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혜는 멈칫하며 경다솜에게 물었다.“언제 가고 싶은데?”“그건...”경다솜은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 연미혜는 경다솜이 일부러 임지유와 경민준이 시간이 없을 때 그녀와 가자고 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임지유와 경민준이 언제 바쁜지를 몰랐기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연미혜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괜찮아. 가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해. 엄마도 시간이 되면 가줄 테니까.”경다솜은 아주 기뻤다.“네!”그녀는 한 주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어느새 금요일 저녁이 되고 연미혜는 전보다 일찍 퇴근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
연미혜와 수연이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다치게 될까 봐 걱정된 하승태는 두 사람의 곁에 꼭 붙어있었고 누군가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마다 두 사람을 지켜주었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들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여자아이와 부딪히게 되었다.수연이는 괜찮았지만 연미혜는 하승태의 위로 넘어지게 되었다. 하승태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려 감싸며 그녀를 품에 안아 지켜주었다. 단단한 가슴팍으로 넘어진 연미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어색한 모습으로 일어나며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발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하승태와 점심을 먹고 나온 연미혜는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예련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미혜, 어디야? 나 힘들어 죽겠어. 얼른 나 데리러 와줘. 같이 점심 먹자.”연미혜는 이미 점심을 먹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어딘데?”“우련 헤리티지.”차예련은 계속 말을 이었다.“몇 년 전에 재개발한 전통 가옥이 있던 그 동네야. 아침 일찍부터 고모가 날 이곳으로 끌고 와 집 보러 다녔어.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아.”“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후 연미혜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10분 즈음이 지나자 차예련이 또
“...”연미혜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10분이 지난 뒤였다. 그녀는 차예련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니 갑자기 요양병원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연선아의 상태와 아직은 가족과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요양병원 원장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녀의 차는 이미 요양병원 앞에 멈춰 서있었다. 결국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한참 요양병원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방안에 갇혀 바삐 할 일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고 이번에는 경민준의 연락이었다. 연미혜는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다가 무시한 채 계속하던 일을
전화를 끊은 후 연미혜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시간이 흘러 어느새 밤 9시가 되었고 지식으로 머리가 가득 찬 연미혜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때 김태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나와 바람 좀 쐴래?”반 시간 후, 연미혜는 어느 한 바에 도착했다. 김태훈은 바에서 나와 그녀를 맞이하며 물었다.“한잔할래?”연미혜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네.”김태훈은 갑자기 그녀에게 바싹 다가갔다.“기분이 안 좋은 거야?”“지금은 나아졌어요.”김태훈은 더는 묻지 않고 그녀를 위해 도수가 낮은 파란색의 칵테일을 주문해 주었다. 연
당연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김태훈은 연미혜에게 정말로 술값을 계산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만약 자신이 연미혜를 술집으로 데리고 온 사실을 유명욱에게 들킬까 봐 겁났던지라 바로 술집 안으로 들어가 계산을 한 후 연미혜와 떠났다.다음 날 점심, 연미혜는 직접 운전해 유명욱의 별장으로 갔다. 유명욱이 그녀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물었다.“교수님, 어디로 갈까요?”유명욱은 그녀에게 주소를 말해주었고 반 시간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로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안에는 이
식사가 끝나고 집에 도착한 연미혜는 바로 김태훈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유명욱이 그녀만 찾은 이유를 알게 된 김태훈이 말했다.“그 두 분을 만났다고? 난 이미 아는 분들이야. 참, 염성민이 염용석 님 아들이야. 쯧, 아버지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인데 아들은 왜 젊은 나이에 눈이 그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연미혜는 염성민이 염용석의 아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시간은 흘러 화요일이 되고 세인티 자율주행 자동차의 첫 테스트가 시작되었던지라 연미혜와 김태훈은 아침 일찍 세인티로 왔다. 그들이 도착했을
연미혜를 보는 임지유의 눈빛에는 영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의 대상이 연미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인 것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염성민은 애초에 연미혜에게 관심이 없었던지라 당연히 이런 임지유의 눈빛을 발견할 리가 없었다.“고작 몇 분만 늦었는데 뭘요. 괜찮아요.”“염 대표님은 역시 너그러우세요.”김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왔으니 이제 더는 우리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죠. 얼른 시작하세요.”경민준은 정중하게 말했다.“늦은 저희 탓이에요. 김 대표님, 얼른 들어가시죠.”김태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연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