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이라고 배신당한 나, 재벌과 결혼해 아이의 엄마가 되다

불임이라고 배신당한 나, 재벌과 결혼해 아이의 엄마가 되다

By:  레몽티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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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민은 3년 동안 노력한 끝에 마침내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신과 남편 윤현승이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지민은 윤현승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윤현승이 다른 여자와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 여자와 혼인신고까지 마친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강지민은 분노를 삼키며 치밀하게 이별을 준비했고, 끝내 윤현승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윤현승은 끝까지 강지민을 자신의 곁에 묶어두려고 했다. 윤현승이 다른 여자의 아이를 위해 강지민을 버리고 그 일로 강지민이 유산까지 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렀다. 다시 만났을 때, 재벌인 공세혁의 아내가 된 강지민은 화려한 드레스에 명품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지민과 공세혁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다정한 잉꼬부부라며 부러워했다. 늘 품격을 잃지 않던 윤현승은 갑자기 눈이 벌게져서 강지민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강지민은 차갑게 웃으며 윤현승을 바라보았다. “너무 늦었네요. 이제 당신의 사랑 따위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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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죄송합니다. 환자분께서 작성하신 정보에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환자분께서 남편으로 작성하신 분이 저희 산부인과에서는 다른 환자분의 남편으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혹시 잘못 작성하신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산전 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한 강지민은 서류를 작성할 때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제 남편이랑 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어요. 게다가 사이도 굉장히 좋아요. 혹시 병원 측에서 정보를 기록할 때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건 아닌가요?”

간호사는 복잡한 눈빛으로 강지민을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확인해 봤는데 환자분께서 남편으로 작성하신 분은 이미 저희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요. 보름 전에 아내분과 함께 저희 산부인과에 검진을 하러 오셨더군요.”

불길한 예감이 스치는 동시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눈앞이 아찔했다.

그러나 강지민은 곧바로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강지민은 윤현승이 자신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강지민은 지난 3년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수도 없이 몸에 주사를 놓았고 마침내 아이를 얻게 되었다.

출장 간 지 보름이 된 윤현승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강지민은 윤현승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임신했다는 사실을 여태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분명 병원에서 실수한 걸 거야.’

강지민은 다시금 자신을 위로했다.

넋이 나간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강지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구청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의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강지민은 본능적으로 기둥 뒤로 숨어 자신의 남편 윤현승이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고서 큰 손으로 여자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걸 지켜보았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강지민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여자는 바로 윤현승의 비즈니스 파트너의 딸 설아림으로 올해 스물두 살이었고 윤현승보다는 열 살 어렸다.

설아림은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윤현승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애교를 부렸다.

“현승 오빠, 우리 아이는 오빠를 닮았을까요? 아니면 나를 닮았을까요?”

윤현승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사랑스러운 너를 닮았으면 좋겠어.”

두 사람은 강지민의 옆을 지나쳤다. 둘 다 강지민을 발견하지 못했다.

강지민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지만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강지민은 윤현승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름 동안 매일 밤 영상 통화를 하면서 보고 싶다고 하던 남자가 그동안 줄곧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니 충격이었다.

정작 강지민은 바보처럼 윤현승을 믿었고, 윤현승을 위해 꾸준히 주사를 맞아가며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말이다.

정말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강지민은 자신의 남편과 내연녀가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마친 뒤 함께 차를 타고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강지민은 윤현승과 설아림이 어디로 갔는지, 두 사람이 자기 몰래 따로 살림을 꾸리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었기에 택시를 타고 두 사람을 따라갔다.

윤현승과 설아림은 어느 룸살롱의 룸 안으로 들어갔다.

강지민은 룸 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윤현승의 친한 지인이었다.

“형, 형이랑 형수님 진짜 깨가 쏟아지네. 어디를 가든 항상 붙어 다니잖아. 정말 부러워 죽겠어.”

