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가면을 벗기면

신사의 가면을 벗기면

By:  제로두유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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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준의 숨겨진 여자로 3년을 산 안예서는 그가 얼마나 거칠고 위험한 남자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점잖은 겉모습 뒤에 숨겨진 악마 같은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후 안예서는 그저 박도준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예서의 뜻대로 되게 두지 않았다. ... 안예서는 박도준과 헤어지기 위해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예상대로 박도준이 먼저 안예서와 선을 긋고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안예서가 약혼자와 함께 집에 돌아온 날, 박도준이 안예서를 화장실로 몰아넣고 귀를 짓궂게 깨물며 속삭였다. “이번 생에 나한테 시집오지 못하면 내 결혼식 날에 식장에서 목매겠다고 하지 않았어? 제수.” 아무 말도 있지 못하는 안예서.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녀와 박도준 사이의 모든 관계는 그저 거래라는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폭설로 길이 막혔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안예서를 데리러 와준 사람은 박도준이었다. 안예서가 여론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온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때 유일하게 안예서를 믿어준 사람 역시 박도준이었다. ... 한때 안예서를 무시하고 짓밟았던 박도준이었지만 결국에는 안예서에게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모두 내 눈이 되어 오롯이 너만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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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안예서가 박도준의 약혼 소식을 접했을 때 방 안이 눅눅하고 농밀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기사를 다시 확인하려던 찰나 박도준 역시 그녀의 집중이 흐트러진 것을 눈치챈 듯했다.

박도준이 워낙 까다로운 남자였기에 안예서는 매번 몸과 마음을 다해 그를 받아내야만 했다.

잡념을 털어내고 휴대폰을 베개 밑으로 넣은 뒤 두 팔로 박도준의 목을 감싸 안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 자세는 힘들어요.”

안예서의 고운 눈동자에 촉촉한 물안개가 어려있었는데 그야말로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간드러진 목소리는 꼭 애교를 부리는 듯했다.

박도준이 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 너머로 어두운 욕망이 넘실거렸다.

그렇게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방 안의 은밀한 소란이 비로소 가라앉았다.

안예서가 침대에 엎드린 채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보니 각종 포털 사이트 메인이 세진 그룹의 실권자와 정양 그룹 딸의 약혼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세상 사람 다 아는 소식을 안예서가 제일 늦게 알게 되었다.

몇 분 뒤 욕실의 물소리가 멈추고 박도준이 걸어 나왔다. 안예서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박도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매끈하게 좁아지는 허리, 선명한 복근과 치골선, 거기에 완벽한 이목구비까지 박도준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박도준이 옆에 놓인 새 셔츠를 입고 밑단부터 단추를 하나씩 채웠다. 조금 전까지 드러냈던 몸을 다 숨겨버렸다.

안예서는 박도준이 완벽한 신사의 가면을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혀를 내둘렀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진짜 모습을 몰랐다면 남들처럼 박도준을 그저 금욕적이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냉혈한이라 여겼을 것이다.

옷을 다 입은 박도준이 그제야 안예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낮게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어느새 차가워져 있었다.

“다음 주에는 못 와.”

안예서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귀국하거든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지나간 후 방 안이 숨 막힐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박도준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다시 말해 봐.”

안예서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돌아오니까 이제 우리 관계도 끝낼 때가 됐다고요.”

박도준이 안예서의 턱을 덥석 잡았다. 짙은 눈동자에 위험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안예서,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그가 화가 난 걸 알아차린 안예서가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당연히 든든한 돈줄이죠. 우리 처음부터 약속했잖아요. 마음은 빼고 몸만 나누자고. 그리고 누구든 먼저 이 거래를 끝내자고 할 권리가 있다고 말이에요. 지난 3년 동안 호흡이 꽤 잘 맞았고 도준 씨도 헛돈을 쓰진 않았잖아요. 안 그래요?”

박도준이 아무 말 없이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자 안예서가 시계를 가리키며 귀띔했다.

“퇴근할... 아, 아니지. 이제 갈 시간이에요.”

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내리더니 손으로 안예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비록 박도준이라는 인간 자체는 별로였지만 두 사람의 속궁합은 아주 잘 맞았다. 그가 그녀를 찾아오는 이유는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 있어서만큼은 서로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다.

한쪽이 불쾌하면 다른 한쪽도 만족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안예서는 그에게서 돈을 받는 이상 군소리 없이 다 받아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발언권 따위 없었기에 아파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꾹 참기만 했다.

박도준이 입은 고급 셔츠가 안예서의 매끈한 등에 쓸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점잖은 겉모습과 달리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가 안예서의 귓가에 대고 연인에게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알아? 우리 3년이나 잔 거?”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었다.

박도준이 모욕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았지만 안예서는 실제로 모욕을 느꼈다.

