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371 - Chapter 1380

1438 Chapters

제1371화

성유리는 남우미의 처지를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화가 치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하지만 그 외에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박한빈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도와주고 싶어?”갑작스러운 물음에 마음을 들킨 성유리는 침묵하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도와주고는 싶은데... 아무래도 그건 남의 집 일이잖아요.”“도와주고 싶으면 그냥 도와줘.”박한빈의 말은 단순하고 담백했기에 성유리는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으세요?”“지금 남우미 씨 몸 상태는 내가 바꿀 수 없지.”박한빈이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죽기 전에 아이한테 뭔가 보장해 주고 싶다면 그건 어렵지 않아.”“그럼... 우미한테 있는 자산을 다른 형식으로 바꾸려고요?”“응.”성유리는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근데 제가 물어봤거든요. 부모님 돌아가신 뒤로 모든 자산을 백지환 씨가 대신 관리하고 있어서 사실상 손에 자기 손에 있는 돈은 하나도 없대요.”곧 박한빈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더 쉽지.”그 말에 성유리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고 표정엔 혼란스러움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그 순간 박한빈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귓불을 살짝 잡았다.그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먹은 거... 다 토하게 만들면 되잖아.”...“박 대표님, 안녕하세요! 정말 반갑습니다!”이날은 백지환에게 있어 생애 처음으로 참석하는 공식적인 대규모 연회였다.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인사들이었고 그중 몇몇은 뉴스에서나 보던 이들이었다.처음 박한빈에게 초청장을 받았을 때, 그는 가슴이 벅찼다.이건 명백히 인맥과 자원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고 남우미를 이용했던 일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다.무엇보다 성유리와 남우미의 친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던 점이 놀라웠다.그리고 이 연회에 초대받은 진짜 이유는 전에 이사를 결정한 자신의 용기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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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2화

남우미는 이틀 전 병원에서 퇴원했다.지금 그녀의 몸 상태로는 어디에 있든 사실상 연명 수준이었다.그럼에도 남우미는 아직까지 남현호에게 자신의 병세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날 밤, 백지환이 돌아왔을 때도 그의 몸에선 여느 때처럼 진한 술 냄새가 풍겼다.남우미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하지만 뜻밖이었던 건, 이날의 백지환은 평소처럼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고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남우미를 와락 껴안은 것이다.너무 오랜만의 포옹이라 남우미는 순간 낯설기까지 했다.그 포옹을 통해서야 그녀는 문득 희미하게 떠올렸다.예전에 두 사람에게도 그런 친밀한 시절이 있었단 걸.그땐 남우미의 부모님도 살아 계셨고 비록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었다.백지환이 그녀 곁에 나타난 것도 그쯤이었다.사실 어머니는 그때 미리 경고를 해줬었다.그의 배경이 자신들과는 너무 다르다며 혹시라도 마음속에 다른 계산이 있을지 모른다면서 말이다.그렇지만 사랑에 빠졌던 남우미는 그 어떤 충고도 들리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세상 물질 따위로 재단하고 싶지 않았다.돌아보면 남우미는 너무 순진했다.가족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왔기에 세상의 악의를 느껴본 적도 없었다.그래서 늘 세상은 온통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그 믿음은 남우미가 서서히 ‘온실’에서 끌려 나오면서 산산이 부서졌다.그녀의 사랑은 수많은 변절과 이 결혼 속에서 바닥까지 소진되었고 심지어 체력까지 조금씩 고갈되어 갔다.이제는 남현호 외에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조차 가물가물했다.그리고 오늘 밤, 백지환이 자신을 안은 그 순간에야 비로소 떠올렸다.자신도 한때는 사랑받았던 사람이었단 걸.“우미야, 정말 잘했어.”곧 백지환이 먼저 말했다.그 말에 남우미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지만 무슨 의도인지는 알아채지 못했다.“앞으로도 사모님이랑 잘 지내야 해. 알겠지?”백지환의 두 번째 말이 들리고 나서야 남우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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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3화

