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서며 조수아를 강제로 끌고 가려 했다.“동작 그만!”장주완이 벌떡 일어서더니 살기가 가득한 띤 얼굴로 경고했다.“딱 3초 줄 테니까 당장 꺼져. 안 그러면 내가 너희를 가만 안 놔둘 거야.”“맞아, 우리 앞에서 사람을 끌고 가겠다고? 우릴 뭐로 보는 거야?”다른 남자도 맞장구쳤다.조수아는 이 모임에서 가장 예쁜 여자였다.비록 김혜민처럼 집안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완벽한 여신이었다.이 상황에서 영웅이 되어 조수아를 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평생 자랑할 무용담이 될 터였다.“흥, 너희 주제에 영웅이 미녀를 구하는 판타지를 꿈꾸는 거야?”중년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좋게 좋게 말할 때 알아서 밥이나 처먹어. 안 그러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중년 남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두 남자를 위협했다.“웃기고 자빠졌네. 수아 일이자 내 일이야. 내가 있는 한 너희는 수아를 끌고 갈 꿈이나 깨.”장주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맞섰다.그의 당당한 태도에 현장에 있던 여자들의 눈에 경외심이 넘쳤다.위험한 순간에도 앞장서는 남자야말로 진짜 완벽한 남자였다.반면, 김혜민의 남자친구 진서준은 아직도 묵묵히 밥 먹고 있었다.이 차이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좋게 말할 때 안 듣는다는 거지? 싸가지 없는 놈들, 이놈 다리나 하나씩 부러뜨려서 내던져.”중년 남자가 격노하며 명령을 내리자 경호원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하, 경호원 주제에 감히 나한테 덤벼? 나 혼자서도 너희를 상대하기엔 충분하거든.”장주완이 코웃음을 치며 혼자서 경호원들과 맞섰다.30초도 채 안 걸려 경호원들은 비참하게 바닥에 쓰러졌다.“주먹질 좀 한다고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 생각을 한 거야?”중년 남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너,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네가 누군지 내가 알 이유가 있어?”장주완이 그대로 중년 남자의 왼쪽 눈가를 향해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중년 남자의 왼쪽 눈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고생하는 건 괜찮았어. 하지만 문제는 유명해지자마자 우리 사장이 나한테 권력층들을 접대하라고 시켰다는 거야. 심지어 일반 접대도 아니고 성접대였어. 난 당연히 거절했지. 그랬더니 별의별 수단을 다 써서 협박하고 회유하더라고. 결국 화가 나서 계약을 해지했지만 사장은 끝까지 날 놓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몰래 강남으로 도망쳤는데 결국 또 찾아온 거야.”말을 마친 조수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 뒤에 감춰진 조수아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톱스타? 영화제 여우주연상? 그건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연예계는 정치판 다음으로 더러운 곳이었다.조수아가 신념을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도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이 썩을 놈들, 감히 우리 수아에게 성접대를 강요해?”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거친 욕을 내뱉었다.“완전 미친놈들이네. 계약까지 해지했는데도 이 정도로 집착한다고? 수아야, 걱정 마. 네가 어떤 사장을 건드렸든 우리가 책임지고 널 지켜줄게.”장주완이 가슴을 탕탕 치며 장담하자 조수아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얘들아, 정말 고마워.”“그래서 그 회사 이름이 뭐야?”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물었다.“에리 스튜디오야. 사장 성은 박씨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박씨에 에리 스튜디오라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오직 한 가문이 떠오르게 된다.바로 명주시 박씨 가문이었다.그 가문은 대한민국 최상위 재벌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가문이었다.심지어 모두가 매일 쓰는 결제 앱조차 박씨 가문이 만든 거였다.조수아의 사장이 확실히 박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였다.“뭐야? 왜 다들 그런 얼굴이야?”조수아는 모두의 이상한 반응을 보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조수아는 오랫동안 촬영에만 매진했기에 대한민국 명문대가에 관해 잘 요해하지 못했다.그러니 자연스레 박씨 가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
