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바로 화내지 않았다.윤지은의 손에 지금 내 마사지룸 열쇠가 있기에 이대로 윤지은을 몰아붙였다간 당장 달려 나가 헛소리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됐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요?”윤지은의 미소는 단번에 사라지더니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역시나 아까 그 말이에요. 소여정한테서 떨어져요. 앞으로 만나지도 마요.”“그럴게요. 당연히 할 수 있죠. 하지만 그 전에 윤지은 씨도 할 수 있어야 해요.”윤지은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소여정이 또 찾아오면 아예 무시해요.”“나도 그럴 생각이에요. 하지만 내 일은 내가 결정하면 안 될까요? 소여정 씨 신분은 두말할 필요도 없잖아요. 그 여자나 윤지은 씨나 날 마구 휘두르면 나라고 뭐 어쩌겠어요?”“두 사람은 권력을 쥔 사람이고, 난 지극히 평범한 사림이에요. 내가 오히려 빌고 싶네요. 제발 좀 나 가만 내버려두면 안 돼요?”이 여자들이 나를 상대로 장난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하지만 윤지은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정 안 되면 여기 그만두면 안 돼요?”나는 너무 화가 나 헛웃음이 나왔다.“그만두라고요? 일 그만두면 손가락만 빨라고요? 아니면 윤지은 씨가 나 데리고 살아줄래요?”유지은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내가 왜 그쪽을 데리고 살아야 해요?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그러니까요. 그쪽이 뭔데 나더러 일 그만두라고 하냐고요? 나는 일 잘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자꾸만 찾아와서 나 귀찮게 하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하나같이 다 찾아와서 나 괴롭히기나 하고, 진짜 다들 너무 한 거 아니에요?”나는 한꺼번에 마음속에 삭였던 분노를 모두 분출했다.하지만 윤지은은 여전히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일 그만두라고 하는 게 다 당신을 위해서라는 걸 왜 몰라요?”“참 고맙네요.”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화가 나서.그러자 윤지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태도 조심해요!”나는 너무 화나고 어이없어 터져버릴 것만
나는 윤지은의 태도에 자극 받아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제넘게 덤벼들었다.“윤지은 씨 정말 이상한 거 알아요? 나를 그렇게 무시하면서 왜 계속 나랑 몸은 섞어요? 나를 깎아내리는 거예요? 아니면 본인을 깎아내리는 거예요?”“입 다물어요. 말했죠, 그 일은 다시는 언급하지 말라고!”윤지은은 버럭 소리쳤다.이에 내가 차갑게 반박했다.“나도 일부러 그 얘기 언급한 거 아니에요. 윤지은 씨가 먼저 나를 자극했잖아요. 제발 본인 위치 좀 정확히 해요. 윤지은 씨 입으로 우리 관계를 부인하면, 내 일에 참견할 자격도 없는 거죠.”“그러니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마요. 나 그런 거 딱 질색이니까.”나는 말하면 할수록 열이 올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윤지은을 저격했다.하지만 윤지은은 이번에는 웬일인지 나에게 맞서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얼마 뒤, 윤지은은 갑자기 일어나 떠나갔다. 그 행동에 나는 오히려 어리둥절했다.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쫓아가지 않았다.이제 겨우 악마 같은 여자가 떠나갔는데, 이건 내가 간절히 바라던 거 아닌가?나는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으로는 윤지은이 다시 오지 말라고 빌면서.한참 휴식하다가 기분 전환 겸 물 마시러 로비에 나갔더니 모태진이 쪼르르 달려왔다.“수호 씨, 아까 그 여자는 어떻게 보낸 거예요?”“나도 몰라요.”나는 의자에 기댄 채 힘 빠진 듯 대답했다.그러자 모태진이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렸다.“에? 모른다고요? 그 여성분 분명 수호 씨 마사지룸에서 나왔잖아요.”“하, 묻지 말아 줄래요? 저 휴식하고 싶어요.”나는 맥이 빠져 하루 종일 일한 것보다 힘들었다.앞으로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모태진은 내가 안쓰럽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그래요. 잘 휴식해요. 방해하지 않을게요.”모태진이 제 할 일 하러 떠나자 나는 그제야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모 선생님.”‘한은솔?’나는
나는 주선영한테 말했다.“너도 들어가서 마사지 좀 받아. 태진 선배 솜씨 좋아.”“됐어요, 나 돈 없어요.”주선영은 고개를 저었다.이에 내가 말했다.“돈은 내가 낼게. 넌 들어가기만 하면 돼.”주선영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이해되지 않는 듯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나는 이 단순한 여자애한테 상황을 설명하기 싫었다.“왜 나를 봐? 얼른 들어가. 넌 애교 누나 동생이니 내 동생이기도 해. 사촌 오빠가 도와주는 것도 안 돼?”사실 나와 주선영은 나이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런데 나를 오빠라고 자칭하는 건 내 판타지를 이루기 위해서다.하지만 이 단순한 여자애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주선영은 확실히 단순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뿌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저, 저기, 혹시 정말 우리 언니랑 만나요?”“어린애는 어른들 일에 참견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기나 해.”주선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나 이제 20살이라 어린애 아닌데.”그 옆에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네 몸이 20살이라도 머리는 어린애잖아. 어디 가서 속아야 정신 차리지.’“그래, 너 어린애 아니야. 그러니 얼른 들어가.”나는 어린애 달래듯 주선영을 달랬다.그랬더니 주선영은 역시나 기뻐했다.‘이런 여자애는 이 세상에 참 드문데.’아마도 가족이 애지중지 키우고 잘 보호해 줬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단순할 리 없다.사실 내가 주선영을 모태진의 마사지룸에 들여보내려 하는 건, 감시하기 위해서다.안에 있는 두 사람이 갑자기 활활 타올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까 봐.주선영이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안심하고 내 마사지룸으로 들어갔다.이제 1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퇴근이었다.나는 얼른 애교 누나한테 저녁에 밖에서 외식하며 제대로 축하하자는 문자를 보냈다.어쨌든 인생 첫 차를 샀으니, 이건 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애교 누나는 내 문자를 기다렸던 것처럼 바로 답장했다.[그래요. 그럼 샤부샤부 어때요?][뭘 먹을지는 누나가 결정해요.]내가 한창 애교
