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이 구해주고 있던 노인은 바로 며칠 전 김혜민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그 장애인이었다.노인은 눈, 귀, 입이 온전치 않았고 얼굴의 절반은 망가진 상태였다.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누군가가 쇠판을 용접해 강제로 붙여놓았다.진서준은 설마 이곳에서 다시 이 노인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르신, 나쁜 놈들은 우리가 전부 쫓아냈습니다. 이제 안전하니까 시름 놓으세요.”진서준은 노인의 손에 천천히 글씨를 적었다.그러자 노인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정말, 정말 고맙네.”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답을 적었다.납치된 노숙자들을 모두 지상으로 보낸 뒤 용홍권은 곧바로 지역 군부에 연락을 취해 연구소의 모든 장비를 수거하도록 지시했다.“이런 실험실이 과연 여기 하나뿐일까?”용홍권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이번에 하나를 들켰으니 놈들이 더욱 조심할 게 뻔합니다. 앞으로 단속도 더 어려워질 거고요. 진서준 씨, 오늘 진서준 씨가 없었다면 이렇게 순리롭지 않았을 겁니다.”용홍권은 진서준을 향해 다시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별말씀을요. 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진서준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그때, 용홍권이 갑자기 제안했다.“아직 시간이 이르니 우리 다 같이 술 한잔하는 게 어떨까요?”다른 이들도 바로 동조했다.“좋죠. 오늘 큰일을 해냈으니 한잔할 만하죠.”“그러게요. 오랜만에 술 마시고 싶었는데 잘됐네요.”전신전의 규율은 매우 엄격해서 작전 중 술을 마시는 건 절대 금지 사항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무 종료인지라 다들 이 기회에 마음껏 마시고 싶었다.용홍권 일행이 열렬하게 초대하자 진서준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오영수에게서 용맥의 일족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생각이었다.“좋습니다. 초대해 주셨으니 저도 굳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모두 차에 올라 근처 호텔에서 내린 후, 술과 음식을 실컷 즐겼다.술자리가 끝난 후, 진서준은
“뭐, 귀찮긴 하겠죠. 하지만 이미 귀찮은 일에는 익숙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진짜 한 대 처맞을 짓을 했거든요?”진서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하경범은 도지아를 강제로 성추행하려다 실패하자 그녀의 커리어를 박살 내버렸다.그런 놈은 맞아도 쌌고 때려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솔직히 진서준의 여자가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녀석을 죽였을 것이다.“걱정 마세요. 르벨에 가더라도 절대 오씨 가문에 폐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이 오영수와 약속했다.“진서준 씨,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오영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반박했다.“진서준 씨는 우리 전신전에 엄청난 도움을 줬습니다. 지금 진서준 씨는 우리 전신전의 은인이라고 봐도 됩니다. 게다가 진서준 씨는 용맥의 일족이잖아요. 우리 아홉 후손 가문은 용맥의 일족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씨 가문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 오씨 가문과 부딪히게 된다면 우리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오씨 가문은 천 년을 이어온 가문이었고 가문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무도 강자였다.하씨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면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좋아요, 그럼 저도 미리 준비할게요. 출발할 때 미리 연락해 주세요.”진서준의 말에 오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둘이서 뭔 얘기 그렇게 길게 해? 얼른 들어와서 술 마셔.”용홍권이 두 사람을 안으로 불렀다.“네, 우리 들어갈게요.”강남 국제공항.차이더리스 특유의 마크가 새겨진 비행기 몇 대가 천천히 착륙했다.곧이어 비행기의 문이 열리더니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남자들은 공항 전체의 안전 상황을 빠르게 장악했다.모든 것이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비로소 가운데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월런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월런의 뒤에는 금발 중년 남자 두 명이 따라 나왔다.겉보기엔 아담과 비슷한 나이였으나 사실 이
