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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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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novel oleh 장순혁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남편이자 오빠가 갑작스레 죽고 고아였던 새언니와 시누이는 갈데가 없다 둘이서 살게 되며 벌어지는 로맨틱 GL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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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너무 가까운 마음 II
시간은 지나 밤 11시가 조금 넘어,지원은 약속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했다.복도에는 형광등 하나만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문을 열자 어두운 거실이 조용히 그녀를 반겼다.TV도 꺼져 있고,주방엔 미지근한 찻잔 하나.테이블 위엔 페이지를 접어놓은 책 한 권.누군가 잠시 기다리다 자리를 비운 듯한, 그런 분위기.지원은 조심스레 현관을 지나 방 문을 열었다.하연은 방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이어폰 밖으로 아주 희미하게 흘러나왔다.그러다 이어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왔어요?”“..응. 미안, 늦었지.”하연은 천천히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니에요.재밌었어요?”지원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말끝을 덜어내듯 대답했다.“그냥 뭐.. 시끄럽고 오래된 얘기.떠들어대는 게 온통 다 옛날 얘기뿐이더라.다 아저씨, 아줌마 됐다는 거지.”하연은 웃었다.그 웃음엔 익숙한 곡선이 담겨 있었지만,어딘가 축축하게 젖은 듯한 기운이 함께 있었다.햇볕 아래 말리지 못한 채 덜 마른 웃음.지원은 눈치챘다.하연이 묻지 않은 말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그 조용한 방 안의 공기 속엔말하지 않은 감정이 더 많았다.“혹시 무슨 일 있었어?”지원이 조심스레 물었다.“아뇨. 아무 일도요. 언니 빨리 씻고 주무세요.”하연은 너무 빨리 대답했다.그 반응이 오히려 더 마음을 찔렀다.“..하연아.”지원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마치 발끝으로 조용히 무너진 벽 위를 걷는 사람처럼.하연은 고개를 떨구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속마음처럼 낮고 단단한 목소리를 꺼냈다.“나도 알아요.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닐 수 없다는 거.평범한 새언니와 아가씨의 관계는, 더는 아니라는 거.”“..응.”“그런데.. 그래서 더 무서워졌어요.”지원의 숨이 멎었다.그 말 속엔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단지 너무 맑아서 되려 슬픈 고백이었다.“언니가 지
Terakhir Diperbarui: 2026-05-15
Chapter: 너무 가까운 마음 I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마음을 반죽하여 빵처럼 부풀어오른 사랑은, 사랑한다고 말한 이후의 날들은,예상보다도 훨씬 더 가만가만 조용했다.마치 오래전부터 서로를 사랑하며 그래왔던 일상인 것처럼.처음 맞는 하루지만 이질적일 정도로 낯설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여전히 같은 공간을 오가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한없이 비슷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어느새 서로가 없었던 시간의 농도보다 서로가 함께 보낸 농도가 더 어지러울 정도로 짙어질 무렵이었지만,그러나 그 평온함의 가장자리에서는,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떨림이 일어나고 있었다.전과는 확연히 달랐다.괜히 조용해서 더 이상했다.익숙한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침묵과 정적.하연은 여전히 따뜻했다. 맑게 웃었다.지원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하지만 그 조심스러움은 전과는 다른 온도를 띠고 있었다.예전엔 '아가씨와 새언니의 관계야. 누가 정상으로 봐줄까?'하는 넘지 않으려는 경계를 지키려는 마음이었지만,'..하지만 사랑이니까, 사랑하니까.'이제는 이미 넘어버린 경계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그 감정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복잡하고도 무겁게 헤아리는 조심스러움이었다.그건 단지 사랑이라는 말을 주고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그 말이 남긴 잔향이,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지원에게도, 그리고 아마, 하연에게도.*그리고 그 주 금요일,지원은 전화를 하면서 동시에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응. 어? 아.. 그게.. 아니, 아니야. 갈 수 있어. 응, 응. 내 자리 비워둬. 알았다니까. 응. 이따가 보자, 그래."지원은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과 만나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다.이게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홀로 저녁 식사를 할 하연이 걱정되기도 하는 지원.하연에게 말하는 입가엔 하연만을 향하는 익숙한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목소리는 어딘가
