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우는 별생각 없이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저번에 도움을 받았던 상대라 거절하기도 뭐해서 전화를 받았다. 성격은 고지식해도 사람은 괜찮은 편이라 이번에도 거절하긴 좀 그랬다.전화를 받자마자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예천우, 이제는 내 전화까지 씹어?”예천우는 속으로 ‘우리 사이에 꼭 전화를 받아야 할 정도로 가깝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왜? 무슨 일이야?”“무슨 일이냐고? 임완유가 너한테 말 안 했어?”“뭘 말인데?”예천우는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정말 몰랐구나. 그럴 줄 알았다니까.”용미소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예씨 가문에서 네가 그렇게 소란을 피웠는데도 아무도 더 이상 널 건드리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아?”예천우는 순간 멈칫하며 되물었다.“그러게, 눈치는 좀 챘지만... 네가 한 거였어?”“당연하지! 내가 청룡님께 부탁드려서 보호해 달라고 한 덕에 네가 아직도 이렇게 멀쩡한 거야.”용미소는 살짝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진짜?”예천우는 잠시 멍해졌다. 용문 정보원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청룡이 예씨 가문에 경고를 줬다고 했다. 예훈을 귀찮게 한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뜻이었다. 즉 예천우를 뜻하는 것과 같았다.예천우는 청룡이 왜 자신을 도와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손녀를 도와 예훈을 혼내줬기에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다니.‘청룡... 용지천... 그리고 용미소... 혹시 다 같은 집안인가?’만약 그렇다면 용미소의 배경이 상당할 텐데.“그날 내가 너한테 도와줄까 물었잖아. 네가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알아서 한 거야.”용미소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네가 예훈을 그렇게 박살 냈으니 예씨 가문이 화풀이할 상대를 찾고 있었을 텐데 내가 아니었으면 넌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말 고마워.”어쨌든 용미소 덕분에 일이 조금 수월해진 셈이었다. 물론 '용왕'이라는 그의 신분도 한
예천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잘록한 허리로 향했다. 마치 손으로 가볍게 감쌀 수 있을 정도로 가늘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감싸인 섹시한 가슴은 완벽한 곡선을 만들어내며 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눈매는 한 번 보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만큼 매혹적이었다.그녀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예천우를 바라봤다가 금세 다시 시선을 내리자 예천우조차 감탄했다. 그의 눈에 이런 절세미인은 임완유 정도나 비교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양체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예천우는 더 이상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아 용미소를 기다렸다. 용미소는 금세 도착해 그를 보더니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하필 여기야?”“왜? 괜찮지 않아? 분위기도 좋고.”“좋긴 뭐가 좋아. 여긴 원래 커플들이 오는 곳이라고. 커플 전용 카페야.”“아...”예천우는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바로 앞의 커플이 어두운 조명 속에서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용미소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정말 뻔뻔하네... 너, 혹시 일부러 여기로 예약한 거 아니야?”“아니야, 왜 내가 그런 짓을 해.”“흥, 누가 알아? 집에서 보는 꽃보다 들꽃이 더 이쁘다고 생각해서 날 꼬시려는 걸지도 모르지.” 용미소는 얼굴이 붉어진 채 말했다. 순간 그녀는 예천우가 자신을 진지하게 좋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곧 '아니야, 그럼 난 불륜녀가 되는 거잖아. 절대 안 돼. 그가 이혼이라도 해야 가능하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예천우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당황했다. ‘설마 이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말도 안 돼.’그는 서둘러 말했다.“그럴 리가! 난 죽기 싫어..”“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무서워?” 용미소가 발끈했다.“그런 뜻이 아니고... 그냥 농담이야.”“흥, 그래야지. 너도 알지? 이번에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벌써 끝장났을 거야.”“그래, 알아. 정말 고마워.”예천우는 감사 인사
“뭐라고? 네가 용문 용왕이라고?”“예천우, 나 무시하는 거야? 사람 속이려면 좀 그럴싸한 핑계를 대야지.”용미소는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었다. 예천우가 자기 앞에서 대놓고 뻔뻔한 농담을 던질 줄이야. 그에게 용왕 같은 위엄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생각하는 용왕은 강하고 무섭기까지 한 인물이었으니까.예천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해도 믿질 않으니 어쩌겠나.“그래, 난 용왕 아니야. 그냥 장난친 거였어.”“봐! 역시 뻔뻔한 거짓말쟁이네! 그럼 너 대체 뭐야?”“음... 넌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내가 뭘 상상하든 네 정체랑 무슨 상관인데? 날 가지고 노는 거야? 만약에 네 신분이 너무 비밀스러워서 못 밝힌다면, 속삭이듯 이라도 말해 봐.”“사실 진짜 비밀스럽긴 해. 나 말이야... 특공대 소속이야.”예천우는 대충 둘러댔다.“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너 분명 특공대일 거라고 생각했어!”용미소는 신난 듯이 탄성을 질렀다. 사실 그녀도 특공대에 대한 은근한 로망이 있었다. 말하고 나서 너무 큰 소리로 외쳤다는 걸 깨닫고, 얼른 입을 막으며 속삭였다.“조용, 조용... 조심해야지.”