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는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본인의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다.솔직히 이런 형수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형수, 가끔 보면 형수가 참 깨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은 너무 바보 같아요. 형수가 애교 누나를 설득할 때는 얼마나 정의로웠어요. 그런데 본인한테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왜 그렇게 고민하는데요?”형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남을 설득할 때는 정신이 아주 또렷했는데, 똑같은 일을 당하니 줏대가 없어진 것 같아요.”나는 형수가 안쓰러웠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어떻게 할지는 결국 형수가 직접 선택해야 하니까.너무 마음이 아픈 나머지, 나는 참지 못하고 형수의 손을 잡았다.“형수, 형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응원할게요. 그리고 늘 형수 안전을 지켜줄게요. 슬퍼하지 마요. 형수가 이러면 제가 마음 아파요. 전 형수가 예전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나는 예전의 형수가 너무 그립다. 정열적이고 대범하고 나를 자꾸만 희롱하던 형수가.무엇보다 그때의 형수는 웃는 게 너무 예뻤다.형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남편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즐겁겠어요? 지금 너무 막막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애교가 참 부러워요. 그렇게 즉시 결단 내릴 수 있어서. 하!”나는 형수가 왜 갈등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형수의 모든 걸 존중한다.나는 어찌 된 일인지 참지 못하고 형수의 이마에 키스했다.형수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예전에 봤던 것처럼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웃음이었다.내 마음속의 형수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데.“애교 누나랑 쇼핑하며 기분 전환해요. 그러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내 말에 형수는 예전처럼 내 볼을 꼬집었다.“이젠 다 컸네. 형수 달랠 줄도 알고.”나는 이런 느낌이 즐거웠다.이럴 때마다 형수가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니까.형수와 작별한 뒤, 나는 착실하게 출근했다.애교 누나와 형수가 기쁘다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화인당에
나는 준비물을 챙긴 뒤 전신 마사지를 해드리려고 준비했다.이렇게 관리를 잘 받는 여자를 마사지하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이다.사모님은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든 모양이었다.내가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다.윤 사모님이 골아 떨어진 걸 확인한 나는 얼른 마사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사지가 끝났는데도 사모님은 계속 자고 있었다.나는 결국 담요로 윤 사모님을 덮어주고 휴식하러 밖으로 나갔다.모태진의 마사지룸은 여전히 휴식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왜 안 오지? 전화도 없고.’너무 이상했다.내가 한창 의아해하고 있을 때, 모태진이 문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채로.나는 얼른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 답장도 안 하고.”모태진은 물을 따르며 기분 좋은 듯 웃었다.“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요. 사장님께는 미리 말해뒀어요.”나는 어제 오후 일이 생각 나 얼른 물었다.“그 여대생하고는 아무 일 없었죠?”“내가 은솔 씨랑 무슨 일이 있겠어요?”모태진이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이에 나는 얼른 귀띔했다.“아무 일 없으면 다행이고요. 난 또 바보짓 할까 봐 걱정했잖아요. 난 정말 선배를 친형제처럼 생각해서 이런 말 하는 거니까 절대 흘려듣지 마요.”“알았어요, 알았어. 다 나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모태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모태진이 정말 내 말을 귀담아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우리가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김진호가 노기등등해서 사장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러더니 마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그만두라면 누가 못 그만둘 줄 알고? 이 일자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 능력이면 어딜 가서든 밥벌이는 할 수 있다고!”‘무슨 상황이지?’‘김진호가 그만두나?’‘보아하니 해고된 것 같은데?’얼마 뒤, 김진호는 짐을 챙겨 떠나갔다.그때 정 사장님이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직원들한테 말했다.“