중년 남자는 길을 막아선 진서준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이 자식은 또 뭐야? 감히 내 일을 방해해?”진서준이 갑자기 일어서자 조수아 일행도 당황했다.아까까지만 해도 진서준을 쓸모없는 놈이라 비웃었는데 상대가 박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도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너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진서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은 개뿔, 네가 지금 누구한테 개기고 있는지 몰라? 평생 병원 신세 지고 싶어?”중년 남자는 게거품을 물며 손을 들어 진서준에게 따귀를 날리려 했다.그 순간, 진서준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쳤다.진서준의 손이 먼저 움직였고 중년 남자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따귀를 맞은 중년 남자는 그대로 빙글빙글 돌며 제자리에서 열 바퀴를 넘게 회전했다.입과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이가 반이나 날아가 버렸다.“이 개자식이... 감히 날 때려?”중년 남자는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전부 덤벼! 이놈을 박살 내버려!”남자가 지시하자 칼과 곤봉을 든 경호원들이 즉시 진서준을 포위했다.“이제 저 자식 끝났네. 저렇게 많은 경호원이 무기까지 준비했는데 감히 나댄단 말이야? 설마 살아남을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 젠장, 저놈 때문에 우리가 쫄보처럼 보이잖아.”장주완이 이를 갈며 진서준을 째려봤다.“명색이 박씨 가문의 사람을 대놓고 건드려? 저거 완전 미친 짓이야. 우리까지 죽이려고 작정했나?”보라색 원피스 여자도 불만을 터뜨렸다.사람을 구하려고 나선 진서준을 다들 대놓고 원망하고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사람들을 구하려고 나선 게 아니라 단지 김혜민이 끌려가는 걸 막으려고 했을 뿐이었다.만약 중년 남자가 다른 사람을 잡아가려 했다면 진서준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진서준은 아까 그렇게 자기를 대놓고 조롱한 사람들을 감싸줄 이유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진서준은 모두의 불만을 무시하고 경호원들 사이에 뛰어 들어가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주먹이 한 번씩 날아갈 때마다 경호원 몇 명씩 벽으로 튕겨
진서준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내가 김혜민 남자친구 맞기나 해? 아까 대놓고 비웃으며 모욕할 때 그 사실을 기억하기나 했어?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여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너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기나 하고 그런 허세를 떨어? 그 사람들은 에리 스튜디오, 즉 박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저 사람들을 때렸으면 박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넌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거야.”“생각하며 좀 살자. 그렇게 무모한 짓이나 저지르지 말고.”장주완도 보라색 원피스 여자를 거들었다.“넌 그냥 허세 부릴 생각만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박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를 너 홀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다른 사람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진서준은 이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우스웠다.“그러니까 네 말은 아까 네 친구가 납치당할 뻔했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한다는 거야?”진서준이 쌀쌀하게 웃으며 되물었다.“그럴 순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니잖아.”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뻔뻔하게 말했다.“얼씨구, 그 상황에서 싸우지 않고 네가 한마디 하면 그놈들이 네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것 같아. 웃기지도 않네.”진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김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언제 네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니까.”“뭐라고? 너 말조심해.”장주완이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쳤다.“야. 저놈들이 아까 진짜 수아를 끌고 가려고 했다면 난 우리 사장님한테 바로 연락했을 거야. 똑똑히 들어. 난 차이더리스 그룹의 고위 간부야. 우리 그룹의 셋째 도련님도 지금 강남에 있거든? 셋째 도련님이 직접 나서면 박씨 가문이 감히 체면을 주지 않을 것 같아?”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뭐? 차이더리스 셋째 도련님이 여기 있다고?”“대박, 주완 오빠는 역시 대단해. 셋째 도련님과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건 일반 사람이 할 수
