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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0화

Author: 윤지
그럼 그렇지.

박예찬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엄마. 걱정 마세요.”

그 한마디에 박민정은 한결 안심이 되었다.

밤이 되자 박민정은 씻고 나온 후 유남준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곧, 그의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뒤로한 채 정수미의 방으로 향했다.

“엄마.”

정수미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아직 잠들지는 않은 상태였다. 박민정을 본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민정아,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박민정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오늘 엄마랑 같이 자도 돼요?”

정수미는 순간 멈칫했고 박민정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아이고, 다 큰 애가 무슨... 이제 남준이랑 함께 지내기 시작했는데 둘 사이의 정을 쌓아야지.”

그러나 박민정은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남준 씨랑은 꽤 오래 함께 보냈어요. 하루쯤은 괜찮아요. 그냥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녀는 장난스러운 투로 말을 덧붙였다.

“다른 집 애들은 어릴 때 엄마랑 자는 게 당연한데 전 한 번도 엄마랑 같이 잔 적이 없잖아요.”

그 말은 단순히 함께 있고 싶다는 의미였지만 정수미의 가슴에는 짙은 아픔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주름진 손을 들어 박민정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미안해, 내 사랑하는 딸.”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박민정은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정수미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요. 엄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앞으로 우리,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요.”

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씁쓸한 고통이 번졌다. 자신이 얼마나 더 박민정의 곁에 머물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영원히 딸아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

박민정도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다 문득, 정수미의 몸이 지나치게 마른 걸 깨달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온통 뼈뿐이었다.

“엄마...”

박민정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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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1화

    정수미는 약을 먹고 얼마간 쉬다 보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모든 사람이 그녀와 같이 아침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이건 제가 사 온 아침인데 혹시 괜찮은지 드셔보시겠어요? 요리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사 왔어요.”진서연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정수미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된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칭찬하기 시작했다.“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요?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그러면 다행이네요. 일단 죽 한 그릇 담아드릴게요.”“고마워요.”진서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에게 죽을 담아서 건넸다.그리고 박예찬은 옆에서 새우 하나를 까더니 정수미의 접시에 올려놨다.“외할머니, 여기 새우도 드세요.”정수미는 오랜만에 이런 행복감을 느껴보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우리 예찬이도 고마워.”“할머니,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가족끼리는 고맙다는 말을 안 하는 거래요.”“그래? 알겠어.”정수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사실 지금 정수미는 미각을 거의 잃은 상태였지만 오늘의 음식은 유난히 맛있는 것 같았다.그렇게 아침을 다 먹은 뒤 정수미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아, 그때 김인우 씨한테서 난청 수술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네.”“그러면 빨리 수술 스케줄부터 잡아. 엄마가 같이 가줄게.”정수미는 마음이 조급했다.박민정의 얼굴에 난 상처와 난청이라는 장애가 정수미한테는 줄곧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원래 지금처럼 안 들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때 먹지 말아야 할 약을 먹고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한테까지 가게 된 것 같았다.“알겠어요.”“말이 나왔던 참에 오늘 바로 가보는 건 어때?”정수미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기 전에 그녀의 병을 치료해 주고 싶었다.“네.”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곧바로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오늘 시간이 괜찮다는 말을 듣자마자 정수미와 같이 차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2화

    박민정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하랑이 잘 부탁드릴게요. 임신이 처음이라 많이 서툴 텐데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저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돼요.”김인우가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산부인과 지식까지는 섭렵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그럴게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잘 돌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김인우는 지금 조하랑의 뱃속에 자기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그 덕분에 최근 병원의 복지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박민정과 정수미는 그제야 병원에서 나와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는데 가는 길 내내 정수미는 오늘 많이 피곤했는지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그러자 박민정이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엄마, 너무 피곤하면 제 어깨에 기대어 한잠 자요.”“그래.”정수미는 박민정의 말대로 그녀에게 기댄 뒤 눈을 꼭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은 이상하게 어깨가 축축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렸는데 정수미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순간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운전기사더러 차를 세우게 했다.“당장 병원으로 다시 가주세요.”“네.”그녀의 말에 운전 기사는 황급히 핸들을 돌려 병원으로 향해 달려갔다.“엄마, 엄마...”박민정은 정수미를 안고 낮은 소리로 불러보았는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마음이 점점 조급해진 박민정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엄마!”다행히 그들은 빠르게 다시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정수미가 수술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박민정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이때, 김인우가 다급히 뛰어오더니 그녀의 어깨가 피로 흥건하게 젖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형수님, 무슨 일이에요?”박민정은 그제야 정수미의 병이 재발했다고 알려줬다.그러자 김인우는 침착하게 그녀를 안심시켰다.“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네네.”김인우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수술실 안으로 뛰어갔다.가기 전에 유남준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3화

