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미안하네, 조 부장. 이번 일이 중요하다 보니 내가 좀 민감해.”“아닙니다, 형님. 할 일은 하셔야죠.원래 사업하는 놈들이 어제오늘 말이 달라지는 놈들이라.”“그렇긴 하지.”“그래도 그 두 사람, 제가 보기엔 반드시 채울 겁니다.그동안의 의리도 있고, 자기들 목숨이 달린 건데.”조영진이 이 의원을 위로했다.한 회장은 분위기를 바꿀 겸 건배를 제안했다.“그나저나, 네메시스는 왜 문을 안 열어요? 분위기 좋았는데, 허허.”조영진이 농을 쳤다. 농담만은 아니었다.조영진은 네메시스를 진짜 좋아했다.“그래, 애들이 보고 싶은데 말이야.요즘 어디 딴 데는 불안해서 술 한 잔 마음대로 못 해요.요즘은 비밀이 없어, 비밀이. 믿을 놈도 없고.그놈의 동영상에, 사진에, SNS에……. 어디 피할 때가 없어.모든 놈들이 자기가 언론인인 줄 안다니까.마음 같아서는 스마트 폰 같은 거 싹 압수하고옛날 박정희 때로 돌아가고 싶다니까.”이무기가 투덜거렸다.“제가 빨리 다시 오픈하겠습니다.사정이 좀 있어서요.의원님 말씀처럼 요즘 워낙 험악한 세상이라.보안이 확실히 확보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왜, 뭔 일이라도 있었나?”이무기가 이유를 물었다.사실, 민사라 건에 대해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고,이 사람들이 알아봐야 도움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알아서 잘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자신의 전문 분야였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한 회장의 비서실장이 고개를 내밀었다.그러고는 한 회장에게 잠깐 뵙자고 했다.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온 한 회장에게 비서실장이 조용하게 속삭였다.“회장님, 강기범 부회장이 잠깐 뵙자고 하십니다.”“뭐? 강기범이? 그 친구가 왜? 어디서?”“어떻게 알았는지 지금 여기에 와 계십니다.”“뭐? 그럼, 우리끼리 모인 걸 안 거야?”“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근데? 어떻게?”“모르겠습니다. 막무가내로,여기 한 회장 계시는 거 아
“그래서 어젯밤 무작정 나와서 희진이를 찾아왔죠.갈 데도 없고. 아마 당분간 희진이 집에 머물 것 같아요. 참, 그래도 되지?”세나는 뒤늦게 희진에게 양해를 구했다.그 말에 희진은 ‘응, 그래.’라며 얼버무렸다.세나가 인명을 돌아보며 말했다.“얘네 집이 엄청 좋거든요. ‘스타빌’이라고.제가 집에 있어도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정도로 집이 커서,덜 미안하겠더라고요.”세나가 농담으로 어색함을 깨려 했다.인명은 사라가 죽었다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대신, 정훈이 죽기 전에 사라와 증거를 수집했으며그 증거 때문에 정훈이 결국 죽게 되었고,그 때문에 사라가 납치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결국 정훈 씨가 그렇게 된 게, 다 사라를 위해서······.”또 세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희진도 전염이 되었는지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꿈 많던 소녀들이 왜 이리 모두 불행해진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김현 그 자식을 그냥 놔둬선 안 될 것 같아요.김현을 족치면 뭐든 정보가 나오겠죠?일단 본인 말로는 전혀 상황을 모른다고 했지만.그래, 한 회장. 희진아 너, 한 회장하고 연락 안 되니? 그래도 너하고 친했잖아.”그 말에 희진이 당황했다.“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희진이 화를 냈다.그러나 화난 표정이라기보다는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인명은 무슨 직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알았어. 난, 뭐든지 해 보자는 거지.”셋은 잠시 각자 생각에 잠겼다.인명은 고민했다. 말해야 하나,말아야 하나. 사실 사라가 죽었다는 증거가 없다.일단 인명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다는 증거도 없다.“사라 같은 똘똘한 애라면,우리 중에 누구에게도 연락이 한번은 왔을 텐데.이렇게 감감무소식일까.”세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했다.인명은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숨긴다고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지금 사라의 생사 여부를 빨리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뭔 개소리야? 그래서? 최성훈이 나 때문에 죽었다고?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네가 어쩔래? 이 병신아!”“인정하냐? 인정은 해?”비서들이 인명의 멱살을 잡고 팔을 꺾었다.인명은 완력에 의해 무릎이 꺾였다. 강부가 다가왔다.그러고는 인명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었다.인명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낮고 강하게 말했다.“민사라도 네가 죽인 거냐?”강부는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는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점점 표정이 변했다.최성훈의 죽음보다 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왜? 충격이야? 이제는 겁이 나기 시작하냐?”“너, 이 새끼······.”그러더니 인명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강부는 인명을 쏘아보며 멱살을 흔들었다.그러고는 주먹을 다시 들었다.그때 마침, 장례식장 경비들이 닥쳤다.주위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여들고 있었다.일부는 카메라로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사태를 파악한 강부는 인명의 멱살을 놓고는 뒤로 물러섰다.임원들이 강부를 호위해서 재빨리 차에 태웠다.인명은 떠나려는 강부를 향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강기범! 기다려. 내가 널 찾아갈 거야. 그때는 넌 끝이야.”강부는 인명의 눈을 쳐다보다가이내 눈길을 피하며 차 윈도를 올렸다.차는 재빠르게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임원들과 비서들도 뿔뿔이 흩어졌다.수진이가 다가와 인명을 부축해 일으켰다.“난 괜찮아. 그래, 다 찍었냐?”“네 선배님. 촬영 다 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인명은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머릿속이 복잡했다.갑작스러운 최 과장의 죽음과 강부와의 만남.이 혼란스러운 상황 이전에 더 큰 혼란.사라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 했다.일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인명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일단 진구에게 전화했다.원래 진구의 상태를 보러 가려 했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진구야. 몸은 좀 어때?”“네, 괜찮아요. 병원 가서 치료받고 왔어요.큰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다행이다. 정민이네 집이니?
