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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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블다크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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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평범해 보였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죽었다. 츠루는 그 의미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그날을 떠올린다. 그 안에 적혀 있는 단 하나의 문자, “S”의 의미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로. 점점 고립되어 가던 쿠미와, 오직 그녀에게만 손을 내민 완벽한 소녀 사치코. 구원처럼 보였던 관계는, 서서히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쿠미는 사치코에게만 남겨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츠루는, 이제 그 침묵의 의미를 되짚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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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st

나는 끝내 S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채, 그 아이가 남긴 유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얇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아이답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몇 번이나 그 문장을 되짚어 읽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알아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도 나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거기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췄다.

*

*

*

푸른 하늘 아래,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우리들은 마치 5월의 햇살과도 같았다. 교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의 연둣빛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고, 창문 사이로는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하카마 치맛자락을 한 번 고쳐 잡고, 늘 다니던 복도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나무 바닥을 밟을 때마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상할 정도로, 나는 그때 주변의 소리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몇몇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창가 쪽에는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빛 속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 츠루.”

내 시선을 눈치챈 듯,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부드럽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왜 그렇게 서 있어?”

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냥.”

겨우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자, 교실 안의 소음이 다시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그 아이를 제외하면.

"오늘, 날씨 좋지?”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네.”

짧은 대화였다. 더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 아이 역시 굳이 말을 늘이지 않았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혹은, 이미 늦어버린 것처럼.

“사치코.”

문득, 교실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교실 문가에 서 있던 것은 쿠미였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는 탓인지,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웃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오늘도 일찍 왔네.”

쿠미가 한 발짝 안으로 들어오며 말을 이었다. 그 말투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섞여 있었다. 사치코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그냥, 평소처럼.”

그 말에 쿠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었다. 이내 쿠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사치코의 옆자리로 걸어왔다.

“그래도... 오늘 날씨 좋잖아.”

아무렇지 않은 말이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별 의미 없는 말. 사치코는 그제야 책을 덮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쿠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부드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응. 좋네.”

짧은 대답이었다. 그 한마디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조용히 맞물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 안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같이 있어도 될까?” 별 의미 없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굳이 묻지 않았을 말이었다.

쿠미가 먼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응, 물론이지.”

부드러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치코의 시선이 조용히 나를 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그 시선이, 이상하게도 내 자리를 정해주는 것 같았다.

“…고마워.”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처럼.

“오늘, 선생님이 숙제 검사하신대.” 쿠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조금 늦게까지 했거든… 혹시 틀린 데 있으면 좀 봐줄래?”

말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사치코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치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줘.”

그 한마디에, 쿠미는 망설임 없이 공책을 건넸다. 사치코는 아무 말 없이 몇 장을 넘기며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손끝이 멈춘 곳을, 쿠미가 고개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아…”

쿠미가 작게 웃었다. “또 틀렸네.”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장면이었다. 친구가 친구의 숙제를 봐주는 것.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별것 아닌 풍경. 그런데도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끼어들 이유가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그 자리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는 괜히 공책을 펼쳐 들고,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들을 눈으로만 훑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쿠미의 웃음소리와, 사치코의 짧은 대답이— 교실의 소란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그때 나는, 그 자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닫혀 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나… 잠깐 다녀올게.” 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금방 올게.”

가벼운 말이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아무 의미 없는 말.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치코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 짧은 질문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순간 교실의 소리가 아주 잠깐,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쿠미는 잠시 말을 고르듯 입을 다물었다가, 곧 작게 대답했다.

“…화장실.”

“그래.” 사치코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다시 시선을 내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장을 넘겼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쿠미가 교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사치코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붙잡지도 않았고, 막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쿠미가 “허락을 받고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치코가 모르는 순간이 있을까—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이어졌지만, 쿠미가 다시 들어오자마자 교실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아까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자리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이어지려던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았다.

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리에 앉아, 펼쳐둔 공책 위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 아이 역시,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쿠미.”

조용한 목소리였다.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은—그저 평범한 호출. 그런데 그 한마디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치코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마치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아이는 쿠미를 보고 있었다.

“이거, 아까 이어서 볼래?”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사치코가 말했다. 그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었다. 순간 교실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쿠미가 고개를 들었다.

“…응.”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는, 조금 전까지 그 아이가 받아야 했던 침묵과는 전혀 다른 온도가 담겨 있었다. 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치코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 아무도 그 아이를 부르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 아이는 그쪽으로 향했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치코는 아무 말 없이 옆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동작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조금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쿠미가 자리에 앉는 순간, 교실의 소음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웃음소리도, 이야기들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어졌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침묵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나를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 같이 갈래?”

