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주제에 배짱은 좋네.’이승휘는 이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염무현이 너무 나댄다고 생각했다.의사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나 아무리 권위라는 타이틀을 얻고 업계와 환자 가족의 환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말은 감히 내뱉지 못햇다.“사람을 살린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완치해야지. 당신은 아직 멀었어.”이승휘는 분에 차서 반박했다.“그럼 질문 하나 할게요. 무슨 독인지는 알아요?”염무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승휘는 자신만만해서 말했다.“이봐, 모를 줄 알았어. 그냥 아무렇게나 다 때려 박은 거지. 성공할 확률이 로또 당첨될 확률보다 낮아요. 행운의 여신이 한 사람만 예뻐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무모하게 운을 믿다가 성공이라도 하면 내가 이름을 거꾸로 쓸게요.”공혜리는 이런 권위에 철저히 실망했을뿐더러 너무 역겹다고 생각했다.“믿음을 저버린 사람이 맹세는 무슨, 그러다 웃음거리가 되는 수가 있어요.”이승휘가 순간 얼굴을 붉히며 눈을 부릅뜨고는 큰소리로 반박했다.“아까는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별거 아니야. 이 늙은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네.”염무현이 한편으로 정확하게 침을 놓으며 말했다.“그럼 두손 두발 다 들게 해주지.”“당신이 무슨 수로?”이승휘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염무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 독은 뱀이나 지네로 만든 고독(蠱毒)입니다. 기생충 비슷한 독 벌렌데, 심맥에 숨어들어 정기와 피를 빨아먹어요. 그 때문에 뇌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돼서 쓰러진 겁니다."이승휘가 바로 반박했다.“헛소리하지 마요. 독벌레는 무슨,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건 미개한 사람들이 교육받기 전에 쓴 소설일 뿐이에요. 소설 작가들이 허투루 쓴 내용을 믿으면 안 되죠. 다를 들었죠? 진짜 광대가 따로 없다니까요. 사기꾼이야 아주.”공혜리가 진지하게 말했다.“무현 님, 저는 무현 님을 믿어요. 무현 님이라면 아빠를 믿고 맡길 수 있어요.”이 말은 이승휘를 대놓고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이승휘는 잔뜩 약
두 눈은 좁쌀보다도 작았고 입을 벌린 채 갈라진 까만 혀를 날름거리며 쓱쓱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는 보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했다.“뱀, 진짜 뱀이다!”유쟁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작은 뱀은 놀란 듯 갑자기 몸에 난 작은 구멍에서 빠져나와 몸을 움츠리며 튕겨 올라 다른 데로 도망가려고 했다. 이렇게 작은 것이 도망가면 거의 찾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이때 염무현이 유리병을 들어 이를 받아서 마개를 닫았다. 뱀은 유리병 안에서 여기저기 막 뒹굴었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공혜리가 얼굴이 사색이 돼서는 물었다.“무현 님, 이게 뭔가요?”염무현이 유리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황금빛 뱀으로 만든 고독이라고 해서 금사고독이라고 하죠. 고독을 내린 사람은 금사의 알을 물이나 음식에 섞어 무방비 상태인 피해자의 뱃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 알이 뱃속에서 부화되는 날이면 금사고독이 되는 거죠.”“역시 누군가 우리 아빠를 해치려고 손을 썼어.”공혜리는 눈빛이 매서워지더니 차가운 살기를 뿜어냈다.“손을 씻었는데도 가만히 놔두지 않네. 누가 한 짓인지 찾아내면 내가 반드시 부숴버릴 거예요.”김범식이 험악한 말투로 말했다.“아가씨, 조사되면 바로 나한테 알려주세요. 내가 직접 죽일 거예요.”이때 공규석의 눈동자가 몇 번 움직이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여기가 어디야? 나 어떻게 된 거야?”공혜리가 다급하게 침대맡으로 달려가더니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아빠, 깨어나셨네요. 정말 너무 다행이에요. 꼬박 한 주를 인사불성으로 쓰러져 계셨어요.”“혜리야, 울지 마. 아빠 이렇게 살아 있잖아.”공규석은 그런 딸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어렴풋이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염라대... 무현 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흥분한 나머지 염라대왕이라는 네 글자를 입 밖에 꺼낼 뻔했다.염라대왕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를 뒤흔들만한 이름이었다. 나쁜 사람은 이 이름을 들으면 혼비백산했고 재벌은 이 사람 앞에서