직원들은 처음에는 부회장을 멀뚱히 쳐다보다가,뒤늦게 상황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서 목례하였다.몇몇 직원들은 입구까지 뛰어가다시피 해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지금까지의 모든 격론과 성토가,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강기범 부회장은 썩은 인상을 펴지 않은 채 주위를 휙 둘러봤다.그래 내가 왔다. 너희 주인. 밥을 주는 주인.그러고는 손을 잠시 들었다 놨다. 그래 됐어. 쉬어.물론 인명은 자리에 앉은 채 이 재미있는 장면을 지켜봤다.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보니 정말 가관이구나.그러면서 강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강부는 임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분향소로 들어섰다.몇몇 직원들은 얼떨결에 일어나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뒤늦게 깨닫고는‘에이’ 하면서 어색하게 앉았고,대부분의 직원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한 채 서 있었다.인명이 당한 그날의 사무실에서처럼,최 과장이 당한 그날의 사무실에서처럼,강부 앞에서는 다들 몸이 굳었다.마음으로는 침을 뱉고 욕이라도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에이, 왜 여기 온 거야? 재수 없게.”박 과장이 조용하게 투덜댔다.“그래도 오긴 왔네요.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죠?”명진도 한마디 거들었다.그때였다.“여길 어디라고 와? 나가. 나가라고!”고함이 들렸다.모두 강부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분향소 쪽을 일제히 쳐다봤다.이게 무슨? 그리고 곧 깨달았다.최 과장 부인의 목소리였다.“당신이 죽였잖아, 우리 남편. 그래 놓고 뻔뻔스럽게 어딜 들어와!”식장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음식을 나르던 상조회 직원들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잠시 후, 더 심하게 썩은 표정의 강부가 분향소 밖으로 나왔다.임원들이 부인을 달래는 소리와,이어지는 부인의 울부짖음이 들렸다.그랬다. 부인은 알고 있었다.공개되지 않은 유언장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최 과장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한 건지,아니면 식장에서 떠드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건
“좋아, 네 말이 맞다고 치자.”“네.”정식의 말에 바둑이가 조금 안심하는 듯했다. 목숨만은 구했구나.“그럼, 네가 목숨을 구하려면 조건이 있다.”“예?”아직 목숨을 구한 게 아닌가?“한 회장 연락처, 사무실, 집 등 신상정보와 졸개들에 대한 정보 일체와······.”“네?”정식은 바둑이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갑자기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그래, 박석기라는, 역삼동 박석기라는 놈 알고 있지?”“네?”“이 자식은 엄청, 말 많다가 불리하면 ‘네?’ 밖에 몰라.”그러면서 뒤통수를 한 방 더 맞았다.“알 것도 같기도 하고, 한 회장 애들 이름까지 잘 몰라서요.”“한 회장 애라고 얘기도 안 했는데?”“예?”“됐고. 이놈 신상에 대해 아는 대로 털어놔.”“예? 아, 네.”“참, 혹시 순자네 사건 때 우리를 덮친 놈 중에, 이놈도 있었냐?”“그건 잘······.”멀뚱멀뚱 생각을 짜내던 바둑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정식은 바둑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느낌이 왔다.“맞구나. 그 개자식!”“형님. 그게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고요.”“맞구나. 개새끼.”그러면서 바둑이를 치려는 듯 주먹을 들어 부르르 떨었다.바둑이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형님. 그놈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전 직접 보지 못하여······.”정식은 쥐었던 주먹을 펴서는 털썩 내려놓았다.“하여튼. 그 패거리들 아는 정보 다 털어놔.모르는 건 지금부터 싹 다 조사해 와.그게 네가 사는 길이고, 태봉이 형님의 이름에 먹칠을 안 하는 길이다.”바둑이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결심이 선 듯 진지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정보를 빼 올 테니, 한 가지만요.제가 정보를 줬다는 얘기만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형님.”박석기는 한 회장의 오른팔, 왼팔까지는 아니었다.하지만 바로 다음 위치인 행동대장 격이었다.박석기는 조폭과 같은 소위 ‘어둠의 세계’ 출신은 아니었다.특이하게도 경찰
