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그래...”허윤진은 어딘가 집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허윤진의 눈길은 자꾸만 어떤 특정한 곳으로 향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시선이 몹시 불편했다.‘설마 이 아이가 방금 뭔가 들은 건 아니겠지?'방에 진서준과 허윤진만 남자 분위기가 더 어색하고 묘해졌다.진서준은 숨 막히는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윤진아, 며칠 동안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이제 우리 셋이 해변 구경하러 가자.”“응... 좋아.”허윤진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너 왜 그래? 뭔가 마음이 딴 데로 가 있는 것 같은데.”진서준이 질문에 허윤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앞으로 내가 있을 때 언니랑 좀 자제해줄래?”진서준은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아무래도 화장실 안의 소리가 밖에 들렸던 것 같았다.“저기... 나 목이 좀 말라, 물 좀 떠줄래?”이 화제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든 진서준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더 이상 얘기했다가는 앞으로 처제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었다.허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떠 왔다.“조금 뜨거운데, 내가 불어서 식혀줄게.”허윤진은 물컵을 들고 침대 옆으로 왔다.“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진서준은 서둘러 손을 뻗어 물컵을 받으려 했다.“내가 해줄게...”허윤진과 진서준이 물컵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그만 뜨거운 물이 허윤진의 가슴 쪽으로 쏟아졌다.“아야!”뜨거운 물이 닿자 허윤진은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윤진아, 괜찮아?”진서준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괜찮아, 괜찮아...”허윤진은 서둘러 젖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하지만 물이 너무 많이 쏟아진 탓에 겉옷뿐만 아니라 안쪽의 하얀 셔츠에도 물 자국이 생겼다.“여기 드라이기가 있어. 드라이기로 말리는 게 어때?”진서준이 서둘러 물었다.진서준이 머무는 곳은 고급 병실로 무려 17평 정도 크기였다.최첨단 의료 장비만 없다면 누가 봐도 이곳은 고급 스위트룸처럼 보였을 것이다.허윤진은 고개
허사연의 장난기 어린 시선을 보자 허윤진은 언니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직감했다.언니는 자기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허윤진과 진서준 사이는 아무런 특별한 것도 없이 깔끔했다.넘지 말아야 할 선을 허윤진은 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었다.지난번 온천 사건도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허사연은 흥미로운 미소를 띤 채 아침 식사를 들고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아까 어땠어? 기분 좋았어?”허사연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좋았다는 거야?”진서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모르는 척은. 윤진이 셔츠를 빨러 갔던데 너희 둘이 아까 화장실에서 뭐 했던 거 아니야?”허사연의 눈에서 야릇한 빛이 반짝였다.진서준은 그 말에 피를 토할 뻔했다.“그게 아니야. 내가 목이 말라서 윤진에게 물을 부탁했는데, 그 애가 가져오다가 실수로 자기 몸에 쏟은 거야.”진서준은 급히 해명했다.만약 무슨 일을 정말로 저질렀다면 허사연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었다.“윤진은 지금 마스터 급인데 그런 애가 물 한 잔도 제대로 들지 못할 것 같아?”허사연은 진서준을 째려보며 말했다.“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지?”“정말 거짓말이 아니야...”진서준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됐어, 나도 내 친동생한테 질투하진 않을 거니까.”허사연은 두유와 삶은 달걀을 꺼내며 말했다.“단백질 보충 좀 해. 아까 그렇게 많이 소모했잖아.”허사연의 말이 점점 더 이상해지자 진서준은 황급히 외쳤다.“그만, 그만하라고!”“푸흡...”허사연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넌 왜 자꾸 날 여자 변태로 만드는 거야?”진서준은 속으로 투덜댔다.‘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물론 이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만약 말했다간 한 달 동안 허사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게 뻔할 것이다....대한민국에서는 해가 막 떠오른 시간이었지만 서반구에 있는 초아국에서는 밝은 달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깊은
매부리코 노인은 담담히 말했다.“아닙니다, 그런 뜻은 전혀 없습니다...”사람들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매부리코 노인은 방금 앞으로 나섰던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교회로 가서 내가 주교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전해. 대한민국 무도계를 멸망시키려면 이제 각자 따로 움직일 때가 아니야. 그리고 가는 길에 올림푸스 신전에 들러 약속한 물건을 전해줘. 신전이 대화에 응할 뜻이 있다면 신왕 한 명을 보내라고 해.”“알겠습니다.”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천신님, 혈수 쪽에는 따로 지시하실 게 있습니까?”혈수라는 단어가 나오자 매부리코 노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그 쓸모없는 것들과 대화할 필요 없어. 교회와 협상이 끝나면 혈수 놈들부터 먼저 무너뜨릴 거야.”혈수를 제거하라는 말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전투 의지가 번뜩였다.교회와 비교하면 혈수의 전력은 훨씬 약했다.교회와 멸용 조직이 손을 잡으면 혈수를 단 하루 만에 소탕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도 멸용 조직이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상황에서 말이다.이번 대한민국 무도계 공격으로 멸용 조직도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이 저택에 모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멸용 조직의 남은 소수 정예였다.만약 이들이 또 죽는다, 멸용 조직은 지선 두 명만 남게 될 것이다....대한민국과 북조의 국경 지대, 눈이 소복이 쌓인 설산.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가 북조 국경 안쪽으로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빌어먹을, 호국장군이 왜 여기 나타난 거야?”박시윤은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박시윤과 함께 장라산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던 남조의 고수들과 몇몇 멸용 조직의 강자들이 모두 대한민국 땅에서 죽었다.사실 박시윤은 대한민국 무도계를 피로 물들일 계획이었다.하지만 장라산에서 호국장군과 검존 조기강을 마주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당시 그곳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하지만 그 두 사람만으로도 박시윤 일행을 산산이 부수기에 충분했다.박시윤과