밤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게 깔려 있었다.유령 같은 실루엣 두 개가 진씨 가문의 대문 앞에 나타났다.“멈춰, 너희는 누구야?”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경계 태세를 취했다.이들은 바로 아담과 함께 온 천의방 강자였다.한 사람은 천의방 79위에 올라와 있는 소르였는데 그는 평생 해외를 누비며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한때, 소르는 혼자서 초아국의 가장 삼엄한 감옥을 습격해 안에 갇혀 있던 부자를 한 명 구출해 냈다.그 일로 인해 초아국에서 몇 년간 수배당했고 결국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그 후, 소르는 얼굴과 신분을 바꾼 뒤 차이더리스 가문에 숨어들었다.또 한 사람은 천의방 77위에 올라와 있는 루돌프였다.소르와는 달리 루돌프는 한 차례 패배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건 결코 치욕적인 패배는 아니었다.루돌프가 마주한 상대는 바로 교회의 주교였기 때문이다.지선에게 패하고도 살아서 도망쳐 나온 것 자체가 오히려 공포스러운 일이었다.그런 천의방 고수 두 명이 직접 김연아를 잡으러 온 것이다.이것만으로도 진씨 가문에 대한 큰 예우라 할 수 있었다.금발의 남자가 어색한 대한민국어로 말했다.“김연아가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어.”“네 놈이 뭔데 우리 가주께서 따라가야 한단 말이야? 거기 사람 없어?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놈들이 있어!”경호원이 즉시 지원을 요청하자 순식간에 수많은 경호원들이 몰려와 소르와 루돌프를 단단히 포위했다.“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보안대장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어휴, 어쩔 수 없네. 또 손을 써야겠군.”소르가 고개를 저었다.“대한민국 놈들은 원래 그래. 직접 쓴맛을 봐야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아.”루돌프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쿵!산을 뒤엎을 듯한 위압이 루돌프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순간 그 자리에서 열 명이 넘는 경호원이 그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루돌프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네
“어서 송 어르신과 다른 분들을 병원으로 옮겨.”“아가씨, 어서 도망치십시오. 이 자들은 아가씨를 잡으러 왔습니다.”송휘운이 다급히 외쳤다.“저를 잡으러 왔다고요?”김연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너희 둘은 누구야? 왜 우리 진씨 가문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네가 김연아야?”소르의 질문에 김연아가 대답했다.“그래, 내가 김연아야.”“우리랑 같이 가야겠어.”루돌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김연아가 왜 너희랑 가야 하지? 너희는 대체 누구야?”김혜민이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불쾌한 목소리로 따졌다.“안 따라가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거야.”소르의 표정에는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소르는 진씨 가문 전체를 인질 삼아 김연아를 협박하고 있었다.그 말을 듣자 김연아의 얼굴이 차분해졌다.“좋아, 너희와 함께 가지.”“야. 너 미쳤어? 저놈들이 순순히 널 풀어줄 것 같아? 저놈들 따라가면 목숨도 장담 못 해.”김혜민은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잠깐만, 내가 지금 진서준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김혜민은 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네 전화를 기다려줄 시간 없어. 지금 출발하자.”소르가 무심하게 말했다.“알겠어.”진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지라 김연아는 망설이지 않았다.“안 돼, 기다려. 진서준이 오면 우리를 구해줄 거야.”김혜민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김혜민은 예전부터 김연아를 미워했지만 요새 여러 일을 겪으며 점점 이복형제인 김연아를 좋아하게 되었다.“난 괜찮아. 진서준에게 연락해서 절대 무모한 짓 하지 말라고 전해 줘.”김연아는 조용히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망설임 없이 소르의 차에 올라타 진씨 저택을 떠났다.“젠장!”김혜민은 다급히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때 진서준은 오영수와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있어 전화 소리를 듣지 못했다.“왜 전화를 안 받아?”김혜민은 초조하게 휴대폰을 연신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진서준, 빨리 전화 받아!”한편, 김연아는 소르와 루
