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한테 손을 댄다고요? 정말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요.”진서준의 눈에서 한기가 스쳤다.원현성이 진서준을 이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국안부의 체면을 본 것이었다.진서준이 국안부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원현성은 진소라부터 손댔을 것이었다.“진 상경, 안일해서는 안 됩니다. 원현성이 실력이 약하지 않습니다. 인의방 1등입니다.”류재훈이 진서준에게 일깨워줬다.“인의방 1등?”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박만년에 지의방에 랭킹되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지의방의 박만년조차도 진서준의 적수가 못 되는데 인의방의 1등은 더 말할 가치도 없었다.“진 상경, 원현성은 다릅니다. 그는 그저 인의방에 머무르고 싶어 해서 안 올라가는 거예요. 그를 지의방에 넣는다면 박만년도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류재훈이 부랴부랴 설명을 덧보탰다.“네? 그런 사람도 있어요?”진서준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네. 원현성은 사급 술법 영선으로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사급 술법 영선? 어쩐지...’술법의 수련은 무도보다 더 어려웠다.같은 경지에서 대대수의 대종사는 영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하지만 술법 영선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횡련 대종사였다.횡련 대종사는 더 희귀했는데 가장 많은 횡련 대종사를 소유한 가문이 서북의 유씨 가문이었다.바로 유지수 생부가 있는 가문이었다.“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종사님.”진서준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천만에요. 진 상경님께서 봉호대전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류재훈이 웃으며 답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 14억 인구에서 천교도 많을 것입니다. 저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었다.높은 곳에 서 있을수록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 수 있었다.세계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넓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나아가는 것이다.“진 상경님 겸손하시네요. 진 상경님과 비교할
신농에 들어가려면 신농이 제자를 받는 틈을 타서 스리슬쩍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의문스러웠다.‘설마 신농에서 어머니를 납치해 가셨을까? 그런 거면 왜 어머니를 잡아간 걸까?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 걸까?’진서준은 류재훈과 헤어진 후, 전에 몰던 차를 몰고 서씨 가문으로 향했다.진서준은 서지은을 데리고 경성에 갈 생각이었다.이내 진서준 일행은 서씨 가문에 도착했다.“멈춰라. 누구냐?”서씨 가문 입구에 있던 경호원이 진서준을 막았다.“가주에게 진서준이 왔다고 전해라.”진서준이 담담히 답했다.“당신이 진서준?”입구에 있던 경호원이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기다려!”경호원이 급히 무전기를 꺼내 말을 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그림자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온 사람은 서지은과 서광문이 아니라 서광철과 진서준이 모르는 중년 남자였다.“진서준! 네 이놈! 감히 내 아들의 결혼식을 망쳐 놓고도 감히 우리 집에 오다니! 죽어라!”서광철이 분노에 차 외쳤다. 눈동자에서 진서준에 대한 원한이 흘러넘쳤다.지난번 일로 인해 서광철은 강남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진서훈한테 경고만 안 받았어도 서광철은 사람을 데리고 서남으로 가 복수했을 것이었다.진서준이 서광철을 보고 차에서 내렸다.“나 여기 있어. 복수하고 싶으면 덤벼.”진서준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진서준이 자기 집 앞까지 왔는데도 이렇게 오만방자한 것을 보고 서광철은 더 큰 분노가 치밀었다.“좋다. 오늘 네 사지를 부러뜨리고 너를 호수에 던져 악어 먹이로 주겠다.”서광철이 큰 소리를 내자 온몸이 마치 큰 활처럼 팽팽해졌다.펑!서광철이 발을 내디디자, 바닥에 커다란 발자국이 생기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대리석이 깔린 지면이라서 트럭이 올지라도 균열을 내기 어려웠다.서광철 발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다가오는 서광철을 보며 진서준이 손바닥을 들었다. 투명하게 변한 손바닥은 안에 있는 뼈 마디마디가
진서준이 내지른 칼의 위력은 대단했다.보통 사람이 이 검광 앞에 있었다면 놀라 죽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실제 칼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서광철은 어쨌든 서지은의 둘째 삼촌이었고 진서준과 서지은의 관계로 서광철을 죽일 수는 없었다.서광철과 함께 나온 중년 남자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약간 변했다.이어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서광철을 향해 돌진했다.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서광철은 중년 남자에게 구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쾅!검광이 지면에 떨어지자 50미터에 가까운 균열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서씨 가문의 단단한 합금 문도 순식간에 칼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땅의 균열을 본 서광철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일었다.“남 대종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서광철이 얼른 남기현에게 감사를 표했다.남기현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는 검에 의해 생을 마감했을 것이었다.“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이 검은 그저 보여주기일 뿐,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서광철은 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남기현은 알 수 있었다.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 외에는 기껏해야 무도 종사를 죽일 수 있을 뿐이었다.