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원정아~.”시은은 난데없는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잠시 깜빡 졸았나 보다.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분명 박 형사의 목소리였다.그런데 원정이라니. 박 형사는 잠이 든 상태였다.그런데 갑자기 몸을 들썩이는 것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원정아. 미안하다.”분명, 잠꼬대를 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악몽을 꾸는 건지 슬픈 표정이었다.시은은 박 형사를 진정시켜 보려고 손을 잡았다.그때, 박 형사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시은을 쳐다봤다.시은은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원정아,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죽으면 안 돼. 그러면 안 돼.”분명 박 형사는 시은을 쳐다보며 원정이라 부르며 울먹였다.시은은 깜짝 놀랐지만, 손을 뺄 수 없었다.박 형사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니 시은에게 팔을 벌렸다.시은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박 형사를 가볍게 안았다.“원정아~.”박 형사는 원정이라는 이름을 힘없이 부르더니 조용해졌다.몸을 빼서 보니 다시 잠이 들었다.시은은 문득 박 형사의 집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시집갔다는 딸의 방에서 본 스티커 사진이 생각났다.그 사진을 보고 시은은 깜짝 놀랐다.자신의 학창 시절 모습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스티커 밑에 희미하게 보이던 이름, 박원정.이제야 그 이름이 생각났다.시은은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었다.모든 것이 연결되기 시작했다.처음 박 형사를 봤을 때 놀라던 그 얼굴.몇 살이냐고 물어보고는 가볍게 떨리던 눈.집에 갔을 때 자신을 보고 놀라던 모녀의 얼굴,너무나 닮은 딸의 사진.그리고 죽지 말라는 잠꼬대.그 딸은 시집간 게 아니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그래서 박 형사는 잠결에 딸의 꿈을 꾸고, 시은을 딸로 착각한 것이다.시은은 잠든 박 형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티슈를 꺼내 뺨으로 흘러내린 눈물자국을 닦았다.“실장님. 실장님을 찾는 전화가 왔는데요.”노트북을 보던 안 경감이 고개를 들어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부하직원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범인은 한 사람으로 좁혀진다.정 실장이다. CCTV 화면에는 정 실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뒷자리에 탔던 정 실장까지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것이다.이것까지도 정 실장의 치밀한 계획이라면,정 실장은 너무 무서운 놈이다.네 사람은 뉴스를 보고 난 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놈이 범인이네.”정식이 먼저 말을 꺼냈다.“정 실장 그놈. 진짜 치밀한 놈이네.뒷자리에 타서는 CCTV에도 안 걸리고.”정민이 혀를 내둘렀다.“정 실장이 수상하다고 그러더니. 진짜 무서운 놈이네.”진구가 고개를 저으며 인명을 쳐다봤다.“근데 왜 죽였을까? 그놈은 김현의 보디가드 아닌가?근데 오야봉을 죽여?”정식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잠깐만요! 김현이라고요? 무슨 얘기들은 하시는 거예요?”사라가 그들의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무슨 상황인지 이제는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인명은 사라를 끌어다가 소파에 앉혔다.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버거운 소식들만 쏟아지고 있으니,사라의 심장이 염려되었다.“우리도 지금 뉴스를 보고 파악했어.상황을 종합해 보면, 방금 본 뉴스에서 기획사 A 씨는 김현이 맞아.”“네? 김현이, 죽었다고요?”사라의 놀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아니 왜? 왜 죽어요? 아, 물론, 죽일 놈이지만. 갑자기 왜?”“그건 아직 정확히는 모르고, 그리고 내연녀 B 씨라는 여자는······.”사라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감을 전혀 못 잡는 것 같았다.“세나야.”“예? 뭐, 뭐, 뭐라고요?”“세나라고, 천세나.”사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세나라니. 천하의 그 세나가 누구와 내연관계?김현? 그리고 지금 실종? 도대체 뭔 말이야?“세나 언니? 세나 언니가 어쨌다는 거예요?”“미리 말하지만, 세나는 살아있어. 살아있다고.그러니까 놀라지 말고 들어.”인명은 김현과 세나의 관계와,세나가 뒤늦게 사라의 상황을 알고 김현을 윽박지른 것.함께 사라를 찾으러 가던 길에 물에 빠진 것.그리고 인명이
