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이해해 주니 임완유는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천우야, 예전에 내가 얼마나 철없었는지 몰라. 자꾸 널 의심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하고... 정말 나한테 화 안 나?”“화났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이혼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거 다 알아.”그 말을 들은 임완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고마워!”“계속 칭찬해 줘. 난 체력도 정말 좋잖아.”“뭐야? 이런 사람이었어?”“왜? 난 그냥 체력 좋다고 한 건데. 설마 딴생각한 거 아니지?”임완유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워했다. 오늘만큼은 회사 대표다운 모습이 아니라 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수줍어 보였다.오해를 풀고 나서 예천우는 외부에 그들의 관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당부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헤어진 사이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한편, 그 시각 임씨 저택에는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앞장선 청년은 건장한 체격에 기세가 매서웠다.“임선호! 그 멍청한 놈 당장 끌고 나와!”화가 잔뜩 난 허광이 소리치며 저택으로 들어섰다.임선호를 모욕하는 소리에 유은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허씨 집안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 섣불리 대응할 수도 없었다.“선호는 지금 집에 없어요. 내가 그의 어머니인데 무슨 일이죠?”“너 같은 사람이 알아서 뭐 하게?”허광은 비웃으며 말했다.“경고하는데 당장 임선호와 허가연을 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거야.”유은수는 모욕을 당하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아들을 위해 침착하게 말했다.“도련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동생분 가연 씨는 여기 없어요.”“가연이가 없다고? 내가 가연이 오빠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그건... 그게... 그냥 추측한 거예요.”“추측? 웃기지 마! 우리 허씨 집안이 강해서 네 아들이 내 동생한테 빌붙은 거 아니야? 하지만 너희 집안 수준으로 그럴 자격이 있을 것 같아?”허광은 조롱 가득한 표정으로 침을 튀기며 유은수를
허씨 가문에서는 허가연이 임선호와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임연 그룹과 임선호를 철저히 조사했다.조사 결과 임선호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물론 임씨 집안이 요즘 조금씩 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허씨 집안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지금 동성의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손씨 집안의 아들이 허가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 시점에 이런 절호의 기회를 하찮은 임씨 집안 때문에 놓칠 수는 없었다.임국종은 얼굴이 붉어졌고 참기 힘든 굴욕감을 느꼈다. 차라리 나서지 말 걸 그랬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천우를 쫓아낸 이후로부터 이런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잦아져 집안의 위신마저 다 구겨진 것 같았다.임강도 유은수를 변호하려고 나서려 했지만 결국 조용히 서 있었다. 괜히 나섰다가 자기도 함께 모욕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씨 가문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그 순간, 문득 예천우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당당하게 나서서 이들을 막아냈을 것이다.과거 예천우가 여러 번 나서서 임씨 집안을 위해 소란을 해결해 줬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모두가 예천우가 허풍을 떤다고 여기며 오히려 그를 원망하고 경계했었다.차라리 모욕을 당할지언정 예천우가 무리수를 두는 건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그때를 되짚어보니 예천우가 했던 말과 행동이 전부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자랑할 필요조차 없었던‘용왕’의 신분도 그렇고 그의 능력이라면 과거의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진심을 인제야 알아채고 후회하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이제 예천우는 양체은과 결혼할 것이고 임씨 집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임씨 가문의 위상까지 추락해버렸다는 현실이 더욱 가슴을 짓눌렀다.“뭐야, 아직도 말하지 않을래? 그래, 그럼 네놈들이 자초한 일이니
허가연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그녀가 임선호에게 시선을 돌리자 임선호는 다급하게 말했다.“가연아, 저 말 듣지 마. 난 아무렇지도 않아.”그러자 허광이 비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도와주지.”허광은 꽤 수준 높은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허가연은 더 불안했다. “오빠, 제발 그만둬! 나 오빠랑 같이 갈게.”“가연아...!”“선호 오빠, 괜찮아요. 저 먼저 가 있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기다릴게요.” 허가연이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연아...!”임선호는 뭐라도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허광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향하며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하지만 임선호는 끝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가연아, 기다려. 