“김진호 일, 이 정도면 만족해요?”팁을 받자마자 들려오는 윤 사모님의 목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김진호를 쫓아낸 게 사모님이란 말씀이세요?”윤 사모님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그런 보잘것없는 인간은 내가 직접 나설 필요 없어요. 내가 이 사모님 남편과 사업 파트너거든요. 그 남자가 워낙 김진호를 싫어했으니, 김진호가 일하는 곳을 알려만 주면 쫓아낼 방법은 많죠.”‘그런 거였군.’하지만 윤 사모님이 아무 이유 없이 김진호를 쫓아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수호 씨 때문이죠. 나도 알거든요. 김진호가 얼마나 소심하고 질투심 많은 인간인지. 내가 계속 수호 씨를 찾으면 분명 질투하고 원망하면서 괴롭혔을 거예요.”“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실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내가 윤 사모님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도 않고, 윤 사모님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나처럼 평범한 마사지사를 이렇게 도와준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다.내 말에 사모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 눈동자는 맑았고, 치아는 새하얗고 정갈해 무척 우아하고 아름다웠다.이래서 여자는 관리가 필요하나 보다.관리를 잘 받은 여자는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처럼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니까.런 여자들은 겉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향기까지 나기에 남자의 마음까지 좋아진다.윤 사모님이 바로 그런 여자다.“별거 아니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정말 고맙다면 내가 전에 얘기했던 거 고민해 봐요.”“네? 뭘요?”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러자 윤 사모님은 입을 삐죽거리며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마사지숍 차리면 일 도와달라고 했잖아요.”‘아, 이 일이었어?’그때 나는 이 얘기를 마음에 두지 않은 데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이미 완전히 잊어버렸다.나는 머쓱해서 말했다.“가끔 도와달라고 하면 그래줄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를 그만두고 사모님 가게에서 일하라고 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쪽으로 필요할 때 찾아와도 돼요.”윤 사모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니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그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사모님의 뜻을 의심했다.‘설마 나를 암시하는 건가?’‘에이, 아닐 거야.’‘윤 사모님 같은 귀부인이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지.’‘내가 요즘 자뻑이 너무 심해졌어.’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했다.“네, 알겠어요.”나는 또 건성으로 대답했다.그때 윤 사모님이 허리를 흔들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옷을 정리해 주었다.이 행동에 나는 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도 그럴 게, 이 동작이 너무 야릇했으니까.나는 무의식적으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코를 간지럽히는 윤 사모님의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와 새하얀 피부, 잘빠진 몸매와 고귀한 분위기를 보니 가슴이 콩닥거렸다.윤 사모님은 소여정과 비슷했다. 모두 매혹적이고 우아했으며 고귀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소여정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녀의 남자가 너무 무서우니까.나는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하지만 윤 사모님은 다르다.윤 사모님은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 데다, 젊은 남자와 함께 있는 걸 즐기는 듯했다.물론 윤 사모님이 정말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윤 사모님 같은 귀부인이 나처럼 신분 낮은 남자를 좋아할 리 없을 테니까.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마사지사다.윤 사모님 인맥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할 거다.그런데 윤 사모님이 무슨 이유로 나를 좋아하겠나?하지만 이 순간, 윤 사모님이 직접 내 옷을 정리해 주고 있다.야릇한 눈빛은 마치 자기 남편의 옷을 정리해주는 것 같아, 나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심장이 콩닥거리고 귀까지 빨개져 윤 사모님을 바라봤다.“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나는 윤 사모님 손을 밀쳐내려 했다.하지만 윤 사모님이 삐진 듯 나를 째려봤다.“혼자 하긴 뭘 혼자 해요? 내가 해주는 게 싫어요?”나는 다급히
“네, 몰라요.”“내 이름은 윤미화예요. 어때요? 듣기 좋죠?”나는 깜짝 놀랐다.이름이 너무 예뻐서.단순히 윤 사모님이라고 부를 때는 그저 돈 많은 귀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름을 듣고 나니 귀티에 교양까지 구비한 것 같아 보였다.게다가 이 이름을 들은 순간 사장 사모님이 생각났다.윤미화, 임유미.두 이름 모두 지적인 분위기가 나는 데다 시적이라 너무 듣기 좋았다.“이름까지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요. 엄청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죠?”나는 이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이건 너무 쓸데없는 말이었다.윤 사모님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는 모두 고귀함이 배어 있었다.이런 분위기는 어릴 때부터 길러온 거다.그렇지 않으면 뼛속까지 이런 분위기를 풍길 리가 없다.‘내가 정말 바보인가? 어떻게 이런 질문을 했지?’아니나 다를까 윤 사모님은 피식 웃었다.“맞아요. 하지만 내가 이 가게 사모님이랑 아는 사이라는 건 모르죠?”“네? 사장 사모님을 아세요?”나는 너무 놀랐다.윤 사모님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 엄청 좋아요. 내 사촌 동생이거든요.”나는 더 놀랐다.하지만 곧 이해했다. 아마 사장 사모님이 아니면 윤 사모님도 여기를 자주 방문하지 않았을 거다.게다가 두 사람 모두 기품 있고 이름도 예쁘기에, 두 집안 관계가 분명 좋을 거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윤 사모님을 상대로 더 이상 상상을 할 수 없었다.가문이 그렇게 좋은 여자가 밖에서 몸가짐을 마음대로 할 리 없었으니까.이건 김진호한테서 이미 증명되었다.윤 사모님이 만약 밝히는 여자라면 김진호를 거절했을 리 없다.겉모습으로 볼 때, 김진호도 꽤 봐줄만 하니까. 게다가 몸집도 커서 여자한테 인기도 꽤 있다.나는 얼른 윤 사모님과 거리를 유지했다.“사모님...”“미화 누나라고 해봐요.”윤 사모님은 내 말을 끊고 강조했다.미화 누나라는 호칭이 너무 예뻐 꽤 마음에 들었다.이에 나는 바로 바꾸어 불렀다.“미화 누나, 고마워요. 앞으로 또 찾