Terakhir Diperbarui: 2026-05-14
Chapter: 방 II
지원은 결국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무작정 마트에 들렀다.장바구니에 손이 가는 대로 담았다.감자, 바지락, 쑥갓, 두부, 된장.그리고 고등어 한 마리.하연이 좋아하던 것들이었다...하연이 들었으면 또 언니 좋아하는 것들만 사왔으면서 왜 내 핑계대냐고 뭐라고 웃으며 찡얼댔겠지만. 그 모습에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려다가 홀로 카트를 끄는 자기 모습에 씁쓸하게 내려갔다.어쨌든 오늘은 지원이 손끝이 재료들을 쥐는 순간.그러나 그 순간마다 지원은 자신이 지금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화해하려고 사는 거야? 아니면.. 그 애가 그냥 그리운 거야?’답은 자명했다.둘 다였다.언제나 함께였으니 앞으로도 언제나 함께일 거라고, 그렇게 될 둘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이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사랑이라는 단순한 말도,가족이라는 판에 박힌 말도지금 지원이 느끼는 솔직하고도 깊은 감정에 미치지 못했다.*집에 돌아온 지원은천천히 장 봐온 것을 냉장고에 정리할 것들 정리하고,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감자를 깎고,무를 썰고,바지락을 해감해 물에 담그고.지원의 모든 동작은 굼뜨고 무거웠다.마음에 바위 하나가 얹혀있어 말이든, 생각이든 뭐 하나가 떠오를 때마다 바위에 툭, 툭 걸리었다.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앉아 양파를 썰 때,눈 따갑도록 자극적으로 양파 기운이 올라왔다.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리는 지원의 두 눈.“왜 울어.양파 때문에...내가 양파냐.”지원이 어렸을 때 환장하고 봤던 인소의 명대사.아직까지 농담을 하거나 혼잣말을 할 때 지원은 그 대사들을 따라했다.혼잣말을 뱉으면서도,양파을 써는 칼과 손은 멈추지 않았다.국물이 끓기 시작할 무렵,등줄기 뒤로 싸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고개를 천천히 돌리자하연이 방 문 너머에서 조용히 지원을 바라보고 있었다.자세히 보니,하연의 두 눈은 새빨갰다.그 애도, 울었던 거야.지원은 찌개를 휘휘 저으며말없이 한 숟가락 떠보았다.“오늘은.. 짠맛보다, 그리
Terakhir Diperbarui: 2026-05-13
Chapter: 방 I
이틀째,하연은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신발장에 출근용의 불편하고 딱딱한 구두를 벗어 넣으며 지원은 다시 한 번 집의 요새 특히 낯선 조용한 공기 속에 들어섰다.하연의 방문 앞에 선 지원.손을 뻗어 문을 두드려볼까, 조심스롭게 하연이 이름을 불러볼까, 하다가 만다.집은 여전히 깨끗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컵받침은 그대로였고,부엌에 놓인 컵도 그대로였다. 물 한 모금 따른 흔적 없이.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집은, 마치 혼자 산지 오래된 곳처럼 고요하고 동시에 고독했다.대신 식탁 위엔도시락과 하연의 필체로 쓴 쪽지 한 장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언니, 아침엔 이거라도 챙겨 먹고 가요. 하연 드림.]그러나 그걸 봤으면서도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못 본 척, 출근했던 지원.쪽지 옆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지원은 조심스레 통을 열었다.그 작은 도시락 안에서 나는 다 식어버린 김밥의 참기름 냄새가,지원의 숨을 갑자기 죄어왔다.“이 애는.. 이러니까 더 밉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못하지. 탓하지도 못하고.”혼잣말을 내뱉으며 지원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뚜껑을 열기도 전에, 김밥보다 먼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그녀의 목을 타고 울음을 밀어올렸다.지원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꾸역꾸역 김밥을 입에 밀어넣었다.이토록 사소한 도시락 하나로도,하연은 자신을 감히 미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그 덕분에 지원은 하연에게 핑계나 탓을 하지도 못했다.하연의 그 모든 행동들, 지원을 향해 다가오는 그 순수한 걸음들이 지원같은 개미들에겐 지진과 같은 울림일지도 모른 채로.그게 더 잔인하단 걸, 왜 몰라. 대체, 왜. 너는.정말로 멀어지고 싶었으면, 이런 식으로 따뜻하게 굴지 말았어야지.금기를 넘고 싶지 않다면, 그 관계로 영원히 서로를 응원하며 사는 것에 만족했다면,넘었더라도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면 그랬어야지.나까제 흔들지는 말았어야지.하지만 돌이켜보면 하연은 변함없이 항상 그랬다.순수하게 들