주선영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선영을 먼저 애교 누나 집에 보내고, 나는 형네 집에 찾아갔다.이제 차키를 형수한테 돌려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내가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서 아무 응답도 없었다.당연히 집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내 손에 형네 집 키를 쥐고 있었으니까.“형수, 형?”나는 두 사람을 불러 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보아하니 형과 형수가 정말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그게 왠지 조금 아쉬웠다.마지막으로 형수와 단둘이 집에 있을 기회인 줄 알았는데, 형수가 집에 없다니.나는 형수의 차키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고 메모를 한 장 남겼다. 차를 샀으니 이제 형수 차가 필요 없다는 내용으로.차키와 메모를 식탁 위에 놓았지만 바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이 집에서 지낸 세월이 있고, 형수와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 공간이었으니.나는 방을 빙 둘러보다가 결국에는 형수와 형의 침실에 도착했다.이 집에서 내가 안 가본 곳이 없다. 유독 이 침실만은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다.얼마 전 형과 형수가 몸을 섞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불편했다.너무 아쉬워 침대에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나도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그렇게 한참 앉아 있다가 떠날 준비를 할 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내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벨 소리는 침대 밑에서 나고 있었다.그걸 인지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설마 침대 밑에 사람이 있나?’‘젠장, 너무 무섭잖아.’나는 얼른 손에 잡히는 물건을 대충 잡고 침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누구야? 나와! 안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연거푸 몇 번을 소리쳤지만 침대 아래에서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재빨리 침대 시트를 들었지만 선 자세로 침대 밑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나는 결국 몸을 쪼그렸다.침대 아래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조금 경계를 풀고 바닥에 엎드렸더니 침대
하지만 전화 건너편에서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도 들켰을까 봐 조마조마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형도 집에 없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형은 대체 왜 핸드폰을 숨겼지? 그 여자는 또 누구고?’나는 너무 궁금해서 이 사실을 알아내려고 낯선 번호를 적었다.이러고 나서 나중에 방법을 생각해 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할 생각이었다.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원위치에 놓고 집을 나섰다.애교 누나 집에 도착했지만 나는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애교 누나도 걱정됐는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누나의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우리 샤부샤부 먹으러 가요.”나도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얼른 마음을 추슬렀다.우리는 반반 육수를 시키고 아주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그 덕에 쓸데없는 고민도 모두 날아갔다.먹고 마시며 대화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11시가 되었다.주선영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난 뒤, 애교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늘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나는 누나를 와락 끌어안았다.“애교 누나, 제가 노력해서 당당하게 누나와 결혼할게요.”애교 누나는 싱긋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누나와 손을 서로 잡은 채 마주 보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참지 못하고 애교 누나를 껴안고 입술을 들이밀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다급히 내 입을 막았다.“안 돼요. 들어가서 해요.”“한 번만요. 다른 걸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내 애교에 누나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안 믿어요.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약속 안 지키잖아요.”“누나는 저를 너무 잘 알아요. 우리 점점 더 케미가 생기는 것 같은데요?”나는 일부러 애교 누나를 희롱했다.그때, 형네 집 문이 열리더니 동성 형이 걸어 나왔다.그럼에도 나는 애교 누나를 놓아주지 않았다.누나가 이미 왕정민과 이혼했으니, 누구보다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형의 안색이 이상한 걸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아니