내가 꼭 동성으로 갈게.”“기다릴게요.”허가연은 돌아서며 허광 앞에 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 선호 오빠한테 손대면... 나 집에 절대 안 돌아갈 거야.”허광은 비웃으며 말했다. “흥, 이런 하찮은 놈한테 내가 굳이 손대줄 필요도 없지. 다만, 이 자식이 동성에 오기라도 하면 그땐 각오해야 할 거야.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그리고 허광은 임씨 집안을 향해 쏘아붙였다. “그리고 너희, 이 녀석 관리 잘해. 감히 허씨 집안의 심기를 건드리면 다 죽게 될 거야.”그러고는 허광은 허가연을 데리고 떠났다.허가연은 돌아가는 내내 발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임선호는 굳은 표정으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자책에 빠졌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해놓은 게 없고 능력도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빼앗기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임선호는 땅에 무릎을 꿇고 주먹을 세게 내리쳤다. 그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그 모습을 본 유은수는 마음이 아파 얼른 다가왔다. “선호야, 이게 무슨 짓이야! 피 나잖아. 손 줘봐
원래 임완유는 이렇게 빨리 집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지만 임선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이 기회에 상황을 좀 더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유은수가 예천우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나무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엄마, 그 말은 틀렸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가 매번 얼마나 천우에게 의지했는지 몰라. 이번 일은 우리가 천우를 내쫓은 거잖아. 그를 탓할 수는 없어. 내쫓고 싶을 땐 내쫓고 필요할 때는 꼭 있어야만 해? 우리가 천우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봐!”임완유는 목소리를 높이며 따졌다.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임완유는 유은수의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러자 유은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말이 없었다.“전화 한 통을 받지 않더니. 왜 갑자기 돌아온 건데?”유은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 아빠와 선호가 허광 그 자식에게 무시당할 때 너는 어디 있었어? 다른 남자가 네 동생 아내를 뺏을 때 너는 어디 있었냐고? 가족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비난해?”유은수의 질문들이 쏟아지자 임완유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집에 돌아왔을 뿐인데 왜 상황이 이리 복잡하게 얽혔는지. 그리고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임선호의 모습을 보니 더욱 걱정스러웠다.그의 손에 상처가 나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유은수와 논쟁할 여유가 없었다.“선호야, 대체 무슨 일이야? 손은 왜 그래?”“인제야 걱정해? 방금까지 뭐 하고 있었던 거야?”유은수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네가 좀 더 겸손하게 행동하고 예천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유은수는 또다시 예천우의 핑계를 댔다. 그래서 임완유는 유은수와 말도 더 이상 섞기 싫었다. 그때 임선호가 나서서 말했다.“누나, 괜찮아. 이건 우리 잘못이야. 형부와는 상관없어”“뭐라고? 다 예천우 탓이야! 네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때 예천우는 어디 있었는데
만약 예천우와 화해하지 않았다면 임완유는 힘들겠지만 여전히 이 일을 잘 해결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천우가 돕기로 했으니 자신감이 생겼다.“정말이야, 누나? 혹시 형부한테 부탁하려는 거야?”임선호가 바로 물었다. 예천우한테 부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임완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 누가 듣고 있을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 줘.”“응, 알겠어.”임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임완유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그때 임강이 유은수를 데리고 다가왔다.“완유야, 방금 네 엄마가 너무 흥분했나 봐. 천우에게 그렇게 말한 건 잘못했어.”“그래, 방금은 엄마가 좀 지나쳤어. 미안해.”유은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었다.임완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지나간 일이니까. 하지만 앞으로 천우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그래, 약속할게. 그런데 선호는 네가 꼭 도와줘야 해. 가연이랑 잘될 수 있도록 말이야.”유은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임완유가 이 일을 해결하려면 예천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알겠어. 방법을 생각해 볼게.”“생각만 할 게 아니라 확실히 도와야지.”“그걸 어떻게 장담해?”임완유는 난감해했다.“왜 장담 못 해? 네가 예천우를 다시 돌아오게만 하면 문제는 거의 해결된 거나 다름없잖아.”유은수가 성에 차지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임완유는 한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천우한테 부탁할 생각 없어. 그럴 가능성도 없고. 게다가 천우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거야.”“그게 왜 소용없어? 가서 제대로 부탁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내가 부탁해 봤는지 안 해봤는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임완유는 차갑게 말을 내뱉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남겨진 임강과 유은수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했다.이게 무슨 일인가? 임완유의 말