Terakhir Diperbarui: 2026-05-12
Chapter: 감정의 뒷면 II
"뭐가?""음.. 모르겠어요. 그냥 전체적인 느낌이?"“..너가 봤을 때도 그래 보여?”“응. 분명히 우리는 이렇게 나란히, 같이 앉아있는데 뭔가 자꾸, 언니가 나보다 멀리 있는 기분. 바라보는 건 같은데.. 같은 거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목적지가 다른 마라톤을 가는데, 그냥 중간에 겹쳐지는 길이 와서 같이 가는 느낌..?”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국이 식는 것도, 새하얀 김이 눈앞에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하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언니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사실 요즘 좀 무서워요.”지원이 고개를 들었다.“언니가 내 손 잡아줬을 때,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다음이 더 욕심나기 시작했거든요.”지원은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식탁에 부딪히는 쇠젓가락의 소리가, 괜히 크게 울렸다.“그건.. 네 잘못 아니야.”“그러니까요. 그래서 더 무서워요. 언니가 나한테 물러서게 되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 다 잃게 될 것 같아서. 결국 난 내 잘못이 하나도 없어도 전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하연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울림은 깊었다.지원은 손끝으로 식탁을 천천히 문질렀다. 반투명한 나무결을 따라 흐르듯.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이 될 것 같지 않았다.하연은 지금, 하연과 지연, 둘의 사랑의 속도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속도를 맞추고 싶어 하면서도, 어쩌면 자신이 이미 너무 앞서가거나, 뒤에 처져서 버려졌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지원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미안. 미안해.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뭐가 그렇게 겁나는데요?”지원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지금 이 감정이, 이 관계가.. 내가 너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릴까 봐.이미 남들이 봤을 땐 충분히 이상한 우리 관계가, 더 이상해질까 봐. 그리고 애꿎은, 잘못한 거 하나 없는 너가 다칠까봐.”하연은 그
Terakhir Diperbarui: 2026-05-11
Chapter: 감정의 뒷면 I
본래가 그렇다.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당사자의 몸과 마음은 손짓 하나, 생각 하나, 그 사소한 것들에 더 조심스러워진다.이게 지원이 그간 하연을 향한 복잡한 마음의 정의였다.창 밖에서는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기상 예보에 따르면 아직 채 장마가 시작되기도 전이어야 하는데, 이 도시는 이미 오래된 이불처럼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숨결처럼 느릿했고, 창문마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홀로 삭이려고 마음 속에 간직하려던 기억을 더듬듯 끈질기게 귓가를 두드렸다. "..뭔 비가 이렇게 오냐."지원은 회색빛 거리 위를 걸었다. 하연이 부득불 들고가라며 손에 쥐어준 헬로키티 우산을 들고는 있었지만 어깨와 소매는 이미 축축했고, 발끝으로 스며드는 빗물에 신경이 쓰이기보다, 머릿속이 더 무거웠다.그렇게 편의점 앞을 지나칠 때, 문 옆에 쌓여 있는 음료 박스들 사이에서, 익숙한 초록색 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연이 좋아하는 탄산음료. 평소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가게에 들어가 하연의 것 하나, 지원의 것 하나를 집어 들었을 테지만, 오늘, 지원은 가볍게 시선을 떼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이미 충분하게 행복한데, 분명히 행복한 상태인데, 왜 자꾸 마음은 무거워지는 걸까.지원에게, 그 질문은 언제나 매일같이 반복되었고,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하지 않은 건지, 하지 못한 건지.어차피 지원은 몰랐거나 몰랐어야만 했고...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띠띠띠띠.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하연은 거실 바닥에 길게 누운 채 책을 들고 있었다. 얼굴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던 그 모습은, 여전히 순하고 맑고 환했다.아직 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듯 멍하니 눈을 돌려 현관을 바라보다가,지원임을 알고 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 언니 일찍 왔네요? 뭔 일이래?”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젖은 우산을 접었다. 신발장 옆에 기대어 두었