    정윤아는 한눈에 봐도 다급한 기색이었다.그러자 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는데요... 가족분들도 아시다시피 환자분의 지금 상태로는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정윤아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혹시 며칠 전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요?”그러자 의사가 의심의 눈초리로 되물었다.“혹시 환자분은 상태를 전혀 모르고 계셨나요?”정윤아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럴 수가?”의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정윤아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미 진작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박민정은 덤덤한 얼굴로 의사에게 다가가 말했다.“의사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그러자 의사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아닙니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환자분과 많은 시간을 나누시길 바랍니다.”“네.”말을 마친 뒤 의사는 자리를 떴다.그렇게 박민정은 정수미의 침대를 밀고 병실로 돌아왔다.정윤아는 뒤따라오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 언니, 언니는 고모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박민정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솔직하게 답했다.“저도 며칠 전에야 알았어요. 그때 윤아 씨는 윤소현 씨한테 한창 속고 있을 때였죠. 저는 엄마의 건강에 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어 예전에 엄마 주치의였던 분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더니 지금까지 병이 계속 악화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속이고 계셨더라고요.”정윤아는 순간 눈이 새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었다.“어떻게 이럴 수가...”박민정은 본인도 슬펐지만 오히려 눈앞의 정윤아를 먼저 위로했다.“괜찮으니까 울지 말아요... 그리고 이따 엄마 보러 가서도 꼭 눈물을 참아야 해요, 알겠죠?”정수미는 분명 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박민정의 말에 정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울지 않을게요. 이런 상황이면 분명 당사자부터 마음이 약해질 텐데 그럴수록 저희가 옆에서 파이팅 해드려야 고모가 병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4화

    정수미는 창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예전에 엄마는 키워준 아이들한테 속아서 많은 약을 먹게 되었고 나중에는 어디 갇혔다가 불에 타 죽을뻔하기도 했어. 그때 아마 많은 유해 물질도 같이 마셨을 거야. 비록 네 아빠가 나중에 구해주긴 했지만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온몸에 큰 화상까지 입었어.”“그 이후로 비록 치료를 받았어도 여러 질병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었어.”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심장이 하도 따끔거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렵게 찾은 친엄마가 곧 그녀를 떠나간다.정수미도 진작에 그녀의 슬픈 얼굴을 알아챘지만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사실 박민정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여태껏 잘 키워주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또 병마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민정아... 이렇게 또 너만 두고 가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엄마,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건 엄마 잘못도 아니고 엄마 탓도 아니에요.”박민정은 정수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러자 정수미도 어느새 빨개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착한 딸, 엄마 이해해 줘서 고마워.”박민정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정윤아와 유남준은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두 모녀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눈치껏 밖으로 나갔다.박민정은 정수미에게 기대어 좀처럼 그녀의 손을 놓지 못했다.이때 정수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아, 나 배고파.”그녀의 말에 박민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뭐 먹고 싶어요? 제가 사 올게요.” “아무거나 다 돼.”그러다가 정수미는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배고픈 게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 버틸만하다는 뜻이 아닐까?”그러자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당연하죠.”“금방 갔다 올게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병실 밖으로 나와 그제야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유남준에게 말했다.“먹을거리 좀 사 올 테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5화

    유남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망설이고 있었는데 박민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그저 물어본 거예요.”그러고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그거 알아요? 저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주변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나는 건 너무 무서워요.”처음에는 박형식이었고 그 뒤로는 은정숙마저 떠나버렸다.그리고 지금은 친엄마인 정수미마저 건강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박민정은 요 며칠 꿈에서 거의 매일 누군가를 떠나보냈는데 깨어나 보면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꼭 안아주며 답했다.“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어느 날 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다시 만난다는 말에 박민정이 갈라진 목소리로 되물었다.“정말 그렇게 될까요?”“당연하지.”예전의 유남준이라면 분명 이런 위로의 말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오늘날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여태껏 죽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눈앞의 박민정이 슬퍼하니 자신마저 가슴이 저린 것 같았다.박민정은 문득 가게에 다른 손님들도 있는 걸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괜찮은 척 말했다.“남준 씨 말이 맞아요. 어차피 우리도 결국에는 죽을 텐데 이렇게까지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은 여전히 씁쓸해 보였다.그렇게 주문했던 요리가 포장되어 나오자 그들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빠르게 달려와 박민정에게 말했다.“형수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건 운명에 한 번 맡겨봅시다.”그러자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알겠어요.”김인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아무 고통도 없이 정 대표님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네네.”“그러면 민정 씨도 내일 바로 수술 진행할까요?”사실 박민정은 원래 수술 날짜를 뒤로 미루려고 했는데 정수미가 병실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박민정을 불렀다.“민정아.” 박민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6화