“맞아, 신중해야지. 내 정체는 절대 아무한테도 밝힌 적 없으니까 비밀로 해 줘.”“걱정하지 마. 내 입은 무거우니까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야.”용미소는 으쓱거리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똑똑하다는 거 몰랐지? 네 정체를 벌써 알아챘다니까!”“역시 팀장님답게 예리하고 똑똑하시네.”“그러니까 이제 네 정체를 알았으니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 나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알았어, 알았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고마워.”예천우는 슬쩍 그녀를 치켜세운 뒤 거짓말이 들킬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근데 넌 어떻게 용씨 가문의 도움을 받게 된 거야? 혹시 너희 집안이랑 친척이야?”“당연하지. 나도 용씨잖아.”“오, 얼마나 친한 사이인데?”“우리 할아버지랑 청룡 전신이 친형제 사이거든.”
‘어차피 다음에 물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용미소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서로 돌아갔다.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장한식을 보며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장 서장님, 저한테 예천우 신분 안 알려줘도 다 알게 됐다니까요!”장한식은 잠시 당황하더니 말했다.“네가 벌써 알아냈다고?”장한식도 사실 얼마 전에서야 예천우의 용왕 신분을 알게 되었다.예천우의 강한 실력과 과감한 행동들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황 의원님이 그를 이렇게 아꼈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용미소는 장한식이 정말 알고 있었던 걸 보니 속으로 안심하며 조용히 말했다.“그럼요. 특공대라면서요? 뭐 비밀인 건 알지만 굳이 저한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잖아요?”“뭐라고? 특공대라고?”장한식은 피식 웃었다.“그래,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자, 이제 회의하러 가자.”장한식은 회의실로 걸어가며 속으로 예천우가 용미소를 철저히 속였다고 생각했다.예천우가 굳이 장난스럽게 자신을 특공대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용문은 늘 용국의 지키고 있으니 예천우가 절대 악인은 아니라는 걸 장한식은 알고 있었다.용미소는 뭔가 찝찝함이 남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설마 특공대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있나? 서장님이 괜히 모른 척하는 거겠지.’그녀는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천우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특공대처럼 보였으니까.한편, 예천우는 용미소가 건물에서 나가는 걸 보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나가지 않고 카페 구석 끝자리로 다가갔다.그곳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처음부터 혼자였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천우는 그녀가 자신을 세 번이나 흘깃거린 걸 눈치챘다.예천우가 다가가자 여자는 긴장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뭐랄까, 참 똑부러지게 생긴 여자네.’예천우는 그녀의 빛나는 눈망울을 보며 깜짝 놀랐다. 마치 숲에서 사는 요정 같았다.가까이서 본 그녀
“제 말에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설마 그쪽도 저한테 관심 있었나요?”예천우가 일부러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말을 듣자 그녀는 살짝 당황했다. 평소라면 차분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예천우의 몇 마디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녀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되물었다.“그쪽은 모든 여자한테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하하, 그럴 리가요. 솔직히 이렇게 장난친 건 처음이네요.”“전 예천우라고 해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저는 선우서림이에요.”선우서림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알려주었다.“선우서림... 참 예쁜 이름이네요. 선우 씨 성을 가진 사람은 드문데 설마 선우 가문 출신인가요?”예천우는 웃으며 살짝 떠봤다.사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재도 선우 가문에 대한 전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예전처럼 나라를 위해 책략을 세우는 군사 대신 이제는 상업에서 비범한 능력과 성과를 내는 사람들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지휘자의 명을 따르는 자들이었다.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선우 가문의 후손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곧 거대한 상업 제국을 손에 넣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선우 가문은 자손이 많지 않았다. 대대로 단 한 명 정도만이 뛰어난 능력을 갖췄고 나머지는 지극히 평범했다.“뭐, 비슷하죠.”“정말 선우 가문의 후손이신가요?”예천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녀의 말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그러자 선우서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계속 이렇게 물어보실 건가요?”“하하, 물론 그럴 생각은 아니지만 솔직히 궁금해서요. 게다가 서림 씨는 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예천우가 떠보듯 물었다.“알고 있어요. 유명한 용왕님이잖아요. 지금 천해시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선우서림은 대범하게 인정했다. 이 말에 예천우는 살짝 놀라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이네