“그러니까 말이야. 형도 참 운이 좋아. 집에는 참한 강지민 씨가 있고 밖에는 애교 많고 낭만을 아는 설아림 씨가 있잖아. 나는 진짜 형이 제일 부러워.”

설아림은 사람들의 말에 쑥스러운 듯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며 윤현승의 품 안에 숨었다.

윤현승은 설아림을 안은 채 시선을 들어 두 지인을 힐끗 보더니 여유롭게 말했다.

“그만 얘기해. 아림이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 너희가 그런 농담을 하면 불편해하니까.”

1년 전 윤현승은 술자리에서 만취하여 설아림과 관계를 가졌다.

윤현승을 3년 동안 짝사랑한 설아림은 윤현승의 곁에서 떠나지를 않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줄곧 애매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다가 보름 전 설아림은 임신했고 아이가 사생아가 되지 않게 하려고 윤현승은 설아림과 혼인신고를 했다.

사실 윤현승과 강지민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었다.

강지민은 임신을 하기 어려운 몸이었기에 윤현승의 어머니와 이사회 쪽에서는 절대 강지민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강지민은 애초부터 윤현승의 아내가 될 수 없었다.

윤현승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남자라면 가업을 잇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지민은 매우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만약 혼인신고를 한 척하지 않았다면 강지민은 윤현승의 곁에 남아 있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5년 동안 강지민은 단 한 번도 윤현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문밖에 서 있던 강지민은 무언가 심장을 힘껏 짓누르는 듯한,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

윤현승의 지인들조차 설아림과 윤현승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설아림을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윤현승이 평소에도 자주 설아림을 데리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강지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룸 안의 사람들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설아림이 지게 되었고 윤현승의 지인들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말했다.

“졌으니까 벌칙을 받아야죠. 이 자리에 있는 남자 한 명과 키스하도록 해요!”

문틈 사이로 강지민은 설아림이 수줍은 얼굴로 윤현승을 바라보는 걸 보았다.

곧이어 윤현승은 설아림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한 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듯 찰싹 달라붙어 진득하게 키스를 이어갔다.

강지민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면서 마치 영혼을 잃은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윤현승은 평생 강지민만을 사랑할 거라고,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거라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그토록 허무하게 깨졌다.

정신을 반쯤 놓은 채 룸살롱에서 나온 강지민은 곧장 차를 타고 구청으로 향했다.

구청에 방문하여 직접 확인한 뒤에야 강지민은 비로소 자신과 윤현승이 혼인신고를 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혼인신고를 하기 전 윤현승은 강지민이 최근 많이 바빠 구청에 갈 시간이 없을 테니 자신이 혼자 구청에 방문하여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강지민은 윤현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윤현승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고, 지난 5년 간의 결혼 생활은 전부 가짜였다.

윤현승의 맹세와 사랑 또한 모두 거짓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강지민은 윤상 그룹 신약 연구개발팀에서 일했다.

당시 강지민에게 첫눈에 반한 윤현승은 그 이후로 애정 공세를 퍼부었지만 비혼주의였던 강지민은 정중하게 윤현승의 고백을 거절했다.

그러나 윤현승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강지민을 공략했다.

명절 때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목걸이를 선물했고 강지민이 생리할 때면 디저트를 챙겨주었다.

심지어 SNS 계정은 강지민의 이름 이니셜로 해두었다.

그렇게 강지민은 윤현승의 세심함과 다정함에 서서히 빠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윤현승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스키를 타러 스위스에 갔을 때 그곳에서 눈사태를 겪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킨 윤현승 덕분에 강지민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윤현승은 중환자실에 실려 가 한 달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 이후로 강지민은 윤현승과 평생을 함께하리라 마음먹었고, 윤현승이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것만큼 윤현승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임신하기 어려운 몸이라 윤현승의 어머니는 강지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강지민은 윤현승이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끼어 난처해할까 봐 일까지 그만두고 임신하기 위해 매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주사를 맞은 부위가 붉게 부어오르고 단단한 알맹이 같은 것이 생겼음에도, 호르몬 균형이 무너져 몸이 망가져 괴로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아이를 갖게 되어 윤현승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윤현승이 안겨준 건 생각지도 못한 배신이었다.