김 부장이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더니 벌떡 일어났다.“이런 분위기로 갈 거 같으면, 나는 그만 가볼게. 몸도 피곤하고.”그러더니 겉옷을 주워들고 나가려 했다.“부장님, 가시는 건 좋은데,오늘 이야기는 위에 안 샜으면 좋겠습니다.지금 분위기 보니까 한바탕 전쟁이 날 거 같은데,선배님을 적으로 만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끝까지 박 과장이었다.다른 동료들도 모두 김 부장을 쳐다봤다.김 부장은 박 과장을 잡아먹을 듯 째려봤다.그러더니 다른 동료들의 눈길이 느껴졌는지‘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더니 나가버렸다.장 부장도 눈치를 보더니 따라 나갔다.“부장님, 그냥 보내도 될까요?”명진이 걱정을 했다. 박 과장은 안심하라는 손짓을 했다.“걱정 마, 좀생원이라 우리가 겁나서 고자질은 못 할 거야.그래도 모르니 우리가 감시를 좀 하자고.그건 그렇고. 선배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박 과장이 인명을 쳐다보며 물었다.“사실, 나에게 결정타가 될 만한 게 하나 있어.그걸 보충해 줄 증거가 조금만 더 확보되면 좋겠어.”바둑이 김성진 사장은 평소처럼 골프 연습을 마치고 사우나를 끝낸 뒤,골프채를 막 차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이제 몸도 개운해졌으니 슬슬 출근하면 되었다.“무거운 데, 내가 좀 도와줄까?”고개를 돌려보니 정식이었다.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아니, 형님이 여긴 어떻게?”다짜고짜 정식이 바둑이의 팔을 꺾고는 자동차 키를 뺏었다.이제 보니 덕만도 옆에 있었다.갑작스러운 습격에 힘 한번 못 써보고바둑이는 차 뒷자리, 두 사람 사이에 끼여 앉게 되었다.양팔은 물론, 양다리도 두 사람의 다리로 제압당해 꼼짝을 할 수 없었다.“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야, 덕만이 너 이 새끼, 이거 안 놔?”그러나 돌아온 건 정식의 주먹이었다.명치를 맞아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옛날 같으면 너 같은 배신자는 내 손에 죽어도 몇 번 죽었어.이 버러지 같은 새끼. 자기 목숨
민사라가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되지는 않았지만피클 등 주변 검색을 통해 사라의 과거에 대한 윤곽이 대강 잡혔다.사라의 말대로 12년 전 6명으로 데뷔한 피클.이리저리 찾아보니 사라가 얘기한 ‘제2의 핑클’어쩌고 한 유치한 기사가 진짜 있었다.총 4집까지 음반이 나온 것도 맞았고멤버 이름도 세나, 희진, 사라. 3명은 확인되었다.4집이 나온 이후에는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았다.이미지 검색을 통해 데뷔 초,지금보다 훨씬 풋풋한 사라의 모습도 발견했다.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 사라의 미소. 다시 가슴이 아팠다.군부대에서
두 사람은 인명의 이야기를 듣더니 긴장을 약간 늦추는 듯했다.‘난 또.’하는 표정이었다.남자가 말을 먼저 꺼냈다.“아, 네. 피클이란 팀이 저희, 회사 소속이었던 것 같긴 한데.근데 해체한 자기가 꽤 오래되어서, 연락처가 없을 것 같은데요.”하면서 여자에게 동의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네, 없을 것 같은데.”여자가 말꼬리를 흐렸다.“에이 그럴 리가.이렇게 큰 회사에서 소속 가수 연락처가 없을 리가요.아무리 해체했다 해도 한 2, 3년? 정도밖에 안 되었을 텐데.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한 번만 찾아봐 주시면.
고급 주상복합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한강의 야경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김현은 2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이렇게 한강 야경을 바라보며우아하게 와인을 음미할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결혼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 세월을보상받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강 다리와유람선의 불빛이 왈츠에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그때, 약한 마음에 병신 같은 짓을 했으면이런 호사를 못 누렸겠지?’한강 변 펜트하우스
박 형사와 헤어진 뒤, 인명과 진구는 사라의 기획사를 찾아갔다.기획사는 한강이 보이는 마포에 자리잡고 있었다.회사 간판이 작아서 근처에 한참 헤맸다.건물이 보이는 건너편 외진 곳에 주차하고는 궁리에 들어갔다.곧바로 들어갈지, 전화부터 먼저 할지 고민하다가일단 인명이 사무실로 밀고 들어가기로 했다.“진구야, 넌 여기 잘 지키고 있어.만약 내가 한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면.박 형사님께 연락이나 좀 해줘.”인명은 모자와 안경 등으로 어설프게 위장하고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 입구는 잠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