“내가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아?”김연아는 전혀 겁먹지 않은 채 월런과 눈을 맞췄다.월런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이상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시간만 끌면 월런이 대한민국을 떠날 것이고 그러면 진서준은 무사할 것이다.이게 바로 김연아의 계획이었다.자기 남자를 지킬 수만 있다면 김연아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김연아 씨, 난 이번에 우리 아들의 복수를 하러 왔을 뿐이야. 그러니 여자를 고문하도록 날 자극하지 마.”월런이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정말 네 아들의 복수를 원한다면 저놈을 죽여야 해. 내 남자와는 상관없는 일이야.”김연아는 손가락으로 아담을 가리켰다.“저놈도 죽일 거야.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네 남자 때문이야.”월런은 싸늘한 얼굴로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 아담은 순간 기절할 뻔했다.“가주님, 저 여자 거짓말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제가 셋째 도련님을 죽일 리가 없잖아요?”“그래?”월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담을 바라보았다.“네 제자들 말이야. 이미 몰래 나한테 다 불었어.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네?”아담은 그 말에 눈이 튀어나올 뻔했고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제자들을 멍하니 바라봤다.“스승님, 죄송합니다.”한 제자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이, 이 빌어먹을 배신자 놈들이 감히 날 팔아먹어?”아담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저놈을 매달아라.”월런이 무심하게 아담을 가리켰다.“가주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땐 저도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던 겁니다.”아담은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애원했지만 경호원들은 단숨에 그를 나무에 매달고 채찍을 들어 거칠게 후려쳤다.“아악!”첫 채찍질이 떨어지자 아담의 살이 터지고 피가 솟구쳤다.채찍은 철사로 만들어졌고 고춧물에 오래 담가둔 상태였다.피부에 닿는 순간 살점이 찢겨 나가며 상처를 통해 고춧물이 스며들어 극심한 고통을 유발했다.“죽을 만큼 때려.”아담의 고통에도 월런이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명령했다.얼마 지나지
기절한 김연아는 극심한 고통에 여전히 미약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물 뿌려서 깨워. 계속 때려.”하지만 월런은 무자비했다.“네!”찬물이 쏟아지자 김연아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눈을 떴다.“내가 직접 하지.”월런은 채찍을 들고 직접 나섰다.월런의 손길은 부하들보다 더욱 거칠었고 김연아의 몸은 곧바로 한계에 다다랐다.“죽여... 날 그냥 죽여...”“네 남자를 오라고 하면 깔끔하게 죽여주마.”월런이 싸늘하게 제안했지만 김연아는 여전히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그 모습에 월런은 더욱 강하게 내려쳤고 결국 김연아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주님, 이대로 계속 때리면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소르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이 여자를 매달아 둬. 그리고 너희는 다시 진씨 가문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와.”월런의 얼굴에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가득했다.“진씨 가문 놈들이 전부 이렇게 끈기 있는 사람일 수 없어.”“그럼 제가 혼자 가보죠.”소르는 혼자 차를 몰고 진씨 가문으로 향했다.한편, 김혜민은 간신히 진서준과 연결되었다.“진서준, 우리 언니가 외국 놈들한테 잡혀갔어. 우리 언니를 어서 구해줘.”“뭐라고?”진서준은 술기운이 단숨에 날아가며 표정이 어두워졌다.“연아가 잡혔다고? 누구한테?”“몰라. 송 어르신도 그 두 사람에게 당할 정도였어.”김혜민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전화가 끊기자 진서준은 곧바로 김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들려오는 건 전화가 꺼졌다는 소리일 뿐이었다.김연아는 차에서 내리기 전, 이미 휴대폰 유심칩을 부숴버렸다.“용홍권 씨, 당장 한 사람을 추적해 줘요.”진서준이 급히 소리쳤다.“무슨 일이죠?”용홍권도 진서준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술기운이 반쯤 깼다.“김연아가 납치됐습니다.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요.”“알겠습니다. 바로 위치 추적할게요.”곧이어 도로 CCTV를 통해 김연아의 위치가 확인되었다.위치를 확인한 순간, 진서준은 말없이 차에 올라 가속페달을 밟았다.별장 앞에 도착해 차에
