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문과 차형석은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렇게 5분간 넋 놓고 있다가 두 사람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사부님, 저...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차형석은 이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모든 게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심지어 자신의 손등을 힘껏 꼬집어 봤다. 강렬한 통증이 그에게 이 모든 것이 진짜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호산대진이 정말로 파괴되었다.조금 전 천경문은 자신만만하게 아무도 호산대진을 파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2분도 되지 않아 호산대진이 파괴되었다.“이럴 리가 없는데?”천경문은 믿기지 않는 건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댔다.“설마 그 짐승이 한 짓인가? 그놈이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천경문을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는 옆에 있던 차형석을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사문으로 달려갔다.그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장문인에게 알릴 생각이었다.사실 천경문이 얘기해 줄 필요는 없었다. 화령문 사람들 모두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조금 전 보운산의 최고봉도 흔들렸는데 화령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조금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죠.”진서준은 천문검을 거두어들인 뒤 약간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권해철과 이승재는 멍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했다.권해철은 자신의 모든 보물을 동원해서야 호산대진에서 겨우 십여 초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은 검 하나로 호산대진을 파괴했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진 마스터님...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아니십니까?”권해철은 말할 때 입술이 덜덜 떨렸다.“제가 신이었다면 왜 권해철 씨를 따라서 이 보운산에 왔겠어요?”진서준은 살짝 창백한 얼굴로 덤덤히 웃어 보였다.조금 전 진서준은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그러나 그 한 번에 진서준 체내의 영기는 이제 1/10도 남지 않았다.이 호산대진은 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아주 견고했다. 심지어 안에는 취영진
그 위세는 조금 전보다 더 강했다.“진 마스터님, 경지를 돌파하신 겁니까?”권해철이 당황해하면서 물었다.“아뇨. 그저 조금 전 그 공격으로 제 실력이 조금 더 증진된 것뿐이에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진서준은 전력을 다한 적이 없었고, 체내의 영기가 거의 바닥난 적도 없었다.이번에 단 한 번 전력을 다했는데 체내의 영해가 또 한 단계 발전했다.진서준은 그제야 장청결의 전투로 경지를 돌파한다는 말이 조금 이해되었다.당시 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거의 매일 진서준을 때렸고, 진서준은 매번 그에게 맞아 상처투성이가 됐다가 저녁이면 구창욱에게서 치료를 받았다.그리고 다음 날, 구창욱은 또다시 그를 때렸다.그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맞다 보니 진서준의 실력은 마치 로켓처럼 빠르게 발전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겨우 3년 사이에 종사와 엇비슷한 실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권해철 씨 사문으로 가서 권해철 씨 사형제들을 만나야겠어요.”진서준은 싱긋 웃더니 허윤진을 데리고 누렁이의 등에 올라탔다.권해철은 쓴웃음을 지었다.“진 마스터님, 제 사형제들은 분명 절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충동이 있을지도 몰라요.”조금 전 천경문의 태도에 권해철은 괴로웠다.그들은 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을 정도로 친했었다.심지어 사문에서 쫓겨날 때도 다들 권해철을 보내고 싶지 않아 했다.그러나 지금 다시 만나니 서로 적대시해야 했다. 권해철은 그 점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괜찮아요. 제가 있으니 아무도 권해철 씨를 다치게 못 할 겁니다.”진서준이 평온하게 말했다.“진 마스터님, 제 사형제들을 다치지 않게 해주셨으면 해요. 그들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권해철은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애원했고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이 꼭 죽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이번에 이곳을 찾은 건 단지 영골 때문이었기에 괜히 화령문 사람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싶지는
네 명의 장로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둘째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대사형께서 금방 하산하셨는데 설마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과 마주친 건 아니겠지?”그의 말에 삼장로가 자조하듯 웃었다.“사형, 장난하십니까? 이 세상에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짐승이 우연한 기회로 우리 진법을 파괴한 거겠죠!”이 호산대진은 장로인 그들과 화령문 장문인이 협력한다고 해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장로들은 호산대진을 파괴한 것이 그 산 아래의 맹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그 맹수는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실력도 인간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큰일이군요.”사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평소 화령문 사람들은 누렁이의 약을 많이 올렸었다.적지 않은 제자들이 도망치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누렁이의 심기를 건드린 뒤 호산대진 안으로 도망쳤었다.그래서 누렁이는 호산대진을 아주 싫어했다.물론 누렁이는 화령문의 모든 도사도 싫어했다.그런데 지금 호산대진이 파괴되었으니, 네 장로들은 그 사자가 분명 산으로 올라와서 복수할 거라고 생각했다.“얼른 사부님을 찾아가죠. 사부님께서 결정하게 합시다.”마지막에 오장로가 입을 열었다.현재 천경문이 자리에 없으니 결정을 할 수가 없어 폐관한 장문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다섯째야, 넌 뒷산으로 가서 사부님을 찾아. 난 세 사람을 데리고 입구로 가서 기다리겠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우리 셋이 잠깐은 막을 수 있을 거다.”이장로가 낮게 말했다.“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오장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뒷산으로 달려갔다.“우리도 움직이자.”대전에서 나온 세 사람은 사문의 모든 제자가 대전 문 앞에 모여 있는 걸 보았다.이장로가 차가운 얼굴로 호통을 쳤다.“다들 여기 모여서 뭐 하는 거냐? 얼른 가서 연습하지 않고?”“이장로님,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보운산 전체가 뒤흔들렸는데요.”