“무슨 일인데요?”예천우는 유이안에 대한 인상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예전의 행실 탓에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이 여자가 예쁜 얼굴과 좋은 몸매를 가졌어도 말이다.유이안은 조금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제가 형부를 찾아온 건 사실 언니 때문이에요.”예천우는 그녀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완유와 저 사이의 일은 이안 씨가 상관할 게 아니에요. 딱히 할 말 없으면 이만 갈게요.”“잠깐만요!”유이안이 급히 외쳤다.“형부, 저도 알아요. 언니네 가족이 형부한테 많이 지나쳤다는 걸요. 사실 저도 거기에 끼어 있긴 했죠...”그녀는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당시 상황이 꽤 부끄러웠고 거의 형부에게 넘어갈 뻔했으니.“하지만 언니는 형부에 대한 마음이 변한 적 없어요.”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알아요.”“그런데 왜 언니를 버리려고 해요? 그 이상한 양씨 집안 딸이랑 결혼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유이안은 임완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그건 이안 씨가 알 바 아니죠. 우리 사이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예천우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유이안의 호의는 고맙지만 이 일에 더 끼어들면 오히려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두 사람은 약속한 길옆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얘기하기는 괜찮았다. 예천우는 곧 말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려 했다.“형부!”유이안이 다급히 불렀다. 임완유가 이렇게 절망하는 걸 눈 뜨고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예천우는 그녀를 무시하고 차에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위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야, 거기 서!”예천우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공항에서 마주쳤던 그 얼간이 김준이었다. 보아하니 이제 완전히 회복된 듯했다.게다가 회복한 것뿐 아니라 실력이 한층 더 향상하여 화경 초기에 도달한 모양이었다.그간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이번 부상 덕에 더 빠르게 경지를 돌파한 것 같았다. 그
지난번에 크게 다친 김준은 자신만만하게 돌아왔다. 분명 실력을 더 키웠고 이번에는 예천우를 이길 자신이 있어 보였다.“지난번에는 기습을 당해서 내가 다쳤지만 오늘은 나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될 거야.”김준은 더 이상 유이안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예천우가 자기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차에 올라타려 하자 김준은 바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유이안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그러자 예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김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예천우는 차갑게 말했다.“비켜.”“싫어!”“나랑 제대로 한판 붙기 전에는 안 비켜줄 거야. 네가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겠어.”김준은 이번에 화경 초급에 도달했으니 상대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를 이기고 집안으로 돌아가면 가족들도 기뻐할 것이었다.자신은 이제 겨우 이 나이에 화경 경지에 도달했으니 천재 중의 천재로 인정받을 게 분명했다. 장차 김씨 가문의 유망주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그때가 되면 명예와 찬사가 넘칠 것이고 유이안도 스스로 자기에게 시집오려 할 것이다. 그러자 예천우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그만 비켜. 넌 내 상대가 아니야.”“뭐?”“네가 내 상대가 안 된다고.”“지난번에는 내가 방심해서 기습당한 거지. 이번에는 내 실력이 더 강해졌어. 널 이기는 건 시간 문제라고!”김준은 예천우가 너무 자신만만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누가 저 녀석에게 이런 헛된 자신감을 주는 건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래, 그럼 어디 한번 덤벼봐.”예천우는 결국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김준은 그를 보내주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좋아,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내가 먼저 공격하게 해줄게. 왜냐하면 내가 먼저 나서면 넌 제대로 반격도 못 할 테니까.”김준은 오만하게 말했다. 그러자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네가 먼저 해. 나중에 또 기습당했다면서 찾아오면 귀찮으니까.”“지난번엔 진짜 기습당한 거야. 이번에는 그런 말