어찌 됐든, 윤 사모님은 김진호를 쫓아낸 건, 나를 도와 큰 골칫거리를 해결한 거나 마찬가지다.때문에 나는 너무 감사해서 진지하게 말했다.“미화 누나,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도울게요.”“그럼 내 가게에 오라고 하면 올 거예요?”윤 사모님의 농담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듯 말했다.“그것만 빼고요.”“흥, 언젠가 수호 씨를 내 동생한테서 데려올 거예요.”말을 마친 윤 사모님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허리를 흔들며 떠났다.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윤 사모님과 정 사장님 사이가 매우 가까워 보였다.심지어 정 사장님이 윤 사모님을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그 말인 즉, 윤 사모님과 사장 사모님이 확실히 사촌 자매라는 뜻이었다.윤 사모님이 떠난 뒤,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일을 했다.오전은 아주 빨리 흘러갔다.점심을 먹은 우리는 정 사장님 당부대로 로비에 모였다.정 사장남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사장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그때 정 사장님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인성이 가장 중요해요. 난 내 직원들이 실력만 좋고 인성이 나쁜 건 원하지 않아요. 김진호 씨가 그동안 속 좁고 질투심 많았지만 계속 기용한 건,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였어요.”“그런데 오늘 알아봤더니 그동안 뒤에서 같은 동료한테 시비 걸고, 건달들과 결탁해 다른 직원을 협박하고 위협했더군요. 이런 사람은 여기 남을 자격 없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쫓아낸 거예요.”“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또 이런 소리 들리게 하지 마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정 사장님은 말을 마친 뒤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 김진호가 여러 차례 시비 걸었다던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요.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사장님을 번거롭게 하기 싫었어요.”내 솔직한 발언에 정 사장님은 진지하게 말했다.“여
“수호 씨, 나 좀 따라와.”정 사장님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냈다.그 뒤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사장님은 따뜻한 차를 따라 주면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정 사장님은 사장이라고 절대 무게를 잡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난 수호 씨가 출근 첫날부터 김진호의 괴롭힘을 받았다는 건 몰랐네. 분명 마 교수 소개로 온 사람인데, 내가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해.”나는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그런 말 하지 마세요. 사장님은 저한테 늘 좋은 분이셨어요, 늘 감사하고 있어요. 김진호도 저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어요. 저 정말 괜찮아요.”“앞으로 또 누군가 괴롭히면 나한테 직접 말해. 이 말 하려고 불렀어. 나 찾아오기 어려우면 소여정 씨한테 말해도 되고. 수호 씨도 알지? 소여정 씨가 내 아내랑 친구인 거. 수호 씨가 소여정 씨한테 말하면 내 귀에 들어오게 돼 있어.”“네, 알았어요.”정 사장님이 나를 이토록 챙긴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때문에 나는 속으로 절대 사장 사모님한테 가지 말아야 할 마음을 갖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그렇지 않으면 난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사장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한참 동안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내가 한의원에서 일할 때는 온갖 견제와 따돌림, 그리고 비난을 받았었다.때문에 이 사회가 원래 이렇게 잔인하고, 이게 바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곳에 와서 이토록 사장님의 보호를 받게 될 줄이야.이 하나만으로도 난 절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다.“수호 씨, 왜 그래요?”모태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나는 코끝이 찡해 울먹이며 대답했다.“정 사장님이 너무 잘해주셔서요. 지금껏 이렇게 좋은 사장님 만난 적이 없어요.”모태진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맞아요. 정 사장님은 정말 좋은 사장님이죠. 나도 사회에서 꽤 굴러봤는데, 이렇게 좋은 사장님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열심히 일해요. 그게 사장님한테는 보답일 거예요.”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우리 같은 직원에게 이것 말고 다른
