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자 멀리서 헬리콥터가 한 대 날아왔다.진서준과 고인권이 헬리콥터에 탑승하자 고인권은 즉시 조종사에게 서둘러 설표 특전대 기지로 향하라고 재촉했다.그 시각, 설표 특전대 내부에는 다른 7대 특전대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다들 진서준이 설표 특전대에 가르쳐준 열풍권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게다가 다들 진서준이 작성한 체질을 강화하는 처방전을 사용한 물에 몸을 담가 새롭게 거듭난 듯했다.모든 병사의 실력은 천지가 뒤바뀐 듯한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이제 설표 특전대와 다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지 정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쟁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현재 그들은 오직 강해지기를 바랄 뿐이며 전신전을 초월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었다.“이제야 너희 설표 특전대가 왜 진 교관님을 그토록 존경하는지 알 것 같아.”이상아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이상아도 진서준이 준 약제를 사용했는데, 직접 써보고 나서야 진서준의 대단함을 깨달았다.작은 약제 하나로 모두의 실력을 완전히 바꿔 놓다니,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진 교관님은 우리 설표 특전대의 신이나 다름없어요. 그분이 없었으면 지금의 설표 특전대도 없었을 거예요.”여성 종사 고소연이 경외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했다.“앞으로 우리도 설표 특전대에서 함께 지낼 거야. 훈련장 반만 나눠 주면 돼.” 이상아가 갑자기 말했다.“꿈도 꾸지 마세요.”박준명이 단칼에 거절했다.“이 훈련장은 우리가 훈련하기에도 부족할 지경인데 어떻게 그쪽에 줄 수 있겠어요?”“다 같은 식구잖아, 그렇게 박하게 굴지 마.”이상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식구라도 안 됩니다. 우린 전신전 사람들을 따라잡겠다고 진 교관님께 약속드렸습니다.”박준명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전신전을 따라잡는 건 설표 특전대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다른 7대 특전대 전체의 목표이기도 했다.“진
“제 의동생이 몹쓸 놈에게 중독되어 지금 당장 서남 지역으로 가서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여러분을 찾으러 오겠습니다.”진서준의 의동생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병사들의 분노가 치솟았다.“어떤 미친놈이 진 교관님 의동생에게 독을 뿌린 겁니까? 우린 그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그 악당을 당장 처단해서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진 교관님이 짐을 싸러 가야 하니 다들 길을 열어드려. 진 교관님이 지금 당장 떠나야 해.”고인권이 큰 소리로 외치자 병사들은 즉시 길을 내주었다.특전대 내 소란스러운 소리가 허윤진의 귀에 닿았다.진서준이 돌아온 걸 본 허윤진은 신난 표정으로 달려왔다.“진서준, 돌아왔어?”허윤진은 기쁨에 찬 얼굴로 맞이했지만 진서준은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무겁게 말했다.“윤진아, 짐 챙겨. 오늘 밤 바로 떠날 거야.”“뭐? 왜?”허윤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유정이 큰일을 당했어. 지금 바로 서남 지역으로 가야 해.”진서준이 진지한 말투로 소식을 전했다.“뭐라고? 유정이 사고를 당했다고? 왜 언니들이 전화 한 통 안 했던 거야?”허윤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대자 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내가 그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 같아.”“알겠어, 지금 바로 짐 챙길게.”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달려가 짐을 챙겼다.짐을 모두 챙기고 나서 진서준과 허윤진은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8대 특전대 병사 전원이 진서준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진 교관님을 배웅합니다!”800여 명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기지에 울려 퍼졌다.이 강인하지만 귀여운 병사들을 바라보며 진서준은 헬기 문 앞에서 그들에게 거수경례했다.문이 닫히고 헬기는 천천히 상승해 서남쪽으로 향했다.“고인권, 우리도 진 교관님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8대 특전대의 사령관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누군가가 제안했다.“독을 뿌린
금도, 유씨 가문 장원.병상에 누워 있는 유정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처럼 생명력이 다해가는 모습이었다.유기명은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정 곁을 지키고 있었다.“유 아저씨, 잠시라도 쉬세요. 제가 유정을 돌볼게요.”진서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잠이 오질 않아.”유기명은 고개를 저으며 비통한 얼굴로 대답했다.딸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인 유기명이 잠이 올 리가 없었다.“아저씨께서 건강을 챙기셔야 해요. 유정도 아저씨가 이렇게 지친 걸 보면 마음 아플 거예요.”진서라가 계속 설득했다.“내 딸이 너무 불쌍해!”유기명은 눈가가 붉어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20년 넘게 실종됐던 딸이 이제 유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묘강의 독에 당했다.생각만 해도 유기명은 분노와 원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유기명은 그때 마음을 약하게 먹고 셋째 동생의 목숨을 살려줬던 걸 천추의 한으로 여겼다.그 실수 때문에 호랑이를 산에 풀어놓은 격이 되어 결국 유정을 위험에 빠뜨렸던 것이다.“서라야, 네 오빠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아.”유기명이 말문을 열자 진서라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전화해 봤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진서라는 유씨 가문에 처음 왔을 때, 유정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진서준에게 연락하려 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걸 떠올리자 혹여나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포기한 것이다.그 뒤 유씨 가문은 성약당의 장로들을 초청했으나 장로들조차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심지어 성약당 당주까지도 두 손을 놓고 말았다.결국 유기명은 막다른 길에 몰려 진서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하늘이 정말 내 딸을 버리려는 건가...”유기명은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주변에 서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며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이들은 서남 각지에서 모인 유명한 의학 전문가였으나 그들