예천우는 상대방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배후에 있는 자를 찾아내야만 그들의 음모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괜찮아요. 차를 가지고 왔어요. 혼자 갈게요.”선우서림은 예천우의 제안을 거절하며 자연스럽게 페라리 스포츠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더니 그대로 떠났다.차가 사라지자 예천우는 이내 뒤쫓았다.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용문의 비밀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페라리 차량 번호 좀 알아봐 줘. 이 차를 누가 샀고 최근엔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특히 자세히 조사해. 그리고 선우서림에 대해서도 전부 조사해 줘. 모든 정보를 알고 싶어.”전화를 끊은 예천우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호감이나 애정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싸늘한 냉기가 감돌 뿐이었다.짧은 대화와 직감을 통해 그는 선우서림가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제발 이 모든 것의 배후가 네가 아니길. 그 누구도 내 여자를 다치게 할 수 없어.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예천우는 뛰어난 운전 실력을 발휘해 복잡한 도로 속에서도 유연하게 차선을 오가며 점점 선우서림의 차에 가까워졌다.사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5년 전, 그는 비밀리에 세계적인 레이싱 챔피언과 맞붙어 가뿐히 승리한 적이 있었고 그 뒤로 ‘차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다만 경기 중에는 마스크를 쓰고 나왔기 때문에 그의 진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전 세계 레이서들 사이에서는 그의 정체가 큰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가 누구인지 찾아내려 했지만 결국 아무도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사실 선우서림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레이싱을 좋아해 마스크를 쓴 차신을 유일한 우상으로 삼아왔다.예천우와 헤어진 후 선우서림은 호텔로 돌아가 오늘 밤의 일을 사모님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사모님은 예천우를 만나지 말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라고 당부했다. 그러
선우서림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자 예천우는 그녀가 자신을 이미 발견했다고 생각했다.‘이 계집애가 꽤 경계심이 있네.’처음에 예천우는 가속 페달을 밟고 추적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곧 포기했다.선우서림의 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예천우는 바로 그녀를 쫓아갈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연관도 없었고 쫓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예천우는 추적을 포기했다.그냥 나쁜 사람처럼 보여서 추적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어찌 됐든 예처우는 이미 사람을 시켜 조사하고 있었기에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예천우는 추적을 포기하고 선우서림이 있는 호텔로 찾아가기로 했다.놀랍게도 그녀는 진짜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천우는 그녀가 가짜 이름을 쓸 거라고 생각했기에 선우 가문에 대한 정보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진짜 이름을 쓸 줄은 몰랐다. 관련 정보를 받은 예천우는 차를 몰고 호텔로 향하면서 선우서림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조사해달라고 지시했다.그녀는 분명 혼자서는 호텔에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호텔의 위치가 꽤 절묘했다. 바로 예천우와 임완유가 머무는 호텔 맞은편이었다.선우서림은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남궁은서에게 달려가 오늘의 상황을 보고했다.그 말을 들은 남궁은서는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사모님, 죄송해요. 도련님께서 저를 의심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다행히 제 운전 실력이 뛰어나서 따돌릴 수 있었어요.”선우서림은 급히 해명했지만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었고 분명히 긴장한 상태였다.“따돌렸다고? 네가 정말로 예천우를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원래 우리는 항상 은밀하게 움직였고 예천우도 우리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를 의심할 리가 없었어. 하지만 지금 네가 선우서림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게 드러나 버렸어.”남궁은서는 냉정하게 말했다.“내 판단이 맞다면 예천우는 언제든지 여기 나타날 수 있어.”선우서림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지
선우서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알겠어요.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입조심할게요.”“상황을 봐가면서 행동해. 생사가 걸린 것도 아니니 네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 단 요구가 있어. 천우에게 절대 내가 천해시에 있다는 걸 알려주지 말아줘.”남궁은서는 이렇게 말한 뒤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빠르게 호텔을 떠났다.그녀는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며 모든 사람의 시선을 피했다.남궁은서가 차량에 타고 떠나자마자 예천우의 차가 도착했다. 그는 이미 조사를 마친 상태였고 선우서림이 어느 방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곧장 그 방으로 향했다.선우서림이 있는 호텔 방 문 앞에 도착한 예천우는 가볍게 노크했다.그러자 선우서림이 문을 열었고 예천우는 잠시 멍해졌다.선우서림은 방금 씻고 나온 듯 목욕 가운을 두르고 있었고 긴 다리는 물에서 갓 올라온 연꽃처럼 아름다웠다.