진서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참선검을 휘둘렀다.검광이 실처럼 얇게 뻗어나가며 돌진해 오는 무인들을 거침없이 베었다.푸슉!다음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뛰던 십여 명의 무인이 그대로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났고 핏물이 폭우처럼 쏟아지며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이 광경을 본 모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너무나도 잔혹하고 폭력적이며 압도적인 장면이었다.심지어 천의방 고수인 루돌프조차도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조금 전 그 무인들은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다.전부가 종사급 무인이었지만 이 무인들은 진서준의 일격도 막지 못하고 전멸당했다.진서준은 발끝을 살짝 굴러 한 손에는 검, 다른 한 손에는 김연아를 안은 채 화살처럼 월런을 향해 돌진했다.“당장 저놈 막아!”월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발밑에서 서늘한 냉기가 온몸으로 펴졌다.이렇게 무시무시한 대한민국 사람은 월런도 처음이었다.그동안 월런이 알던 대한민국 사람은 전부 교활하고 비열하기만 했지, 이렇게 폭력적이지 않았다.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월런의 편견을 깔끔하게 박살 냈다.“날 막는 놈은 죽을 각오로 덤벼.”진서준의 등 뒤로 혈기가 솟구쳤고 그는 지옥에서 걸어 나온 마왕처럼 존재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냈다.하지만 월런의 정예 병력들은 여전히 겁도 없이 진서준의 길을 가로막았다.진서준은 검을 살짝 비틀어 순식간에 앞을 가로막은 정예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찰나의 순간, 정예 병사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숨을 거뒀다.곧바로 진서준은 다시 몸을 틀어 다른 병사에게 검을 내리꽂았다.진서준의 검술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마치 살인의 신처럼 눈앞의 모든 생명을 베어 나갔다.진서준이 지나간 자리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자기가 데려온 최정예 병력들이 하나둘씩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자 월런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루돌프, 당장 저놈 숨통 끊어버려!”“알겠습니다.”루돌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미 경계심이 가득했다.루돌프는 지금까지 수많은 강자와 싸워왔지
쾅!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저택 전체가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두 사람의 발밑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설마 루돌프 씨도 저놈을 이기지 못하는 건가?”“말도 안 돼. 저 대한민국 애송이가 얼마나 어린데?”“가주님, 지금 혼란스러울 때 총을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곁에 있던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월런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저격총을 사용해. 반드시 한 방에 저놈을 끝내야 해.”이제 와서 무슨 수를 쓰든 상관없었다.어떻게든 저 괴물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게 월런의 생각이었다.“알겠습니다.”집사는 즉시 사람을 시켜 저격팀을 준비했다.그때, 진서준의 옷이 찢어지면서 등 뒤의 오조금용이 모습을 드러냈다.“아니, 이건 오조금용이잖아? 설마 네가 대한민국 용맥의 가문 사람이란 말이야?”루돌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루돌프는 100년 넘게 살아오며 일반인이 모르는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심지어 루돌프는 지난번 대한민국 대재앙에 가담했었다.목적은 단 하나였는데 바로 용맥 가문의 또 다른 인물을 잡기 위해서였다.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시 용맥의 가문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다.“네놈이 이 어린 나이에 괴물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네.”루돌프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20년 전 만났던 그 남자도 지금 이 녀석처럼 실력이 막강했다.“네놈은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아.”진서준은 무심한 표정으로 루돌프의 말을 외면했다.지금 진서준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늙다리를 찢어 죽이는 생각 하나만 남았다.이 늙다리를 처치한 후 저 짐승 같은 월런에게 생지옥을 맛보게 해야 했다.“이봐, 네가 용맥의 가문이면 뭐 어쩔 건데? 20년 전 그 녀석도 우리한테 쫓겨서 개처럼 도망쳤잖아.”루돌프가 무심결에 진서준을 도발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진서준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더 활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그럼 당시 우리 아버지를 추격하던 놈 중에 네놈도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