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의 성벽

사쿠라의 성벽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3-02
Par:  DoonMis à jour à l'instant
Langu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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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본 총리는 암살당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 세계가 사랑한 일본 최초의 여총리 츠바시 유키. 생중계 중 벌어진 잔혹한 암살, 그녀가 피로 쓴 유언은 단 하나였다. “나를 복원해줘.” ​인사동 지하실에서 발견된 20년 전의 비밀. 가문에 의해 성별을 살해당하고 화려한 꼭두각시가 된 청년 아키라. 팩트를 쫓는 기자와 심장을 쫓는 작가 앞에 나타난 0.1그램의 진실. ​“당신들이 알던 여신은 가짜다. 하지만 그 안의 비명은 진짜였다.” 가면 뒤에 숨겨진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국가적 사기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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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itre 1

[프롤로그: 성벽의 낙화(落花)]

​2026년 2월, 도쿄 부도칸.

​만 이천 명의 열기가 돔 경기장의 천장을 무너뜨릴 듯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장기와 츠바시 유키의 사진을 흔들며 광기에 가까운 환호를 내질렀다. 전후 일본 역사상 이런 지지를 받은 정치인은 없었다.

​"츠바시! 츠바시! 츠바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연호 소리 속에 츠바시 유키는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조명은 그녀를 위해 설계된 듯 완벽하게 쏟아졌고, 그녀가 입은 백색 실크 정장은 눈부신 반사광을 내뿜으며 그녀를 여신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정장 안쪽에서, 츠바시는 질식하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네 겹의 압박 붕대. 남자의 골격을 지우기 위해 2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감아온 그 빳빳한 면직물이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를 옥죄었다. 그녀는 입가에 경련이 일지 않도록 우아한 미소를 유지하며 생각했다.

​아키라. 네가 죽어야 유키가 산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가디언즈가 주입했던 그 지독한 세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그 명령에 거역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츠바시는 단상 위에 놓인 화려한 금박 원고를 밀어냈다. 가디언즈가 설계한 ‘거짓된 평화’와 ‘군사 대국화’의 서막이 담긴 연설문이었다. 대신 그녀는 정장 안쪽 포켓에서 낡고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21년 전, 인사동의 그 눅눅한 지하실에서 민호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이 적힌 메모였다.

​그녀가 입을 떼려는 찰나, VIP석 중앙에 앉은 야마구치와 눈이 마주쳤다.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창조하고 조종해온 창조주. 그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야마구치는 무심한 손짓으로 곁에 선 비서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

​그것은 ‘집행’의 신호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츠바시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오늘 저는, 츠바시 가문이 21년간 쌓아 올린 이 견고한 성벽을 허물려 합니다. 그 성벽 뒤에는 여러분이 알아야 할 추악한 진실과, 단 한 번도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한 남자의 비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탕—!

​천장을 깨뜨리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이 경기장을 갈랐다.

​1초의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아비규환.

츠바시의 하얀 왼쪽 가슴 부위가 순식간에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충격에 밀려 몸이 뒤로 젖혀졌지만, 그녀는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단상을 부여잡았다. 단상을 쥔 그녀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총리님!"

"저격이다! 대피해!"

​경호원들이 무대로 뛰어 올라왔으나 츠바시는 그들을 손짓으로 제지했다. 그녀는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수억 명의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멱살을 잡듯 집요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약지에 끼워진, 권력의 상징인 화려한 보석이 아닌, 투박하고 낡은 은 실반지 하나가 카메라 플래시를 받아 빛났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복원입니다."

​츠바시는 천천히 무릎을 꺾었다.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그녀는 평생 자신을 억눌러온 압박 붕대가 피에 젖어 툭, 하고 풀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민호 씨... 이제야 숨이 쉬어져요.'

​암전.

전 세계의 TV 화면은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어둠 속으로 잠겼다. 일본 최고의 태양이 가장 찬란한 순간에 떨어진, 완벽한 몰락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인사동.

​오래된 한옥 작업실.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긴급 속보에 민호의 손이 멈췄다. 조각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떨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작업대 위에 놓인, 21년 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치운 적 없는 조각난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파편 위로 노을빛이 사선으로 내리쬐었다. 뒷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글자, 櫻(사쿠라). 민호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가 21년 동안 준비해온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음을.

​"결국... 피었구나. 가장 아프고, 가장 눈부시게."

​민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구석에 놓인 무거운 오동나무 궤짝을 끌어당겼다. 그 궤짝 위에는 낡은 만년필로 쓰인 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취인: 서윤, 진우]

​그는 궤짝을 어루만지며 벽에 걸린 아키라와의 옛 사진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아키라. 너를 다시 불러내야겠어. 이번엔 죽은 총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쿠라로."

​민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거울 파편 위로 번졌다.

한 시대의 비극이 끝나고, 그 비극을 파헤칠 두 청춘의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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