대한민국에는 총 여덟 개의 특수 부대가 있다.각 부대는 대략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군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들이었다.심지어 다들 각 전구의 병왕이라 불리는 최강자이기도 했다.그래서 이 여덟 개 특수 부대는 병왕 집합소로도 불리기도 했다.이 여덟 부대는 대한민국 수많은 군인의 꿈이고 목표였다.군에 입대한 모든 군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여덟 개 특수 부대에 들어가는 것이다.이 부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신분, 지위,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앞날이 눈부시게 밝아지게 된다.심지어 명문대가에서도 8대 특전대 출신이라는 신분은 특별한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비록 호국사나 무도 종사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충분히 대단한 존재들이었다.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가문이 있지만 종사를 초빙할 수 있는 가문은 극히 드물었다.대다수 가문은 특수 부대에서 은퇴한 병왕을 초빙하는 게 일반적이었다.진서훈이 말한 설표 특전대는 바로 이 8대 특전대 중 하나였다.“네 말이 맞아. 설표 특전대는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 하나야. 그곳의 현재 사령관이 한때 우리 국안부에 있었던 적이 있어.”진서훈은 설명을 덧붙였다.“곧 8대 특전대 사이의 실력 대회가 열리는데 설표 특전대 젊은 대원들의 실력이 걱정된다고 하더군. 그래서 사령관이 날 찾아왔어. 상황을 전해 들은 난 바로 널 추천했어. 설표 특전대에서 교관을 맡으면서 여론의 주목을 벗어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설표 특전대에 교관으로 간다니, 진서준은 이 제안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할아버지, 제가 못 가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서라의 해독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서라 체내 독을 치료하지 않으면...”진서준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금은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임시로 진서라 체내의 독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에서 독이 폭발하는 날이 온다면 창욱 어르신이 아니고서는 진서준도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네 상황을 잘 알아. 근데 이번 일이 네 시간을 많이 뺏지 않을 거야. 게다가 동북 지역은 최상급 약재
그 후로도 허성태는 두 아이를 데리고 몇 번 본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허사연과 허윤진은 동북의 고향이 여전히 낯설었다.“설표 특전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어. 먼저 나와 함께 만나러 가자.”진서훈이 세 사람을 재촉했다.“좋아요, 저도 마침 퇴원하려던 참입니다.”이후, 진서준은 진서훈을 따라 전에 묵었던 호텔로 향했다.호텔 로비에는 위장복을 입은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박준명은 체격이 크고 건장하여 한 그루의 소나무 같았다.고소연은 당당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남자들조차 그녀 앞에서는 기가 죽을 정도였다.“진 어르신!”진서훈이 돌아오자 두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진서훈의 정체에 대해 두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출발 전 두 사람의 사령관은 그들에게 진서훈을 만나거든 신을 대하듯 공손하게 대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진서훈을 경외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공손하게 모셨다.전에 진서훈이 교관을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진서훈을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진서훈은 이를 거절했다.진서준이 교관 제안을 거부할 경우 불편한 상황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진 어르신, 소개해 주실 교관님은 어디 계시죠?”두 사람은 진서훈 뒤쪽을 살폈지만 보이는 건 젊은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뿐이었다.그중 한 명은 왜소한 체구였고 나머지 두 명은 여성이다 보니 셋 다 교관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바로 이 사람이 내가 너희에게 소개할 교관이야. 이름은 진서준이라고 해.”진서훈이 정식으로 진서준을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네?”두 사람은 즉시 얼어붙었고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자신들보다도 어려 보이는 사람이 설표 특전대의 교관으로 온다니, 이건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인 것 같았다.“진 어르신, 농담하시는 건 아니죠?”박준명이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물었다.“당연히 농담이 아니야. 이 청년은 나이가 어리지만 너희 사령관자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진서훈은 자신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박준명과 고소연은 진서훈이 자기 후배를 밀어줘 특전대에서 경력을 쌓게 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이런 일은 군대에서 너무 흔한 일이었다.하지만 이번은 일반적인 상황과는 조금 달랐다.왜냐하면 가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 하나인 설표 특전대였기 때문이다.진서준이 설표 특전대에서 경력을 쌓으려 한다고 해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사령관이 진서준의 허약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그를 쫓아낼 것이기 때문이었다.현재 설표 특전대는 절박하게도 최상급의 인재가 필요했다.2년마다 대한민국의 8대 특전대는 대규모 경합을 벌였는데 설표 특전대는 이미 3번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이번에도 꼴찌를 기록한다면 대한민국의 특수부대는 7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컸다.