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풍진의 몸 안에서 직접 마주했던 경이로운 광경.서로의 생사를 걸고 의지와 내공을 맞물렸던 기적적인 순간.그 모든 것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설무진은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차갑게 비웃었다."이미 저놈의 마기(魔氣)에 단단히 홀렸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북해빙백의 검끝이 움직였다.설화영의 몸을 지나 그 뒤에 있는 풍진을 정확하게 가리켰다."네가 비키지 않겠다면... 너까지 함께 베어버리는 수밖에."남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얼음과 얼음.두 사람의 검끝 주변으로 하얀 서리가 피어올랐다."...정녕, 비키지 않겠다는 말이냐."설무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분노마저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실망감이 그 안에 깔렸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가문의 누구보다 강직했고 명예를 중시하던 동생이 어째서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소년 하나를 이토록 감싸는지.설화영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이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제 책임입니다. 벌을 내리시려거든 저에게 내리십시오."내공(內功)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검을 쥔 손끝에도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그러나 오히려 눈빛과 기세만큼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한 명의 무인(武人)으로서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팽대협은 숨을 죽이고 남매의 대치를 지켜봤다.'미쳤어, 다들 미쳤어...'그의 눈에는 이 모든 상황이 거대한 부조리극처럼 보였다.적이어야 할 무림맹(武林盟)의 여협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지키고 있었다.반대로 그녀를 찾아온 같은 가문의 무사들은 자신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그 모든 긴장의 한가운데.가장 조용히 있어야 할 풍진의 내면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그는 검을 짚은 채 간신히 서 있었다.빙절천리의 한기(寒氣)가 남긴 내상(內傷)이 전신을 꿰뚫으며 끊임없이 고통을 일으켰다.하지만 의식은 육체의 고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풍진의 시선이 자신을 가로막은 하얀 등에 머물렀다.설화영.자신 때문에 친오
손목이 꺾일 듯 뒤틀렸고, 상처 입은 기맥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터져 나왔다.풍진은 이를 악물었다.막으려 들지 않았다.빙절천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받아내는 순간 끝이었다.검끝으로 느껴지는 흐름을 따라 원을 조금 더 비틀었다.아주 조금.그것으로 충분했다.정면으로 풍진을 꿰뚫어야 했던 검기의 경로가 미세하게 휘어졌다.쇄액!빙절천리가 풍진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콰아아앙!등 뒤의 사당 벽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낡은 흙벽에 사람 머리만 한 구멍이 뚫렸고, 갈라진 벽면을 따라 하얀 서리가 삽시간에 번졌다.정적이 찾아왔다.팽대협도.설화영도.심지어 검을 내지른 설무진까지.누구도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공격은 빗나갔다.풍진은 살아 있었다.그러나 절정(絶頂) 고수의 일격을 완전히 피한 대가는 작지 않았다."크윽...!"풍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입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붉은 선혈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검기가 직접 닿은 것도 아니었다.어깨를 스친 한기(寒氣)의 여파만으로 전신의 기맥(氣脈)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미 망가져 있던 기맥을 차가운 칼날 수십 개가 동시에 헤집는 듯했고, 내상(內傷) 위로 또 다른 내상이 겹쳐졌다.무릎이 꺾이려 했다.풍진은 이름 없는 검을 바닥에 짚으며 간신히 버텼다.설무진은 자신의 검끝을 내려다봤다.그리고 풍진을 바라봤다.오만하던 얼굴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피했다고...?'곧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아니. 피한 것이 아니다.'풍진은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움직인 것은 검뿐이었다.그 검으로 자신의 빙절천리를...'흘려냈다.'설무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내 빙절천리의 힘을, 저놈이... 흘려냈단 말인가!'요행(僥倖)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자신의 검법이 가진 힘의 흐름과 그 안에 존재하는 '결'을 꿰뚫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였다.힘과 힘을 부딪쳐 막은 것도 아니었다.압도적인 힘의 방향을 이치로 틀어냈다.설무진