보일 듯 말 듯한 눈부시게 하얀 피부 때문에 예천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예천우 씨?”선우서림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저예요. 서림 씨, 이제 잘 건가요?”“네. 예천우 씨가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거죠?”“당연히 서림 씨의 흔적을 따라온 거죠. 제가 이렇게 고생해서 찾아왔는데... 서림 씨는 저를 안으로 초대할 생각이 없나 봐요?”“가운을 입고 좀 있으면 자려던 참이었어요. 예천우 씨를 안으로 모시는 건 좀 불편하지 않을까요? 설마 예천우 씨가 저에게 무슨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죠?”“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아요.”예천우는 선우서림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전 그는 선우서림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이미 호텔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CCTV조차 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그러니 선우서림에게 반드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예천우는 선우서림이 뒤에서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임씨 가문과 관련된 사건에서 선우서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그러자 선우서림의 안
원래는 분명히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예천우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재동의 행동은 분명 호감 가는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했고 일부는 분노를 자아낼 정도였다.하지만 예천우는 이제동도 아주 나쁘거나 악의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단지 그도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무엇보다도 이신향은 아버지를 꽤 존경하고 있다는 걸 예천우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재동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리면 이신향이 분명 상처받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았다.‘그래. 그냥 나중에 신향 씨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렇게 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훨씬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어차피 예천우는 또다시 가짜 남자 친구 역할을 하며 불려 다닐 여유 따윈 없었다.조신우 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뒤 모두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보기만 해도 고급스럽고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그리고 그건 당연했다.오늘 올라온 요리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재료로 만든 귀한 음식들이었고 식당에서도 상위 몇 퍼센트만을 위한 최고급 요리였다.이재동 가족에게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고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으니 입에 넣는 순간부터 반응이 달랐다.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그중에서도 이신향은 가장 들떠 있었고 기분도 최고였다.특히나 부모님이 오랜만에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그녀는 아버지와 그리고 예천우와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재동의 주량은 꽤 대단했다.마오타이를 한 병 비운 뒤엔 더는 예천우의 귀한 술을 손대지 않았다.그 대신 이런 좋은 술은 아껴야 한다며 종업원에게 일반 백주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하지만 예천우가 그런 걸 올리게 둘 리가 없었다.결국 종업원은 또 다른 비싼 술인 페이톈 마오타이를 내왔다.그렇게 술잔
“아!”도민현은 예천우의 말에 깜짝 놀라 얼굴에 놀라움이 그대로 드러났다.“용왕님, 그게...”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시켜 움직이겠습니다!”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아무리 상상해도 그는 믿기 어려웠다.‘용문을 이끄는 용왕님에게 또 다른... 그것도 이렇게 무서운 신분이 있었다니…’예천우가 용문 용왕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천우가 바로 용도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이건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용도 예씨 가문이라면... 수십 년 역사에 빛나는 용도에서 손꼽히는 네 개의 최고 명문 중 하나...’그 존재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도민현이 자리를 뜨자 남아 있던 이재동과 그의 가족들 또한 속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또 뭐야...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 신분이야?’예씨 가문이 정확히 어떤 가문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만 봐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건 확실했다.특히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응대하던 걸 보면 그 위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이재동은 감히 따져 묻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저... 천우야.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내가 눈이 어두워서 네 진짜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어. 괜한 말을 했고 또 멍청한 짓까지 해서 널 곤란하게 했구나... 그... 사과의 뜻으로 내가 술 석 잔 자진해서 마시겠으니 부디 용서해다오.”이재동은 급히 잔을 들고 술을 따르며 말했다.특히 아까 딸을 절대 예천우에게 줄 수는 없다면서 오직 조신우만이 이신향의 가장 적합한 혼처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만약 예천우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했다면 이신향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재동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가 잘못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바로 그 인생의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절실했다.‘이건 우리 가족 운명을 바꿀
