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 생선 창고 I남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부둣가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한 생선 창고.남자는 창고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다.나도 남자를 따라 들어간다.창고 안에 들어서면,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한쪽 벽은 상자째 쌓여있는 생선.그 반대 벽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들.남자가 문을 다시 닫는다.남자 : “이쪽으로.”남자는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나는 책상 앞 의자에, 남자를 마주 보고 앉는다.남자는 책상 위의 공책을 들어 한참을 이리저리 넘겨본다.그러다 마침내 찾은 듯, 책상에 공책을 펼쳐 내려놓는다.내가 볼 수 있게 공책을 돌려준다.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남자.담배와 라이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동시에 말한다.남자 : “이연우.. 이현우 동생, 맞지?”나는 공책을 보며 대강 답한다.나 : “예.”공책에 적혀있는 건 내 신상정보다.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학력, 그리고 가족관계서.아버지, 사망.어머니, 사망....이상하다.가족관계서에 나는 외동으로 적혀있다.형이 적혀있지 않다.나 : “이거..”내 말을 끊고 남자는 묻는다.남자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나 : “..여기로 오라던데요?”남자 : “누가?”나 : “전화 걸어보니까요.”나는 품속에서 너절한 서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준다.남자는 서류를 읽는다.난 책상 위의 담배를 집고 남자를 따라 담배를 피운다.남자는 그런 나를 흘깃, 바라봤다가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린다.곧이어 서류를 내려놓고는남자 : “이상하네.”나 : “이상하긴 하지.그나저나 너는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뼛속까지 스며든 내 반골 기질.남자 : “꼬우면 너도 반말하고.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나 : “그렇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왜 내가 외동으로 적혀 있느냐야, 이 가족관계서에.”남자는 나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남자 : “형한테 아무 얘기도 못 들었냐?”나 : “그렇게 친하진 않았거든.”
- 오천항오천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하긴, 생선잡이 배들은 모두 새벽이 되자마자 나갈 테니까.오후 한시인 지금은생선을 잡으러 나갈 시간도생선을 잡으러 나갔던 배가 돌아올 시간도 아닌 것은 분명했다.부둣가에는 나가지 못한 배들, 쌓인 생선들을 손질 중인 아줌마들, 손수레에 얼음을 옮기며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남자뿐이었다.그 와중에 홀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오천항 끄트머리에멀거니 선 나.이곳저곳 고개를 돌려 둘러본다.그러나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등대지기 면접을 보러온 것 같은사람들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나 (생각) : ‘언제 온다는 거야?’그때 얼음을 옮기던 남자가 내 앞에서 넘어진다.수레에서 얼음이 요란스럽게 쏟아진다.남자는 중얼거린다.남자 : “에이씨, 진짜..”남자는 바닥의 얼음들을하나하나 줍기 시작하고,그 모습을 보던 나는남자를 도와 얼음을 수레에 담아준다.남자가 가늘게 웃으며 말한다.남자 : “아이고, 감사합니다.”나 : “별말씀을요.”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고 얼음을 집으려 할 때 남자가 내게 조용히 묻는다.남자 : “이름.”나 : “..예?”남자가 나를 보지도 않은 채얼음을 모으며 다시 묻는다.남자 : “이름.”나는 그런 남자를 바라본다.겉으로 보기에는 쓰러진 얼음을 요란스레 다시 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나는 이내 대답한다.나 : “..이연우요.”남자는 내 이름을 듣고잠시 동작을 멈춘다.이내 주변을 살펴보던 남자.수레에 도로 담은 얼음을 옆 바닷물에 쏟아버린다.바닥의 얼음들도 발로 쓸어 넣는다.나도 손에 쥐고 있던 얼음들을남자를 따라 바다에 집어 던진다.남자는 다시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남자 : “따라와.”남자는 조용히 말하고는, 뛰어가듯이 걷는다.나도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남자의 장화 모양을 따라오천항 바닥에 발자국들이 새겨지고그 발자국들을나는 말없이 바라보며남자를 따라 간다.