“그래?”겉웃음을 짓는 동성 형을 보니 나는 등골이 오싹해 대충 핑계를 대고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동성 형이 나를 붙잡았다.“수호야, 그렇게 급하게 돌아갈 필요 없잖아. 형 너랑 할 말 있어.”나는 심장이 철렁해서 속으로 형이 대체 뭐 하자는 건지 생각했다.그때 형이 두말없이 나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주 강박적이고 난폭하게 잡아당기며 나에게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았다.나는 너무 당황해서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형이 내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걸 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러는 것도 나에게 따져 물으려는 거고.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내가 겁먹을 게 뭐 있나?나는 형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물었다.“날 여기까지 끌고 온 거 전화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지?”“너 그 전화 받았지?”동성 형은 숨길 생각도 없는지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나도 알고 있다. 형한테 직접적인 증거를 잡혀 잡아떼도 소용없다는 걸.때문에 나는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내가 그 전화 받았어. 그리고 전화한 사람이 여자라는 것도 알아. 형 지금 형수 몰래 여분의 핸드폰을 준비해서 어디서 난지도 모를 여자랑 연락하고 지내고 있잖아. 나야말로 묻고 싶네, 대체 뭐 하자는 거야?”나는 동성 형을 반히 바라봤다. 하지만 형의 얼굴에는 후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정수호, 내 말에 먼저 대답해. 차키 돌려주러 왔다면서 우리 침실에는 왜 들어갔어?”나는 너무 화가 났다.형이 그런 짓을 하고 후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나를 질책하고 있다니?그렇다는 건 전에 나한테 애원했던 것도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 아닌가?형은 형수와 제대로 살아볼 생각이 아예 없고, 후회하고 뉘우친 적도 없다.그 모든 건 형이 만들어낸 거짓이었다.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형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이 나쁜 자식! 쓰레기! 형수와 잘 살겠다고 약속했으
나도 모르겠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나는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동성 형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당황한 질문을 해 왔다.“내 일을 다 알았다면 너는? 솔직히 너, 네 형수랑 잘해보고 싶지?”“아니.”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한편으로 마음이 찔려 들킬까 봐 겁났다.그러자 동성 형이 피식 웃었다.“아니라고? 아니면 왜 우리 방에 들어갔어?”“궁금해서 들어가면 안 돼?”“수호야, 난 네가 자라는 거 지켜본 사람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내가 왜 너를 집에 들였는지 알아? 네가 점잖은 사람이라서, 내 여자한테 더러운 마음 품지 않을 걸 아니까, 그래서 여기서 살게 했어. 하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야. 네 변화를 내가 모를 것 같아?”형의 말에 너무 당황한 나는 담배로 마음을 삼출 수밖에 없었다.나는 사실 괜찮다. 형이 나를 때리든 욕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형수한테 폐 끼칠 수는 없다.나는 형수의 이미지가 나 때문에 훼손되는 걸 원치 않는다.형이 나와 형수 사이의 일을 알고 형수한테 함부로 대하는 건 더더욱 싫다.때문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맞아. 나 변했어. 하지만 사람은 원래 변하지 않아? 형도 나를 이용해서 소여정한테 다리를 놓으려 했잖아. 왕정민과 협력하려고 나더러 애교 누나를 꼬시라고 했잖아. 나야말로 묻고 싶어. 그동안 나한테 잘해줬던 거, 목적이 있어서지?”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리며 마음속 의문을 제기했다.동성 형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를 보더니 다리를 꼬며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그렇다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 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돼? 고작 같은 동네에서 자란 형 동생이야. 내가 왜 조건도 없이 너를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그리고 막말로, 애교 씨를 꼬시고 소여정한테 접근하라고 한 거, 너한테 아무 이득도 없었어?”동성 형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 오히려 내가 잘못한 사람 같았다.나는 화가 뻗쳐 손데 든 담배꽁초를