사실 이 모든 소문은 애초에 예웅남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었다.예관희는 이미 예천우의 뜻에 따라 모든 사실을 예웅남에게 전했고 그중에는 예천우가 자신의 용왕 신분을 외부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심지어 그가 종사급 고수라는 사실조차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예씨 가문 사람들의 진심과 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예웅남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기회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그 정보를 슬쩍 흘리면서 예관희를 헐뜯고 예천우의 이미지를 흔들어 놓으려 했다.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뒤 예관희가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주 자리에 오를 명분을 만들고자 했다.그 후에야 예천우를 제거한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에게 자리를 넘긴다 한들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예씨 가문이라면 예웅남은 그 자리를 지킬 능력도 없었다.이러한 소문 덕분에 전태민 역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돌아와 가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여기서 진짜로 그 예씨 가문 큰 도련님을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모든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전해 듣기로 큰 도련님은 예정환과 똑 닮았다고 했다.전태민은 다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신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 모두 눈을 크게 떴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재동을 비롯한 일행은 뭔가 헷갈린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눈을 깜박이며 당황했다.‘천우 씨는 용왕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거지?’곁에서 듣고 있던 도민현은 잠시 찡그린 뒤 고개를 저으며 정색했다.“전 시장님, 착각하신 겁니다. 이분은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용왕님이십니다.”“뭐라고요?”전태민을 포함한 일행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
이재동과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충격에 마비된 상태였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속으로 깊이 흔들렸다.그녀는 예천우가 대단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이 정도로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지금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은 누가 봐도 하나같이 고위직 인사들이었다.그중에서도 앞장선 인물은 동성시의 중심 권력층에 있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예천우의 부하에게조차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도민현 역시 더는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그는 곧장 이유를 알아차렸다.‘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이유는 분명 용왕님의 체면 때문이겠지.’그래서 도민현은 바로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말씀 잘하셨습니다. 오해가 풀렸으니 방금 일은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흥분해서 예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경솔했습니다.”전태민과 그 일행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협력이든 뭐든 제대로 되지.’“그러면 우리 사업 이야기 말인데요...”전태민이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묻자 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 계속 진행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조씨 가문을 정리하는 일이 급하니 조금 여유를 주세요. 며칠 뒤에 다시 보죠.”“그건 당연하죠. 아무래도 강흥시에서 오신 거라 좀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남강 지역이지 않습니까. 도 대표님 같은 정의로운 기업가께 우리가 도움 드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전태민은 부드러운 미소로 덧붙였다.“좋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시장님.”도민현은 그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더 말은 하지 않았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혁진은 점점 더 절망에
