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421 - Chapter 1430

1436 Chapters

제1421화

한편, 성유리와 셀레나는 무대극을 관람하고 있었다.사실 성유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셀레나의 권유 덕분이었다.이 섬의 주인은 성유리와 같은 금성 사람이었지만 남편이 라온시에 있어 거주지를 옮긴 상태였다.그리고 이 섬 또한 그녀의 남편 소유지였다.남편은 아내가 연극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배우들을 초청해 이 섬에서 공연을 열어준 것이었다.사실 성유리는 원래부터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이라 마음속으로 무척 반가웠다.다만 그 공연은 원래 국내에서 순회하지 않았기에 남편인 박한빈에게 괜히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을 뿐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이곳에서 공연을 보게 됐다.비록 개인 극장이었지만 시설은 정교하고 완벽했으며 시야도 훌륭했고 배우들의 열연은 더욱 몰입감을 더했다.성유리는 하늘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누구보다 집중해서 감상하고 있었다.아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끝까지 보더니 막이 내린 후에는 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들과 악수를 나누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감사합니다.”성유리가 극장의 주인에게 인사했다.“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지녔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그녀와 비교하면 셀레나는 훨씬 활기차 보였다.“아, 내가 말을 못 해줬네. 이분은 사실 솜사탕이야. 내가 전에도 언급했던 만화가, 알지?”“알고 있어.”여자는 대답하며 다시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전에 뵌 적이 있어요.”“네? 저를요?”성유리가 놀라 물었다.“네. 사인회에서요. 그때는 마스크를 쓰고 계셨지만 인상이 깊어서 잊지 않았습니다.”“죄송해요. 저는 전혀 몰랐네요.”성유리가 말을 잇기도 전에 여자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끊었다.“그땐 제가 아직 결혼하기 전이라 단지 아르바이트로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에요.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아, 그렇군요.”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공연도 끝났으니 이제 내려가시죠.”곧 여자가 말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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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2화

루나가 나타나자 스티븐은 갑자기 에릭을 끌고 나가 버렸고 순식간에 거실에는 박한빈과 루나만 남게 되었다.하지만 이런 서투른 계략이야 뻔히 보이는 박한빈은 지독한 피로감과 염증만 느낄 뿐이었다.만약 에릭의 체면이 아니었다면 이미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른다.루나는 그의 표정 속에 담긴 불쾌함을 읽은 듯 먼저 입을 열었다.“결혼하셨다고 들었어요.”“네.”“그럼 아내분은요? 왜 함께 오지 않으셨어요?”아내 성유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박한빈의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다.애초에 이곳에 그녀를 데리고 온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생각만 짙어졌고 차라리 아무도 자신들을 모르는 곳을 택했다면 훨씬 조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후회막심했다.박한빈은 더 대꾸할 마음조차 없었지만 루나는 그의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죄송합니다. 제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같네요.”그제야 박한빈은 그녀를 흘끗 바라봤다.“죄송하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루나가 황급히 다가와 서둘러 이런 말을 덧붙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전 남의 가정을 깨뜨릴 생각 없습니다. 저도 알아요. 아버지는 저를 그저 도구처럼 대표님 곁에 앉히려는 것뿐이라는 걸요. 대표님이 국내에서 운영하시는 기업에 관심이 많으시거든요.”박한빈은 비웃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그래요?”“저 위로 언니가 넷이나 있어요.”루나는 박한빈의 표정을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사실 언니들도 다 똑같이 팔렸어요. 아내든, 애인이든... 아버지는 상관하지 않으셨죠.”“제 바로 위에 있던 언니는 시집간 사람이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셨죠. 그 남자가 언니를 맞이하면서 섬 하나를 통째로 내놓았으니까요.”말하는 루나의 눈빛과 목소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저도 그렇게 팔려 가긴 싫어요.”그러나 박한빈의 인내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는 그녀를 외면한 채 무심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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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3화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성노을은 차분하게 되물었다.“이건 원래 아빠가 정한 거잖아? 난 아빠가 한 약속대로 한 건데 뭐가 잘못됐어?”그 말에 박한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빠, 지금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데?”곧 성노을이 다시 물었다.솔직히 말해 오늘 성노을이 한 말은 지난 한 달 동안 그가 한 말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았다. 예전엔 말수가 너무 적어 걱정한 나머지 성유리와 함께 의사에게 데려간 적도 있었다.하지만 의사는 문제 될 게 없다고 했고 단지 말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일 뿐이라고 안심시켜 줬다.그런데 지금 박한빈을 바라보는 눈빛은 오히려 또래보다 날카롭고 집요했다.‘확실히 아픈 아이는 아니었네.’“난 불안한 거 없어.”박한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그 아줌마랑 무슨 얘기 했어?”“아무 얘기도 안 했어. 계속 아빠한테 말을 걸었을 뿐이지.”“뭐라고 했는데?”“잘 안 들었어.”“둘밖에 없었는데 안 들었다고?”박한빈은 아주 잠깐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성노을은 대꾸하지 않고 그저 박한빈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오해하지 마.”결국, 박한빈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말만 내뱉었다.“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오늘 처음 본 사이야.”“처음 봤는데 손은 왜 잡아?”“잡은 게 아니야. 그 여자가 내 손을 놓지 않은 거지.”박한빈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성노을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이 담겨 있었다.잠시 고민하던 박한빈은 결국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당부했다.“이 일, 엄마한텐 말하지 마.”“왜?”“엄마가 괜히 오해할 수 있잖아.”“아빠는 떳떳하다면서? 도대체 뭘 걱정하는데?”성노을의 질문에 박한빈은 더 이상 맞받아칠 말을 찾지 못했다.바로 그때 제이크가 다가왔다.그는 성노을을 안고 있는 박한빈을 보더니 잠시 멈칫하더니 비웃듯 말했다.“쪽팔리지도 않아?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아빠한테 안겨 다녀?”성노을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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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4화