“모든 게 우연이야. 이번에 내가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을 때 마침 주 신의님께서 현지의 갑부 한 명을 치료하고 계셨어.”“그랬구나!”유기명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주 신의님, 제 딸의 병은 신의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유기명은 주두준을 향해 한껏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지금 주두준은 유정을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유씨 가문의 가주로서 유기명은 당연히 주두준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야 했다.주두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내가 있는 한, 따님은 반드시 무사할 겁니다.”그 말을 듣자 유기명은 드디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주두준은 곧장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기 시작했다.유정의 손목을 만지자마자 주두준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30초 정도 지난 후, 주두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결론을 내렸다.“얼음 독충이군요.”“얼음 독충이 무엇이죠?”유기명이 서둘러 물었다.“이건 묘족 독충의 일종입니다. 이 독충에 걸린 사람은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지죠. 근데 얼음 독충은 일반적인 독충과는 좀 다릅니다. 그 독충을 바로 죽여버리면 독에 걸린 환자가 한기가 일어나면서 즉시 얼어 죽게 되죠. 근데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환자 체내의 혈맥과 경맥이 조금씩 얼어붙게 될 겁니다. 지금 따님의 몸은 이미 3분의 2가 얼어붙은 상태입니다. 그 한기가 심장까지 퍼지면 설령 신선이 내려온다 해도 살릴 수 없을 겁니다.”주두준은 자세하게 유정의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유기명은 이를 악물며 분노에 차 말했다.“저 끔찍한 놈들! 이렇게 악랄한 짓을 하다니!”“유기철 그 자식은 정말 인간 말종이구나.”유기태 역시 냉정한 표정에 분노의 눈빛을 보였다.“주 신의님, 제 딸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유기명은 초조한 말투로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유정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내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곧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주두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자신감
유정 체내의 독충이 묘주가 직접 기른 독충인지 아닌지 유기명이 알 리가 없었다.지금 유기명한테 중요한 건 딸을 과연 살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주 신의님, 지금 당장 제 딸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유기명이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하며 물었다.“다시 시도해 보겠습니다.”주두준은 짧게 대답하며 은침을 들었다.그러고는 놀라운 속도로 유정의 족삼리, 용천, 명문 등 세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일련의 동작이 유려하게 이어져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역시 신의님은 남다르군요. 이런 침술은 제가 평생 배워도 못 따라가겠네요.”“주 신의님께서 나섰으니 유씨 가문 아가씨 병은 틀림없이 완치될 겁니다.”“맞습니다. 주 신의님도 못 치료한다면 세상에 치료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방 안의 의사들이 한결같이 주두준을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칭찬이 주두준은 그다지 기쁘게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만약 이 여자를 살리지 못하면 주두준의 명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침 세 개가 들어가자 유정의 사지에서 실낱같은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마지막 침!”주두준은 은침을 들어 유정의 정수리에 찔렀다.그 순간, 유정의 입에서 대량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냉기가 방을 가득 채우며 실내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주 신의님? 이걸로 끝난 겁니까?”유기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유기명은 아까처럼 또다시 희망을 품다가 크게 실망하는 게 두려웠다.“내 독충이 나오는 걸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주두준은 이번에는 아까처럼 자신감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침술을 하는 동안 주두준은 자기 독충이 반응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평소 같으면 독충이 반드시 반응을 보였을 텐데 이번에는 너무 조용했다.주두준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주두준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1분이 지나도 독충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때, 상태가 조금 좋아졌던 유정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주
“유 가주님, 아까 말했듯이 가주님 따님은 이미 병이 몸에 너무 침투되어 회복 불가능합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을 겁니다.”주두준은 참지 못하고 냉랭하게 말했다.“주 신의님, 이분은 저희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천재입니다. 이분 의술은 성약당 당주도 감히 초월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입니다.”유기명은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아이고, 그러세요?”주두준은 유기명의 말이 우스웠다.“이 사람 의술이 정말 가주님 말처럼 뛰어나다고 해도 가주님 따님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가주님 따님이 걸린 건 독충입니다. 평범한 침술로는 어림도 없죠. 내가 기른 팔곡 독충도 이미 체내에서 죽었습니다. 그만큼 가주님 따님 체내 얼음 독충이 강력하다는 증거입니다.”이 말은 절대 주두준이 과장한 게 아니었다.유정의 체내에 있는 얼음 독충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주두준이 10여 년을 기른 팔곡 독충은 본래 묘강 지역에서 기르는 독충을 상대하기 위해 키운 것이다.