도민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몸을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용왕님, 그럼... 조신우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씨 가문 전체도 네가 알아서 처리해. 받아야 할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해. 그리고 조씨 가문이 보유한 자산 중 쓸 수 있는 건 모두 꺼내서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해. 물론 억울한 사람은 건드릴 필요 없어. 죄 없는 자에게까지 책임을 묻진 말아야지.”예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죄가 있는 자라면... 절대로 봐주는 일은 없어야 해.”“용왕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조신우는 아주 잠깐 희망의 빛을 본 듯했지만 곧바로 그 빛은 산산이 부서졌다.‘안 돼... 우리 집안은 죄 없는 쪽이 아니잖아.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밑에 있던 놈들도 하나같이...’조신우는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의 마음도 서늘하게 얼어붙었다.‘천우... 아니, 용왕님의 말 한마디가 조씨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네.’바로 그때, 문이 하고 열리며 몇 명의 인물이 들어섰다.강흥시의 시장 전태민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도민현과 예천우가 있는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방 안을 둘러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도민현이었다.그러나 정작 벽 구석에 구겨져 있는 조신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이재동과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며 주변을 살폈고 그중에서도 눈에 띈 이는 조신우의 둘째 삼촌인 조혁진이었다.그는 맨 뒤에 있었고 손발이 묶인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억제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조혁진은 들어오자마자 조신우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사실 그도 처음엔 어떤 이유로 자신이 붙잡힌 건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도민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신우가? 용왕님의 지인을 건드리기라도 한 건가?’그는 그런 상상까지만 했을 뿐
이신향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예천우를 믿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야 진짜로 안심할 수 있었다.‘역시... 천우 씨는 너무 멋있어.’예천우는 정말 강하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고도 냉철했다.‘단지 안타까운 건... 천우 씨는 나의 진정한 남자 친구가 아니야... 진짜 내 남자였으면... 나 아마 매일 웃음꽃이 피겠지.’그녀는 슬며시 아버지를 쳐다봤다.‘아빠, 이제 좀 알겠지? 천우 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하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아까 말했던 거 생각하면 나중에 천우 씨한테 제대로 사과는 해야겠어.’그때 도민현은 조태영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예천우를 바라보았다.예천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민현은 바닥에 떨어진 조신우의 휴대폰을 주워 들고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입니까. 말씀하시죠.”“네, 네... 도 대표님, 제가... 제가 신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저 부탁드립니다. 우리 협력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용왕님께 잘 말씀 좀 들려주십시오. 제가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우리 신우만 살 수 있다면... 제 전부 재산이라도 내놓겠습니다.”조태영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조신우는 그의 유일한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지금 그가 위기에 처해 있고 잘못 건드린 사람은 단순히 도민현이 아니라... 도민현조차 고개를 숙이는 존재였다.‘이대로라면 우리 집안은 끝장이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해.’하지만 도민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조 대표님, 상대가 만약 저였다면... 한번쯤 기회를 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신우가 건드린 건 용왕님이십니다.”그 말은 곧 조신우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용왕님의 권위는 결코 범할 수 없습니다.”“제발... 도 대표님, 한 번만... 용왕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조씨 가문 전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신우만 살 수 있다면 다 드리겠습니다!”조태영은 절박하게 매달렸
그런데도 조태영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인지한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도 대표님, 도민현 대표님, 저는 조태영입니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주세요.”스피커폰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들렸다.조신우는 그 말을 듣자 그대로 얼어붙었다.‘지금... 지금 방금 아버지가 뭐라고 부른 거야? 도 대표님?’조태영은 도민현의 목소리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설마... 설마 저 사람이...’기억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지자 조신우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인물 강흥시를 뒤에서 조율하는 진짜 실력자... 그가 바로 도민현이었다.‘방금 날 걷어찬 바로 사람이 도 대표님이었어. 말도 안 돼. 내가 도 대표님한테...’듣는 말에 의하면 도민현도 엄청나게 흉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했고 지금 용왕도 저런 태도로 조시우를 혼내고 있었다.