에릭의 말에 박한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너는 스티븐 씨 성격 알면서 왜 나를 거기로 데리고 간 거야?”에릭은 싱긋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박한빈은 더 신경 쓰지 않고 성노을을 안은 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럼 오늘 밤엔 뭐 할 거야?”에릭이 물었다.“네 와이프도 안 왔잖아. 그럼 우리...”그 순간, 박한빈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에릭을 가만히 쳐다봤다.“셀레나 씨가 말한 그 섬, 어디야?”에릭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거기 가고 싶어?”“응.”“이유가 뭔데? 오랜만에 자유의 몸인데 차라리 우리 둘이...”“싫어.”박한빈이 단호하게 에릭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왜?”“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유리가 없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그 말에 에릭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사실 박한빈이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약간 짜증이 났다.‘그러면 출장은 어떻게 다녔대? 잠 안 잤어?’에릭은 속으로 박한빈을 욕하면서도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난 잘 몰라. 그 섬은 알리 친구 거야.”그 대답에 박한빈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셀레나 씨 친구라며? 도대체 남자야, 여자야?”“섬 주인은 알리 친구고 초대한 건 알리 친구의 아내야. 들어보니까 같은 금성 사람이라던데?”...그 시각, 해변.흰색 제복을 입은 여자가 성유리와 일행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솔직히 섬 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티가 많이 났다.비록 임시로 세운 천막이었지만 사방에 드리운 흰 망사 커튼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고 옆에 걸린 투명한 수정들은 바람을 타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하늘이는 처음엔 옆에서 코코넛 주스를 마시고 있었지만 이내 바닥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그리고 성유리가 말하기도 전에 설윤지가 재빨리 사람을 불러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감사합니다.”곧 성유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설윤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사람들은 언제쯤 오는 거죠?”셀레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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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5화

하지만 셀레나는 성유리의 팔을 붙잡았다.“이거 윤지가 특별히 준비한 공연인데...”“저는 관심 없어요.”“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그냥 구경만 하자는 거예요.”셀레나가 웃으며 불안해하는 성유리를 달랬다.“맞아요.”늘 차갑던 설윤지의 눈빛도 이 순간만큼은 무대 위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성유리가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자 셀레나는 아예 노골적으로 말했다.“괜히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저희 남편들이 가는 파티에선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마 훨씬 더 심할 거예요.”“네. 그렇죠.”옆에 있던 설윤지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아니라 전 그냥 이런 데 흥미가 없어서...”성유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남자가 다가왔다.똑같이 검은 반바지만 걸친 그는 잔을 하나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누나, 노래 듣기 싫으면 춤은 어때요?”남자는 말하며 성유리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곧 뜨거운 남자의 체온과 함께 복근이 성유리의 눈앞까지 다가왔다.성유리가 물러서려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성유리!”오랫동안 박한빈을 알아왔지만 성유리는 그가 이렇게 격앙된 목소리를 내는 건 처음 들었다. 그래서일까, 깜짝 놀라 손이 덜덜 떨렸고 들고 있던 음료도 남자의 몸에 고스란히 쏟아버렸다.그녀는 반사적으로 휴지를 꺼내 닦아주려 했으나 손을 뻗기도 전에 박한빈에게 거칠게 붙잡혔고 곧이어 몸 전체가 힘껏 끌어올려졌다.박한빈의 가슴은 거칠게 오르내렸고 안색은 잿빛처럼 어두웠다.“아니, 이건...”성유리가 급히 해명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시선을 남자들에게로 돌린 상태였다.거기에는 남자들이 열 명 가까이 서 있었다.피부색도, 머리 색도 제각각이지만 누군가는 기타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술을 만들고 있었다.박한빈이 이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이 사람들과 성유리, 그리고 셀레나가 오후 내내 함께 있었다는 걸 생각만 해도 박한빈은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이내 그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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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6화