- 다시, 장례식엄마가 죽었다.엄마의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과 달랐다.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혼자 앉아 엄마의 사진을 바라봤다.울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형과 다르니까.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나는 정말 형과 다르니까.다르고 싶었던 건지, 달라지고 싶었던 건지.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희미하게는 같았다.손님도, 통곡도 없이 엄마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집 문 앞에는 세금고지서, 우편, 광고지 등등이 쌓여있었다.그것들은 모조리 집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거실 바닥에 대충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흰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고개를 갸웃하며, 내용물을 꺼냈다.찢어진 것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너덜너덜하게 감은 종이였다.펼쳐보았다.그 언젠가, 형이 내게 준 서류였다.내가 찢어버렸던, 등대지기를 구한다는 서류.내용은 같았다.[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그러나 달랐던 것은 맨 밑 여백에 적힌 두 문장의 글.형의 글씨체로 적힌,+82 050 – 3967등대로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뚜루루뚜루루달칵남자 목소리 : “나흘 후, 십삼 시, 서해 오천항.”달칵뚜뚜뚜전화가 끊겼다.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불현듯 일어나 낡은 가방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었다.그러다, 가방을 팽개치고 지갑만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어차피
- 병이 짙어지다 II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병실에 갔더니 형이 어떤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으면 형은 말없이 서류를 접어 품에 넣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형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 날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내가 병실을 나갈 때, 형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형을 돌아보니 형은 품속의 서류를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병실을 나갔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쳐봤다.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무슨 뜻이지? 나보고 하라는 걸까? 엄마는 자기가 돌볼 테니? 기분이 나빴다. 언제까지 아빠 행세를 할 건지. 나는 서류를 찢어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버렸다.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병실 밖, 벽에 형이 기대고 서 있었다.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싶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발길을 돌렸다. 형은 구태여 나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던 걸까. 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형을 본 적이 없다. 형은 소리도 없이 존재를 감췄다. 엄마의 옆에는 그때부터 나만 있었다, 나만. 형도 없이. 나만. 엄마와 함께 있었지만 고독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 등대 (prologue)[등대지기 모집.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모집 인원 – 00명.월 급여 700만원.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아버지의 죽음단순히 말하자면 안타까운 사고였다.내 아버지의 죽음은.여덟 살과 아홉 살 사이, 그 언저리에서 내가 잰걸음을 놀릴 무렵에 일어난, 사고.초등학교 교실에서 방과 후에 남아 받아쓰기를 연습하던 나에게담임 선생님께서 다가와근처 가까웠던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내 손을 잡아 이끌고 향하신.그 병원에서 아버지는 누워계셨다.아니, 쓰러져계셨다.아니, 아니다.당시의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알지 못했으니누워계신 동시에 쓰러져계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아버지.나의 아버지.언제나 따스한 웃음을 지으시며나와 눈을 마주치시고는내게 오늘 학교는 어땠냐고,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느냐고,내게 물으시던나의 아버지.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 웃음을 짓지도 않으시고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던 아버지.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삐빅거리는 기계음만 들려주신 아버지.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같이 보곤 했던 뉴스에, 아버지가 아침마다 펼쳐보시던 신문에 나오곤 했던,그래, 뉴스나 신문에서 매일 같이 나왔던음주 운전자가 차로 치어버린 불쌍한 피해자.그런 피해자가 되어버리신 아버지.아버지는 그 수없이 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였다.아마 그 밤,다른 이들의 저녁 식사 시간의자그마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리신나의 아버지.남겨진 가족들은 그 피해자의 가족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다시 말해 특