“속았다고?”예천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아니야? 네가 자꾸 나를 먼저 공격하라고 유도한 거 다 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래서 내가 방심하면 기습하려고! 이번에도 내가 조심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또 당할 뻔했네.”김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예천우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그래, 네 말이 맞다 치자.”“흥, 역시 내가 다 알아맞혔네!”“이번엔 안 속을 거야. 한 가지 알려줄 게 있는데 난 원래 몸이 남들보다 튼튼해. 같은 레벨에서는 나랑 맞붙을 사람 없다고. 그러니까 네가 화경 초급이라 해도 결국엔 내가 이길 수밖에 없어.”김준은 자부심 넘치게 말했다. 그러자 예천우는 웃음을 참으며 한마디 했다.“누가 내가 화경 초급이라 그랬어?”“그게 뭐가 중요한데? 딱 보면 답이 나오는데. 네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내 뛰어난 두뇌로 다 계산 끝냈거든. 어때? 대단하지?”김준은 뿌듯한 표정으로 물었다.“말이 참 많아...”예천우는 지친 듯 고개를 저었다.“됐고 시끄러워.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덤벼!”“또 유도하려는 거지? 네가 먼저 공격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이번엔 안 속아. 내가 먼저 손을 쓸 거야!”김준은 허세 가득한 눈빛으로 예천우를 째려보더니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예천우가 겁먹은 것처럼 그대로 서 있는 걸 보자 더 기세등등해졌다.“꺼져!”예천우는 덤덤하게 말하며 손을 휘둘렀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진기가 엄청난 속도로 손끝에 모였다.방금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막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김준은 자신만만하게 이길 줄 알았지만 밀려오는 강력한 기운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했다! 이 녀석 화경 초급이 아니었어! 큰일이네!’김준은 순간 겁을 먹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퍽!”예천우의 한 방에 김준은 십여 미터나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피를 한 번 토하더니 김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예천우를 쳐다봤다.‘아니, 이 파워는... 화경 후급
그런데도 조태영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인지한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도 대표님, 도민현 대표님, 저는 조태영입니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주세요.”스피커폰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들렸다.조신우는 그 말을 듣자 그대로 얼어붙었다.‘지금... 지금 방금 아버지가 뭐라고 부른 거야? 도 대표님?’조태영은 도민현의 목소리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설마... 설마 저 사람이...’기억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지자 조신우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인물 강흥시를 뒤에서 조율하는 진짜 실력자... 그가 바로 도민현이었다.‘방금 날 걷어찬 바로 사람이 도 대표님이었어. 말도 안 돼. 내가 도 대표님한테...’듣는 말에 의하면 도민현도 엄청나게 흉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했고 지금 용왕도 저런 태도로 조시우를 혼내고 있었다.그러자 조신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고 두 볼은 이미 부어올랐으며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 시 말을 잃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던 조신우가 지금은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온몸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 모습은 과거의 오만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단지 용왕이라는 말에 조신우는 오줌을 싸고 그의 아버지 조태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도민현에게 빌듯이 전화를 걸고 있다니... 이제동은 예천우가 어쩌면 아주 무서운 배경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조신우의 아버지는 아주 다급한 어조였고 심지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도 대표님을 불렀어. 잠깐만, 도 대표님이라고?’이재동과 그의 가족들은 지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도민현이라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강흥시
“뭐... 뭐라고요?”조신우는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고 그는 지금 아버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집안이... 멸문을 당할 위기라고? 도대체 누구한테?’그리고 그 순간 한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다.‘용왕님?’조금 전 도민현이 예천우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았다.‘설마... 설마 진짜 저 사람이? 아니야...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가 없어.’조신우는 그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버지, 그... 용왕님이라는 사람이 누군데요? 정체가 뭐예요?”수화기 너머에서 조태영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차분히 말했다.“용왕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떠도는 존재야. 나도 용왕님을 직접 본 적은 없어. 하지만 확실한 건 용왕님은 용문이라는 조직의 주인이자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거야. 지금 도민현조차 용왕님의 명령을 받들고 있잖아.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용왕이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나이도 굉장히 어리다고 하더군...”조태영의 말이 이어질수록 조신우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얘졌다.‘젊고 강하고... 도민현도 복종하는 인물이라고...’그리고 조신우는 방금 도민현이 예천우를 향해 말했던 호칭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용왕님... 그러면... 그렇다면... 설마?’조신우는 몸을 덜덜 떨며 예천우를 바라봤고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 아버지, 설마... 제가 건드린 사람이 그... 그 용왕이라는 분...은 아니겠죠?”수화기 너머로 조태영은 날이 서도록 몰아쳤다.“지금 네 말투가 심상치 않네. 신우야, 제발 네가... 용왕님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겠지?”조신우는 그 말에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그게... 제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조신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조태영은 화가 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조신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두려움에 떨며 예천우를 올려