강지민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의사가 물었다.

“환자분, 정말 뱃속의 아이를 지우실 건가요?”

강지민은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무감각한 눈빛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현승이 바람을 피운 이상 강지민 또한 윤현승을 버릴 것이다. 그러니 윤현승의 아이 또한 당연히 지워야 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검사부터 받으시고 결과가 나오면 어떤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할지 다시 결정하죠.”

강지민은 수납을 마치고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윤현승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강지민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으나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이내 윤현승의 잘생긴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눈빛은 예전과 똑같이 애정이 가득했다.

“지민아, 지금 병원에 있어? 몸이 안 좋아?”

강지민이 병원에 있는 것 같자 윤현승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지민은 윤현승이 자신을 걱정하자 잠시 넋이 나갔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연기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지민이 대답하지 않자 윤현승은 대답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줄 알고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민아, 나 지금 바로 돌아갈게. 기다려줘.”

윤현승이 룸 안에서 했던 말들이 떠오른 강지민은 할 수만 있다면 화면 너머에 있는 윤현승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윤현승이 병원에 찾아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윤현승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아이를 지우는 걸 막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지민은 어쩔 수 없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안 와도 돼요. 나 괜찮아요. 수정이가 위가 아프다길래 같이 병원에 온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해요.”

심수정은 강지민의 친한 친구로 두 사람은 자주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윤현승도 심수정을 본 적이 있었다.

윤현승은 심수정이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이라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너무 무리하지 마. 나 마음 아프니까. 일 일찍 끝내고 돌아갈게. 아마 주말이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줘.”

강지민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비록 윤현승의 말을 전혀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대답했다.

“좋아요. 그러면 기다릴게요.”

“사랑해, 지민아.”

전화를 끊은 뒤 강지민은 검사 결과를 들고 진료실로 향했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궁 내막이 굉장히 얇으셔서 임신하기 어려운 체질이네요. 만약 수술을 받는다면 자궁 내막이 영구적으로 손상돼 앞으로는 임신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수술하시겠어요?”

강지민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자기도 모르게 아랫배를 만져봤다.

아이를 지운다면 앞으로는 평생 엄마가 될 수 없단 말인가?

