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의 성미를 아는 심해윤은 우성환 원장을 불러다 서정훈을 잘 돌보라고 부탁한 후 비서를 따라 이번 회식 장소인 오션호텔로 갔다.점심시간이 되자 진서준도 진서라와 조희선을 차에 태우고 오션호텔로 왔다.차를 세운 후, 진서준은 조희선을 차에서 안아 내리고 휠체어에 앉혀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이때 정란 일가는 호텔 3층 창문 옆에 서서 진서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진짜 올 줄은 몰랐네.”정란이 진서준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5성급 호텔이 그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 게다가 방금 민찬 씨가 아버님한테 들은 바로는 오늘 점심 심 처장님도 여기서 식사하신대요.”정란의 아버지 정태호가 공민찬에게 물었다.“민찬아, 이따 식사할 때 심 처장님을 좀 소개해 줄래?”공민찬이 으쓱하며 웃었다.“문제없습니다. 이따가 다 같이 심 처장님께 한 잔 올리러 갑시다.”이번 식사 자리에 공민찬의 아버지도 운 좋게 동행했다.인사처 처장이자 서울시 부시장의 부인이라,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정란 일가도 TV에서나 볼 수 있었다.그런 인물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그들은 잔뜩 흥분했다.“아래를 좀 봐요. 진서준이 들어온 것 같아요.”정란의 말을 듣고 모두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진서준 일가는 한 중년 남자의 뒤를 따라 담담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오션호텔 입구에서 미모의 호텔 직원 몇 명이 진서준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녀들은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굽혔고, 머리를 평소보다 더 낮게 조아렸다.이 호텔을 허씨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어 진서준을 본 적이 있고 진서준의 신분을 알기 때문이다.진서준은 담담했지만, 앞에서 가던 중년 남자는 깜짝 놀라며 살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오션호텔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공손했지, 이렇게 격식을 갖춰 인사한 적은 없었다.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은 중년 남자는 가슴을 더 활짝 폈다.“오빠, 5성급 호텔이라서 그런지 종업원 태도부터 다르네.”
진서준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정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언니, 다리가 아직 안 나았어? 진작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 언니를 만날 시간이 없었어. 지금 만나도 늦지 않지.”조정연이 만나자마자 조희선의 상처를 들추자, 진서준은 은근히 화가 났다.같은 부모한테서 나온 자식인데, 조정연은 왜 이렇게 악독할까?조희선은 그래도 괜찮은 듯 얼굴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네가 바쁘다는 걸 알고 나도 찾지 않았어.”정란 일가가 말하기 전에 진서준은 직접 조희선을 밀고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진서준이 주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정란은 다소 불쾌한 듯 그를 째려보았다.“늦게 와놓고 사과도 없이 그냥 앉아?”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항상 이 시간에 점심을 먹어. 아까 몇 시에 오라는 말은 안 했잖아.”진서준은 조희선과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말대꾸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정란 일가가 감히 불손한 말을 한다면, 그는 절대 오냐오냐하지 않을 것이다.“웃기네. 우리가 밥을 사는데, 네가 밥 먹는 시간에 맞춰야 하니? 란이 몇 시에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늦게 와?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조정연이 진서준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야단쳤다.“우리 탓이야. 우리 탓이야. 다음에는 꼭 일찍 올게...”조희선은 진서준의 손을 누르며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낸 후 계속 사과했다.“또 오겠다고? 당신들이 5성급 호텔에 평생 한 번 와도 대단한 거지.”정란이 코웃음을 쳤다.정란 일가가 밥을 사는 거지만 그들은 감히 비싼 것을 주문하지 못했다.현재 정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버지 정태호뿐이다.남자친구 공민찬도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헤프게 쓰지 못한다.“5성급 호텔이 뭐가 대단해서. 우리 어머니가 오고 싶으면 매일 올 수도 있어.”진서준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놈이 뭘 그리 잘난 척해?”