“모태진,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난 집에서 애들 보느라 고생하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린애 끼고 돌아다녀?”모태진은 미간을 좁히며 설명했다.“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 난 그 여자애를 동생으로 생각할 뿐이라고.”“그만해. 듣고 싶지 않아. 당신 변명 한마디도 듣기 싫어! 핸드폰 내놔.”여자는 목청껏 소리쳤다.모태진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명령조로 말했다.“핸드폰 잠금 풀고 그 X 연락처 찾아내.”모태진은 X이라는 단어가 무척 거슬렸지만 일을 키워 가게 영업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아 꾹 눌러 참았다.그러면서 아무 말 없이 한은솔의 연락처를 찾아 건넸다. 모태범의 아내는 단번에 핸드폰을 빼앗아 한은솔에게 연락하더니 전화에 대고 불여우라는 둥, 세컨드라는 둥, 뻔뻔하다는 등의 말을 내뱉었다.“됐어, 그만해. 연락처 지우면 될 거 아니야.”참다못한 모태진은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어 핸드폰을 빼앗아 한은솔의 연락처를 삭제하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아내는 오히려 더 높게 소리쳤다.“지우긴 왜 지워? 누가 지우라고 했어? 뭐 켕기는 게 있나 봐? 내가 뭘 알아낼까 봐 두려워? 핸드폰 이리 내, 아직 그 불여우한테 볼 일 있으니까, 연락처 지우지 마.”계속 화를 참고 있던 모태진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정말 그 여자애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말 좀 예쁘게 해.”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모태진의 아내는 남편이 이런 태도로 말하자 더 분노하며 힘껏 모태진의 뺨을 후려갈겼다.이번에는 너무 심할 정도였다.어쨌든 가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고, 고객도 있는데, 아내한테 맞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으니, 모태진의 자존심은 말이 아닐 거다.나는 얼른 모태진을 옆으로 끌어내고 가게에 있는 여자 직원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얼른 모태진의 아내를 끌어내라고.하지만 여자 직원들은 본인들도 맞을까 봐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결국 남자 직원들이 나섰다.“형수님, 화 푸세요. 태진 선배가 어떤
“됐어. 이제 말해.”서윤기는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우선 이거 풀어줘. 이렇게 외진 산에서 나 혼자 도망도 못 쳐.”나는 두말없이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적당히 해. 넌 우리 손에 잡힌 상황이야. 흥정할 자격 없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모님은 아예 서윤기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말해. 말 안 하면 가만 안 둬!”“알았어. 말할게. 정호섭 일은 나랑 상관없어.”나는 또다시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상관없다고? 내가 룸 밖에서 똑똑히 들었어. 네가 이동민 지시해서 조금희를 협박해 대신 일을 저지르게 했다고 했잖아.”“그리고 사고 직전에 조금희 계좌로 2억이 뜬금없이 입금된 거 이미 확인했어.”“나랑 이동민이 협력하는 건 사업적으로 왕래가 있기 때문이야. 조금희는 아예 몰라. 2억은 더더욱 모르고.”“정말 모르는 거야? 거짓말하는 거야? 서윤기,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날 자꾸 몰아붙이지 마!”서윤기는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정말 모른다고. 이렇게 잡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처럼 돈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죽는 걸 두려워해. 어렵게 Y시 시장을 뚫었고 떼돈 벌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죽기 싫다고.”서윤기의 눈빛과 도는 꾸며낸 것이 아닌 듯했다. 그건 조금 의외였다.‘설마 서윤기가 정말 정 사장님 일과 관련이 없나?’‘아니야. 분명 관련이 있어. 내가 룸에서 들었던 게 분명한데 틀릴 리 없어.’나는 사모님과 윤지은에게 서윤기를 며칠 더 가두었다가 다시 물어보자고 건의했다.사모님은 이미 힘이 쫙 빠져 우리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호섭 씨, 제발 진실을 빨리 알 수 있게 지켜줘.”사모님은 결국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와 윤지은은 그런 사모님한테 더 힘내라고 위로할 수박에 없었다.“지금 서윤기가 우리 손에 있으니 도망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어요.”“유미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러다 화병 와.”위로의 말은 누구나 할
게다가 집에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다리도 불편하고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침침했다.노랑머리가 그 할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에 우리는 곧바로 서윤기를 차에서 끌어냈다. 서윤기는 내리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의 다리를 잡고 강제로 끄집어냈다.강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놀란 서윤기는 소변까지 지리고 말았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왜 날 이런 곳에 끌고 온 건데? 여기 어디야?”“나도 몰라.”나는 솔직히 말했다.그 말에 서윤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정수호, 너 정말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너도 정 사장님 죽이는데, 난 왜 너한테 이러면 안 돼?”내가 반박했다.그러자 서윤기가 바로 말했다.“난 아니야. 정호섭 일 나랑 상관없어. 나 억울해.”“억울한데 Y시에는 왜 나타난 건데?”“우연이야. 다 우연이야. 난 여기 약재 구입하러 왔어. 나 정말 정호섭 일 몰라...”사실 나도 지금까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탓에 서윤기가 진짜 범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문제는 서윤기의 입이 너무 무거워 입을 열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나는 서윤기를 방에 끌고 가 꽁꽁 묶고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서윤기 잘 좀 감시해요. 난 약초 찾으러 나갔다 올게요.”윤지은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약초?”“Y시에 사실 심마라는 풀이 잘 나거든요. 다른 말로 쐐기풀. 사람이 그 풀에 닿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나는 일부러 서윤기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서윤기도 한약재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당연히 쐐기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 말에 바로 겁을 먹었다.“뭐 하는 거야? 쐐기풀로 어쩌려고 그래? 나 쐐기풀에 알레르기 있어. 이러나 나 진짜 죽어.”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나 한의사야. 그런 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정수호, 내가 돈 줄게. 아주 많이 줄게. 나 풀어줘.”서윤기는 애원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나는 서윤기의