그런데 이제 그 팔곡 독충마저 죽어버렸는데 이렇게 젊은 청년이 과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진서준은 주두준의 말을 무시하고 유정의 맥을 자세히 짚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진서준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진서준, 어때? 유정을 구할 방법이 있겠어?”유기명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혹시 다른 독충이 더 있나요?”진서준은 대답 대신 주두준을 쳐다보며 물었다.진서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주두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뭘 하려고 그러는데?”“독충이 필요합니다.”진서준은 간결하고 강력하게 답했다.“하나 더 있긴 해. 근데 이 독충은 가주님 따님 얼음 독충에 대항할 수 없을 거야.”주두준은 솔직하게 말했다.“그냥 제게 주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진서준의 말에 주두준은 상당해 불쾌했다.“이봐, 네가 내놓으라고 하면 내가 반드시 줘야 해? 난 이 독충을 몇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거야. 근데 지금 네가 내놓으라고 하면 내가 시원하게 넘겨줄 것 같아?”독충을 기
본래는 흰색이었던 그 독충이 진서준의 영결에 맞고 난 후 눈에 띄게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응? 이게 뭐지?”난생처음 보는 장면에 주두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진서준은 별다른 설명 없이 빨갛게 변한 독충을 유정의 입에 넣어주었다.유기명이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진서준, 확실히 치료할 수 있겠어?”방금 주두준이 두 번이나 실패한 걸 직접 목격한 유기명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사실 진서준이 치료한다고 해도 유기명은 확신이 없었다.주두준은 독충술에 대해 오랫동안 깊은 연구를 해온 사람이었다.진서준은 의술에 능했지만 독충술은 또 다른 문제였다.본래 서로 다른 분야는 격차가 심했고 특히 이 두 분야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나는 두 분야였다.“확신이 없으면 저도 치료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은 평온한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진서준은 가족의 목숨을 갖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었다.비록 의동생이긴 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유정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좋아, 그럼 부탁할게.”유기명은 이를 악물며 부탁했다.“은침을 주세요.”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자 주두준은 본인의 은침을 진서준에게 건넸다.은침을 받은 진서준은 즉시 유정의 건리, 음교, 석문 세 곳에 정확하게 찔렀다.독충이 진서준이 원하는 자리에 도착했다고 추측한 진서준은 다시 영결을 그리기 시작했다.따뜻한 기운이 유정의 체내에서 흐르기 시작했다.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유정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눈에 띄게 빠져나갔다.조금 전까지 차갑기만 하던 유정의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얼굴에 생기가 보이더니 호흡도 힘차졌다.주위 사람들의 경악이 가득한 시선 속에서 유정은 갑자기 눈을 떴다.“세상에... 이렇게 바로 깨어났다고?”다들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방금 신의 주두준이 유정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애썼지만 결국은 해내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이 청년이 단지 침술을 이용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게다가 진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제 딸은 지금쯤...”유기명은 두 사람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다.“유정은 제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독충 때문에 위독하다고 하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죠.”진서준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주 신의님, 날도 어두워졌는데 오늘은 우리 집에 머무세요. 내일은 제가 두 분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겠습니다.”유기명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주두준에게 권유했다.“좋아요,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주두준은 유기명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비록 유정의 병은 주두준이 치료한 게 아니지만 그의 독충 덕분에 진서준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오빠, 어떻게 여기 왔어요?”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유정은 진서준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내가 오늘 안 왔으면 널 다시 볼 수 없었을 거야.”진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유정을 보며 말했다.“너도 참 답답해, 독충 때문에 고통받는데 왜 더 빨리 내게 말하지 않았어?”“오빠에게 방해될까 봐 그랬어요...”유정은 진서준이 혹여 자기를 나무랄까 봐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네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진서준은 유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넌 서라랑 똑같은 내 가족, 내 동생이야.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가장 빠른 속도로 내게 연락해야 해, 알겠어?”진서준의 부드러운 말투와 걱정 어린 말에 감동을 받은 유정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알겠어요, 오빠.”“좋아, 아직 몸이 좀 허약한 상태니까 일찍 쉬어.”“오빠, 내일 떠나지 않겠죠?”유정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정은 자기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진서준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왜냐하면 유정은 너무 오랫동안 진서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당연하지, 너희 집에서 좀 더 있을 거야.”“그렇다면 다행이에요.”진서준이 웃으며 대답하자 유정은 그제야 시름 놓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유정이 잠든 후에야 진서준은 자리를 떠났다.유기명과 유기태는 문 앞에서 진서준을 기다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