“조금 전에 하산할 때 권해철을 만났다.”천경문이 또 말했다.“뭐라고요? 권해철이요? 걔가 사문에는 왜 왔대요?”권해철이라는 말에 다른 세 사람은 의아했다.권해철은 이미 화령문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오늘 갑자기 찾아온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모르겠어. 게다가 자기가 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왔대.”“말도 안 돼요. 이 세상에 우리 호산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삼장로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나도 큰소리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천경문은 자신의 추측을 전부 얘기했다.“나와 권해철이 싸우려고 할 때 산 아래 짐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와 형석이는 감히 그곳에 남아있지 못하고 곧바로 산 위로 도망쳤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짐승 위에 사람 두 명이 올라타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천경문의 세 사형제는 경악했다.“대사형, 눈이 안 좋으십니까? 그 짐승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사부님의 사부님 실력이라도 그 짐승과 엇비슷한 수준인데요!”천경문은 계속해 말했다.“그 짐승은 실력이 강하긴 하지만 호산대진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진법 안의 수백 개 되는 진법의 진안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 짐승은 비록 영리하지만 그래도 결국 짐승이지 인간은 아니다.”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천경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사형, 사형 말대로라면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 권해철 그 자식이 데려온 사람일지도 모른단 말입니까?”“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문을 떠난 지가 언젠데 왜 갑자기 돌아왔답니까?”“설마 사부님을 찾아서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걸까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천경문은 고개를 저었다.“권해철은 내게 사문으로 돌아온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복수는 아닐 거다. 사부님은 영선 경지와 반보 차이이기 때문이니 말이다.”영선 경지는 무도의 선천 대종사와 같
진서준과 허사연은 누렁이 등에 앉아서 보운산이 지어진 널따란 도관을 바라보았다.도관 입구에는 사람 네 명이 서 있었다. 화령문 사람 같았다.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권해철을 힐끗 본 뒤 말했다.“권해철 씨, 앞에 있는 곳이 바로 권해철 씨 사문이죠?”권해철은 빠르게 걸어서 누렁이 앞에 섰다.오랜만에 보는 도관 앞에 서자 기분이 씁쓸했다.“맞아요, 저곳이 바로 제 예전 사문이에요.”권해철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동시에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보았다.“저 사람들은 제 형제들이에요!”권해철은 네 사람을 짚으며 말했다.“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거였으면 좋겠네요.”권해철은 안색이 살짝 달라져서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잠시 뒤에 제가 얘기 나눠볼 테니까 절대 손 쓰지 말아주세요.”권해철은 자신의 형제들이 진서준과 싸우기를 바라지 않았다.만약 진서준이 자칫해서 힘을 과하게 쓰면 그들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알아요. 전 멋대로 나서지 않을 거예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허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그렇게 무서운가요?”허윤진은 먼저 고개를 젓더니 이내 또 고개를 끄덕였다.“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허윤진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귀여워요!”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귀엽다는 말에 진서준은 웃음이 터졌다.“잘생기고 멋진 거겠죠.”진서준이 웃으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칭찬 좀 해줬더니 바로 거만해지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아까 확실히 잘생겼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 검의 신과도 같았던 진서준의 모습을 허윤진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진서준과 허윤진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권해철은 이미 사문 문 앞에 도착했다.“오랜만이에요, 다들.”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내던 사람들을 보게 되자 권해철은 눈물을 글썽였다.“권해철, 네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호산대진을 파괴한 거야?”천경
서울은 들어봤지만 진서준의 이름은 그들에게 아주 낯설었다.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진서준이 말한 영골은 그들 문파에 확실히 하나가 있었다.그러나 그 영골은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진서준 씨, 진서준 씨가 원하는 영골은 우리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시죠.”천경문은 고개를 저으면서 진서준의 요구를 거절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반드시 이 영골을 챙겨야 합니다. 영골이 있어야만 제 어머니의 두 다리가 완전히 나을 수 있거든요.”이번에 진서준은 반드시 영골을 얻어야 했다.영골을 얻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었다.“진서준 씨, 사문의 금지 구역은 저희도 멋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서준 씨를 들여보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천경문의 태도도 아주 확고했다.진서준이 입을 떼기도 전에 뒤에 들던 누렁이가 갑자기 화를 내듯 으르렁거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누렁이의 울부짖음을 들은 천경문 등 사람은 뒤늦게 반응했다.그들의 앞에 서 있는 청년은 맹수를 길들이고 그들의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었다.