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호는 양혁수의 말을 듣더니 눈썹을 살짝 올렸다.“변여름이 너한테 잘 가라고 했다고?”양혁수는 옆에 서서 트렁크에 짐이 실리는 걸 지켜보다가 뒷좌석으로 향했고 변백호가 바로 그 뒤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두 팔짱을 척 끼더니 단정 지어 말했다.“그 꼬맹이, 지금 너 낚는 중이야. 내 생각엔 벌써 비행기 안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사실 양혁수도 방금까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변여름은 그 연락을 끝으로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들러붙던 변여름의 연락이 갑자기 딱 끊기니 양혁수도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졌다.변백호의 말에 양혁수는 마음이 조금 동요했으나 그래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잘 좀 챙겨줘. 우리 여름이 또 여기저기 도망 다니게 하지 말고.”변백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제 마음 꽁꽁 숨기는 것도 참 양혁수답다니까.’그래도 변혁수는 이 말을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양혁수의 체면을 모르는 척 지켜주기로 했다.그리고 오후 네 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두 사람은 공항에서 헤어졌고 양혁수는 비행기에 올랐다.퍼스트 클래스 좌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앞뒤로 천천히 지나가며 확인했지만, 변여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도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승무원이 몇 번이나 다가와 필요한 게 있는지 물었지만, 양혁수는 건성으로 넘겨버렸다.눈을 감아도 마음은 불편했고 딱히 뭘 하기도 귀찮아 그냥 대충 시간이나 보내려 했다.그때, 바로 옆자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유창한 스페인어로 식사를 주문하고, 이어 샤워 예약까지 잡는 목소리에 양혁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가림막을 내리고 상대와 시선을 마주했다.이 목소리의 주인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변여름이었다.변여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고 당연하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웃었다.양혁수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변여름을 몇 번 힐끔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