스르릉!마침내 북해빙백(北海氷魄)이 검집을 벗어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당 안을 갈랐다.세상이 얼어붙기 시작했다.설무진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당 안에 남아 있던 수분(水分)이 일제히 얼어붙었다.등잔의 불꽃이 파르르 떨며 가장자리에 하얀 서리를 피워냈고, 팽대협의 턱수염 끝에는 어느새 작은 고드름이 매달렸다. 입을 벌릴 때마다 허연 입김이 터져 나왔으며, 공기 중에는 잘게 부서진 얼음 가루가 안개처럼 떠올랐다.북해 설씨(北海 雪氏)의 가전 절학, 빙심결(氷心訣).그것을 극성(極成)으로 익힌 절정(絶頂) 고수가 만들어내는 '영역(領域)'이었다.설무진의 검이 존재하는 공간은 더 이상 낡은 사당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혹독하게 변해 있었다.혹한의 북해(北海)가 이 작은 공간에 내려앉은 듯했다."오라버니!"설화영의 절박한 외침이 얼어붙은 공기를 갈랐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설무진이 지금 펼치려는 검은 상대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초식이 아니었다.처음부터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설가 검법에서도 손꼽히는 무자비한 살초(殺招)였다.설무진의 눈에는 이제 풍진이라는 한 명의 소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자신의 자존심을 꺾은 불경한 존재.지워버려야 할 오점(汚點).그뿐이었다.설무진의 검이 움직였다.기묘하리만큼 느렸다.검끝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은 얼핏 시간이 멈춘 듯 보였지만, 그 검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 중의 수분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기다란 궤적을 만들었다.설가검법(雪家劍法) 제7식.빙절천리(氷絕千里).검끝에서 한 줄기 서늘한 검기(劍氣)가 뻗어 나왔다.직선이었다.그러나 그 한 줄의 검기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바닥도, 공기도, 흩날리던 먼지마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목표에 닿기 전에 그곳까지 이어진 모든 것을 얼리고 부수며 전진하는 혹한의 일격.팽대협은 그 광경 앞에서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혈마수(血魔手) 갈효가 뜨거운 지옥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선 설무진은 생명의 온기조차 허락하지 않는
다가오던 두 명의 설가 무사.그리고 그들 너머에 선 설무진.풍진은 세 사람을 똑바로 바라봤다."그 여인에게는...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당신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순간 사당 안의 공기가 설무진이 내뿜는 냉기보다 더욱 차갑게 굳었다.팽대협은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눈앞의 소년은 지금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오만한 절정(絶頂) 고수, 북해빙검(北海氷劍) 설무진의 권위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었다."하..."설무진의 입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이윽고 웃음소리가 커졌다."하하하하! 빚? 관여할 일이 아니다? 네놈, 지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그 웃음에는 유쾌함이라곤 한 점도 없었다.상대를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지독한 경멸과 뼈를 깎아낼 듯한 살의(殺意)가 사당 안을 메웠다.설무진은 더 이상 무사들에게 명령하지 않았다.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우웅.순백의 검집 안에서 그의 검, 북해빙백(北海氷魄)이 낮게 울었다."화영아, 똑똑히 보거라. 저런 근본 없는 마공(魔功)의 잔재주가 우리 북해 설씨(北海 雪氏)의 정통 검법 앞에서 어찌 부서지는지를.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무진의 몸이 움직였다.검을 뽑지는 않았다.검집에 손을 얹은 채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었다.그런데 그 한 걸음과 함께 사당 안의 온기가 빠르게 사라졌다.등잔의 불꽃이 파랗게 질린 듯 흔들렸고, 설무진이 딛고 선 곳을 중심으로 낡은 마룻바닥 위에 하얀 서리가 얇게 번지기 시작했다.설화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오라버니, 안 됩니다! 그 아이는 지금...!"설무진은 듣지 않았다.그의 모든 신경은 압도적인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자신을 바라보는 풍진에게 쏠려 있었다.풍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정확히는 움직일 수 없었다.내상(內傷)을 입은 육신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고, 단전(丹田)에 살아난 불씨 역시 꺼지지 않는 것만으로 벅찬 숯불과 같았다.힘으로 맞