만약 그들이 계속해 고집을 부린다면, 화가 난 진서준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가는 큰일이었다.천경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말투도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누그러졌다.“진서준 씨, 우리 사부님은 지금 폐관 중이라서요. 사부님이 나오신 뒤에 얘기를 나눠보심이 어떨까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폐관하신답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기다릴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전 영골을 그냥 가져갈 생각이 없어요. 제가 공법 하나를 드릴게요.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진서준이 공법을 주겠다고 하자 천경문 등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진서준의 실력은 무시무시했다.만약 진서준이 수련한 공법을 수련할 수 있다면 분명 실력이 급성장할 것이다.천경문 등 사람들은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할
화령문의 제자 중 일부는 그 맹수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매번 누렁이를 마주칠 때면 황급히 도망갔고, 누렁이와 눈빛을 마주할 배짱도 없었다.그런데 젊은 청년 진서준이 누렁이를 애완동물이라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도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서준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안 들려요?”우레와도 같은 목소리에 도관 속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들었어요, 들었어요...”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진서준과 누렁이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뒤를 따르던 천경문 등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현재 사부님이 없으니 아무도 감히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들은 진서준의 말에 따라야 했다.“진서준 씨, 여기 객방이 있으니 저희를 따라오시죠.”천경문은 서둘러 진서준을 객방으로 안내했다.진서준 등 네 사람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뒤 천경문이 말했다.“진서준 씨, 또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최대한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그쪽 사부님이 빨리 출관하기만 하면 됩니다.”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네, 제가 지금 사람을 뒷산으로 보내겠습니다.”천경문은 정중하게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잠시만요!”진서준이 천경문을 불러세워서 물었다.“여기 목욕할 때 쓸 나무 욕조가 있나요?”천경문은 흠칫했다. 그는 진서준이 왜 갑자기 나무 욕조를 찾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네, 저희 목욕실에 나무 욕조가 있습니다.”“지금 당장 그곳에로 안내해 주시죠.”진서준은 용혈과가 담긴 박스를 들고 천경문을 따라 목욕실로 향했다.목욕실 안에는 나무 욕조 십여 개가 있었다.화령문 사람들은 평소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깨끗한 나무 욕조는 없습니까?”진서준은 미간을 구기면서 물었다.그는 잠시 뒤 용혈과로 몸을 씻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깨끗한 나무 욕조가 필요했다.“네, 그 나무 욕조는
액체는 마치 붉은색의 작은 뱀처럼 진서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그 액체는 진서준의 체내로 흘러든 뒤 장철결의 궤적을 따라서 진서준의 온몸에 있는 경맥을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에는 혈액에 모여들었다.모든 과정에서 진서준의 몸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진서준은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마치 커다란 산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눌러서 언제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욕조 안에 액체가 반쯤 남았을 때 진서준은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용혈과를 들어서 한입에 삼켰다.용혈과가 배에 들어가자 체내에서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배 속에 불을 지른 것처럼, 오장육부가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몸을 단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쉬웠다면 화진에는 무도 종사가 아니라 횡련 종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수련 과정에서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었다.진서준이 목욕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보운산의 산허리 쪽에 네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네 명은 줄곧 진서준의 뒤를 밟았던 혈운 조직의 네 명의 대성 종사였다.“이 산에 숨어 사는 화령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예준섭은 고개를 들어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덤덤히 말했다.“그래요, 그런 문파가 있었던 거를 기억해요. 형님 말을 들어 보니 수백 년 전까지는 인재가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았어요.”변정선이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 길 하나뿐이니, 오늘 그 자식은 절대 도망치지 못하겠네.”대화하는 사이 하신우가 손을 움직이자 채찍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렸다.팍 소리와 함께 하신우가 갑자기 채찍을 휘둘러 등 뒤에 있는 나무를 때렸다.채찍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그를 공격하려던 독사의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나머지 세 명은 보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산 위로 걸음을 옮겼다.호산대진은 이미 파괴되었기에 네 사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