안예서의 호흡이 눈에 띄게 달라지자 그가 피식 웃었다.

“이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구나.”

안예서가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은 채 거친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하려 했다.

잠시 후 박도준이 안예서를 툭 밀어내더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물티슈를 몇 장 뽑아 차분하게 닦아냈다.

이어 안예서의 귓가에 박도준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는 60억 더 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어.”

말을 마치고는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안예서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녀는 노력한 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의였다. 60억 원을 덥석 받았다가 벌이라도 받을까 봐 두려웠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박도준에게 받은 돈도 적지 않았다.

피로를 씻어내고 밖으로 나온 안예서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안예서와 박도준이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당시 그녀가 고급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질 나쁜 손님 하나가 그녀를 끈덕지게 괴롭혔다.

그러다가 일을 그만두려던 차에 그 손님이 안예서에게 약을 먹였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안예서가 누워 있던 곳은 다름 아닌 박도준의 침대였다.

박도준이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덤덤하게 물었다. 차가우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귀티가 흘렀다.

“4억 받고 잊을 거야, 아니면 내 옆에 있을 거야?”

그 순간 안예서는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감정을 쏟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 따위가 4억 원의 가치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안예서는 돈이 절실했다. 게다가 이런 로또 같은 기회를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안예서가 물었다.

“그쪽 옆에 있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데요?”

박도준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에 4억.”

안예서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안예서는 박도준의 애인으로 3년을 살았다.

박도준이 일주일에 딱 한 번 그녀를 찾았기에 그저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 외에는 서로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안예서는 자신이 참 괜찮은 잠자리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침대 밖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최고의 가성비가 아니겠는가?

매달 4억 원씩 주긴 했지만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안예서가 생각을 멈추고 짐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살았던 게 아니라 박도준이 오기 전에 미리 와서 기다렸다.