아프다고로 나는 살아있다아픔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아프고 나서야 우리는 해당 부위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느낀다아프기 전에, 우리는 그 뼈를, 근육을, 피부를 느낄 수 있었을까?사실상 아픔이란 그들의 비명일지도 모른다자기도 이곳에 존재한다고,자기도 이곳에서 숨 쉬며 살아 있다고,자기도, 자기도 살아 있다고내 몸이지만 역겨움이 올라온다동족혐오일까?자기와 비슷한 걸 보면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자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되려 더 나을 거다나는 나 자신을 싫어한다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압도적으로 내가 뽑힐 거다내가 나를 만난다면 난 죽기 직전까지 주먹을 날리고,마지막 한방을 날려 죽여버릴 것이다그러나 나는 고통을 두려워한다그렇기에 죽지 못했다죽음과 고통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밧줄이 목을 조이는 그 잠깐의 고통조차 나는 참아내지 못했다아픈 건 싫으나 죽고는 싶다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불이 붙기 위해서는 장작이 바짝 마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갓 잘린 나무는 수분기가 많아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하게 풍겨나온다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그러나 언제 마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나조차도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그러니 지금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판단은 지금껏 지겹게 내리지 않았는가고작 그런 판단들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복잡하게 단순한, 지금의 나때로는 나를 위해 나를 배재할 수 있어야 한다끊긴 밧줄이 눈에 들어온다인터넷으로 주문한 밧줄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았다현대 사회에게는 필수인 인터넷의 문제다모든 걸 쉽게 살 수 있는 대신,모든 것의 가치는 옅어진다그렇다고 해도, 직접 만지고 무게를 가늠해봤자 그 본질을 알아챌 수 있지는 못하니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모든 것이 그렇다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 본질을 알아볼 수
"아이고, 안녕하세요. 많이 춥죠?이 날씨에 여기까지 오신다고 욕보셨네요.그래도 뭐.. 지금밖에 시간이 안나니까.어쩔 수 없는 일이죠.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아직도 나는 어린 아이같은데,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뉴스던, 수업시간이던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요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여름 전, 여름, 겨울 전, 겨울.이렇게 사계절인 것 같아요.뭐, 여름 옷, 겨울 옷만 사면 되니사려는 저도, 팔려는 옷가게들도,그 옷들도 편하긴 하겠지만..아무래도 예
"으음.."환영합니다. 캘러웨이.바람에 밎춰 흔들리며끼익, 끼익 소리를 내는 마을 입구의캘러웨이 표지판이프레드에게는 왜인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전에는 조금 더 활기찼던 마을이었는데.."그롬의 집에 초대를 받을 때마다왔었던 익숙한 캘러웨이.언제 오든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와식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여인들,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던 캘러웨이는이제 한없이 무거운 침묵만이 차리하고 있었다.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조용하기만한 마을.프레드는 자꾸만 드는 나쁜 생각들을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털어버리고는조
"마차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오?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저 많은 사람들은 그럼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프레드는 마구간 앞허름한 창고를 개조해나름 고풍스럽게[다리 여덟 개 달린 말들]이라 적힌 문패가 있는그곳 안에서 소리쳤다."아니, 선생님. 자리가 없는 걸 어떡합니까?"[다리 여덟 개 달린 말들]의 직원 겸 사장 겸말 관리인인 톰이 짜증 내며 말했다."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있어야 됩니다.이틀만 기다리시면 되는데,뭐 그리 급하시다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십니까?"프레드는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그래, 미안하네
프레드가 사는 곳에서그롬이 사는 곳까지는말을 타고 달려도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그간 프레드는 몇 번이고그롬의 집으로 들이닥칠까,당장 그롬의 집으로 갈까,괴로워하며 일주일간 그롬의 답장을 기다렸다.상자를 다시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 프레드.꽉 상자를 닫은 채 서랍장 맨 위에 넣어놓았다.조지에게 편지를 부탁한 지딱 일주일 후,누군가 프레드의 집 문을 두드렸다.프레드는 지체 없이 문을 열었고,문 앞에는 조지가 웃으며 서 있었다.또 하나의 상자를 들고."선생님, 좋은 아침입니.."조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