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수호 말이 맞아요.”고혜란도 옆애서 거들었다.이태웅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신도 저 자식 편을 드는 거야?”“편을 드는 게 아니라, 우리 딸을 도우려는 거예요. 애교 상태는 많이 안 좋아요. 비록 병마와 싸우려고 노력하지만, 긍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의기소침해 있어요.”“애교도 이미 이 병에 대해 알아본 것 같아요. 완치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무의식적으로 의지를 잃은 모양이에요.”“우리가 애교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수호한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어요. 애교가 정수호 행복을 위해 자기 행복을 포기한 것만 봐도, 수호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고혜란은 모든 걸 꿰뚫어 본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럽기 매한가지였다.딸이 아픈데, 어머니가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니까.누가 이 고통을 알아줄 수 있을까?하지만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고혜란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태웅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지금 이 상태는 이미 가장 좋은 결과다. 나는 이곳에 더 머물면 이태웅이 화날까 봐 중환자실 쪽으로 걸어갔다.중환자실 유리창 앞에서 온몸에 기계를 꽂은 누나를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그토록 다정하고 착하고, 아름답던 누나가 지금 이런 모습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난소암 진단을 받은 뒤, 애교 누나가 어떻게 혼자 버텨왔을지, 나와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아무도 모른다.내가 평생 가장 미안한 사람은 애교 누나다.나는 최선을 다해 누나에게 그걸 보상해 줄 수밖에 없다....일반 병실로 옮겨진 애교 누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누나, 좀 어때요?”내가 걱정스레 물었다.나를 본 애교 누나의 눈은 불안감에 흔들렸다.“수호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얼른 가요. 돌아가요...”애교 누나는 힘껏 나를 밀쳤다.나는 누나의 손을 꼭 잡았다.“나 다 알았어요. 안 가요. 누나 혼자 묵묵히 이 모든
나는 어떻게 해야 애교 누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지 생각했다.이미 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다.내가 해야 할 일은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게 아니라 애교 누나를 안심시키는 것이다.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회복하는 데 좋으니까.나는 애교 누나한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됐어요. 이제 애교 누나 부모님 뵈러 가요.”말을 마친 나는 앞장서서 이태웅과 고혜란 쪽으로 걸어갔다.형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수호 씨, 왜 저러지?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남주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 충격에 저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그때 윤지은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우리 모두 수호 씨를 오해했어요. 수호 씨는 충격에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애교 씨한테 안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남주 누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이에 윤지은이 대답했다.“나도 수호 씨도 모두 의사예요. 환자가 불치병을 앓을 때 가장 두려운 건 의기소침해하는 거예요. 완강한 의지를 유지해야 병마를 이겨낼 수 있거든요.”“그리고 그런 완강한 의지는 가끔 그 어떠한 약물보다도 효과 있어요.”“생각해 봐요. 수호 씨가 풀이 죽어서 애교 씨를 보러 가면, 애교 씨도 분명 그 감정에 영향받을 거 아니에요. 그건 병세에 아주 불리해요.”한참 듣고 있던 형수가 말했다.“그러니까 수호 씨는 슬픔을 숨기고 애교한테 기분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는 거예요?”윤지은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이 면에서 나와 윤지은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했다.나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 게 맞다.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애교 상태는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에 영향받으면 안 돼요.”“하, 수호도 참 고생이네.”남주 누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는 이태웅과 고혜란 앞에 다가갔다.“아버님, 어머님.”내 인사에도 이태웅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돌아가. 보고 싶지 않으니까.”이태웅은
윤지은은 얼른 나를 부축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 윤지은 쪽으로 기울었다.“우선 앉아서 좀 진정해.”윤지은은 나를 부축해 바닥에 앉혔다. 말하려고 입을 열었더니, 내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애교 누나는 오래전부터 아팠을지도 몰라요. 나한테 짐이 되기 싫어서 헤어졌을 거예요. 난 그것도 모르고...”“나 너무 쓰레기 같죠?”윤지은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아니야. 몰랐잖아. 너도 몰랐잖아.”“왜 아니에요? 애교 누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인데. 아픈 것도 모르고. 이게 쓰레기가 아니면 뭔데요?”내 마음은 칼에 베인 듯 아팠다.나는 난생처음으로 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대학을 졸업한 뒤로부터 나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눈물 한번 흘린 적 없다.하지만 이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윤지은은 얼른 나를 꼭 끌어안았다.“이러지 마...”“애교 누나 보러 갈래요. 지금 당장 갈래요.”나는 애교 누나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하게 할 수 없었다.윤지은은 얼른 차를 몰아 나를 강북병원으로 데려왔다.중환자실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웠다. 마치 돌덩이가 나를 바다 끝으로 잡아끄는 듯했다.나는 다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가는 내내 윤지은이 나를 부축했다.내가 중환자실 문 앞에 나타난 순간 형수와 남주 누나는 모두 놀란 눈치였다.아마도 내가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흐느끼며 물었다.“애교 누나는 어때요?”형수와 남주 누나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이태웅 부부를 한번 바라봤다.형수는 나를 구석진 곳으로 끌어갔다.“수호 씨... 나, 나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애교는 내가 말하길 원치 않아요.”“형수, 알려줘요.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숨겨요? 난 단지 애교 누나 상태를 알고 싶어요.”내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형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남주야, 네가 말해.”남주 누나 역시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