그러자 조신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고 두 볼은 이미 부어올랐으며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 시 말을 잃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던 조신우가 지금은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온몸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 모습은 과거의 오만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단지 용왕이라는 말에 조신우는 오줌을 싸고 그의 아버지 조태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도민현에게 빌듯이 전화를 걸고 있다니... 이제동은 예천우가 어쩌면 아주 무서운 배경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조신우의 아버지는 아주 다급한 어조였고 심지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도 대표님을 불렀어. 잠깐만, 도 대표님이라고?’이재동과 그의 가족들은 지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도민현이라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강흥시
“뭐... 뭐라고요?”조신우는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고 그는 지금 아버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집안이... 멸문을 당할 위기라고? 도대체 누구한테?’그리고 그 순간 한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다.‘용왕님?’조금 전 도민현이 예천우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았다.‘설마... 설마 진짜 저 사람이? 아니야...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가 없어.’조신우는 그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버지, 그... 용왕님이라는 사람이 누군데요? 정체가 뭐예요?”수화기 너머에서 조태영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차분히 말했다.“용왕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떠도는 존재야. 나도 용왕님을 직접 본 적은 없어. 하지만 확실한 건 용왕님은 용문이라는 조직의 주인이자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거야. 지금 도민현조차 용왕님의 명령을 받들고 있잖아.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용왕이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나이도 굉장히 어리다고 하더군...”조태영의 말이 이어질수록 조신우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얘졌다.‘젊고 강하고... 도민현도 복종하는 인물이라고...’그리고 조신우는 방금 도민현이 예천우를 향해 말했던 호칭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용왕님... 그러면... 그렇다면... 설마?’조신우는 몸을 덜덜 떨며 예천우를 바라봤고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 아버지, 설마... 제가 건드린 사람이 그... 그 용왕이라는 분...은 아니겠죠?”수화기 너머로 조태영은 날이 서도록 몰아쳤다.“지금 네 말투가 심상치 않네. 신우야, 제발 네가... 용왕님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겠지?”조신우는 그 말에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그게... 제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조신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조태영은 화가 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조신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두려움에 떨며 예천우를 올려
예천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고 그는 자기편에게는 언제나 후한 사람이었다.도민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고 감탄을 숨기지 못하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45년산이라니요! 그건 와인계의 전설입니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예전에 경매에서 6억 넘게 낙찰된 적도 있었습니다.”그 대화를 듣던 조신우는 완전히 얼이 빠졌고 평소 와인을 즐기던 그였기에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 전설 같은 와인이 예천우 손에서 툭 튀어나온다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게다가 아까 예천우가 꺼낸 술들과 그 분위기까지 생각해보면...‘이 자식은 정말 돈 많은 놈일지도 몰라. 아마 아버지 정도는 나서야 수습이 될지도 모르겠어...’이재동과 그의 가족들도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수천만 원을 훌쩍 넘는 와인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남자... 그게 바로 예천우였다.그건 단순히 돈이 많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 위치에 있으니 그런 걸 선물 받는 것이고 당연히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보통 상황이었다면 그런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앞에서 직접 술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혹시 이 예천우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닐까?’ 이재동은 조심스레 딸을 바라봤다.그런데 이신향은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었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그걸 본 순간 이재동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내가... 내가 어쩌면 정말 큰 실수를 한 건지도 모르겠군. 아까까지 예천우를 얼마나 무시하고 얼마나 면박을 줬던가. 이대로는 안 돼. 어떻게든 관계를 바로잡아야 해. 꼭!’그런데 그 순간 조신우의 휴대폰이 울렸고 갑작스러운 벨 소리에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예천우도 시선을 돌려 바라보자 조신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 자동으로 울린 거예요... 제가 건 게 아니라... 진짜라고요...”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