나는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내가 젊다는 이유로 날 가르치려 들지 마. 형도 나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잖아. 현자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마.”형이 만약 아주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면 형의 말에 동의하겠지만, 형도 지금은 실패자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날 가르치는 거지?형이 한 말은 너무 우스웠다.그때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형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동성 형, 동성 형 하며 따르더니, 이제는 그런 태도로 얘기하네? 솔직히 기뻐. 네가 성장했다는 거니까.”나는 그 말에 구역질이 났다.‘형이 기쁠 게 뭐 있는데?’‘기쁘다면 표정이나 좀 신경 쓰지.’나는 동성 형을 이제는 꿰뚫어 볼 수 있다. 항상 본인이 다 맞고, 잘난 체하는 족속.‘이런 방식으로 나를 주무르려 하다니. 내가 예전의 나인 줄 아나? 유치하긴.’이젠 더 이상 형을 동정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는다. 현재 남은 검 오직 혐오감뿐이다.나는 씩씩거리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솔직히 말해. 전화한 여자 누구야?”“나 그 여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믿을래?”“X발, 내가 등신도 아니고, 그걸 믿을 것 같아?”나는 버럭 소리쳤다.형이 이런 말을 하는 것마저 나에 대한 모욕 같았다.아무 사이도 아니면 폰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있나? 심지어 그럴 숨길 필요가 있나?그건 세 살짜리 어린이한테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형의 모습을 보니 솔직히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내 말 사실이야. 네가 형수한테 다른 마음 없다는 것과 같아.”형의 말에는 분명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이건 뭐 자기 입에서 솔직한 말을 듣고 싶으면 먼저 솔직하게 말하라는 거랑 뭐가 다르지?나는 속으로 냉소했다.형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쏙 빠져나가다니.나는 차갑게 웃으며 형을 바라봤다.“계속 그렇게 해. 언젠가는 결혼 생활이 파멸로 갈 거야.”“그럴 리 없어. 아이만 있으면 네 형수는 절대 나랑 이혼 안 할 거야.”형은 아주
“됐어. 이제 말해.”서윤기는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우선 이거 풀어줘. 이렇게 외진 산에서 나 혼자 도망도 못 쳐.”나는 두말없이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적당히 해. 넌 우리 손에 잡힌 상황이야. 흥정할 자격 없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모님은 아예 서윤기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말해. 말 안 하면 가만 안 둬!”“알았어. 말할게. 정호섭 일은 나랑 상관없어.”나는 또다시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상관없다고? 내가 룸 밖에서 똑똑히 들었어. 네가 이동민 지시해서 조금희를 협박해 대신 일을 저지르게 했다고 했잖아.”“그리고 사고 직전에 조금희 계좌로 2억이 뜬금없이 입금된 거 이미 확인했어.”“나랑 이동민이 협력하는 건 사업적으로 왕래가 있기 때문이야. 조금희는 아예 몰라. 2억은 더더욱 모르고.”“정말 모르는 거야? 거짓말하는 거야? 서윤기,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날 자꾸 몰아붙이지 마!”서윤기는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정말 모른다고. 이렇게 잡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처럼 돈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죽는 걸 두려워해. 어렵게 Y시 시장을 뚫었고 떼돈 벌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죽기 싫다고.”서윤기의 눈빛과 도는 꾸며낸 것이 아닌 듯했다. 그건 조금 의외였다.‘설마 서윤기가 정말 정 사장님 일과 관련이 없나?’‘아니야. 분명 관련이 있어. 내가 룸에서 들었던 게 분명한데 틀릴 리 없어.’나는 사모님과 윤지은에게 서윤기를 며칠 더 가두었다가 다시 물어보자고 건의했다.사모님은 이미 힘이 쫙 빠져 우리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호섭 씨, 제발 진실을 빨리 알 수 있게 지켜줘.”사모님은 결국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와 윤지은은 그런 사모님한테 더 힘내라고 위로할 수박에 없었다.“지금 서윤기가 우리 손에 있으니 도망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어요.”“유미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러다 화병 와.”위로의 말은 누구나 할
게다가 집에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다리도 불편하고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침침했다.노랑머리가 그 할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에 우리는 곧바로 서윤기를 차에서 끌어냈다. 서윤기는 내리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의 다리를 잡고 강제로 끄집어냈다.강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놀란 서윤기는 소변까지 지리고 말았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왜 날 이런 곳에 끌고 온 건데? 여기 어디야?”“나도 몰라.”나는 솔직히 말했다.그 말에 서윤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정수호, 너 정말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너도 정 사장님 죽이는데, 난 왜 너한테 이러면 안 돼?”내가 반박했다.그러자 서윤기가 바로 말했다.“난 아니야. 정호섭 일 나랑 상관없어. 나 억울해.”“억울한데 Y시에는 왜 나타난 건데?”“우연이야. 다 우연이야. 난 여기 약재 구입하러 왔어. 나 정말 정호섭 일 몰라...”사실 나도 지금까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탓에 서윤기가 진짜 범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문제는 서윤기의 입이 너무 무거워 입을 열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나는 서윤기를 방에 끌고 가 꽁꽁 묶고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서윤기 잘 좀 감시해요. 난 약초 찾으러 나갔다 올게요.”윤지은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약초?”“Y시에 사실 심마라는 풀이 잘 나거든요. 다른 말로 쐐기풀. 사람이 그 풀에 닿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나는 일부러 서윤기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서윤기도 한약재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당연히 쐐기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 말에 바로 겁을 먹었다.“뭐 하는 거야? 쐐기풀로 어쩌려고 그래? 나 쐐기풀에 알레르기 있어. 이러나 나 진짜 죽어.”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나 한의사야. 그런 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정수호, 내가 돈 줄게. 아주 많이 줄게. 나 풀어줘.”서윤기는 애원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나는 서윤기의