하늘이는 반쯤 잠든 채로 누군가에게 업혀 배에 올랐다.에릭은 원래 이번 기회에 박한빈을 놀려주려 했지만 그의 안색을 확인하고는 입을 꾹 닫았다.그리고 시선을 성유리에게 돌리더니 그녀를 살짝 훑어봤다.그 눈빛은 뜻밖에도 일종의 애정 같은 게 담겨 있었다.마치 성유리가 무슨 일을 해낸 것처럼, 혹은 그녀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더 높아진 듯한 눈빛이었다하지만 성유리로서는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애초에 셀레나와 설윤지가 이런 일을 꾸밀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한 명은 늘 거만해 보였고 다른 한 명은 차갑게만 굴었으니 이런 장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사실 성유리는 틈만 나면 슬쩍 빠져나갈 구실을 찾고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박한빈이 나타나 딱 그 장면을 보고 만 것이다.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녀가 직접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럼에도 박한빈은 불같이 화를 냈으니 성유리로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그러나 성유리는 그저 그의 손에 이끌려 배에 올랐을 뿐이었지만 막상 배에 오르고 나니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피곤했던 탓인지, 하늘이는 이미 깊게 잠이 들어 있었고 살짝 심심해진 성유리가 결국 에릭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오늘 밤은 따로 일정 없어요?”“있죠.”에릭은 한 번 박한빈을 흘깃 본 뒤, 의외로 기분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성유리와 잡담을 이어갔다.“로얀이 성유리 씨를 찾겠다고 하고 알리는 자기 아내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저도 그냥 같이 온 겁니다.”성유리는 에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기 파티는 어떤 분위기인지...”“어떤 파티 말입니까?”“음... 남편이 저더러 가지 말라고 하던 그 파티요.”그 말에 에릭의 입꼬리가 한층 더 올라갔다.“그거라면...”에릭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박한빈은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더 이상의 말은 아끼겠습니다. 부부 사이를 틀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성유리도 더 묻지는 않았고 순간, 선실 안은 고요해졌다.에릭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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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7화

“어쩌면 재밌을지도.”알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정말로 나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그는 말을 잇다가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마치 그런 장면을 상상이라도 한 듯이.그리고 고개를 돌려 에릭을 바라보며 물었다.“형도 예전에 그런 사람 있었잖아? 사기꾼인 줄 알면서도... 그래도 꼭 결혼하겠다고 고집부리던 그런 여자 말이야.”알리의 말에 에릭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웃어넘겼다.“그랬나? 난 벌써 잊었어.”...돌아오는 길 내내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날이 막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겨우 별장에 도착했다.성유리는 배 위에서 이미 곯아떨어질 뻔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억지로 눈을 뜨고 하늘이를 안아 내렸다.그리고 하늘이 역시 반쯤 꿈속에 빠져 있었다.곧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간 성유리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박한빈이 방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자고 있었기에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그는 밤새 억눌린 분노로 머리가 여전히 욱신거리며 아팠다.생각할수록 그때 한 발길질이 오히려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남자를 바닷물에 처박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줬어야 했지만 성유리가 막아섰다.박한빈은 속으로 성유리가 돌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을 달래려 들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누구보다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박한빈은 침대 곁에 서서 당장이라도 성유리를 깨우고 싶었다.그러나 고요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손은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다.결국 박한빈은 이를 악문 채 제자리에 서서 성유리를 노려볼 뿐이었다.성유리는 잠결에도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에 몸이 움찔했다.숲속에서 포식자의 시선에 노출된 듯한 감각에 눈을 뜨자 눈앞에 보이는 건 박한빈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악!”깜짝 놀란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가 먼저 묻자 박한빈은 코웃음을 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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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8화