그때, 사라가 방에서 나와서는 인명의 옆에 앉았다.“생각해 봤는데요. 빨리 그 기자와 인터뷰를 해야 할 것 같아요.”인명은 사라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언젠가 해야 하겠지만,아직 아무도 사라에게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었다.본인의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지금 진술서를 다시 쓰고 있어요.그거 끝나는 대로 인터뷰를 할래요.”“괜찮겠어?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는 건, 세상에 공개한다는 건데.”“괜찮아요.”“잘못하면 못 이길 수도 있고, 또, 세상에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도······.”“무슨 말인지 아는데요. 상관없어요. 정훈 오빠를 위해서라도······.”그 말에 인명은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알았어. 내일 오라고 하면 되겠지?일단 촬영한 후에 모자이크하고 음성변조도 해달라고 하면 되고······.”“아뇨.”인명이 사라를 다시 쳐다봤다.진구와 정민은 휴대전화를 점검하면서도두 사람의 이야기를 힐끗거리며 듣고 있었다.“그냥 그대로 나갈 겁니다. 당당하게.”인명은 자신이 사라를 걱정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이성적이었다.자신은 그저 그녀가 하는 대로 믿어주고 지켜주면 될 일이었다.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정식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한 회장 애들이 쫙 깔렸대요.”“뭐?”“방금 덕만이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바둑이라고 강남에서 술집 하는 제 후배 있잖아요.걔가 덕만이에게 연락했는데,한 회장 애들이 우릴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고 하더래요.바둑이를 찾아와서는 내가 어디 있냐고, 불으라고 협박했다네요.”놈들의 추격이 본격화된 것 같았다.인명에게 걸려온 전화도 그들의 짓이 분명하다.그때, 정식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여보세요? 정 사장. 웬일이야?”전화를 받던 정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뭐? 정말? 이 개자식들이. 하여튼 알려줘서 고마워.”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우리 건물 1층 가겐데,웬 놈들이 들이닥쳐서 우리 사무실을 뒤집어 놨다는데.”박
“아이고. 형님. 웬 일이십니까? 전화를 다 주시고.”“큰일 났어, 큰일!”이무기의 목소리가 밖에서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한 회장의 얼굴이 찌그러졌다.“오늘 KBC 기자가 찾아와서는 네메시스를 들먹이며우리 멤버들 관계를 아는 것처럼 협박하고 갔어.한 회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센 거냐고?”한 회장은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일단, 이무기의 전화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걸핏하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는 못된 버릇이 도지고 있었다.“그건 저도 모르죠. 자 일단, 진정하시고요.제가 좀 알아보겠습니다.”“그래, 자네만 믿네.”“근데 의원님, 혹시 이상한 소리를 하신 건 아니죠?”“이상한 소리라니. 난 그저 모른다고 잡아뗐지.”“네, 잘하셨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전화 올리겠습니다.”전화를 끊자 다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늙은 구렁이 같은 놈이 어디다……?하기야 그러니 이름도 이무기지. 재수 없는 놈.”그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KBC 기자라고? 기자까지 붙으면 안 되는데.이 일과 사라가 사라진 일과 관계가 있을까? 아이고 머리 아파.“뭐 하고 있어? 다들 샅샅이 뒤져. 깡그리 잡아 와.아, 그리고 정 실장도 불러들이고.그놈 뭐냐, 죠스 그놈도 빨리 나오라고 해.팔 부러진 게 문제야 지금? 모두 출동!”한 회장의 호통에 모두 서둘러 회장실을 빠져나왔다.꾸벅꾸벅 졸던 할아버지는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귀가 어두운 편이라 웬만해서는 무슨 소음 따위로 눈을 뜨는 일은 드물었다.마당으로 나온 할아버지가 위층을 올려다봤다.“누구요? 총각인가?”잠시 소음이 잦아들었다.그러더니 한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계단으로 내려왔다.할아버지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움찔했다.“누구요? 누가 남의 집에 함부로.”“할아버지, 위층 남자 어디 갔는지 몰라요?”남자의 강압적인 태도에 놀란 할아버지는귀가 더 어두워지기로 마음먹었다.“뭐라고?”“위층 남자, 어디 갔냐고.”