사치코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가던 틈 사이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어디…?” 쿠미가 물었다.

“도서실.”

짧은 대답이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길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난다.

“응… 갈게.” 쿠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것뿐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그런데 그 한마디로— 무언가가 완전히 정해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치코는 고개를 끄덕였고,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는 듯이. 두 사람은 함께 교실을 나섰다.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는 틈이 없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츠루.”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잠시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안 가?”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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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내 S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채, 그 아이가 남긴 유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얇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아이답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몇 번이나 그 문장을 되짚어 읽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알아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도 나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거기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췄다. * * * 푸른 하늘 아래,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우리들은 마치 5월의 햇살과도 같았다. 교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의 연둣빛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고, 창문 사이로는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하카마 치맛자락을 한 번 고쳐 잡고, 늘 다니던 복도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나무 바닥을 밟을 때마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상할 정도로, 나는 그때 주변의 소리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몇몇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창가 쪽에는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빛 속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 츠루.” 내 시선을 눈치챈 듯,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부드럽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왜 그렇게 서 있어?” 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냥.” 겨우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자, 교실 안의 소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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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나는 한 발짝을 내딛으려다,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금방 보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가려면 지금이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도, 혼자 남는 것도 아닌 채로,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흐름 속에서, 나만이 그 밖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겨우 실감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교실을 나섰다. 복도에는 아직 몇몇 아이들이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뒤였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뭇잎 그림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소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도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문을 열자, 낮은 공기가 조용히 밀려왔다. 도서실은 한산했다. 창가 쪽 자리에 몇몇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옮겼다. 창가에서 두 번째 자리. 그곳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치코는 등을 곧게 편 채 책을 읽고 있었고, 쿠미는 그 옆에 앉아 같은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특별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는 틈이 없었다. 나는 책장을 넘기는 척하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종이 위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들이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그리고— 아주 짧게 오가는 몇 마디의 대화. “여기, 이거.” 사치코의 목소리였다. 쿠미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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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사치코는 특별한 아이였다. 그 사실을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교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가 자리에 앉으면, 주변의 소리는 아주 조금 가라앉았고, 누군가가 말을 꺼낼 때면— 이유 없이 한 번쯤 그 아이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그건 강요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화족 중에서도 공작에 다음가는 작위, 소문에 따르면 지금도 전통 일본식 가옥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요코하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의 집이었다. 그 집안에 걸맞은 교육,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태도까지— 그 아이는 처음부터, 우리와는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말을 할 때의 속도, 시선을 두는 방식, 자리에 앉아 있는 자세 하나까지도— 어딘가 빈틈이 없었다. 과하게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흐트러진 순간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있을 때면, 그 아이의 모습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드러나는 얼굴에는 쓸데없는 감정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웃을 때조차, 크게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옅게, 필요한 만큼만. 그래서일까. 그 아이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다음 날, 쿠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에 나왔다.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오는 그 아이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조용한 걸음,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그리고— 늘 보아왔던 그 미소까지. 그것만 보면, 어제의 공백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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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h
쿠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교실 안에는 더 화려한 아이들도 있었고, 말을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쿠미는 언제나 한 걸음쯤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나서지 않았고, 굳이 시선을 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쉽게 잊히지 않는 아이였다. 머리는 일본인 표준이라기에는 조금 밝은 갈색이었고, 햇빛을 받으면 그 색이 더 옅어 보였다. 결이 고운 머리카락이 어깨 근처에서 부드럽게 떨어졌고, 움직일 때마다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전체적으로는 청초한 분위기의 미소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마치 봄바람에 스치는 제비꽃처럼, 특별히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얼굴선은 또렷하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쪽에 가까웠다. 눈은 크고 맑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힘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 시선이 완전히 닿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내가 혼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어딘가 조금 멀리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때의 쿠미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표정, 특별할 것 없는 말투. 그렇지만— 아주 미묘하게, 다른 아이들과는 어긋나 있는 느낌. 가까이 다가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손을 뻗으면 조금 멀어져 있는 것 같은 거리. 그건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굳이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넘겨버렸다. 그런데 지금의 쿠미를 보고 있으면, 그때와 같은 이유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달라진 건 많지 않았다. 머리도, 표정도, 말투도— 겉으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비슷했다. 여전히 조용했고, 여전히 먼저 나서는 일은 없었다. 웃을 때의 얼굴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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