    어렵게 되찾은 친엄마의 사랑을 다시 잃는 게 두려워서일까?박민정은 그렇게 찬물로 여러 번 얼굴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다.저녁.박민정은 유남준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혼자 남아서 정수미 곁을 지키려 했다.그러나 정윤아도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정수미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그렇게 밤이 되자 정수미는 또다시 통증이 밀려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 계속 뒤척거리기만 했다.그 모습을 발견한 박민정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엄마, 잠이 안 오면 우리 수다나 떨어요. 어차피 저도 안 피곤하거든요.”정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모, 우리 얘기나 나눠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정윤아가 먼저 대화의 주제를 꺼냈다.“민정 언니, 언니 어렸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데.”어렸을 때라...박민정은 그 시절 행복했던 부분만 말해줬다.“사실 별거 없어요. 그때 저는 한 가정부네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학교 끝나서 집에 돌아오니...”박민정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주자 정윤아와 정수미는 모두 귀 기울이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특히 정수미는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그녀한테는 너무 소중한 시절이라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들었다.그러다가 중간중간에 정윤아는 궁금한 점도 박민정에게 물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눴고 정수미의 통증도 어느새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저녁 10시.정수미는 시계를 보다가 문득 내일 박민정의 수술이 생각나 졸린 척 하품했다.“안 되겠다. 나 너무 피곤한데 우리 이만 자자.” “네? 한참 재밌는데 벌써 잔다고요?”정윤아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 아직 하나도 안 졸려요.”그러자 정수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 같은 늙은이가 너희 젊은 사람들의 체력을 따라가기 쉬운 줄 알아? 자, 너희 둘은 옆에 칸에 가서 자. 민정이는 내일 수술도 해야 하잖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7화

    그의 호들갑에 조하랑은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지금 여기서 어떻게 더 늦게 가란 소리예요? 전 그냥 임산부일 뿐이지 어디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걷는 것까지 뭐라 하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줄래요?”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안 뒤로부터 김인우는 조하랑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고 먹는 것도 철저하게 관리했다.그리고 지금은 혹시나 넘어질까 봐 걷는 것까지 걱정했다.조하랑은 이제 더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하랑 씨는 제 아내이고 뱃속에는 제 아이가 있는데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누가 신경 써줘요? 말 좀 들어요, 네?”김인우는 말하면서도 조하랑의 눈치를 힐끔힐끔 봤지만 조하랑은 그냥 못 들은 척 앞으로 직진했다.병원에는 당연히 사람도 많고 급히 걸어가는 의사나 환자, 그리고 병간호는 사람들도 많았다.그 보습을 지켜보던 김인우는 조하랑을 안쪽으로 세우더니 사람들에게 소리쳤다.“여기 임산부가 있는데 혹시나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주세요.”병원 관계자들은 그가 김인우란 사실을 알아차린 뒤 바로 벽 쪽에 붙다시피 지나다녔다.하지만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당연히 김인우가 누구인지, 그가 병원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저마다 이상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조하랑은 순간 쥐구멍이 있으면 당장 기어들어 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는데 이렇게 과잉보호하는 남자를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지 문득 의심이 들었다.“그만해요. 인우 씨는 얼굴이 두꺼워서 잘 못 느끼겠지만 전 부끄러워 미치겠어요.”그러나 김인우는 지금 조하랑의 뱃속의 아이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역시나 빠르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작 임신한 거로 왜 저리 오버야?”“내 말이, 누가 보면 이 병원에서 혼자 임신한 줄?”“너무 저러면 오히려 위험한 일이 더 많이 발생하던데.”“그러니까요. 너무 몸을 사리는 것도 안 좋더라고요. 차라리 그냥 우리처럼 자연스레 행동하는 게 낫지.”“문제는 아직 배도 너무 불러온 게 아니던데요?”몇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8화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 오늘 수술한다고 해서 옆에 있어 주려고, 겸사겸사 정 대표님도 보려고 왔지.”박민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안 깨어나셨어.”“괜찮아, 밖에서 기다릴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조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김인우는 그녀의 업무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고 조하랑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그녀는 박민정곁에 앉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되물었다.“맞다, 남준 씨는?”“예찬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올거야.”지금 정민기도 매우 바쁜 시기라 왠지 유남준이 직접 박예찬을 데려다줘야 안심될 것 같았다.“아, 그렇군.”그렇게 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잡고 또 한동안 위로의 말을 건네는걸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박민정의 얼굴이 지금 괜찮아 보여도 속은 말이 아니란 걸 조하랑은 다 알고 있었다.“괜찮을 거야, 민정아.”그러고는 박민정을 꽉 안아줬다.김인우는 곁에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지 몰라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조하랑은 정수미 보러 들어갔다.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는데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정 대표님, 오면서 과일 좀 사 왔어요.”조하랑은 혹시나 정수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최대한 밝게 인사를 건넸다.“하랑 씨, 고마워요.”“저는 민정이 친구이고 민정이 엄마면 제 엄마나 마찬가지예요.”그리고 뒤에 서 있는 김인우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나중에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 남편한테 말씀 주시면 되겠습니다.”그러자 김인우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정수미에게 말했다.“하랑 씨말대로 혹시나 병원에 불편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꼭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병원 너무 좋아요.”정수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박민정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정수미가 중병 환자란 사실마저 잊어버렸다.그리고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매일 슬픔 속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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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4화