예천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고 그는 자기편에게는 언제나 후한 사람이었다.도민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고 감탄을 숨기지 못하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45년산이라니요! 그건 와인계의 전설입니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예전에 경매에서 6억 넘게 낙찰된 적도 있었습니다.”그 대화를 듣던 조신우는 완전히 얼이 빠졌고 평소 와인을 즐기던 그였기에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 전설 같은 와인이 예천우 손에서 툭 튀어나온다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게다가 아까 예천우가 꺼낸 술들과 그 분위기까지 생각해보면...‘이 자식은 정말 돈 많은 놈일지도 몰라. 아마 아버지 정도는 나서야 수습이 될지도 모르겠어...’이재동과 그의 가족들도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수천만 원을 훌쩍 넘는 와인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남자... 그게 바로 예천우였다.그건 단순히 돈이 많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 위치에 있으니 그런 걸 선물 받는 것이고 당연히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보통 상황이었다면 그런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앞에서 직접 술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혹시 이 예천우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닐까?’ 이재동은 조심스레 딸을 바라봤다.그런데 이신향은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었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그걸 본 순간 이재동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내가... 내가 어쩌면 정말 큰 실수를 한 건지도 모르겠군. 아까까지 예천우를 얼마나 무시하고 얼마나 면박을 줬던가. 이대로는 안 돼. 어떻게든 관계를 바로잡아야 해. 꼭!’그런데 그 순간 조신우의 휴대폰이 울렸고 갑작스러운 벨 소리에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예천우도 시선을 돌려 바라보자 조신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 자동으로 울린 거예요... 제가 건 게 아니라... 진짜라고요...”그는
도민현은 처음에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이 피곤해서 착각한 게 아닐지 잠시 의심했지만 그의 기억력도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단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을 뿐인데도 용왕님의 인상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다시 본다고 해도 절대 헷갈릴 리 없었다.더구나 지금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직원 덕분에 시야가 확 트였고 그는 곧 확신에 찼다.‘틀림없어. 저분은... 용왕님이야!’순간 그의 얼굴에는 흥분이 스치듯 지나갔다. 용문 사람들에게 있어 용왕이란 존재는 신비롭고도 절대적인 인물이었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전설과 같은 존재였다.예천우도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의 시선을 알아채고 조용히 말했다.“음식은 두고 가세요. 경찰은 부르지 말고요. 꼭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다면 식당 대표한테 말하시면 돼요.”“네. 알겠습니다...”직원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룸을 예약한 손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각별히 신경 쓰라는 지시를 이미 여러 번 들은 터였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이상해도 그녀는 절대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이 식당 자체가 천상 그룹 소속이었고 예천우는 그 천상 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였다.그때 도민현은 아무 말 없이 문 앞에서 서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쏟아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용왕님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직원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 뒤에야 도민현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용왕님!”‘용왕?’이재동과 주변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했고 분명히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예천우의 태도와 지금 들어온 도민현의 모습을 보면 그 호칭이 단순한 게 아닌 것 같았다.조신우 역시 당황한 듯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용왕이란 말을 들은 기억은 없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예천우는 도민현을 보고 가볍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