이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눈은 불을 내뿜고 있었다.그는 고혜란과 함께 애교 누나를 부축해 데려가려고 했다.애교 누나는 무슨 일인지 온몸이 축 처져 힘이 하나도 없었다.직감이 말해주건대, 애교 누나는 뭔가 이상했다.나는 얼른 형수를 바라봤다.“형수, 애교 누나 왜 저래요?”“수호 씨, 그만 물어봐요.”형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형수의 반응을 보니 더 이상했다.“형수,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죠?”“됐어요. 하던 일 계속해요. 난 이만 갈게요.”형수는 끝까지 아무 말 하지 않으려 했다.애교 누나가 떠나자 형수와 남주 누나도 떠나버렸다.심지어 두 사람 모두 유난히 초조해 보였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미처 반응하지 못해 현장 분위기는 이상했다.우리 부모님과 윤지은의 부모님은 모두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해요.”윤지은이 말했다.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왠지 이상했다.‘약혼식 끝나고 애교 누나 보러 가봐야겠어.’얼마 전까지 나는 애교 누나와 더 이상 공통 화제가 없어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왠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듯했다.특히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한 진윤재의 표정을 보니 나는 더 불안했다.약혼식은 드디어 끝났다.원래 잔뜩 들떴었는데, 중도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후반부 내내 나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애교 씨 걱정하는 거지?”윤지은이 다가와 물었다.나는 윤지은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같이 가줄게.”“고마워요.”나는 윤지은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말했다.우리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애교 누나를 보러 출발했다.하지만 내가 형수에게 전화해 애교 누나가 있는 병원을 물었더니, 형수한테서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수호 씨, 오지 마요. 애교가 수호 씨 보기 싫어해요.]“왜요?”형수의 말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형수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이유 없어
나는 왠지 조금 김장했다.이건 어쩔 수 없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인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하게 차려입은 윤지은이 강한나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나타났다.윤지은이 내 앞에 선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예뻐!’‘너무 예뻐!’‘천사가 따로 없잖아!’경국지색, 절세가인, 천하일색이라는 단어로도 윤지은의 아름다움을 형용할 수 없었다. 물고기와 기러기도 숨고, 꽃과 달도 부끄러워하게 하는 외모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나는 감격에 겨워 다가가 윤지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윤지은은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천천히 올려놓았다.윤지은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온기를 느끼자, 나는 비로소 이게 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꿈이 아니라 진짜였어!’나는 곧 윤지은이와 결혼하게 되고, 윤지은은 곧 내 아내가 된다.나는 윤지은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사회자의 진행 속에서 우리는 빠르게 약혼식을 마쳤다.무대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나와 윤지은이 하객들한테 술을 권할 시간이었다.“정수호, 축하해.”진윤재는 술잔을 들고 나에게 말했다.이 자식이 이런 호의를 베풀 거라고 나는 믿지 않았다. 때문에 아까부터 민우더러 계속 이 자식들을 지켜보라고 한 거다.하지만 지금까지 선 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마워요.”나는 정중하게 말했다.그 말에 진윤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별말씀을!”‘이상해!’‘이 자식이 이렇게 얌전하다고? 너무 이상해.’하지만 진윤재 일행이 아직 선 넘는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좋은 날 손님을 내쫓을 수도 없었다.나는 네 사람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했다.그렇게 얼마 뒤, 나는 형수네 테이블에 도착했다.이 테이블에는 모두 내 지인들이었다. 애교 누나, 남주 누나, 형수, 유미 사모님 그리고 윤미화까지...나는 모두에게 일일이 술을 권했다.그때 애교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난 요즘 몸이 안 좋아 술 못 마셔요.
“수호 씨, 축하해요.”“수호야, 축하해.”그때, 형수, 남주 누나, 애교 누나가 도착했다.나는 민우와 현성더러 세 사람을 대신 맞이해달라고 부탁했다....“애교야, 몸은 좀 어때? 괜찮겠어?”형수와 애교 누나, 남주 누나는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형수는 내내 애교 누나의 건강을 걱정했다.애교 누나는 최근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내 약혼식이라 무조건 오려고 했다.애교 누나는 형수에게 화장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나는 처음에 누나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애교 누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버틸만해.”“이 지경이면서 왜 기어코 온 거야? 이런다고 얻는 게 뭔데?”남주 누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대답했다.“그래도 수호 씨한테 큰 경사인데, 오늘 안 오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퉤퉤퉤, 무슨 그렇게 재수 없는 말을 해? 넌 백 살까지 살 거야.”남주 누나가 말했다.애교 누나는 싱긋 미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나는 자기 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병에 걸린 이상,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심지어 가끔은 잠자기조차 두려워진다. 한번 잠들었다가 다음날 깨어나지 못할까 봐.이번 생에 나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비록 아쉬웠지만, 내가 내 행복을 찾은 것에 애교 누나는 기뻐했다....내가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 때, 유미 사모님도 도착했다.윤미화도 사모님과 함께 왔다.“수호, 축하해.”윤미화는 나를 축복해 주었다.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두 사람을 형수 옆에 배치했다.그 뒤로도 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정현, 고수연, 고아연 등등.나는 너무 바쁜 나머지 더 이상 하객들을 맞이하지 못했다.그때 사회자가 갑자기 나더러 잠시 뒤 할 말을 준비하라고 했다.순간 김장감이 밀려와 나는 얼른 구석에서 연습했다.그때, 민우가 갑자기 달려왔다.“수호야, 연시우가 웬 남자 3명과 함께 왔어. 아마 네가 말했던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