나는 또 서윤기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랬더니 서윤기의 코에서 또 피 두 줄기가 흘려내렸다.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불법이면 어때? 난 너 죽을 거야!”“정수호.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호섭은 이미 죽었어. 네가 날 죽여도 정호섭은 돌아오지 않아...”서윤기는 버둥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우리는 아예 서윤기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 넣었다. 심지어 서윤기가 세게 반항해 데리고 나가기 어려울까 봐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그의 뒷목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취한 서윤기를 부축하는 것처럼 홀을 지나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장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그때 윤지은이 물었다.“어디 가려는 거야?”“호텔은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 적은 곳으로 가야 해요. 인터넷으로 이 부근에 민박집 있는지 검색해 봐요. 아예 그곳을 임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지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그 사이, 사모님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그런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마침 장소 검색을 마친 윤지은이 말했다.“안 돼. 민박집은 너무 밀집되어 있어 발각되기 쉬워.”나는 순간 사람 한 명이 떠올라 차를 길옆에 세우고 윤지은한테 말했다.“지은 씨가 운전해요. 연락은 제가 할게요.”우리는 이내 자리를 바꾸었다.사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노랑머리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도박해요? 솔직히 말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요. 경찰에 신고하려는 게 아니에요. 나 대신 한적하고 은밀한 곳 알아봐 주면 돼요.]그 시각 노랑머리는 불법 도박장에서 한창 놀음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 그는 운이 좋아 이미 수십만 원을 벌어 마침 그만두려던 참이었다.그때 마침 내 문자를 본 노랑머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했다.[형님, 제가 한적하고 비밀스러운 곳 하나 아는데, 그곳은 내 구역이 아니라 친구 구역이라 돈을 내야 해요.]나는 바로 답장했
사실 이동민 외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나는 재빨리 영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도 그럴 게, 때리는 족족 쓰러졌으니까.곧바로 룸 안에서 처벌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이동민은 한나둘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나에게 걸어왔다.서윤기를 잡으려면 우선 이동민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나는 옆에 있던 노인을 발로 차버리고 악에 받쳐 이동민의 시선을 마주 봤다.“이 자식, 죽어!”이동민은 주먹을 쥐더니 화려한 동작 없이 바로 내 얼굴을 향해 날렸다.하지만 나는 그걸 재빨리 피한 뒤 이동민 뒤에 숨어 공격 기회를 노렸다.이동민은 속도가 느렸지만 힘이 강해 내가 손을 뻗을 때 내 손을 단번에 다리 사이로 잡았다. 그 순간 나는 팔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하지만 나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이동민의 허벅지 안쪽 살을 잡았다.남자의 약점은 그곳만이 아니다. 허벅지 안쪽 살을 꼬집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제압할 수 있다.이동민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사이 나는 다시 놈의 가장 나약한 곳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이동민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옆에 잇던 서윤기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곧장 밖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하지만 나는 의자로 이동민을 쓰러뜨린 뒤 신속히 서윤기를 잡았다.“거기 서! 서윤기. 넌 도망 못 쳐!”“정 사장님 죽음 네가 조작한 거지?”서윤기는 도망치면서 말했다.“어디서 생사람 잡아? 내가 했다면 증거를 내놔. 증거도 없이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할 거야.”“고소는 무슨.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나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서윤기는 내가 거의 따라붙자 곧장 엘리베이터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놈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사모님과 윤지은이 달려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버렸다.이윽고 윤지은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나와. 폭력 쓰게 하지 마.”순식간에 3대 1인 상황이 되니 더 승산 없어진 서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