그렇게 되면 설표 특전대 인원들은 각 군구로 흩어져 재평가를 받은 후, 다른 7개 부대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이런 상황은 사령관뿐만 아니라 설표 특전대의 병사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그래서 설표 특전대 사령관은 체면을 무릅쓰고 진서훈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직접 찾았던 것이다.진서준과 허사연 자매는 설표 특전대의 두 부사령관을 따라 성도에 있는 군사 기지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군용기를 타고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군사 기지로 향했다.4월은 본래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었다.하지만 대한민국의 최북단은 여전히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진서준과 허사연 자매는 반소매와 얇은 외투만 입고 있었다.비행기에서 내리자 자연스레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바람이 불어왔다.하지만 세 사람은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 태연한 자태를 유지했다.박준명과 고소연은 세 사람의 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두 사람은 진서준 일행이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설마 이 녀석, 진짜 고수인가?’“와, 눈이 이렇게 많이 쌓였어.”허윤진은 눈밭을 보며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서울에서는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하지만
진서준은 훈련장을 대충 훑어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병사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훈련 중인 100명 중 절반은 무인이 아닌 일반인이었고 내공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병사들이 사용하는 권법은 허점투성이였다.심지어 진서준이 감옥에서 막 출소했을 때조차 이들 100명을 혼자 상대하는 것도 거뜬했을 것이다.훈련장을 지나 진서훈 일행은 세 층짜리 하얀 건물로 들어갔다.그 건물의 한 사무실 안에는 전투복을 입고 위엄 넘치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남자의 존재감은 호랑이와 같았고 몸에서 피가 끓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체내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다.딱 봐도 횡련 대종사가 분명한 인물이었다.남자는 바로 설표 특전대의 사령관 소정태였다.노크 소리가 울리자 소정태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박준명은 문을 열고 진서준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소정태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위엄이 가득한 눈으로 박준명을 노려보며 물었다.“진 어르신이 약속한 교관은 어디에 있어?”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기세가 박준명에게로 쏟아졌다.박준명은 그 기세에 눌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박준명은 억지로 심호흡을 한 뒤 경례하고 나서 말했다.“사령관님, 이분이 바로 진 어르신께서 찾아주신 교관 진서준 씨입니다.”소정태는 순간 멍해졌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박준명이 자기를 속일 리 없다는 걸 모른다면 아마도 박준명에게 귀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스무 살 조금 넘은 젊은 청년을 설표 특전대 교관으로 데려오다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농담은 없을 것이다.“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한 교관이라고?”소정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거의 고함을 지르듯 물었다.“맞습니다. 바로 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하신 교관입니다.”박준명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소정태는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반소매 차림인 걸로 보아 약간의 실력은 있는 듯했지만 진서준의 몸에서
소정태의 얼굴은 물을 짜낼 만큼 어두워졌다.호국장군 진서훈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소정태는 방금 진서준에게 손을 대고도 남았을 것이다.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그들은 소정태의 자식들이었다.부모의 눈앞에서 누가 감히 아이가 무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건 부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방금 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약하다고 말했어?”이 말은 소정태의 치아 사이에서 억지로 새어 나온 것 같았다.“맞아, 내가 그랬어.”진서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의 직설적인 태도에 소정태는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고소연과 박준명은 어느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이건 소정태가 엄청난 분노를 터뜨리기 직전의 신호였다.이 진서준이라는 녀석은 이제 끝장났다고 볼 수 있었다.“그 병사들 앞에서 직접 그 말을 할 수 있겠어?”소정태는 웃음을 거두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당연하지.”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정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고소연과 박준명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보고는 따라나섰다.“서준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병사들의 자신감을 꺾을 수도 있잖아.”허사연이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그 병사들에겐 약간의 충격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성장할 수 없어.”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소정태 일행을 따라 훈련장에 도착했다.“집합!”소정태의 우렁찬 외침이 하늘을 찔렀고 그 소리의 충격에 지면에 쌓인 눈이 떨리는 듯했다.훈련에 여념이 없던 백여 명의 병사들이 단 3초 만에 소정태 앞에 깔끔하게 정렬했다.모두의 표정은 비장했고 한 명 한 명이 마치 투창처럼 곧게 서 있었다.소정태는 자기 병사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 너희를 위해 특별한 교관을 초빙했어. 근데 이분이 내 사무실에서 너희 실력이 너무 약하다고 하더군.”소정태의 말에 병사들의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