서광철이 선천적인 강기로 막아냈다면 상처도 입지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이 검 앞에서 저는 정말 하룻강아지같이 느껴졌습니다.”서광철은 남기현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그건 저 사람의 실력이 더 뛰어나고 속임수까지 써서 그렇게 느껴졌을 뿐입니다.”남기현이 얼른 해명했다.“그렇군요! 하마터면 저 녀석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네요.”진서준을 보는 서광철은 화가 나서 몸이 근질거렸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린 진서준에게 농락을 당한 서광철은 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남 대종사님, 쟤 죽여요!”서광철이 분노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남기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저는 죽일 수 없습니다.”그 말을 들은 서광철은 어리둥절해졌다.“죽일 수 없다고요? 말도 안 돼요! 오급 대종사에 지의방 57위에 있어요
“그러게요. 두 달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에요.”남기현이 한숨 쉬며 말했다.진서준이 말을 끊었다.“안 싸울 거면 비켜. 이번에는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서지은을 데리고 오늘 서울로 올라가서 한서라를 볼 계획이었다.그는 서광철과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오만한 진서준의 말에 서광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너는 우리 서씨 가문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인 줄 아느냐?”서광철의 말이 끝나자 서광문과 서지은이 걸어나왔다.“광철아, 먼저 돌아와.”서광철이 멍하니 서광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형,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자식은 내 아들의 결혼식을 망친 놈이야!”서광철은 서광문에게 복수를 대신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서광문의 모습을 보니 그는 진서준을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나도 알아. 나도 죽여버리고 싶어.”서광문이 무뚝뚝한 얼굴로 답했다.사랑스러운 딸이 진서준에게 홀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서광문이 진서준에 대한 적의는 절대 서광철보다 약하지 않았다.하지만 애지중지한 딸이 진서준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떡하겠는가.“그럼 왜 공격 안 해!”서광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현천진군이 그날 한 말 잊었어?”서광문이 호국장군 진서훈을 언급했다.그는 서광철에게 자신이 서지은때문에 진서준을 건드리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다.서광문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는 앞으로 서씨 가문에 위엄을 떨칠 수 없을 것이었다.“하... 하지만 이렇게 창피한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서광철이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목숨 잃는 것보다 망신당하는 게 낫지 않겠어?”서광문이 말했다.서광문이 그렇게 말하니 서광철도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그는 함부로 호국장군의 위엄에 도전할 수 없었다.서광철뿐만 아니라 경성에 있는 오래된 네 가문에서도 감히 호국장군의 위엄에 도전하지는 못할 것이었다.“지은 씨, 같이 경성으로 가. 잘 보호해 줄게.”“누가 너를 괴롭힌다면 이 아비에게
집에 도착한 진서준은 바로 진서라를 찾았다.“서라야, 며칠 전에 한 늙은이가 너 찾아오지 않았어?”진서준과 허사연이 갑자기 돌아온 것을 보고 진서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맞아. 한 늙은이가 집에 왔었는데 오빠 찾으러 왔다고 하더라고.”진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너한테 뭔 짓 한 건 아니고?”진서준이 물었다.“아무것도 안 했어.”진서라가 고개를 저었다.진서라가 다친 곳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그 사람 누구야?”진서라는 그 늙은이의 정체가 궁금했다.하지만 원형성의 기세등등하고 살의에 가득 찬 모습만 보더라도 진서준과 갈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진서준에게 원수를 갚으러 온 것 같았다.“나한테 진 사람일 뿐이야. 걱정하지 마.”진서준이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내일 사연이랑 경성에 갈 건데 같이 갈래?”“나는 됐어.”진서라는 자신이 또 진서준에게 폐를 끼칠까 봐 얼른 고개를 저었다.“서라 씨, 같이 가요. 혼자 집에 있으면 얼마나 심심해요.”허사연이 진서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같이 가자. 어르신한테 미리 연락해서 임씨 가문에 묵자.”진서준에 경성에서 임씨 가문에 묵을 생각이었다.임씨 가문의 경성 4대 가문이었으니 진서라가 그곳에 묵고 있으면 아무도 감히 문제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었다.진서준이 그렇게 말하자 진서라는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맞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서지은인데 전에 만난 적 있어.”진서준이 서지은을 끌어다 진서라에게 소개했다.“지은 씨, 이쪽은 내 여동생 진서라야.”진서준이 처음 강남에 갔을 때, 공교롭게 서지은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서라도 있어서 서지은을 만난 적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이번이야말로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진서라가 진서준의 동생이라는 것을 안 후, 서지은은 진서라에게 매우 적극적이었다.가족이 될 사이었으니 말이다.점심을 먹고 진서준은 임준에게 연락했