조신우는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고 예천우가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그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그런 상황에서도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며 이를 갈듯 외쳤다.“죽어도... 너한테는 절대 안 빌어!”그러자 예천우는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번엔 네 팔 하나쯤 부숴줘야겠네.”말이 끝나자마자 예천우는 주저 없이 발을 옮겨 조신우의 팔 쪽으로 중심을 이동했다.그러고는 단 한 순간 아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리찍었다.“으악!”이번엔 조신우의 비명이 더욱 뼈를 깎는 듯했고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모두가 혼비백산했다.“안 돼. 그만둬!”이재동이 다급히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옆에 있던 이신향을 향해 소리쳤다.“신향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가서 말려. 지금 당장 멈추라고 해!”하지만 이신향은 아무런 반응 없이 차갑게 말했다.“왜요? 자기가 그렇게 잘난 척하다가 스스로 자초한 거잖아요. 내가 왜 말려요? 천우 씨는 지금 정당하게 싸우고 있는 거예요.”“너... 너 정말 미친 거 아니냐. 내 딸이 이렇게 멍청했던 거야?”이재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이번엔 정말 끝이야... 이번엔 진짜 우리 가족 다 죽게 생겼어!”한지연 역시 표정이 창백했지만 그 와중에 오히려 이선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죽으면 죽죠! 난 더는 저딴 조신우한테 굽히고 살기 싫어요. 누나, 미안해요. 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진짜 일이 터지면 저 혼자 감당할게요.”“감당은 무슨 감당이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조씨 가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봤잖아. 넌 그런 걸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이재동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쳤고 그 시선은 다시 이신향에게 향했다.“신향아,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네가 이 사태를 만든 거라고.”그러고는 예천우를 향해 이를 악물고 외쳤다.“그리고 너, 예천우!
“웃기고 있네.”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예천우를 비웃었다.“너 같은 쓰레기가 뭘 할 수 있겠어? 믿을 수 없으면 한번 해보든가.”예천우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이 멍청이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르네. 이젠 말로 안 통하겠군.’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좋아. 네가 원한 거니까 제대로 맛 좀 보여줄게.”조신우는 속으로 살짝 기뻤다. ‘드디어 이 찌질이가 덤벼오네. 이놈 입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망신당했는데... 지금부터 그 수모를 전부 갚아줄 거야.’조신우는 예전에 자기 돈으로 무술 사부님을 몇 명을 고용해 몇 가지 동작을 배운 적이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수련은 아니었고 훈련도 게을리해 실전 경험이라곤 없었지만 일반인 두셋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일대일이야. 그러니 누구도 우리를 말려서는 안 돼. 무릎 꿇고 빌기 전까진 끝이 아니야.”조신우는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예천우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이재동과 주변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어차피 저 녀석이 알아서 죽겠다는 건데 우리가 말려봤자 괜히 조 도련님만 더 화나게 하겠지...’조신우는 예천우가 정말로 나서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그래. 이걸로 다시 내 체면을 회복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짝!”예천우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서자마자 그대로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너 이 자식... 비겁하게 기습하는 거야.”조신우는 얼굴을 싸쥐며 소리쳤지만 다음 순간 또 한 번의 따귀가 날아들었다.“짝!”이번엔 정면이었다.예천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번엔 기습 아니니까 할 말 없겠지?”조신우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조금 전 따귀는 정말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내가 더 빠르고 강한데... 저 자식은 그저 공부나 하던 놈 아니었어?’그러나 예천우는 멈추지 않았고 이번엔 조신우의 다리를 향해 그대로 발을 뻗었
방 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조혁진 또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도민현이 강흥시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금 도민현이 진심으로 칼을 빼들면... 우리 조씨 가문은 정말 끝장이겠지.’하지만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지? 우리가 용왕이라는 사람을 건드릴 일이 있었나? 조씨 가문이 아무리 무례하다 해도 눈치 없이 그런 인물한테 손댈 리 없잖아...’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전태민 시장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왕 총독님,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왕 총독은 이미 도민현의 힘과 그 뒤에 있는 용문이라는 조직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그는 도민현이 강흥시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 기회를 꼭 살리고자 했다.강흥시가 발전하면 자신의 정치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지금 협상은 잘 되고 있나?”왕 총독이 물었다.