의사는 강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건 어떠세요? 아무래도 중요한 결정이니 가족분들과도 한 번 상의해 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강지민은 자신이 훗날 후회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윤현승은 버릴 수 있지만 엄마가 될 기회까지 잃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나온 강지민은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마침 차 한 대가 바로 옆에서 지나가 강지민은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는데 어디선가 팔 하나가 뻗어 나와 강지민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시선을 든 강지민은 검고 깊은 눈동자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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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죄송합니다. 환자분께서 작성하신 정보에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네? 그게 무슨 말이죠?”“환자분께서 남편으로 작성하신 분이 저희 산부인과에서는 다른 환자분의 남편으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혹시 잘못 작성하신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설레는 마음으로 산전 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한 강지민은 서류를 작성할 때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그럴 리가요. 저는 제 남편이랑 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어요. 게다가 사이도 굉장히 좋아요. 혹시 병원 측에서 정보를 기록할 때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건 아닌가요?”간호사는 복잡한 눈빛으로 강지민을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니요. 확인해 봤는데 환자분께서 남편으로 작성하신 분은 이미 저희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요. 보름 전에 아내분과 함께 저희 산부인과에 검진을 하러 오셨더군요.”불길한 예감이 스치는 동시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눈앞이 아찔했다.그러나 강지민은 곧바로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자신을 다독였다.강지민은 윤현승이 자신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강지민은 지난 3년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수도 없이 몸에 주사를 놓았고 마침내 아이를 얻게 되었다.출장 간 지 보름이 된 윤현승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강지민은 윤현승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 임신했다는 사실을 여태 알리지 않았다.그런데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그래. 분명 병원에서 실수한 걸 거야.’강지민은 다시금 자신을 위로했다.넋이 나간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강지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구청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의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강지민은 본능적으로 기둥 뒤로 숨어 자신의 남편 윤현승이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고서 큰 손으로 여자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걸 지켜보았다.여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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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귓가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자 강지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감사합니다.”남자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키가 훤칠했고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고고한 분위기와 엄청난 압박감을 풍기고 있어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강지민은 남자를 아주 잠시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공세혁은 강지민이 중심을 잡자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별말씀을요.”낮은 목소리에 발음이 살짝 특이했지만 굉장히 듣기 좋았다.그때 남자의 뒤에서 누군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차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예정된 비행기를 타실 수 있습니다.”공세혁은 강지민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롤스로이스로 걸어갔다.비서는 공세혁을 위해 차 문을 열었고 공세혁은 긴 다리를 뻗으며 차에 올랐다.출발한 지 조금 지나 비서가 물었다.“대표님, 이번에 강성으로 오긴 했지만 아직은 강서원 선생님의 후계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계속 찾아볼까요?”공세혁은 지친 얼굴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계속 찾아봐. 오직 강 선생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침술만이 할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거든.”“알겠습니다.”강지민이 집에 돌아오자 가정부 장미숙이 강지민의 가방을 들어주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사모님, 오늘 어디 가셨던 거예요? 아까 대표님께서 저한테 전화해서 사모님이 집에 돌아왔냐고 여쭤보셨어요.”강지민은 덤덤히 대꾸했다.“걱정할 거 없어요. 그냥 친구랑 외출한 것뿐이에요. 아주머니, 저 여행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아주머니도 며칠 쉬세요.”장미숙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대표님께서 주말에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대표님께서 돌아오신 뒤에 여행을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예전에 강지민은 외출하는 일이 드물었고 대부분은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어떤 음식들이 임신 준비에 좋은지 알아봤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장미숙은 잠시 뒤 윤현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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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윤현승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결혼 전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 강지민이 임신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윤현승은 강지민을 속여 혼인신고를 한 척했다.윤현승은 강지민이 몰래 혼자 병원에 검진하러 간 이유가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이곳에서 설아림과 함께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윤현승은 설아림에게 말했다.