남우미가 예상치 못한 건, 자신이 식사 자리를 제안하자 성유리가 의외로 아주 흔쾌히 수락했다는 사실이었다.“사실 억지로 허락할 필요는 없어.”남우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부담스러우면 모임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니까.”그러자 성유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우리 아이들도 지금 같은 반이잖아. 서로 잘 지내고 있다면서? 이런 기회에 조금 더 가까워지면 좋은 일이지.”그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따뜻하고 온화했다.남우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고맙긴.”성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마침 내일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현호도 같이 데려올까?”“그럼 부탁할게.”“응.”남우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이번은 성유리가 처음으로 백지환의 집에 발을 들이는 날이었다.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박한빈이 전에 했던 말이었다.이 집 안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말.성유리는 그런 이야기를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법원 경매에 부쳐질 정도로 헐값에 나온 집이라면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은 어쩔 수 없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왜 그래?”문득, 하늘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성유리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하늘이의 손을 꽉 쥐고 있었던 걸 깨달았다.“아니야.”그녀는 급히 대답하며 손을 풀고 박한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는 성유리의 반응을 다 보고 있었는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성유리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일부러 그러신 거예요?”“뭐가?”“이 집 얘기요. 당신이...”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지환이 모습을 드러냈다.“박 대표님, 사모님! 오신 걸 환영합니다!”박한빈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그러자 백지환은 남현호를 앞으로 끌어내며 말했다.“현호야, 인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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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4화

결국 저녁 식사는 박한빈이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했다.함께 배달된 건 고급스러운 포장 도시락과 와인 두 병이었다.백지환은 처음엔 극도로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그러나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그의 태도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처음의 겸손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한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무조건 잘 해낼 겁니다!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줄 거예요! 제가 아무리 시골 출신이라도 저 백지환, 충분히 세상 꼭대기에 설 수 있다는 걸요!”박한빈은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옆에 있는 남우미는 고개를 돌린 채, 애써 백지환의 시선을 피했다.남현호는 그런 백지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엔 노골적인 혐오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곁에 하늘이가 있다는 걸 떠올린 그는 곧 시선을 내려 식사에 다시 집중하는 척했다.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이다.성노을은 성유리 옆에 앉아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백지환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엄마, 저 아저씨 좀 미친 것 같아.”아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또렷하게 울렸다.백지환은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현호는 곧장 고개를 돌려 성노을을 바라보았다.성유리는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우유컵을 성노을의 입에 밀어 넣으며 남현호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상황을 가볍게 넘기고 싶었다.하지만 뜻밖에도 남현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그 순간, 성유리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바로 그때, 백지환이 비틀거리며 남현호 쪽으로 다가왔다.“그리고 너!”그는 버럭 외치며 남현호의 어깨를 퍽 내리쳤다.“정신 좀 차려! 지금 내가 이렇게 발버둥 치는 거, 전부 너 때문에 하는 거야. 알아? 그런데 너는 왜 맨날 죽상을 하고 앉아 있어? 내가 뭐 그렇게 큰 죄라도 졌냐? *발, 난 네 아빠야!”남현호는 말없이 입술을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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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5화

발등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져오자 백지환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고개를 숙이니 마침 성노을이 허리를 굽혀 자신의 보온병을 집어 드는 걸 발견했다.그건 지난번 마트에서 노을이가 직접 고른 것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 무늬에 보온력도 뛰어난 제품이었다.그만큼 무게도 꽤 있었다.그리고 지금 백지환의 발엔 얇은 실내화만 신겨져 있었다.그러니 그 무게감으로 정통으로 찍힌 건 마치 맨발 위에 망치가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죄송해요, 아저씨.”성노을은 곧장 사과했다.몸집은 아직 키가 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동그란 눈으로 백지환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순진하고 동시에 약간은 노림수가 담긴 듯한 느낌도 들었다.백지환은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어쩌다 말을 꺼내려다 결국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괜찮아.”“노을아, 가자.”곧 하늘이가 빠르게 동생을 불렀다.그녀는 곧장 성노을의 손을 이끌었고 마지막엔 뒤도 안 돌아보고 백지환의 집을 나섰다.성유리는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직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그러다 현관문을 벗어나자마자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박한빈의 질문에 성유리는 대답 대신, 조용히 그의 팔을 껴안았다.앞서가던 하늘이는 성노을의 손을 잡은 채 걷고 있었고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이내 성유리는 웃으며 물었다.“아까 현호랑은 재미있게 놀았어?”“응. 현호 방에 레고가 엄청 많았어.”하늘이는 무척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성노을 역시 늘 그렇듯 누나의 말을 따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그럼 다음에 또 놀러 가고 싶어?”“그건 싫어.”하늘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그러자 성노을도 역시 깊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왜?”“남현호 아빠가 싫어.”하늘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걔 아빠가 너무 싫어.”“맞아. 나도 싫어.”노을이도 같은 어조로 또박또박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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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6화