전태민은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게...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요약해서 설명했다.그리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도민현이란 그 자식은 뒤에 용왕이 있단 걸 핑계로 아예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너무 오만하고 제멋대로라 제가 직접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경고했습니다. 용왕이 뭐 대단하다고 우리 정부 사람을 흔들려고 하는 거죠? 저희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그 용왕이라는 자식도 좀 혼내려고요.”전태민은 평소 왕 총독이 단호하고 강경한 스타일이라는 걸 알기에 일부러 자신을 강하게 포장하려고 했다.‘이런 모습 보여주면 총독님도 날 인정해 주시겠지.’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왕 총독은 큰소리로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뭐라고? 용왕님을 혼내겠다고? 전태민, 너 지금 제정신이야?”왕 총독의 고함이 너무 커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그 모습을 본 전태민 시장과 간부들은 도민현의 반응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쾌했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건 도민현의 얼굴에 드러난 그 진중하고 긴장된 태도 때문이었다.‘도대체 어떤 존재길래 강흥시에서 잘나가는 이 도민현조차 저리도 조심스러워하는 걸까?’그러던 중 도민현의 입에서 낮고 묵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용왕님, 말씀하십시오.”‘용왕?’방 안에 있던 이들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용왕이라니... 설마 그 용문? 전설적인 비밀 조직이라는 그 집단의 실질적인 우두머리?’그간 소문처럼 떠돌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실체는 아무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도민현의 입에서 직접 그 이름이 나온 것이다.전화기 너머에서 예천우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 대표, 하나 묻자. 장산군 사정 좀 알고 있어? 거기서 제법 영향력 있는 가문이 하나 있다더라. 조씨 가문이라고... 들어봤어?”그 말에 조신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봐봐. 끝까지 쇼하네. 이 전화는... 그냥 자기 친구랑 짜고 치는 거겠지. 곧 들통날 거야.’도민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답했다. “예. 그 가문의 가주는 조태영이라 하고 지역에선 꽤 이름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전화기를 들고 있던 전태민 시장은 조용히 그 이름을 되새겼다.‘조태영이라하면... 조신우의 아버지 아닌가?’옆에 서 있던 조혁진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설마... 아냐... 이건 아닐 거야. 아닐 거야...’그 순간, 예천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그래. 조씨 가문, 그 집안을 내가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다면... 할 수 있겠어?”그 말에 도민현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깟 조씨 가문 정도야 하루 안에 끝장낼 수 있습니다.”“좋아. 그럼 바로 실행해.”예천우는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도민현은 조
조신우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특히 이신향이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봐라. 이게 바로 힘이란 거야.’그 순간 이선우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빌린 돈은 24억이었어요. 갑자기 50억이라니!”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씩씩거렸고 뭔가 이상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돈을 빌려놓고 이자가 없을 줄 알았어? 내가 대신 갚은 돈이 40억이 넘는데 이 정도 이자도 못 붙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딴 데다 굴렸으면 지금쯤 2배는 됐을 거다.”예천우는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운영하는 도박장이면 열 배도 가능하겠지.”“그래. 그게 뭐?”조신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에서 굴리는 도박장이야.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지.”“합법적이야?”예천우가 다시 묻자 순간 조신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고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합법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집이 장산현에선 곧 법이야.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어?”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예천우를 노려봤다.“좋아. 네 말들 들으니 시름 놓고 너희 가문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어.”“됐고. 아까 큰소리쳤지? 날 죽이겠다고? 해 봐. 당장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조신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고 지금 그는 예천우를 단지 입만 산 놈으로 여기고 있었다.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젠 정말 끝났어.’그들은 신고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집안은 다 뒷배가 탄탄하고 누구도 감히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이신향을 향해 물었다.“신향 씨, 장산군은 강흥시에 속하죠?”이신향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이 대화를 들은 조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