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새하얀 세상이 펼쳐지고,
객잔 안, 상성 인근.소욱은 무애산 출신이었다.무애산은 속세와 동떨어진 곳으로, 그 제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하산하지 않았다.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바로 그의 사제 중 한 명, 이름은 소무였다.봉구안도 예전에 무애산에 간 적이 있어, 그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소무는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타고난 순진함이 있어 마치 옆집 동생처럼 사람을 편하게 만들었다.누구라도 쉽게 마음을 열게 되는, 그런 아이였다.그는 검을 등에 메고 환한 얼굴로 웃었다.“사형! 역시 여기 계셨군요!”무애산은 위계보다는 정에 가까웠고, 소무에게 있어 ‘사형’은 소욱이었다.설령 그가 제왕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가장 아끼고 믿는 형이었다.소욱은 대답 대신 소무를 조용히 방 안으로 데려가, 문을 닫고 물었다.“말해 봐. 여기 무슨 일로 왔느냐.”소무는 그가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는 듯 당연한 얼굴이었다.“사형, 사실은 스승님 명을 받들어서…”그런데 그의 시선이 두 아이에게 쏠렸다.사형의 아이들이란 말인가?정말 귀여웠다.소욱이 다시 물었다. “명을 받들어, 뭘 하라고?”소무는 정신을 차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입꼬리를 올리며 순박하게 말했다.“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사형께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 하셨어요.”“그래서 저더러 하산하여 사형을 보호하라 하셨죠.”“저는 이틀 전부터 이 여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구요!”소욱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그의 스승. 무애산의 노선인.신기묘산한 그 노인의 말이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그렇다면, 자신에게 어떤 재앙이 닥쳐온다는 말인가?그러나 소무도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스승님께 여쭤봤는데, 안 알려주시더라구요. 이게 바로… ‘천기불가설’ 아니겠습니까! 아, 스승님께서 한 말씀 더 하셨습니다! 이번 재앙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요!”봉구안의 얼굴엔 깊은 근심이 어렸다.무애산의 그 노인은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한 자였다.과거 소욱이 북연에서 납치되어 생사도 알 수
상성.소욱은 봉구안의 편지를 몰래 훔쳐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정말 보고 싶었다.그래서 결국, 두 아이가 그의 ‘도구’가 되었다.봉구안이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탁자 위에는 편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그 중 몇 개는 이미 뜯어져 있었다.소준연은 침상 머리맡에 앉아 손에 한 장의 편지를 들고 있었고, 소준열은 침상 끝에 앉아 편지 한 통을 입에 물고 쩝쩝거리며… 마치 먹는 중이었다.그 사이에서 소욱은 아주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었다.“너희 둘, 만지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말을 안 듣는구나.”그는 무척 무고한 얼굴로 아이들을 나무랐고, 편지를 한 장씩 집어들며 다시 한 번 눈길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양.봉구안은 그 어수선한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아이들을 어떻게 돌보신 겁니까.”그녀는 단호히 나무랐고, 소욱은 돌아서며 서운한 눈빛을 보였다.“한 번도 내 편지를 이리 보관해준 적 없지 않느냐.”그의 손에 들린 편지는 단회욱이 봉구안에게 보냈던 연애편지였다.봉구안은 소욱의 시선을 마주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그녀는 단회욱과의 일을 숨긴 적이 없었다.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말 대신, 바로 행동으로 답했다.먼저 두 아들의 자세를 고쳐 세워 벽을 바라보게 했다.그리고는 한 손으로 소욱의 턱을 들어올려 그의 입술에 힘껏 격렬한 입맞춤을 했다.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설령 폐하의 몫이 빠졌겠습니까? 앞으로는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소욱은 웃으며 그녀의 목을 감싸 안아 입맞춤을 되돌려주었다.그의 손이 등에 닿는 순간, 봉구안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를 살짝 밀어냈다.“일단, 편지부터 정리하세요.”그녀는 그의 속내를 이미 알고 있었다.이 편지들이 아이들의 손을 빌려 나온 것이며, 결국 소욱이 꺼내게 만든 것이라는 것도.그러니 정리는 당연히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서랍 속 편지들은 대부분 강호의 지인들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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