정민이 보다못해 진서준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정민이 눈알을 굴리더니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감옥에는 극악무도한 사람들 천지라고 하던데, 안에 있을 때 매일 얻어맞았어?”“뭘 물어? 팔다리가 비쩍 말라 가지고 딱 봐도 얻어맞게 생겼구먼.”정란이 맞장구를 쳤다.무심코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조희선은 가슴이 뜨끔해 안쓰럽고 미안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녀가 그동안 진서준에게 감옥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은 상처를 들추어내 아프게 할까 봐 걱정돼서였다.정민의 말을 듣고 나서 조희선은 진서준에게 매우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알고 싶으면 한 번 들어가 보지 그래.”“됐어. 내가 너 같은 범죄자와 뭘 비교해!”진서준의 말에 정민은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정민은 아직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곧 졸업한다.아직 일자를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올해 졸업하는 학생이니 취직이 어렵지는 않다.“진서준, 너 취직이 안 되면 우리 아버지 회사에 가서 건물 청소나 해.”정란이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지금 사회에서 감옥살이한 적이 있다는 말만 들어도 공기업은 감히 채용하지 못한다.사기업도 지금은 구직자의 경력을 중요시하는 편이다.진서준같이 감옥 갔다 온 대학생은 거의 취직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공장의 단순 생산직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정태호가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덤덤하게 말했다.“서준아, 우리도 친척이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이모부로서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필요 없어요.”“그래, 계속 집에서 부모에게 빌붙어 살아.”진서준이 거절하자, 정란이 코웃음을 쳤다.사실 지금 진서준이 정태호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정태호는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쓸모없는 친척을 돕는 것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이다.그 뒤로 정란 일가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조희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희선은 어쨌든 친척인데 일이 너무 커져서 앞으로 얼굴도 못 보는 것은 원치 않았다.“민찬 씨, 시간이
허사연은 11시에 오션호텔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전화 내용은 심해윤이 호텔에 식사하러 온다는 것이었다.심해윤은 신분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었고, 또 어젯밤에 진서준이 서현욱을 때렸는데, 허사연은 이 기회를 빌려 진서준 대신 상황을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 호텔에 오니 프런트 직원이 그녀에게 진서준이 왔다고 알렸다. 그래서 급히 찾으러 온 것이다.“바쁜데 방해될까 봐.”진서준이 다가가 허사연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사연은 진서준을 흘겨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조희선을 바라보았다.허사연이 자기 어머니 앞에서 긴장하는 것을 보고, 진서준은 그녀가 이전보다 더 귀엽게 느껴졌다.“아주머니, 서라 씨, 저희 호텔 요리는 괜찮았나요?”“좋았어요.”조희선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다행이에요. 입에 맞으시면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팀에 시켜서 보내드릴 수 있어요.”허사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너무 번거로워요. 평소에 서라가 집에서 밥 해주면 돼요. 근데 사연 씨가 오랫동안 우리 집에 오지 않았네요.”지난번 오해가 풀린 후 조희선은 허사연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고, 심지어 진서준과 허사연이 올해 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결혼을 너무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도 안다.“저 오늘 저녁 시간이 있습니다.”“그럼,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놀러 와요. 서준한테 차로 데리러 가라고 할게요.”허사연의 말에 조희선은 희색이 만면했다.지금 조희선이 가장 바라는 것은 가족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이는 것이다.“저녁에 윤진을 도와주러 가야 해요.”진서준이 허사연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그 계집애가 또 뭘 도와달래요?”