설화영과 희미하게 닮은 이목구비를 지녔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설화영에게 날카롭게 벼려진 냉철함이 있다면, 사내의 얼굴에는 상대를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억누르지 않은 분노가 짙게 어려 있었다.그는 사당 안을 한 차례 훑었다.탈진한 설화영.바닥에 앉은 팽대협.그리고 이제 막 죽음의 고비를 넘긴 풍진.마침내 시선이 설화영에게 멈췄다."화영아."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설화영의 심장을 꿰뚫었다."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도, 이쯤 했으면 족하지 않으냐."그 말이 떨어지자 사당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설화영이 내뿜는 서늘한 한기(寒氣)와는 결이 달랐다. 사람의 영혼까지 베어낼 듯 날카롭고 오만한 냉기(冷氣)가 좁은 사당을 짓눌렀다.설화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그녀는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당혹감이 스쳤고, 그 아래에는 차마 쉽게 거역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오라버니."거의 신음처럼 흘러나온 한마디였다.사내는 설씨(雪氏) 가문의 차기 가주이자 설화영의 친오빠, '북해빙검(北海氷劍)' 설무진(雪武進)이었다.강호의 젊은 후기지수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절정(絶頂) 고수."오라버니라..."설무진이 코웃음을 쳤다.그의 시선에서는 동생을 향한 반가움이나 걱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문의 명예에 먹칠한 죄인을 심판하듯 차갑고 경멸적인 눈길이 설화영을 훑었다."무림맹(武林盟) 임무를 핑계로 가문을 떠난 지 수개월. 연락 한 통 없더니, 고작 이런 쥐새끼들과 어울리며 가문의 영약(靈藥)과 내공(內功)을 허비하고 있었더냐. 네가 정녕 설(雪)가의 핏줄이 맞느냐."설무진의 시선이 움직였다.먼저 팽대협을 지나 풍진에게 닿았다.팽대협은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움켜쥐어지는 듯한 압박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설화영은 입술을 깨물었다.내공을 모두 소진한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오빠의 오만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이분들은
설화영은 풍진의 인사를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길을, 빌려주어 고맙소.'조금 전 들었던 말이 귓가에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심장이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내공(內功)을 모두 소진한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오랜 시간 극도로 정교하게 빙심결(氷心訣)을 운용했으니 몸이 탈진한 것도 당연했다.그러나 설화영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지금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은 탈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헛소리 마라."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이전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지는 않았다."나는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다. 너를 살린 것은 네가 혈교(血敎)를 상대할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풍진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거듭 확인하는 말이기도 했다.그럼에도 방금 전 풍진과 나누었던 기묘한 교감(交感)의 순간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의지(意志)가 맞물리고, 각자의 내공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 풍진이 길을 찾아내면 자신이 그곳을 열었고, 다시 약기가 흘러들어가 끊어진 생명의 흐름을 이어놓았다.혼자였다면 어느 쪽도 이루지 못했을 일이었다.평생 연마해온 빙심결은 고독한 무공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타인의 개입 없이 스스로를 갈고닦는 수련을 반복해왔다.그런 설화영에게 조금 전의 경험은 정반대의 감각을 남겼다.낯설 만큼 따뜻했고,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했다.설화영은 그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무림맹(武林盟) 수사관으로서의 냉철한 이성과 한 명의 무인(武人)으로서 느낀 경외감, 여기에 아직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미지의 감정까지 뒤섞여 얼음처럼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어쨌든,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구만!"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뜨린 것은 팽대협이었다.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자자, 이제 막 깨어났으니 뭐라도 좀 먹어야지! 마침 내가 아주 맛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