Terakhir Diperbarui: 2026-05-10
Chapter: 슬픔과 고통을 팔다 2 [完]
#6시간이 꽤 많이 흐른다.여의 형은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여의 아빠와 엄마는 장례식장을 큰 곳을 빌린다.관도 좋은 것을 쓰고, 음식도 잘하는 곳을 부른다.여의 통장 속 돈으로.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오히려 기쁘다.애초에 가족을 위해 쓰려고 받은 돈이었으니까.그러나 여에게 문제는그 돈을 죽은 가족을 위해 쓰려고받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여에게 형은 죽었다.그건 여의 아빠나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만,여에게는 그 의미가 달랐다.커다란 장례식장.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텅 빈 조문실.육개장과 전들은 차갑게 식는다.여의 아빠와 엄마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운다.여는 그것이 불만이었다.여는 형의 영정사진 앞에서도 슬프거나 아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여의 아빠와 엄마가 울다 혼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여는 그 둘에게 물을 한잔씩 떠다주며 말한다."형은 어차피 죽을 거였어.아빠도, 엄마도 알고 있었잖아.왜 호들갑이야?그리고 이런 장례식 할 돈 있으면그 돈 아껴서 차라리산 사람들끼리 밥이나 먹는 게 맞지 않아?이런다고 형이 살아 돌아와?살아 돌아온대도 병신마냥 링겔 달고 숨만 쉬고 있을 텐데?"여의 아빠가 손에 쥔 종이컵이 찌그러진다.종이컵의 물이 넘쳐흐른다."하긴 정상적인 게 아니지.애미, 애비는 일부러 차에 치여서 합의금을 뜯어내는데그 아들은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 게.차라리 형한테 차에 안 아프게 치이는 법을알려주지 그랬어?부모 자격 실격이야. 여러모로.그래놓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척 하고 있네?뭘 잘했다고 질질 짜는 건지.."여의 아빠는 분개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여의 멱살을 잡는다."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아니.."여는 말을 하려다가 만다.여의 엄마가 여와 아빠를 말리며 울고 있는 얼굴이여에게는 참을 수 없이 웃겼기 때문이다.그래서 여는 웃는다."푸흡, 푸하하!"여의 아빠는 주먹으로 여를 후려치고,발로 걷어차며
Terakhir Diperbarui: 2026-05-16
Chapter: 슬픔과 고통을 팔다 1
#1"안녕하세요.당신의 감정 중 하나를 사고 싶은데..무엇을 파시겠습니까?"이 미친놈은 또 뭐야.사채업자한테 쥐어터지다 도망쳐간신히 숨을 곳을 찾다가,인적 드문 공원에 있었는데여기도 미친놈이 있는 곳이었나 보다."아저씨. 저도 돈 없으니까, 그냥 가세요."남자는 여의 팔에 감긴 붕대와 얼굴의 상처,살갗이 드러난 부위마다 빠짐없이 어린 멍 자국을 본다.여는 괜히 옷 끝단을 잡아당겨 몸을 가리려한다.뭐, 어차피 너덜거리다 찢어져버릴 낡은 옷이지만,그냥, 괜한 관심은 꺼려지니까.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여의 옆에 앉는다.여는 짜증스러운 눈으로 남자 얼굴을 본다.남자는 여를 보고 빙긋, 웃는다.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본다.남자는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한다."예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닥치고 있으면 질려서 가겠지."...""예술이란 말이죠."아예 본격적으로 주둥이를 놀리려나보다.그냥 딴 데로 갈걸 그랬어."감정을 사용하는 겁니다.음.. 알기 쉽게 말하자면..감정은 물감입니다.예술가들은 붓에 감정을 묻히고무언가에 덧칠을 하는 것이죠.무언가를 칠하던가.그렇게 되면 그 무언가는,더 이상 무언가에 머물지 않는답니다.아름다워진다는 심미적인 관점에서도,비싸진다는 세속적인 관점에서도,사실은 모든 관점에서 한 차원 더 높아지죠.그런데.."남자는 난처한 듯 웃는다."저는 너무 오랜 시간 예술에 심취해예술품들을 만들어내다 보니..제 안의 감정들을 전부 써버렸습니다.이젠 어떻게 해도 감정이 생기지 않더군요."방금 웃지 않았나?여는 남자 얼굴을 흘겨본다.남자는 여와 눈을 맞추며 크게 미소 짓는다.올라가는 자신의 입 꼬리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사곤 한답니다.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감정은 분에 맞지 않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으니까요."남자는 아예 본격적으로 여를 향해 몸을 돌려 앉고는"희, 노, 애, 락, 그 외 무엇