허사연은 허윤진네 학교에서 무도회가 열리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절대 진서준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작은 일이에요. 금방 끝나요.”진서준은 가서 허윤진과 춤을 추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서준 씨, 심 처장님이 위층에 계시니까 우리 둘이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정태호가 급히 말했다.“그럼, 심 처장님을 방해하지 않고 이만 가보겠습니다...”말하고 나서 정태호는 심지어 잔에 든 술도 마시지 않은 채 그냥 돌아섰다.정란과 기타 몇 명은 내키지 않았지만 정태호의 뒤를 따라 슬그머니 룸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정란 일가가 떠나간 후 심해윤은 성난 목소리로 공준호를 꾸짖었다.“아들한테 사람을 데리고 와서 술을 권하라고 시키다니. 주임 자리를 내놓고 싶어요?”심해윤은 연세가 좀 있지만 아직 노안이 오지는 않았다.공민찬과 공준호가 그렇게 닮았는데, 심해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처장님, 잘못했습니다. 화내지 마십시오.”공준호는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방금 확실히 생각이 짧았다.심해윤이 기분 좋으니 자기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정란 일가는 풀이 죽어 룸에서 나오다가 그때 마침 술잔을 들고 오는 진서준, 허사연과 마주쳤다.굉장히 미인인 허사연을 보고 공민찬과 정민 두 사람은 눈이 번쩍 뜨였다.“진서준, 넌 뭐 하러 왔어?”정란은 허사연을 보지 못하고 방금 빈정상한 것을 진서준에게 분풀이했다.진서준이 코웃음을 쳤다.“술을 권하러 가지 않았어? 왜 벌써 나오는 거지? 설마 심 처장님이 반기지 않던?”“헛소리하지 마. 우리 방금 심 처장님께 한 잔 올렸어. 처장님이 이따 우리 방에 오시겠다고 했어.”대단한 미인 허사연 앞이라 정민은 미친 듯이 허풍 떨기 시작했다.모르는 사람들은 정민 일가가 정말 심해윤과 술을 마신 줄 알겠다.정씨 집안 사람들은 아무도 정민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고 모두 침묵했다. 스스로 체면 깎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진서준은 정민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챘다.“술잔에 담긴 술은 심 처장님이 직접 따라주신 거라고 말할 거야?”진서준이 정민의 손에 들린, 술이 가득 찬 술잔을 가리키며 코웃음을 쳤다.자기 술잔에 술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정민은 멍해졌다. 이런 망신이
방금 공민찬이 데려온 사람들 때문에 공준호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그런데 또 낯선 사람 두 명이 심해윤에게 술을 올리겠다고 한다. 심해윤이 이번에도 그가 부른 줄 안다면 그의 주임 자리는 날아갈지도 모른다.“심 처장님과 아는 사이입니다.”진서준이 한 손으로 문을 잡고 닫지 못하게 했다.공준호는 진서준의 말을 믿을 리 없었다. 그의 눈에는 그저 줄 대러 온 사람들로 보였다.하지만 공준호가 아무리 힘을 써도 룸의 문은 돌담에 막힌 듯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공준호는 진서준을 무섭게 쏘아보더니 성난 목소리로 경고했다.“당장 손을 놓아요. 심 처장님이 오시면 용서를 빌 기회도 없어요.”진서준이 되물었다.“제가 왜 용서를 빕니까? 제가 심 처장님을 건드린 것도 아닌데.”공준호는 진서준의 말에 놀랐다. 멍청한 척하는 건지, 정말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그냥 고위 관료도 아니고 서울시 부시장 부인의 식사 자리에 쳐들어가는 것은 범죄는 아니지만 그 결과가 범죄보다 훨씬 더 무섭다.식사하던 심해윤 일행도 이상 상황을 감지하고 공준호에게 물었다.“공 주임님, 문 앞에 서서 뭐 해요?”심해윤의 질문에 공준호는 급히 둘러댔다.“호텔 직원이 한사코 술을 올리겠다고 하는데 거절하는 중입니다.”공준호는 심해윤이 절대 뇌물을 받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외식할 때도 그녀는 호텔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않는다.역시나 심해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직원한테 우리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보내세요.”“들었죠? 심 처장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우리는 술이 필요 없으니 얼른 가세요.”공준호는 진서준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했다.“지금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으면, 잠시 후에 우리를 모시러 와야 할걸요.”“웃기시네. 모시러 간다고? 당신들 누군데? 위에서 내려온 고위 관료라도 돼?”공준호는 하찮게 여기며 진서준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자 진서준은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공준호에게 문을 닫으라고