“앞으로 계속 어려운 사람을 돕고 착한 일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제가 오래오래 장수하게 해드릴게요.”염무현이 말했다.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이 말을 의심하지 못했다. 염무현의 뛰어난 실력으로 그들 모두를 놀래켰다.공규석이 다급하게 말했다.“무현 님 감사합니다. 교훈 새겨들을게요. 좋은 사람이 되어 사회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이승휘는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이미 염무현에게 반해버린 유재영을 쳐다봤다.이게 바로 의사된 자의 자비를 베푸는 마음이다.염무현은 침을 챙기며 말했다.“쓰러진 시간이 길기도 하고 많은 정기와 피를 뺏겼기 때문에 신체 기능이 조금 안 좋아졌을 거예요. 앞으로도 삼일 정도 쓰러져 있을 거예요. 자체 치유에서 빠질 수 없는 과정이니 걱정할 거 없어요. 3일 뒤에 한번 더 침을 놓으면 완치될 겁니다.”공규석이 다시 하번 인사했다.“무현 님, 살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는 없지만 작은 청이 하나 있으니 무현 님께서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말씀해보세요.”공규석은 자기 딸 공혜리를 쳐다보며 말했다.“제가 쓰러진 동안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집안이 엉망일 거예요. 우리 혜리 좀 신경 써 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죠.”염무현이 흔쾌히 수락했다.공규석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공혜리에게 말했다.“혜리야, 뭐해? 얼른 무현 님께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고.”“무현 님, 감사드립니다.”공혜리는 염무현을 향해 몸을 숙여 인사했다. 허리를 숙이는 동작과 함께 깊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고 은근히 섹시했다.사실 공혜리는 공규석이 왜 이렇게 하라고 하는지 의문이었다. 염무현의 의술이 뛰어난 건 맞으나 의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하지만 공규석이 뭔가 홀로 남은 아이를 부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공혜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염무현이 얼마나 많은 묘수를 가지고 있는지 그녀는 몰랐다. 의술은 그저 그가 잘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공규석이 의미심장하게 당부했다.“무슨 일이 있든 다
서양 의학을 전공하는 자들이 전통 국내 의학을 얕잡아보긴 했지만 염무현은 종래로 서양 의학을 비하한 적이 없었다.그는 의사의 수준에만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의술이 더 좋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가했다. 모두 사람을 구하는 의술인데 굳이 높고 낮음을 가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이승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무현 님, 그게 무슨 뜻인지...”“마음 잘 추스리고 정확한 마음가짐으로 더 열정적으로 의료 사업에 뛰어들어서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구하는게 초심을 잃지 않는 거예요.”염무현이 이렇게 말했다.이승휘가 멈칫하더니 마치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염무현에게 90도 인사를 건네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것 같네요. 다시 한번 너그럽게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그 뒤로 이승휘는 전에 기세등등해서 모두를 내려다보던 습관을 고치고 온힘을 다해 부상자를 돌보고 의학을 연구하는 데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끝내는 국내외에 이름을 알린 진정한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되었다.공혜리는 그런 염무현을 우러러봤다. 예쁜 얼굴에 볼드체로 감탄 두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았다.염무현의 의술이면 분명 군림하면서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굴복시켜도 될텐데 오히려 그는 덕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성에 이러한 그릇이라니,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오늘 일은 여러분들이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공혜리가 유재영과 그 일행에게 말했다.“아무도 아빠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밖에 알리지 마세요. 대외로는 아직 혼수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아셨죠?”이는 고독을 내린 진범을 마비시켜 자기가 성공한 줄 알고 먼저 모습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였다.공혜리의 상벌이 명확한 성격에서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이런 일에 꽤 익숙하다는 것이었다.유재영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공혜리 씨, 걱정하지 마세요. 입 함부로 놀리지 않겠습니다.”너무 창피한 일이라 원래도