“나는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가 지민이랑 같이 시간을 보낼 거야. 여기 혼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으면 본가로 가도록 해. 우리 엄마가 잘 챙겨주실 거야.”윤현승의 어머니 오미경은 설아림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예전에는 늘 다른 여자를 만나서 아이를 낳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는데 설아림이 임신한 이후로는 그러지 않았다.설아림은 내심 못마땅했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윤현승이 자신을 아끼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강지민을 품고 있었기에 만약 강지민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낸다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었다.설아림은 애교를 부렸다.“오빠 말대로 할게요. 그런데 오빠가 간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쉬워요. 저도 같이 오빠 집에 가서 지내면 안 돼요?”윤현승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는 설아림과 그냥 가볍게 만나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끔 설아림을 데리고 집에 가도 상관없었다. 설아림은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혼인신고를 하고 난 뒤로 설아림은 점점 더 간이 커졌고 윤현승과 더 붙어 있으려고 했다. 윤현승은 설아림의 행동 때문에 강지민이 둘 사이를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설아림은 윤현승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약속했다.“지민 언니가 우리 관계를 의심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약속할게요. 예전에 제가 오빠랑 같이 집에 갔을 때도 언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잖아요.”설아림이 애절한 표정으로 말하자 윤현승은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토요일 오후, 판매한 명품 가방 두 개를 택배로 보낸 강지민은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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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지민은 뭐라고 둘러댈지 미리 생각해 두었기에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출근하려고 하는데 예전 옷들은 출근할 때 입기에는 너무 캐주얼해서 처분하고 새 옷들을 장만하려고요. 혹시 돈 낭비한다고 뭐라고 할 건 아니죠?”강지민의 설명을 들은 윤현승은 표정이 살짝 풀렸다.“그럴 리가. 사고 싶은 건 다 사.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바꿔도 돼.”윤현승은 강지민이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생활비를 줘도 많이 쓰지 않았다.강지민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버리며 낭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그러나 산 지 꽤 오래된 옷들과 가방이었기에 버려도 상관없었다.그리고 다 버리고 난 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까워하면서 앞으로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을 것이다.강지민은 윤현승과 더 얘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기에 책상 앞으로 걸어가 구상엽이 보낸 제품 자료를 볼 생각이었다.예전에는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강지민은 항상 윤현승을 끌어안고 계속 말을 걸려고 했다.그러나 지금은 아주 덤덤했다. 마치 윤현승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윤현승은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간질거렸다.강지민의 모습에 윤현승은 강지민을 쫓아다녔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그때도 강지민은 지금처럼 윤현승에게 냉담했다.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은근히 차가운 데다가 고집스러운 성격이라 윤현승이 봐왔던 재벌가 딸들이랑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관심이 갔다.심지어 강지민은 윤현승이 다가가면 피했다.그리고 강지민이 피할수록 윤현승은 더 깊이 빠져들었다.겨우 강지민과 사귀게 된 이후에는 달콤한 연애를 시작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강지민과 함께 할 때면 항상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설아림의 등장으로 윤현승은 깨달았다. 자신과 강지민과의 관계는 너무 안정적이어서 스릴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런데 갑자기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듯한 강지민의 태도를 보니 또다시 강지민을 흔들어 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차갑게 대할수록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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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열어 보니 설아림의 글씨체였다.[현승 오빠와의 100가지 버킷리스트.][3월 2일. 내 생일에 현승 오빠랑 같이 북극에 오로라를 보러 가서 10분 동안 키스했다.][5월 20일. 빅토리아 하버에서 현승 오빠가 나를 위해 불꽃놀이 준비하고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7월 14일. 실버 데이에 현승 오빠랑 같이 뉴질랜드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오빠랑 1만 5천 피트 상공에서 함께 뛰어내렸다.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다.]...100가지 버킷리스트를 모두 읽은 강지민의 두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출장이라는 핑계로 집을 비웠던 시간 동안, 윤현승은 설아림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결혼한 뒤로 윤현승은 강지민에게 낭만도, 서프라이즈도 안겨 주지 않았다.심지어 꽃도 좀처럼 선물하지 않았다.윤현승은 다른 커플들이 공개적인 애정 표현으로 주목받을 때면 늘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민아, 우리는 저 사람들이랑 달라. 우리는 굳이 저런 것들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잔잔하게 오래가는 사랑이 우리에게 더 잘 어울려.”윤현승은 낭만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낭만을 안겨주었을 뿐이었다.강지민은 다이어리를 서랍 안에 넣고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잠시 후 차에 탄 윤현승은 빨개진 강지민의 눈가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지민아, 왜 그래? 울었어?”강지민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요. 아까 벌레가 눈에 들어가서 그래요.”고개를 끄덕인 윤현승은 더 묻지 않은 채 차를 출발시켰다.고모 집은 두 블록만 더 가면 도착이었다.그런데 그때 윤현승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 관리사무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현승 씨, 윤현승 씨 댁의 화재경보기가 울렸어요. 