정란 일가는 배꼽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진서준, 우리를 웃겨 죽일 셈이야? 심 처장님이 너를 맞으러 나온다고? 이왕이면 더 크게 허풍 떨지 그래!”“심 처장님이 정말 나오면 앞으로 네가 시키는 일은 다 할게.”정민이 코웃음을 쳤고, 조정연도 같이 빈정거렸다.“감옥 갔다 온 사람이 다르긴 다르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정씨 일가의 말에 허사연은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진서준의 허풍이 좀 지나치긴 했다. 그녀는 진서준을 편들고 싶어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진서준은 휴대폰을 켜더니 침착하게 심해윤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그때 룸에서 식사하고 있던 심해윤은 휴대폰 벨 소리를 듣고 꺼내 보았다.진서준에게서 온 전화인 것을 확인한 심해윤은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급히 휴대폰을 들고 구석으로 갔다.다른 사람들은 심해윤의 동작을 보고 어느 고위 관료의 전화인 줄 알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심 처장님, 지금 오션호텔에서 식사 중이시죠?”“네, 설마 진 선생님도 여기 계셔요?”진서준의 질문에 심해윤은 처음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이어 반가워하며 물었다.진서준이 서정훈의 목숨을 구했는데,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했다.진서준도 지금 오션호텔에서 식사하고 있다면 심해윤은 직접 술잔을 들고 가서 술을 권하고 싶었다.“네, 그리고 제 여자친구가 처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진서준의 여자친구가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심해윤은 좀 당황했다.“어느 룸에 계셔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처장님이 계신 룸 밖에 있어요.”“네? 문밖에 있다고요? 그럼 왜 안 들어오세요?”심해윤은 말하고 나서 갑자기 공준호를 돌아다보았다.그녀는 방금 문을 두드린 사람이 호텔 직원이 아니라 진서준과 그의 여자친구였다는 것을 알아챘다.순간 심해윤은 공준호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심해윤의 서늘한 눈빛에 공준호는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는 자기가 어쩌다 또 심해윤을 건드렸는지 전혀 몰랐다.“어떻게 된 건지 알았어요. 잠시만요. 곧 나갈게요.”
모든 사람이 진서준이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심해윤과 아는 사이인 것도 그런데 진서준을 대하는 심해윤의 태도는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심해윤이 누구인가? 서울시 부시장의 부인이고, 본인도 인사처 처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다.대부분 인사 발령이 인사처 책임자인 그녀의 손을 거친다.이렇게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지금 진서준을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고 있다.정란은 자기 팔을 힘껏 꼬집었다. 강렬한 통증은 그녀에게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다만 정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서준은 감옥에 갔다 온 범죄자인데, 어떻게 심해윤한테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공민찬이 맨 먼저 정신을 차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처장님,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닙니까? 이 사람은 옥살이한 적이 있습니다.”심해윤은 진서준의 신분을 조사해 본 적이 없어 그가 옥살이한 적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그래서 공민찬의 말을 듣고 그녀도 놀랐다.하지만 반응이 빠른 심해윤은 이내 쌀쌀하게 말했다.“내가 아직 사람을 잘못 볼 정도로 눈이 침침하지 않아요.”이 와중에 아들이 심해윤의 심기를 건드리자, 공준호는 그를 발로 걷어차서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심해윤의 싸늘한 시선을 느낀 공민찬은 옷이 젖을 정도로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방금 너무 놀라 이성을 잃고 그런 쓸개 빠진 소리를 했던 것이다.“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됐어요. 가던 길 가세요.”더 이상 공민찬 일행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심해윤은 진서준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진 선생님, 우리 들어가요.”“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사연의 손을 잡고 먼저 룸에 들어갔다.허사연은 그렇게 얼떨떨하게 진서준에게 끌려 룸으로 들어갔고, 의자에 앉은 후에야 제 정신이 돌아왔다.“서준 씨, 심 국장님을 어떻게 알아요? 저는 왜 몰랐죠?”허사연이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오늘 아침에 알게 돼서 미처 말하지 못했어요.”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