겉옷을 입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간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친구의 흥분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예서야, 임현섭이 귀국한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안예서가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재잘재잘 이어졌지만 안예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불과 30분 전 박도준과 헤어지려고 대충 둘러댔던 거짓말이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현섭은 안예서가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왔던 사람이자 소녀 시절의 그녀를 설레게 했던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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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박도준이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 안예서의 앞에 서더니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부담할 건데?”그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자 안예서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평정심은 잃지 않았다.“진료비, 검사비, 약값 정도면...”“그럼 손해 보상금, 교통비, 영양 보충비, 그리고 정신적 피해보상금까지 전부 부담해.”안예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도준을 쳐다보았다.“네?”‘대놓고 공갈 협박하는 거야?’박도준이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내고 안예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불만이 있다면 의료 감정 비용까지 추가하고.”안예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박도준의 손등에 뜨거운 물이 튀어 붉어진 자국이 있었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참지 못하고 쿡 찔러보려 했다.‘이 정도면 물집이 잡힐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하지만 안예서의 손이 닿기도 전에 박도준이 손을 거두어들였다.“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 저녁에 로운에서 기다려. 구체적인 배상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안예서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주먹을 꽉 쥐고 몰래 이를 악물었다.박도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안예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몇 걸음 옮기자마자 화상을 입은 안예서의 손을 살폈다.“제대로 치료하고 와. 내 물건에 흠집 나는 건 딱 질색이니까.”그가 떠난 뒤 옆에 있던 진영우가 안예서에게 인사하고 곧장 박도준의 뒤를 따랐다.검은색 롤스로이스 안에서 진영우가 조심스럽게 일깨워 주었다.“대표님, 오늘 저녁에 양효진 씨와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알았어.”박도준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심하게 답했다.그러다가 2초쯤 지나 점차 옅어지고 있는 손등의 붉은 자국을 내려다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안예서는 박도준의 앞에서는 늘 온순하고 고분고분했다.하지만 아까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털을 바짝 세우고 하악질하는 들고양이 같았다.그녀의 이런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박도준은 문득 안예서가 꽤 재미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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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잠깐만요.”양효진이 박도준의 팔을 놓고 지갑을 열더니 지폐 한 뭉치를 꺼내 안예서에게 주며 윙크했다.“이건 예서 씨한테 주는 팁이에요. 사장님한테는 비밀로 해요. 오늘 연주 정말 훌륭했어요.”안예서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품속의 지폐들을 내려다보았다. 입을 달싹였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그 모습을 본 양효진이 사과를 건넸다.“죄송해요. 제가 유럽 여행을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라서요. 번거롭겠지만 직접 은행 가서 환전하도록 해요.”안예서에게 털끝만 한 자존심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당장 이 돈을 양효진의 얼굴에 집어 던지며 이런 푼돈 따위 필요 없다고 소리쳤을 것이다.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존심도, 알량한 체면도 없었다.무엇보다도 지금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고고한 척해선 안 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안예서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양효진과 눈을 맞추었다.“감사합니다, 양효진 씨.”이번에는 오히려 양효진이 잠깐 멈칫했다. 그녀가 이렇게 넙죽 돈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하지만 금세 원래의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천만에요. 당연히 드려야죠.”말을 마치고는 다시 옆에 선 남자의 팔짱을 꼈다.“도준 씨, 이만 가요.”가기 전 박도준이 무심한 시선으로 안예서를 힐끗 쳐다봤다.안예서는 그에게 안녕히 가라는 자본주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연주석으로 돌아가 할 일을 마저 했다.레스토랑 영업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1시였다.안예서는 오늘 두 배의 아르바이트비뿐만 아니라 양효진이 그녀를 모욕하기 위해 던져준 팁까지 챙겨서 수입이 아주 짭짤했다.역시 사람은 뻔뻔해야 돈을 벌 수 있는 법이다.안예서가 길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조금 사치를 부려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그때 롤스로이스 한 대가 안예서의 앞에 멈춰 섰다.흠칫 놀란 그녀가 뒷걸음질을 치려던 찰나 유리창이 천천히 내려가면서 박도준의 서늘하고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내가 직접 차 문까지 열어줘야겠어?”안예서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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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 질문에 안예서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차이가 있나? 어찌 됐든 결과는 똑같은데.’안예서가 차분하게 답했다.“전 그저 양효진 씨가 대표님을 참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서요. 두 분 곧 결혼하실 텐데 대표님도 이제 방황을 그만 끝내고 가정에 충실하셔야죠.“박도준이 코웃음을 쳤다.“원래 이렇게 도덕적인 사람이었어?”안예서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쳤다.“도덕성까지 운운할 건 없지만 유부남은 건드리지 않는 게 제 원칙이라서요.”박도준이 가볍게 대꾸했다.“내가 너 하나 때문에 파혼할 거라고 생각해?”안예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가느다란 바늘이 심장 깊은 곳을 쿡 찌른 것 같았다.그렇게 아프진 않았으나 사지가 저릿했다.그녀는 이미 포기했는데 왜 계속 몰아붙이는 걸까?안예서가 입을 열었다.“그러니까...”박도준이 그녀의 말을 가차 없이 가로챘다.“그러니까 내 여자가 되기로 한 그날부터 내가 언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할 거라는 것쯤은 미리 각오했어야지. 고작 그딴 게 핑곗거리가 될 순 없어.”안예서가 입을 벙긋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가 안예서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안예서, 난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 네가 억지 부리는 걸 한 번쯤은 참아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시답잖은 일로 두 번 다시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마. 알았어?”안예서가 힘겹게 손을 들어 박도준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저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돌아온다고. 그러니 이제 대표님이랑 얽히고 싶지 않아요. 양효진 씨가 없었어도 전...”박도준이 씩 웃더니 한기가 서린 검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네가 내 침대 위에서 얼마나 음탕한지 네가 좋아한다는 그 자식한테 직접 보여줄까?”안예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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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안예서가 멍하니 서 있는 걸 본 임현섭이 손가락으로 딱밤을 때렸다.“날 잊었어?”그제야 정신이 든 안예서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서 다 보네. 언제 돌아왔어?”“오늘 오후 비행기로 왔어.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여긴 어쩐 일로...”“원래 친구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 친구한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만났어. 밥 먹었어? 같이 먹을래?”안예서가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너무 늦었어. 다음에 먹자.”임현섭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더 강요하진 않았다.“그럼 집까지 데려다줄게.”“괜찮아. 나...”그녀가 거절하기 전에 임현섭이 안예서의 손목을 잡고 앞장섰다.“가자.”임현섭의 뒤를 따라 걷던 안예서가 고개를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그때도 지금처럼 안예서의 손을 잡고 은행나무 길을 걷곤 했었다. 소녀의 애틋한 마음이 그 순간 한없이 켜졌다.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던 소년은 어느덧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고 점잖으면서도 귀티가 흘렀다. 소년의 차갑고 날카로웠던 분위기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차에 올라탄 안예서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그때 임현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화했었는데 번호가 바뀐 것 같더라.”안예서가 생각을 멈추고 대답했다.“응... 바꿨어.”그 말 말고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임현섭이 대화를 이어가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부모님은 다 무사하셔?”안예서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병원에 누워 계셔. 언제 깨어나실지 몰라.”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임현섭이 돌아온 이상 조만간 그의 귀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임현섭이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이번에는 그가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미안.”안예서가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괜찮아. 어차피 오래전의 일인데, 뭐.”말을 마친 그녀가 임현섭을 돌아보며 물었다.“어머님은 어떠셔? 잘 지내셔?”임현섭이 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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