“아, 지금 생각해 보니 한 사람 있는데.”“누구?”인명이 사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희진이가 가끔 전화했고, 같이 김 대표와 한 회장 욕도 하고,저를 위로도 해 줬거든요.자기가 도울 일이 없는지, 혹시 무슨 계획 같은 건 없는지, 물었는데,정훈 오빠 계획을 잠깐 얘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뭐? 희진이?”인명은 깜짝 놀랐다. 희진이라니.“그러니까 희진이가 뭐라고 하던데?”“뭐, 잘될 거다. 정훈 오빠가 해낼 것이다. 뭐 이런…….”인명은 희진을 처음 만날 날이 생각이 났다. 무언가 이상하다.“아니, 희진이와 전화를 가끔 했었다고?”“네, 가끔.”“한 번이 아니고?”“몇 번 되는데.”“언제까지?”“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끔요. 왜요?”사라는 대답을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이 저려오기 시작했다.설마, 설마 그럴 리가. 가족보다도 믿고 의지했던 희진이었다.“이상하네. 사라가 사라지고 얼마 후에 희진을 만났거든.그런데 그때는 4월쯤 전화 한 번, 문자 한 번 했다고 했는데.그 이후로는 연락이 안 된다고.”“네? 희진이를 만났다고요? 부산까지 가서?”“부산? 아니 연남동인데.”“네? 고향인 부산에서 가게 차렸다고…….”모두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가장 놀란 것은 사라였다.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실제 일어난 것 같았다.“희진이라는 분 말로는 사라 누나 번호가 바뀌어서연락이 안 된다고 했어요. 맞아요?”진구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질문을 했다.“아니에요. 제가 아니라 희진이 전화가 바뀌었어요.그래서 그 이후로는······.”정훈과 사라의 계획을 알고 그걸 한 회장 측에 알린 사람은 희진이었다.근데 왜? 그녀는 왜 그랬을까?“네, 이 년을 당장.”정식이 부르르 떨었다.그런 정식을 보고 사라가 고개를 흔들었다.“그래도……, 아마 오해일 것 같아요.뭔가 착오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제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고.희진이가 그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안 된다는 표정을 짓다가사라의 몰골을 이리저리 보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사라는 급하게 재킷을 하나 걸치고, 크로스백에 몇 가지 물건을 챙겼다.휴대전화는 이미 압수당한 상태였다.마당으로 나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네메시스 사무실 출입구로 빠르게 빠져나왔다.정훈이 떠나간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택시를 탔다.“어디로 모실까요?”택시 기사의 물음에 한참 머뭇거리던 사라는.“일단, 올림픽대로를 타 주세요.”기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비에 젖은 채 넋이 다 빠져나간 손님의 표정이 심각해 보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사라는 조금씩 이성을 찾아갔다.일단 허니 엔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정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야 했다.김 팀장이나, 정훈과 친한 진성 씨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차가 여의도를 통과할 무렵,검은색 차량이 갑자기 택시 앞으로 끼어들며 급정지를 했다.“저 미친놈이 운전을 이따위로…….”택시 기사가 씩씩거리며 내렸다.그때 사라는 검은색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봤다.감시조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지?성깔 있는 택시 기사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훈기의 멱살을 잡았다. 실랑이가 벌어졌다.그때, 사라는 택시에서 내려서 무조건 뛰었다.빗속으로, 어둠 속으로 뛰었다.“저년 도망간다. 잡아!”감시조의 소리가 멀어져갔다.사라가 일단 이야기를 거기에서 멈췄다.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략 예상은 했었지만,직접 사라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사라가 느끼고 겪었을 아픔이,포탄이 터지듯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그럼, 그때, 우리가 만난 거네.”인명의 말에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날 어떻게 우리 집에서 잡혀간 거지?”“그날, 갑자기 그 세 사람이 문을 두드렸어요.‘사라야, 안에 있는 거 다 안다.문 안 열면 희진, 세나 다 죽는다.그리고 이 집 아저씨까지.’그래서 어쩔 수 없이······.”그랬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