명주시는 강남과 멀지 않아 KTX로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지호는 자기가 이끄는 호위대를 데리고 강남에 도착했다.“사장님!”중년 남자가 기차역에서 박지호를 맞이했다.하지만 박지호는 중년 남자의 돼지머리가 된 얼굴을 보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너, 걔네한테 내가 누군지 말하긴 했어?”“당연하죠. 근데 제가 사장님 이름을 말하자마자 그놈이 더 신나게 두들겨 패더라고요. 심지어 사장님께서 직접 와도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중년 남자는 일부러 사실을 부풀려서 고자질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오면 반년 동안 병원 신세나 질 각오하라고 큰소리쳤습니다.”“제정신이 아니구나.”박지호의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두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지금 그놈들 어디 있어?”“제가 미리 경호원을 붙여 놨습니다. 방금 연락이 왔는데 한 유흥업소에 있다고 합니다.”중년 남자가 서둘러 대답했다.“즉시 그쪽으로 안내해. 강남에 날 무릎 꿇게 할 사람이 어떤 대단한 사람인지 직접 봐야겠군.”박지호 일행은 곧장 유흥업소로 향했다.하지만 진서준과 김혜민은 이미 식사 후 자리를 떴다.지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장주완과 조수아 일행뿐이었다.다들 노래 부르고 춤추며 잔뜩 들떠서 놀고 있었다.하지만 조수아는 달랐다.아까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놀 기분이 나지 않았다.“수아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장주완이 알아서 해결한다잖아?”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조수아를 달래듯 말했다.“맞아, 장주완을 믿어. 게다가 장주완은 차이더리스 셋째 도련님이랑 연락할 수 있다잖아.”“이 세상에서 차이더리스 가문을 무시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다들 아까까지 박씨 가문을 두려워했지만 장주완이 리앙과 아는 사이라고 하자 그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난 괜찮아. 너희끼리 먼저 놀아. 요새 너무 힘들어서 그래.”조수아는 억지로 웃으며 모두와 어울리는 걸 거절했다.“그래. 그럼 좀 쉬어.”
“아, 박 사장님이셨군요.”장주완은 즉시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박 사장님, 사실 이건 전부 오해입니다. 수아는 이미 귀사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그동안 번 돈도 다 돌려드렸잖아요. 이젠 수아를 놓아주세요.”찰싹!박지호의 손이 번개처럼 날아갔다.“넌 어디서 굴러온 녀석인데? 네가 뭐라고 나랑 협상하겠다는 거야?”장주완의 안경이 훌쩍 날아가며 코에서 피가 흘러내려 완전 꼴사나운 몰골이 되었다.“왜 애먼 사람을 때려?”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왜? 너희는 내 부하를 때릴 수 있는데 난 너희를 못 때린다는 규정이 있어?”박지호가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조수아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오늘 우리랑 안 가면 네 친구들도 전부 무사하게 여길 나가지 못할 줄 알아.”박지호의 거만한 태도에 보라색 원피스 여자가 물러서지 않고 즉시 반발하듯 외쳤다.“똑똑히 들어, 장주완은 차이더리스 그룹의 고위 간부야. 게다가 차이더리스 셋째 도련님이랑도 아주 친하다고.”박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귀를 후벼 파며 말했다.“이 녀석이 셋째 도련님 본인이라면 체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근데 그냥 그룹 간부라고?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이야? 그룹 간부가 한둘이야? 개나 소나 하는 게 그룹 간부야.”장주완은 얼굴을 감싸 쥐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박지호를 노려봤다.“박 사장님, 저는 리앙 도련님과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정말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시겠다면 제가 직접 리앙 도련님에게 전화하겠습니다.”“좋지. 그럼 당장 해 봐. 나도 궁금하긴 해. 그 셋째 도련님인지 뭔지 하는 놈이 너 같은 쓰레기 하나 때문에 날 적으로 돌릴지 말이야.”박지호는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휴대폰을 먼저 꺼냈다.그 순간, 장주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사실 장주완은 그냥 허세를 부려 본 것뿐이었는데 박지호가 허세에 겁먹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장주완은 그저 차이더리스 그룹의 하찮은 직원일 뿐이었고 귀국