Terakhir Diperbarui: 2026-05-14
Chapter: 유령
1그는 언제나 있었다.할아버지의 말씀을 빌려서 설명하자면,옛날,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부터 있었다고 한다.사실, 할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라고 하셨었다.해가 지고, 저녁이 되고,밤 12시가 되면집에 장작을 쌓아놓고서는벽난로에 불을 피우기만 하면그 앞 흔들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불을 들여다봤다고 한다.할아버지께서는 그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하셨다.하얀 천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검은 눈구멍 두 개만 뚫어놓은 그에게서는흔들의자가 앞뒤로 흔들리며 내는 소리인끼익끼익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마치 유령처럼 말이다.2그의 눈구멍 안으로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그저 검은 칠이 되어있을 뿐.누구에게는 당연한 말이겠고,또, 다른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말이겠지만.어렸을 때의 나는 그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유령에게 눈이 있든, 없든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벽난로가 타고 있는, 바로 앞의 흔들의자.그가 흔들의자에 앉아 다시끼익끼익소리를 낼 때면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옆 마룻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과자를 먹을 때는 그에게 과자를 건넸고,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그에게 장난감을 건넸다.하지만 그는 언제나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돌릴 뿐,나와 함께 과자를 먹는다거나,나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다거나,나와 어울려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그러나 그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충분했다.적어도 또래 친구들처럼 나를 피하거나,내 얼굴의 화상 흉터를 보고 나를 무서워하거나,아니면 돌을 던지며 나를 놀리지 않았으니까.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언제나 내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저녁이 되고,괘종시계가 밤 12시를 알리는 종을 치면나는 가지고 놀던 것들을 손에 쥐고부리나케 흔들의자를 향해 달려갔다.유령은 늘 그랬듯, 언제나 그 흔들의자에 앉아있었고나는 그 옆이 원래 내 자리라는 듯 당연하게 앉아혼자 재잘거리며 놀았었다.유령은 언제나 그랬듯이아무런 말도 하지
Terakhir Diperbarui: 2026-05-13
Chapter: 춘배
1."인쟈 얼마 안남았댜.""..얼마나 남았는디요.""몰르지. 아마.. 닷새 정도?""..알것슈."의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춘배."남은 시간 동안 어메한테 잘혀.난중에 후회하지 말고.""죽는 건 난디, 왜.."춘배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암튼 감사혀요. 갑니다.남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시구.""..그려."2."아가, 옷 추르렴. 고뿔 걸릴라.""인쟈 한여름이요, 엄니.안 그라도 더븐디 그런 말 마소.""뭔 여름이 이리 춥다니?봄 올람 멀었다. 얼른 저고리 챙겨입그라.고뿔 걸리면 눈물, 콧물 다 뺄 거인디..여 뒷산에서 산수유 알멩이나 따와야 쓰겄네.""아, 좀!엄니. 길 만든다고 거 다 볏던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디 자꾸 뭔 소릴 하는겨!"마루에 걸터앉아연신 손부채질을 해대는 춘배에게건넛방에 앉아, 그의 어메는 같은 말들만 늘어놓는다."그려? 그럼 산수유는 어디 가서 구한담?아가, 고뿔 걸린다니까는.옷 추르려, 어서."질린다는 눈으로 제 어메를 보던 춘배는한숨을 푸욱, 내쉬고는마루 구석에 벗어던져 놓은땀으로 범벅이 된 저고리를 가져다 대충 걸친다.그 모습이 자못, 만족스러운 듯 슬며시 미소를 짓는 그의 어메.너덜너덜한 여닫이창을 끼익, 하고 닫는다.창이 닫히자마자 저고리를 대충 벗어 던지는 춘배.다시 손부채질을 시작하지만올여름은 왜 이렇게도 더운 것인지,춘배는 서늘한 마루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하늘을 보면, 해가 구름에 가리어진다.잠시나마 식은 바람이 분다.뜨거운 열기가 한결 가신다.3."총각. 우리 아들 본 적 없는감?""또 뭔 소릴 하는겨.엄니 앞에 있는 나가 엄니 아들인디?""에이, 울 아들냄은 총각보다 더 신수가 훤히 생겼는걸.우리 아들 못봤는감?""에휴. 그려, 그 아들내미는 얼마나 더 그, 신수란 게 생겼나?""지 애비 안 닮고 나랑 똑 닮았으니,아주 어, 그래, 미남이지, 미남.눈도 크다랗고, 코도 오똑허니 잘 생겼지.""아이고
Terakhir Diperbarui: 2026-05-12