    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3화

    간호사가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원장한테 말했다.“원장님, 이지원 씨를 데려왔습니다.”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민정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저는 이만 나가볼 테니까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저를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그렇게 대기실 안에는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고 유남준과 박민정은 말없이 이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아직 두 사람을 보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으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야? 민정이가 알고 날 괴롭히면 어떻게 해?”박민정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지원!”이지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누구세요?”“내가 누구인지 기억 안 나? 나야, 민정이.”그녀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이지원은 순간 겁을 먹은 얼굴로 빌기 시작했다.“민정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나도 많이 반성했으니까 한 번만 봐주라. 더 이상 거짓말도 하지 않을게... 우리 한때는 친구였잖아?”그리고 박민정의 손을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난 윤소현 씨처럼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연예계에서만 활동하면서 살 테니까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줘.”그녀의 간절한 애원에도 박민정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아직 덜 미쳤나 보네!”이지원은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박민정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야! 넌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진짜 박민정이라고!”박민정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그러자 이지원은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이지원이잖아!”그리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박민정을 때리려고 했다.“빌어먹을 X, 널 죽여버릴 거야!”다행히 옆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2화

    이지원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남준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역시나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라 분명 이번에도 쇼한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병은 정확하게 진단해 내기 어렵다.“그래, 같이 가자.”유남준이 단번에 가겠다고 하자 박민정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그에게 슬쩍 물어봤다.“이지원 씨가 신경 쓰여요?”순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고?”“남준 씨 첫사랑이었잖아요. 바로 가겠다는 걸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면 걱정하는 건가?”말하다 보니 박민정도 슬슬 질투가 났다.그러자 유남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답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예전에도 말했잖아, 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그런데 왜 신경이 쓰이고 걱정해?”박민정은 그의 단호한 발언에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저랑 같이 가보려고 해요?”“단순 호기심.”그가 이런 일로 호기심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박민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러고 보니 그녀도 궁금하긴 했다.“빨리 먹고 가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아침밥을 다 먹은 뒤 유남준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비록 집에 운전기사가 있지만 유남준은 박민정과 단둘이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다.이지원이 지금 입원해 있다는 병원은 집과 살짝 멀었는데 차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얼마간 달리다 보니 박민정은 저 멀리 하얀색 건물과 울타리 안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한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지원도 흰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헝클어진 채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이때 옆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이지원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정확하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입구에 도착해보니 병원 원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1화

    이튿날, 아침 여덟 시쯤.박민정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남준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 안에 가뒀다.“왜 벌써 깼어?”유남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박민정은 난감한 얼굴로 그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역시나 어림도 없었다.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누워 그에게 말했다.“출근해야 하니까 빨리 이것 좀 풀어요.”그러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더 자도 돼.”회사 대표가 굳이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박민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잠이 안 와요.”순간 유남준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이더니 벌떡 일어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물었다.“그러면 우리 재밌는 놀이나 더 할까?”그의 말에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아, 아니요. 그냥 잠이나 계속 자요.”그러자 유남준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다시 누웠다.솔직히 오랜만에 이토록 개운하게 잤다.박민정은 그의 품 안에서 갇혀있는 상태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지만 유남준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도 참아야 했다.아홉 시 반쯤 되자 박민정은 더는 누워있기 힘들어 유남준에게 거짓말했다.“남준 씨, 나 배고파요.”그러자 유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러면 아침밥부터 먹자.”“네.”그제야 자유로운 몸이 된 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남준네 셰프는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했고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박예찬, 박윤우는 이미 학교에 갔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근했다.박민정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 셰프는 재빨리 그들이 먹을 아침밥을 다시 데워줬다.유남준은 그녀가 허겁지겁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한껏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네.”한창 맛있게 먹고 있던 이때, 갑자기 박민정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김인우’라는 이름을 본 유남준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재검사받아야 하는 건가?’박민정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0화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9화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8화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7화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6화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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