나는 또 서윤기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랬더니 서윤기의 코에서 또 피 두 줄기가 흘려내렸다.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불법이면 어때? 난 너 죽을 거야!”“정수호.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호섭은 이미 죽었어. 네가 날 죽여도 정호섭은 돌아오지 않아...”서윤기는 버둥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우리는 아예 서윤기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 넣었다. 심지어 서윤기가 세게 반항해 데리고 나가기 어려울까 봐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그의 뒷목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취한 서윤기를 부축하는 것처럼 홀을 지나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장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그때 윤지은이 물었다.“어디 가려는 거야?”“호텔은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 적은 곳으로 가야 해요. 인터넷으로 이 부근에 민박집 있는지 검색해 봐요. 아예 그곳을 임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지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그 사이, 사모님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그런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마침 장소 검색을 마친 윤지은이 말했다.“안 돼. 민박집은 너무 밀집되어 있어 발각되기 쉬워.”나는 순간 사람 한 명이 떠올라 차를 길옆에 세우고 윤지은한테 말했다.“지은 씨가 운전해요. 연락은 제가 할게요.”우리는 이내 자리를 바꾸었다.사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노랑머리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도박해요? 솔직히 말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요. 경찰에 신고하려는 게 아니에요. 나 대신 한적하고 은밀한 곳 알아봐 주면 돼요.]그 시각 노랑머리는 불법 도박장에서 한창 놀음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 그는 운이 좋아 이미 수십만 원을 벌어 마침 그만두려던 참이었다.그때 마침 내 문자를 본 노랑머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했다.[형님, 제가 한적하고 비밀스러운 곳 하나 아는데, 그곳은 내 구역이 아니라 친구 구역이라 돈을 내야 해요.]나는 바로 답장했
사실 이동민 외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나는 재빨리 영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도 그럴 게, 때리는 족족 쓰러졌으니까.곧바로 룸 안에서 처벌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이동민은 한나둘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나에게 걸어왔다.서윤기를 잡으려면 우선 이동민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나는 옆에 있던 노인을 발로 차버리고 악에 받쳐 이동민의 시선을 마주 봤다.“이 자식, 죽어!”이동민은 주먹을 쥐더니 화려한 동작 없이 바로 내 얼굴을 향해 날렸다.하지만 나는 그걸 재빨리 피한 뒤 이동민 뒤에 숨어 공격 기회를 노렸다.이동민은 속도가 느렸지만 힘이 강해 내가 손을 뻗을 때 내 손을 단번에 다리 사이로 잡았다. 그 순간 나는 팔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하지만 나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이동민의 허벅지 안쪽 살을 잡았다.남자의 약점은 그곳만이 아니다. 허벅지 안쪽 살을 꼬집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제압할 수 있다.이동민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사이 나는 다시 놈의 가장 나약한 곳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이동민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옆에 잇던 서윤기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곧장 밖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하지만 나는 의자로 이동민을 쓰러뜨린 뒤 신속히 서윤기를 잡았다.“거기 서! 서윤기. 넌 도망 못 쳐!”“정 사장님 죽음 네가 조작한 거지?”서윤기는 도망치면서 말했다.“어디서 생사람 잡아? 내가 했다면 증거를 내놔. 증거도 없이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할 거야.”“고소는 무슨.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나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서윤기는 내가 거의 따라붙자 곧장 엘리베이터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놈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사모님과 윤지은이 달려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버렸다.이윽고 윤지은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나와. 폭력 쓰게 하지 마.”순식간에 3대 1인 상황이 되니 더 승산 없어진 서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