그 후 한동안, 남현호는 백지환을 거의 보지 못했다.듣자 하니 새로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온 신경을 그쪽에 쏟고 있다고 했다.그건 오히려 남현호에겐 좋은 일이었다.애초에 그는 백지환을 집에서 보고 싶지도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디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백지환이 자기 친아버지라는 사실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도 그에겐 아무런 설득력도 의미도 없었다.남현호가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단 하나, 몸에서 올라오는 거부감이었다.백지환은 아버지란 이름을 달 자격조차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심지어 종종 상상하곤 했다.백지환이 오늘 출근길에 사고라도 나면 어떨까?죽어버리면 오히려 속이 시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물론,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누구에게라도 이런 말을 꺼냈다간 당연히 다들 충격받고 무서워할 테니까.심지어는 성하늘조차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쓰러진 건 아버지가 아닌 엄마였다.그날은 평범한 주말이었다.그들은 평소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우미는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전혀 깨어나지 않았다.남현호는 연거푸 남우미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결국 떨리는 손으로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눌러 구급차를 호출했다.곧 의료진들이 달려와 분주히 응급조치했고 들것에 실어 응급차 안으로 들어갔다.붉은 비상등이 켜진 순간, 그 붉은 불빛이 마치 핏물처럼 남현호의 눈을 물들였다.그리고 그제야 남현호는 백지환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손이 떨려 제대로 번호도 누르기 힘들었지만 겨우겨우 걸었고 벨이 울린 뒤 연결은 되었고 그 너머에서 들려온 건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목소리는 방금 막 잠에서 깬 듯 쉬어 있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물었다.“누구시죠?”“백지환 씨 좀 바꿔주세요.”남현호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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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7화

“지금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니 이후에도 계속 관찰이 필요합니다.”“왜요? 도대체 엄마는 어떻게 된 거예요?”남현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져 물었다.의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성유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보호자세요?”“저는 환자 친구입니다. 우미는...”성유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그러자 의사는 더 묻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한 번 저었다.그 단 한 번의 고갯짓만으로도 성유리는 모든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남현호도 그녀의 표정을 읽고는 다급히 물었다.“아줌마, 저희 엄마 진짜 어떻게 된 거예요? 저혈당이죠? 전에 쓰러졌을 때도 저혈당이라고 했어요. 이번에도 똑같은 거죠? 그렇죠?”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가 조용히 남현호의 손을 잡았다.따뜻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접촉에 남현호의 얼굴에서 표정이 스르륵 사라졌다.“앞으로 엄마 옆에 자주 있어 줘. 될수록 이면 오래.”성유리가 조심스레 말하자 남현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두 눈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고 성유리의 눈빛에서 거짓의 조각 하나라도 찾으려 애썼다.하지만 없었다.거기엔 그저 연민과 슬픔만이 담겨 있었다.남현호는 그 시선이 의미하는 걸 알고 있었다.‘이제 나는 엄마를 잃게 되겠구나.’남우미는 병실로 옮겨졌다.창백한 얼굴, 얇은 살결 위로 꽂힌 주삿바늘.그 모습은 너무도 연약해 함부로 손조차 대지 못할 것 같았다.남현호는 그런 남우미의 침대 곁에 앉았다.작은 몸은 꼿꼿이 세워져 있었고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됐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성유리는 백지환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하지만 아직 전화를 걸기도 전, 남현호가 먼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줌마, 굳이 연락 안 하셔도 돼요. 아빠는 아마 안 올 거예요.”그 말에 성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아까 전에도 전화했었어요. 그런데... 아빠 애인이 받았어요.”남현호는 고개를 숙인 채 담담히 말했지만 성유리는 크게 당황했다.‘애인이라는 말이 겨우 열한 살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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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8화