“골든 파트너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양희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 위치를 지켜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양씨 집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 모르죠?”서아란이 눈을 부릅뜨고는 주저하는 양희지를 한탄하며 언성을 높였다.“그래서 이 기회에 한층 더 올라가려는 거 아니야. 공씨 집안이 양씨 집안에 대한 호감도를 보면 어려운 거 아니야. 3년씩이나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우리를 챙겨준 게 제일 좋은 증거 아니겠니?”양희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까지도 나는 공 씨 집안이 왜 우리 집안에 자꾸만 기회를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모험할 수가 없고요.”“이게 왜 모험이야?”양문수도 뭘 좀 안다는 듯이 잘난 척하며 분석했다.“힘써 싸우면 자전거가 오토바이가 되는 거고 실패하면 그냥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되지. 손해 볼 거 없잖아. 공씨 집안도 우리 양씨 집안의 발전 비전을 좋게 봤거나 너에게 흥미가 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우리를 키우려던 생각일 수도 있어. 아무렴 어쨌든 이건 우리에게 둘도 없는 기회야.”서아란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러게. 네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기회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게 되어 있어. 맞다. 친구 통해서 상황 좀 알아봐.”양희지도 탐나는 건 사실이었다. 골든 파트너 기회를 얻으면 매년 몇억, 몇십억의 프로젝트가 오갈 것이고 아무렇게나 벌어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들어온다.공씨 집안의 화려한 차량 행렬과 하늘을 찌를 듯한 사무 청사는 양희지가 분투하는 최종 목표였다“알았어요. 가서 준비할게요.”양희지는 병실에서 나왔다. 가족을 돌볼 수 없는 게 마음에 걸려 카운터로 향했다. 엄마와 동생들 앞으로 잔고라도 넣어 보상해 주고 싶었다.별장식 병실에서 공혜리는 공손하게 말했다.“무현 님, 차를 배정해 호텔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아니에요. 처리해야 될
마침 양희지가 입원 병동에서 나오다가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게 되었다.“염무현?”양희지가 그 실루엣을 정확히 확인하려던 때에 상대는 이미 코너를 돌아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염무현일 리가 없잖아!”VIP 병동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고 전부 유명 인사나 재벌가 사람들만 입원할 수 있었다.분명 그녀가 너무 피곤하여 착각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염무현이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때려 다치게 한 것에 관해 양희지는 일단 저녁에 있을 자선 행사 파티가 끝난 뒤에 다시 염무현을 찾아가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여하간에 회사 일이 더 중요했던 터라 눈앞에 차려진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반드시 회사 일에만 매진하여 차질이 없이 해결해야 했다.“희지니?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니? 어디 아픈 거니?”손에 약봉지를 든 어르신 한 명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스크를 벗었다.여전히 생각에 빠져 있었던 양희지는 갑자기 나타난 어르신에 화들짝 놀랐다. 상대를 확인한 그녀는 바로 입을 열었다.“아, 아저씨. 전 아는 사람 병문안을 왔어요.”어르신은 바로 우현민이었다. 그녀의 말에 우현민의 얼굴 가득했던 걱정이 사라지고 어느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희지야, 무현이가 없는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이제 반년이 남았으니 조금만 버티면 다시 행복해지겠구나!”양희지는 순간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네? 반년이라니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우현민은 바로 정색했다.“반년 뒤에 무현이가 출소하는 날이잖니. 무현이가 출소하기만 하면 더는 걱정할 것 없단다. 명문대를 나왔으니 널 먹여 살리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혹시... 무현이가 언제 출소했는지 기억... 안 나시는 거예요?”“괜찮다, 아저씨는 널 탓하지 않아. 분명 일이 바쁘고 힘드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지. 괜찮다. 아저씨가 기억하고 있으니 무현이 출소일이 되면 내가 알려주마.”양희지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