Chapter: 행성 2 [完]
"...이나 되나요, 씨X. 결국 우-."무전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으음.. 머리가 아팠다.몽롱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며 눈을 떴다.어두웠다. 밤인가?횃불이 타닥이며 불타고 있었다.누군가 무전기를 손에 들고 있다.내 소리를 들은 걸까. 그게 뒤돌아보았다.분명히 사람이다. 사람인데, 왜 옷을 안 입고 있지?가슴이 불룩한 걸 보니 여자다."저기요.." 힘없이 불렀다.그녀가 웃었다.뭐가 웃긴 거야.정신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내 뒤통수는 멀쩡한가?팔을 들어 만져보려 했는데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덩굴같은 걸로 말뚝에 묶여있다.다리도 마찬가지다."저기요? 당신도 생존자예요? 우주선에서?아니 그 전에 이것 좀 풀어줘 봐요. 뭐 하는 거예요? 당신 누구예요?"그녀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밖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나를 둘러싸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이들 앞에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저기요? 누구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아니면 영어라도? 헬로? 아니면 봉쥬르? 니하오? 또.. 아이 씨X 모르겠다.당신들 누구냐고!"내가 소리를 크게 지를수록 이 사람들은 더 크게 웃어댔다."그래, 씨X. 마음껏 웃어대라. 개X끼들.."그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아까 그 꼬마가나무를 깎아낸 그릇에 열매를 짓이긴 것 같은 것을 들고 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뭐? 먹으라고? 내가 미쳤냐?"그 꼬마아이는 말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 가버렸다."야 이 씨X. 말하면 좀 들어!"내 주변을 둘러쌓던 사람들은 한두 명씩 동굴 밖으로 가더니이제는 남자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내가 도망칠까 봐 경비를 서는 걸까."아주 멍청하지는 않네. 당신들 식인종이야? 나 먹으려고?이런 씨X. 내가 얌전히 먹힐 것 같아? 니들 후회할 거야, 이 개X끼들아!"남자들은 내 말을 무시하며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문제는 내가 그 말을 이해 못 한다는 것뿐이었다.얼마나 시간이
Terakhir Diperbarui: 2026-05-11
Chapter: 행성 1
"씨X, 이게 어떻게 된 거지?분명히 떠났잖아, 떠났다고.저 망할 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왜 씨X 우리지?이미 늦었었나?최선이었다고, 제일 빠른 거였어.개X발놈의 우주 담당자 새끼들.걔네 눈은 다 X박았나?지구만한 놈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걸어떻게 못 볼 수가 있지?씨X놈의 신이시여. 이게 말이나 되나요, 씨X.결국 우-."금이 간 녹음기의 유일한 내용이었다.녹음기를 대충 뒷주머니에 찔러 놓고다른 것들 중 쓸만한 것들이 있나 뒤져보았다.통조림? 괜찮지. 음식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칼? 이미 있잖아. 패스.시체? ..음.옆에 있던 구부러진 철판을 (아마 우주선에 덧대어졌던 것일 거다.) 시체의 얼굴에 덮어줬다.천 같은 건 다 타버렸으니 이게 최선이다.지구에 있을 때는 천국이나 지옥에 갈 줄 알았는데,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아니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일단 생존에 필요한 걸 찾아야 한다.우는 소리는 그다음에 해도 충분하다.*혹시 몰라 박살 난 우주선 안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아직 밖에서 잠을 청하기에는 이곳의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다행히 춥지는 않다. 비도 내리지 않는다.가방에 머리를 대고 생각에 잠긴다.삼촌은 죽었다. 머리가 박살 나 그 조각이 튀는 걸 직접 보았으니.머리가 박살 난다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왜 씨X 우리지? 왜 씨X 우리지?무전기에서 들려온 말이 계속 맴돈다.그러게. 왜.. 씨X.. 우리일까..아니다, 이런 생각은 아직까지는 하지 말자.먼저 잠 푹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자.지구랑 비슷한 대기인 것이 천만다행이다.이곳은 어디일까? 머나먼 행성?지구는 당연히 아니다.우주선 창문으로 지구가 깨물리는 모습을 봤다.그놈은, 아니 놈인지 년인지도 모르니,그것은 단 두 번의 입 벌림으로 지구를 모조리 씹어 삼켰다.삼촌의 도움으로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조금만 늦었으면 우리도 지구와 지구에 남은 사람들과
Terakhir Diperbarui: 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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