그 여자를 바라본 진서준은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온몸의 피가 아래로 뭉치기 시작했다.너무도 이상했다.허사연과 단둘이 있을 때도 진서준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낯선 여자를 보고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진서준이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고 문 앞의 여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내 여인은 가볍게 뛰어올라 3미터가 넘는 담장을 뛰어넘어 마당으로 들어섰다.그녀는 진서준에게 다가가 섬섬옥수로 진서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저 예뻐요?”진서준은 꼭두각시처럼 어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나랑 야한 짓 하고 싶지 않아요?”여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하지만 그녀의 눈 밑에는 보통 사람이 알아채기 힘든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네...”진서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은 여자의 가슴으로 향했다.여자의 안색이 변하며 싫증 나는 표정으로 진서준의 손길을 피하며 비수를 꺼내 진서준의 가슴을 찔렀다.챙!비수가 진서준의 가슴을 찌르자 뜻밖에도 맑은소리가 났다.금속과 금속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 같았다.표정이 돌변한 여인이 섬나라 말로 욕설을 퍼부었다.“횡련 대종사? 빌어먹을 남조인! 감히 나를 속여?”진서준은 여자한테 비수로 찔린 후, 순간 정신을 차리고 여자를 경계했다.“누구냐!”‘이상하다. 아까는 왜 그랬지? 왜 통제 불능처럼 변했을까?’진서준은 눈앞의 여자에게 홀린 것만 기억났다.다른 일은 완전히 잊은 채였다.“자기야, 당신 아내잖아.”여인은 재빨리 비수를 뒤로 감추고 다시 진서준의 혼을 빼놓으려고 했다.그때 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나왔다.그들은 진서준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진서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되어 나온 것이었다.나오면서 마침 여자가 한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여자는 얇은 시스루 스커트 하나만 입었는데 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지금은 12월 말, 엄동설한이었다. 수련을 한 허사연도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껴입어야
매혹술로 진서준을 꼬시는 여인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혼자서 그렇게 많은 여자를 곁에 두다니 역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나쁘다.“저 이 여자 몰라요! 이 여자는 날 죽이러 온 거예요!”진서준은 서둘러 설명했다.“형부를 죽이러 왔다고요? 장난해요?”허윤진은 아무리 봐도 이 여자가 여우 같다고 생각했다.몸매도 좋고 허윤진보다 더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보기만 해도 허약한데 어떻게 진서준을 죽일 수 있겠는가.“여보, 날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죽인다고 하면 안 되잖아.”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진서준은 뒤로 물러서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당신 도대체 누구야! 말 안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마누라 서현이잖아!”여자는 애교를 부리며 이어 말했다.“잊었구나. 그날 밤 우리 둘 다 술에 취해서 호텔로 갔었잖아.”“난 거절했었는데 네가 나중에 나랑 결혼한다고 해서 받아드렸는데...”그녀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이 여자 뭐지?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잘 꼬시는 건가?’어쩐지 진서준이 그렇게 쉽게 유혹에 빠지더라니.진서준은 누가 이 여자를 보내왔는지, 무슨 정체인지 알고 싶었다.그러자 진서준은 그녀의 말을 따라 이어 말했다.“아!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난 거 같기도 하고.”“그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었어.”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이 웃는 얼굴을 보고 여자는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퍼부었다.‘개자식. 이따가 기절시켜서 제일 먼저 네 눈을 뽑아버릴 거야!”“형부! 정말 이런 여자랑 만난 적이 있다고요?”허윤진은 화가 났다.딱 봐도 요염하고 노는 여자 같은데 벌써 다른 남자랑 했을지도 모른다.게다가 두 달 동안 진서준은 거의 허사연과 함께 있었다.아마 다른 남자에게 버림받아서 진서준에 온 것 같다.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만 절대 집에 데려오면 안 된다.“여보,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윤진아, 진서준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니?”허사연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진서준이 그렇게 쉽게 그 여자한테 홀릴 거 같아?”허사연이 이렇게 말하자 허윤진도 마음이 놓였다.방금 그 여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극혐했다.마치 동성끼리 상극인 것 같았다.“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형부가 일부러 홀린 척하는 거야?”허윤진이 궁금해서 물었다.“아마 그럴 거야. 아까 네가 가려고 했을 때, 진서준이 아주 단호하게 가지 못하게 했잖아.”“그리고 그 여자가 진서준을 죽이러 왔을 거로 생각해.”하사연이 말했다.“뭐? 그럼 형부가 그 여자랑 같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니야?”허윤진은 또 진서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진서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진 언니, 우리 오빠 믿어봐요. 괜찮을 거예요.”방금 서지은과 같이 있던 사람들도 진서준이 그 여자에게 홀리는 걸 보고 모두 허윤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모두 진서준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더없이 믿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절대 자기 여친을 두고 다른 여자한테 가는 사람이 아니다.“그럼 진서준이 돌아오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죠.”...진서준은 여자를 따라 별장을 떠나자마자 그녀에게 밀렸다.“나쁜 놈, 만지지 마!”여자는 진서준을 보며 큰소리로 꾸짖었다.“자기야, 아까는 나랑 같이 자자며.”진서준은 되려 질척였다.“경고하는데 여기 가만히 서 있어.”여자는 얼굴을 찌푸리고 눈에 매서움이 가득했다.진서준은 두 눈을 멍하니 뜨고 바보처럼 서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진서준이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걸 보고 여자는 만족스럽게 핸드폰을 꺼냈다.누군가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팀장님, 이놈은 횡련의 대종사입이다. 제 칼로는 이놈 살갗도 뚫지 못합니다!”여자는 섬나라의 언어로 통화했다.진서준은 대학생일 때 섬나라의 영화를 즐겨 봤었다.그래서 섬나라의 언어에 매우 익숙하고, 다만 잘 알아듣지 못한다.진서준은 섬나라 사람들이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