“우현민 그 늙은이는 기껏해야 60대 초반이지 않았니? 왜 그 나이에 갑자기 치매라는 거니?”그러자 양희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내가 어떻게 알아? 아, 됐어. 그만 말해. 어차피 이혼도 했는데 우리랑 아무런 상관없는 남이야. 차차 알게 되겠지. 우리가 걱정할 건 아니라고 봐.”“무현이 그놈이 왜 우현민 그 늙은이를 찾아가지 않은 거지?”서아란은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무현이 그놈이 지금 서해에 남아 있는 친척이라곤 우현민 그 늙은이밖에 없는 거지?!”옆에 있던 양문수가 바로 입을 열었다.“왜 안 찾아갔겠어? 쪽팔리니까 안 간 거지! 감방에서 4년이나 썩은 것도 모자라 이혼까지 당했는데 찾아가봤자 욕만 들을 게 뻔하잖아?”서아란은 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심지어 표정 관리도 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희지야, 여긴 네 아빠만 있으면 되니까 얼른 가봐. 회사 일이 더 중요하잖니.”양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난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해.”“알았다니까. 얼른 가!”서아란은 이미 그녀를 쫓아내는 듯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양희지가 병실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바로 침대에서 펄쩍 내려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여보, 기회가 왔어요! 우현민이 지금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있잖아요. 무현이 그놈 출소한 것도 기억 못 하고 있으니 우리가 가서 한번 돈 좀 챙겨야죠. 돈만 있으면 무현이 그놈 감형 가능하다고 말하면 넘어올 거예요.”그러자 양문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속을까?”“타이밍이 제일 중요하죠! 지금이 마침 우리가 움직일 타이밍이고요. 분명 속아 넘어올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똑똑한데 설마 치매 걸린 늙은이 한 명 못 속이겠어요?”서아란은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양문수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하지만 그 늙은이한테 돈이 있을까? 전에 무현이 그놈 어떻게든 형량 줄여보겠다고 집도 팔고 사채도 끌어다 써서 빚이 한가득이잖아! 괜히 힘들게
염무현은 순간 당황함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삼촌 가족이 이사를 하셨나?'중년의 아줌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원래 여기 살던 사람 중에 대학교수가 있다고 하던데, 그 사람이 우리한테 집을 팔았어요.”‘대학교수? 그럼 삼촌 집이 맞잖아!'염무현은 서둘러 물었다.“그게 언젠지 기억하세요?”“4년 전이요! 정확히 말하면 4년은 안 됐어요. 한두 달 정도 차이가 있을 거예요. 급하게 내놓은 집이라 집값이 비싸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바로 계약을 했죠.”염무현은 또 물었다.“그럼 어디로 이사를 하셨는지 혹시 아실까요?”아줌마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기억에... 정진 영천인가? 그쪽으로 이사를 한다고 들었던 것 같네요!”“정말요?”염무현은 믿기지 않았다.우현민의 가정 형편이라면 새집으로 이사를 하여도 더 좋은 집으로 가야 마땅했다. 게다가 원래 살던 집까지 팔았으니 당연히 고급 아파트 쪽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그 정도는 거뜬히 부담할 수 있는 정도였다.“언제 한번 그쪽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가족들을 보았어요.”아줌마는 확신하며 말했다.“정진 영천 서쪽 끝에 있는 마을에 사는 거 같더라고요. 우연히 만나거라 인사도 했는데 거기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정진 영천은 10년이 넘도록 철거가 완료되지 않은 마을이었고 얼마나 낡고 황폐한지 짐작할 수 있다.원래 있던 주민들도 더는 견디지 못해 떠나 버린 곳이기도 했다.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고마워요, 아주머니. 실례했네요.”“아이고, 괜찮아요! 4년 동안 집값도 얼마나 올랐는데요. 전 이 집을 참 잘 샀다고 생각하거든요.”아줌마는 웃으며 말했다.염무현은 여전히 의구심을 마음속에 품고 단지 밖으로 나가 정진 영천으로 가보기로 했다.정진 영천.그곳은 한눈에 봐도 낡고 황폐했고 주위엔 쓰레기와 오수가 가득해 공기 중에 구역질을 나게 만드는 이상한 냄새도 풍겼다.마을 깊은 곳, 제일 안쪽에 있는 집의 대문이 열려있었다.서아란은 고가의 밍크코트를 입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