저희가 바로 확인하러 갔는데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요. 혹시 가족분들 모두 외출하신 건가요?”윤현승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설아림이 집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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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윤현승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지민아, 왜 그렇게 날을 세워? 아림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커가는 모습을 지켜본 애잖아...”설아림은 소파를 짚고 일어나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됐어요. 제가 나갈게요.”설아림이 떠나려 하자 윤현승은 다급히 다가가 설아림의 팔을 붙잡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발목까지 다쳤는데 혼자 어디를 간다는 거야?”설아림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현승은 고개를 돌려 강지민을 바라보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집은 내가 내 돈으로 산 거야. 그러니까 내게는 안방을 누구에게 내줄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넌 반대할 권리가 없어.”강지민은 어이가 없었다.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윤현승은 자신의 모든 재산은 강지민과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며 강지민은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지금은 안방을 누가 쓸지 결정할 권리조차 없다고 했다.더는 참을 수 없었던 강지민은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갈아 신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본 윤현승이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강지민은 마치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윤현승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 집은 당신 집이고 내게는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다면서요? 그러면 내가 나가서 살면 되겠네요.”윤현승은 강지민이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혼 후 강지민은 윤현승의 말이라면 늘 고분고분 따랐다. 그래서 윤현승은 결혼 전의 강지민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는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윤현승은 한숨을 쉬며 다가가 강지민을 달래려고 했다.“고작 안방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림이가 우리랑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 정도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강지민은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윤현승과 계속 다투고 싶지 않아 그대로 몸을 돌려 집을 나섰다.“강지민!”윤현승이 쫓아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설아림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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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경희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은 강지민은 마음을 놓았다.그러나 강지민은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 할머니는 체내에 담이 쌓여 기혈의 순환을 막고 있어서 언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외출하실 때는 꼭 가족들과 함께 다니세요.”문경희는 웃으면서 말했다.“오늘은 내가 산책 좀 하려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거야. 평소에는 가족들이 너무 잘 챙겨줘서 혼자 외출하지도 못하게 해. 우리 애들은 아주 착해서 다들 효성이 지극해. 그보다 아가씨 이름이 뭐야? 연락처 좀 알려줄래? 밥이라도 사주고 싶어서 그래.”강지민은 문경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침을 놓아야 하고 그래야만 재발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하며 휴대폰을 꺼내 문경희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저는 강지민이라고 해요. 만약 다음에 또 몸이 안 좋으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제가 침을 놔드릴게요.”강지민의 연락처를 알아낸 문경희는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마워. 지민아, 앞으로 필요하면 꼭 너한테 연락할게. 참, 결혼은 했니? 안 했으면 우리 손자를 소개해 주고 싶은데.”강지민은 너무도 적극적인 문경희의 태도에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 할머니. 저는 출근해야 해서 이제 가봐야 하는데 혼자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겠어요?”문경희가 대답했다.“그럼. 지금 당장 가족한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게. 얼른 출근하러 가봐.”강지민은 문경희가 괜찮아 보이자 마음을 놓고 떠났다.문경희는 강지민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강지민을 데리고 가서 공세혁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그러나 그런 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것이다.우선 첫 번째로 할 일은 공세혁을 강성에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문경희는 휴대폰을 꺼내 공세혁에게 문자를 보냈다....강지민은 회사에 도착한 뒤 구상엽을 만나러 갔다.구상엽은 강지민에게 동료들을 소개해 주었다.5년이 흐른 지금 연구개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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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설아림은 강지민의 태도에 기가 죽은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현승은 강지민이 날을 세우며 날카롭게 반박하자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왜 아림이한테 그러는 거야? 아림이는 우리랑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잖아.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인데 나랑 같이 밥 좀 먹는 게 뭐가 어때서? 너야말로 처신 좀 잘해. 다른 남자들이랑 거리를 둬야지.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해서 네가 이렇게 변했나 봐.”강지민은 윤현승과는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업무 때문에 부른 것도 아니고 이런 시시한 일로 시비만 걸고 있으니 더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래서 강지민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윤현승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지민의 팔을 붙잡았다.