남우미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의식을 되찾았고 남현호는 그 시간 내내 그녀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다.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아이의 입술은 하얗게 바래 있었고 갈라진 자국까지 생겨났다.그러다 남우미가 눈을 뜨는 순간, 남현호의 두 눈에 생기가 돌더니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엄마 지금 괜찮아.”남우미는 남현호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챘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괜찮다니까.”하지만 남현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말없이 똑바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런 아이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남우미는 모든 걸 알아챘다.“다 알아버린 거니?”남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남우미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입술을 떼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그러자 남현호가 먼저 말했다.“엄마, 나도 같이 가면 안 돼?”그 한마디에 남우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리고 이어진 격한 기침 소리에 남현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이가 의사를 부르려 병실 문 쪽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남우미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그녀는 온몸을 떨며 이를 악문 채 말했다.“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그런 생각 하지 마. 알겠어?”남현호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남우미는 아이의 팔을 힘껏 붙들고는 소리쳤다.“넌 아직 너무 어려! 같이 가기는 어딜 간다는 거야? 너는 살아야 해. 꼭 살아남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야 해. 알겠니?”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너무 강하게 힘을 주는 바람에 팔등에 꽂힌 수액 줄에서 혈관이 역류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남우미는 오직 아들을 바라보며 살아남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애쓰고 있었다.남현호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이 세상에 없어도 나... 살아남을게.”그가 막 말을 끝내려던 순간 병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종일 연락도 없었던 백지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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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9화

남우미 또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에는 몇 가지의 애원이 담겨 있었다.남현호는 당연히 남우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그저 백지환과 어떤 충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었다.그래서 남현호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남우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곧 백지환도 아주 기분이 좋은 듯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박 대표님 집에 가서 잘해. 알겠어?”남현호는 대답하지 않고 살짝 몸을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다.남우미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에야 그는 돌아섰다.운전기사는 이미 아래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기사는 남현호를 보자마자 곧장 차에서 내려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었다.남현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그 전에 성유리는 백지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그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기에 사실 거절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남우미와 오늘의 남현호의 안타까운 모습을 떠올리자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백지환의 운전기사가 차를 멈춘 그곳에는 이미 성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남현호를 본 성유리의 표정에 곧 환한 웃음이 번졌다.“아줌마, 안녕하세요.”남현호도 금방 인사를 건넸고 목소리는 얌전하고 순했다.성유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어서 와. 점심 먹었니?”남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배 안 고파서 안 먹었어요.”“그럼 디저트라도 먹자. 하늘이도 있으니까 같이 먹을 수 있을 거야.”‘하늘이’라는 이름을 듣자 남현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고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성유리는 이내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같은 시각, 하늘이는 식탁에 앉아 디저트를 먹으면서 성노을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었다.똑똑한 성노을은 금방 배웠지만 반복하는 것을 싫어해 한 번만 외우고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네가 다시 외우지 않으면 기억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하늘이는 화가 난 듯 물었고 성노을은 케이크만 파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시 말해 봐.”하늘이가 재촉했다.“다 기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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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0화

“너 열이 있어. 일어나서 약 좀 먹자.”곧 성유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남현호는 아무 대답 없이 묵묵히 그녀가 건네는 약을 받았다.“아프니?”성유리의 물음에 남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배고프진 않아? 내가 죽 좀 끓였는데 조금 먹을래?”남현호는 고개를 들어 성유리와 잠시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정신 좀 차리고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말을 마친 성유리는 베개를 하나 가져와 남현호의 등 뒤에 받쳐준 뒤, 방을 나갔다.남현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심코 눈을 감았고 이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른 눈을 떴다.잠시 후 성유리가 죽을 들고 돌아왔다.“혼자 먹을 수 있어? 아니면 내가 먹여줄까?”“혼자 먹을게요.”“알았어.”성유리는 작은 테이블을 놓고 죽을 그 앞에 두었다.사실 남현호는 별로 입맛이 없었지만 성유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숟가락을 들고 천천히 죽을 먹기 시작했다.죽은 예상외로 너무 맛있었다.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고 부드럽게 잘 익어 입에 살살 녹았다.몇 숟갈 먹고 난 뒤, 남현호가 무언가 생각난 듯 성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엄마는요?”“아침에 내가 전화했어. 상태는 괜찮은데 아직 병원에 좀 더 있어야 한대. 너 열 다 내리면 데려가 줄게.”“그래도 돼요?”“물론이지.”성유리가 대답했다.“하지만 열이 다 내린 뒤에야 가능해.”“저 이제 괜찮아요.”성유리는 남현호의 이마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저었다.“안 돼. 아직 열이 내려가지 않았어.”단호한 성유리의 태도에 남현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약 효과가 나타나면 괜찮아질 거니까 걱정 마. 네가 다 나으면 꼭 엄마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할게.”그제야 남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성유리는 옆에 앉아 그가 음식을 다 먹고 반 컵의 물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먼저 쉬어. 나중에 다시 체온 재러 올게.”남현호는 고개를 또 끄덕였다.그리고 성유리가 아이가 다시 누운 모습을 본 뒤 천천히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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