“아니면 혹시 당신이 하면 괜찮고 제가 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성유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아니야.”박한빈은 곧장 부정했고 그녀를 한 번 바라본 뒤에야 입을 열었다.“나도 이제 그런 데 안 가. 그리고 널 막으려는 게 아니야. 다만... 그런 자리는 너무 위험하잖아. 오늘 만약 네 술잔에 뭔가를 넣었다면 어떡할 거야? 그걸 네가 막아낼 수 있었을 것 같아?”박한빈은 최대한 목소리를 차분히 낮추려 했지만 내적의 화는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그의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박한빈은 자신의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며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런데 그런 위험은... 당신한테도 똑같이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박한빈은 말문이 막혔다.더 뼈아픈 건, 정말로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박한빈이 이를 악물고 숨만 몰아쉬는 걸 보자 성유리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됐어요. 원래 저도 그런 데 관심 없었잖아요. 게다가 그때도 그런 상황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몰랐다고요. 미리 알았더라면 연극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왔죠.”성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솔직히 그 사람들 생김새도 별로였어요. 정말 한빈 씨만큼 잘생기진 않았어요.”그 말에 박한빈의 잔뜩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지만 곧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잘생긴 거 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그게 제일 눈에 띄잖아요.”성유리는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게다가 제가 그 사람들에 대해 뭘 더 알겠어요? 첫인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건 오직 외모뿐이죠.”박한빈은 입을 꾹 다물었다.사실 성유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그녀 눈에 여전히 자신이 ‘잘생긴 사람’이라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른 남자들과 나란히 비교된다는 게 못내 불편했다.그러는 사이 성유리는 눈물이 맺힐 만큼 졸음에 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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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9화

박한빈은 손으로 성유리의 허리를 감쌌고 그렇게 입맞춤은 더욱 격해졌다.별장의 방은 탁 트인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앞에는 끝없이 이어진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막 동이 틀 무렵,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햇살이 구름을 뚫고 흘러내렸다.그 빛이 성유리의 몸 위로 아주 뜨겁게 스며들었다.그녀의 몸은 이미 반쯤 발코니 밖으로 기울어 있었다.여긴 사적인 해변이라 누구도 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저절로 긴장되어 박한빈의 팔을 꽉 붙잡았다.어느덧 손톱이 파고들어 그의 팔뚝에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이제 그 정도 고통은 박한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오히려 성유리는 그가 그런 자극에 더 흥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피가 살짝 나자 박한빈의 행동은 더 거칠어졌고 성유리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느낌을 받았다.“조금만 살살...”평소와 다른 쉰 목소리가 성유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 말에 박한빈이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허리에 감긴 손은 더 강하게 조여왔다.성유리는 파도 속에 던져진 듯 숨조차 제대로 고르기 힘들었다.발끝은 저절로 긴장되고 손으로 박한빈의 가슴을 마구 밀쳐댔다.“박한빈 씨!”그제야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성유리를 끌어안고 다시 방안으로 데려왔다.아무리 사적인 공간이라지만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고 했다.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박한빈은 커튼을 단단히 닫았다.성유리는 이제야 끝났구나 싶었지만 이내 박한빈은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눌렀다.저항하려는 순간, 그는 곧바로 다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그 후로 바깥에서 성노을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성유리는 대답할 겨를조차 없었다.박한빈이 아주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끝내 모든 것이 지나갔을 때, 박한빈은 성유리를 눕힌 뒤에 직접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솔직히 성유리는 눈을 뜨기도 버거웠다.그녀가 힘겹게 일어나자 이불이 흘러내렸고 드러난 피부 위에는 수없이 남겨진 흔적들이 뚜렷했다.바로 그때, 성노을이 방으로 들어왔고 박한빈은 황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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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0화

“여자?”성유리는 아이에게 물으며 천천히 박한빈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러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박한빈은 성노을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성노을은 억울하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박한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아이를 내던지듯 바깥으로 밀어내고는 문까지 닫아버렸다.성유리는 손에 쥔 그릇을 옆에 내려놓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러자 박한빈은 곧장 어제 스티븐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그건 다 오해야. 나랑 그 여자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그는 말하면서 성유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마치 조금이라도 놓치면 그녀가 자신을 믿지 않을까 두려운 듯.성유리는 잠시 박한빈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은근히 인기도 많은 것 같네요.”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무언가 해명하려는 듯 입을 뻥끗거렸지만 성유리가 손을 내저었다.“됐어요. 가서 노을이한테 잘 설명해줘요. 전 좀 자야겠으니까.”그 말에 박한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그런데 넌 화도 안 나?”“네?”“노을이야 저렇게 예민하게 굴 정도인데... 넌 아무렇지도 않냐고.”성유리는 눈을 깜빡였다.“왜요? 전 당신 믿어요. 그게 잘못된 거예요?”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박한빈은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만약 성유리가 자기를 다그치며 끝까지 증거를 요구했다면 오히려 뭐라도 붙잡을 구석이 있었을 텐데.그녀가 이렇게 쉽게 믿어버리니 오히려 더 낯설고 불안했다.성유리는 박한빈을 한 번 흘겨보다가 느닷없이 이런 제안을 했다.“그럼 이렇게 해요. 오늘 저녁에 저희 같이 가서 직접 다 만나고 와요. 그리고 당신이 제 앞에서 확실히 증명하면 되잖아요.”“됐어.”박한빈은 곧장 딱 잘라 대답했다.“괜히 불필요한 일 만들고 싶지 않아.”“오? 그럼 혹시... 양심에 걸리는 게 있다는 말인가요?”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리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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