그 말을 듣자마자 장주완의 얼굴이 돼지 간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이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뻔히 아는데, 김혜민이 제 발로 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왜? 전화 안 할 거야? 얼씨구? 의리 있네? 깡 있네? 좋아, 그럼 잠시 후에 네 사지를 부러뜨려 주마.”박지호가 비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을 듣자 장주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냈다.“제가 바로 전화하겠습니다.”곧바로 전화가 연결되었고 김혜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뭔 일인데?”아까 있었던 동창 모임 때문에 김혜민은 이들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혜민아. 얼른 모던 유흥업소로 와줘.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장주완은 죽어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을 알면 김혜민이 절대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무슨 일인데? 전화로 얘기해.”김혜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전화로는 절대 못 할 얘기야. 전화로 얘기할 수 있으면 급하게 상의할 일이라고 하지 않았겠지.”장주완은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진짜야. 혜민아, 네가 직접 와봐야 해. 내가 왜 널 속이겠어?”“알았어, 이따가 갈게.”“아, 그리고 네 남자친구도 같이 데리고 와.”장주완이 황급히 한마디 덧붙였다.“왜? 또 애들과 함께 조롱하려고? 됐어, 나 혼자 갈 거야.”김혜민은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김혜민이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 안 데려가는 게 아니었다.진서준은 지금 김연아와 함께 있었다.그런데 이 타이밍에 진서준을 데려가면 김연아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김혜민은 차를 몰아 유흥업소로 향했다.그와 동시에 리앙이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유흥업소에 도착했다.“리앙 씨.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가 리앙 씨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죠?”박지호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리앙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 사람은 차이더리스 그룹의 셋째 도련님이라 신분과 지위가 박지호와 맞먹는 인물이었다.그런 리앙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든 놈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말도 마세요. 나도 그 자식이 누군지 몰라요.
‘진짜 선견지명 있네.’“누구라고?”리앙이 순간 눈을 번쩍이며 장주완을 쳐다봤다.“김혜민 남자친구요.”장주완이 서둘러 대답했다.“너 김혜민을 알아?”리앙의 말에 장주완은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했고 얼른 자기와 김혜민의 관계를 설명했다.“알죠. 당연히 압니다. 저희 같은 학교 출신이에요. 셋째 도련님, 혹시 도와주실 수...”장주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리앙은 번개처럼 장주완의 얼굴을 후려쳤다.“X발, 내 이 꼴 난 게 다 그 계집애 때문이야!”“네?”장주완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당장 그년한테 전화해. 안 오면 너희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리앙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그 모습에 다들 절망의 늪에 빠졌고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얼마 후, 김혜민이 유흥업소에 도착했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걸 느꼈다.방 안에는 리앙과 아까 맞은 중년 남자가 있었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장주완 일행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김혜민 씨, 또 만나네요?”섬뜩한 미소를 짓는 리앙의 눈엔 증오가 가득했다.어젯밤, 김혜민과 뜨거운 밤을 보내기는커녕 죽도록 처맞았으니 이 치욕을 반드시 되갚아야 했다.“너 왜 여기 있어?”김혜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장주완, 이 개자식아. 감히 날 함정에 빠뜨려?”“미안해, 혜민아. 우리한텐 다른 방법이 없었어.”장주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네가 희생하면, 우리 전부 살 수 있을 거야.”“야, 너 사람 맞아?”“됐고.”리앙이 손짓하며 말을 끊었다.“너희끼리 싸우는 건 나중에 하고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자고.”리앙은 자기 머리 상처를 가리키며 따지기 시작했다.“어젯밤, 날 팬 놈이 누구야?”“몰라.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집이었어.”김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몰라? 그딴 핑계가 통할 것 같아?”리앙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오늘 안에 그놈 이름 안 대면 너 여기서 개망신당할 줄 알아.”리앙이 손뼉을 치자 곧장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