오늘의 강지민은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몸매를 감싸는 옷에 머리는 묶어 올렸고 이목구비와 쇄골은 또렷하게 드러나 예전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마음이 약해진 윤현승은 더는 강지민을 나무랄 수가 없어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제 일 때문에 나한테 화가 나서 일부러 이러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다 설명했잖아.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이렇게 하자. 우리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화해하자.”지난 보름 동안 윤현승은 설아림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설아림이 임신 중이라 포옹과 키스 이상은 할 수가 없었다.예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변한 강지민을 보자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강지민도 회사에서 윤현승과 크게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 운영과 재무 상황을 파악하려면 윤현승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결국 강지민은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윤현승과 함께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윤현승은 비서에게 새 도시락 하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설아림이 먹던 것과 똑같은 도시락을 보자 강지민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러나 오후에도 일을 해야 했고 임신 중이라 끼니를 거르면 입덧이 더 심해질 수 있었기에 억지로 몇 입 떠먹었다.윤현승은 강지민을 달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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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지민은 윤현승을 흘겨보며 물었다.“어머님이 당신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해주신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당신은 어머님의 성격을 참을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걸 다 참아줄 의무가 없어요. 어머님이 나를 존중한다면 나도 어머님을 존중해요. 반대로 어머님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어머님께서 며느리인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는 당신 본가에 가지 않을 거예요. 가봤자 어머님 기분만 나쁘실 테니까요.”“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윤현승은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세상에 시어머니에게 효도하지 않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지민아,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얼마나 속상할지 생각 안 해봤어?”강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효도는 아들인 당신이 해요. 나는 이제 일하러 가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뒤 강지민은 사무실을 나섰다.윤현승의 얼굴은 분노로 하얗게 질렸고, 옆에 있던 설아림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설아림은 강지민이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은 몰랐다. 단지 윤현승과 가까운 사이라는 걸 티를 냈을 뿐인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윤현승과 싸우고 심지어 오미경까지 적으로 돌렸으니 말이다. 이러다 집에서 쫓겨날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걸까?설아림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윤현승을 안타까워하는 척하며 말했다.“오빠, 언니는 참 철이 없네요. 오빠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먹여 살리는데도 만족할 줄 모르잖아요. 제가 예전에 말했듯이 너무 빨리 달래주면 안 돼요. 그러면 버릇만 나빠질 거예요.”윤현승은 그제야 설아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조금 전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달래주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강지민이 더 성질을 부렸을 것이다.설아림은 윤현승의 표정이 좋지 않자 자신의 말이 먹혔음을 알아차렸다.설아림은 이어서 말했다.“이번 기회에 언니를 좀 혼내는 게 어때요? 일단 카드부터 정지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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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강지민은 남자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김순자는 당장 수술을 받아야 했고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강지민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할머니께서 다치셔서 수술 비용이 필요해요. 지금 600만 원이 부족한데 혹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서요.”강지민은 상대가 자신을 사기꾼으로 오해할까 봐 걱정되어 급히 덧붙였다.“제 신분증 사진을 보내드릴게요. 차용증도 쓸 수 있어요. 제발 믿어주세요. 돈을 빌려주신다면 반드시 갚을게요...”남자는 덤덤히 말했다.“계좌 보내주세요.”600만 원은 곧바로 입금되었다.강지민은 감사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수술비를 냈다.병원에서 기다리는 두 시간 내내 강지민은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만약 김순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김순자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래도 강지민을 매우 아껴주었다.강지민은 부모 없이 컸지만 그래도 또래 여자아이 못지않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언제나 새 옷을 입었고, 머리도 단정하게 묶고 다녔다.김순자는 강지민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있으면 아까워하지 않고 항상 사 주었다.동네 어른들은 그런 김순자를 보며 종종 놀리곤 했다.“겨우 손녀 하나 키우는데 뭘 그렇게 애지중지해? 나중에 시집가면 남의 집 식구가 될 텐데 말이야. 결국 본인만 손해지. 차라리 친척 집에서 손자를 하나 들여. 그래야 노후가 보장되지.”그럴 때마다 김순자는 웃으며 대답했다.“내 손녀니까 당연히 애지중지해야지. 남의 집 자식을 데려와서 손자로 삼는다고 해도 우리만큼 가까운 사이는 되지 못해. 그리고 나랑 우리 남편은 돈을 손녀에게 남길지언정 남에게 줄 생각은 없어.”사람들은 모두 김순자를 어리석다고 했지만 김순자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강지민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그런 김순자가 침대에 누운 채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편히 자지도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죄책감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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