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은 천천히 양씨 저택을 떠났다.반우희는 양시연의 옆에 찰싹 붙어 몰래 물었다.“언니, 변백호 씨가 정말 언니 남자 친구 아니죠?”양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아니에요.”반우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시연 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아무나 만나겠어?’‘이제 안심이야.’반우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편히 눈을 감았다.그 모습에 양시연도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고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때, 차량이 멈춰 섰다.승주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익숙하게 손님을 맞았다.양시연은 경고음이 귓가에 울렸다.이어 승주가 아부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볼일 마치셨어요?”“그래.”연정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양시연은 바로 눈을 흘겼다.‘연정훈이 왜 갑자기 애들 장단에 맞춰주고 난리야?’‘오늘 할 일 없어?’승주는 미리 양시연의 옆자리를 비워두고 연정훈을 기다리고 있었다.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오고 양시연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작은 재스민 꽃이 연정훈의 어깨에서 톡 떨어지는 게 보이고 연정훈에게서 좋은 향이 느껴졌다.연정훈의 차량은 밖에 세워져 있었는데 아마 다른 일을 처리하고 대문 앞에서 기다릴 때 재스민이 어깨 위로 떨어진 것 같았다.차 문이 닫히고 차 안 가득 향이 풍겼다.반우희는 코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향이 엄청 좋네요.”양시연도 눈을 감고 몰래 향을 느꼈다.향이 오래 지속될수록 연정훈의 존재감은 커졌다.재스민 향은 연정훈에게서 비롯되었고 자꾸 향을 느낄수록 왠지 연정훈의 품에 안겨 향을 맡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향을 모른 척 외면했다.예전 동네 근처에 오자 재스민 향은 줄어들고 치자나무 향이 물씬 풍겼다.여름이 오면 동네는 치자나무의 향기로 물들었다.그러자 양시연은 외할머니가 치자나무를 참 좋아했던 게 떠올랐다. 치자나무 꽃을 따서 양시연의 머리에 꽂아주기도 했다.외할머니와의 추억에 양시연은 코끝이 시큰거렸다.외할머니가 떠난 것도 벌써 몇 해 전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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