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431 - Chapter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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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1화

다섯 번째 도령은 차라리 달려가 백도령을 한 발 걷어차 김단 앞으로 내몰고 싶었다.그러나 최지습의 두 발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박힌 듯 제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무엇인가 하고자 할수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욱 알 수 없었다.전례 없는 좌절과 자기에 대한 분노가 덩굴처럼 그를 옥죄었다.바로 그때 김단이 먼저 최지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성긴 잎새 사이로 스민 햇살이 그녀의 어깨에 얼룩진 빛을 흩뿌렸다.이를 본 뜰의 사람들, 행각 아래의 숙희와 고지운, 그리고 모든 호랑이군이 약속이나 한 듯 재빨리 각 처소로 물러났다. 넓은 뜰은 순식간에 텅 비어 서로 마주 선 두 사람과 잎새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남았다.김단이 그의 앞에 멈춰 서고, 창백한 뺨의 고운 솜털과 눈저편 깊이 숨은 피로가 또렷이 보일 만큼 가까워지자, 최지습은 비로소 그 보이지 않는 굴레에서 벗어난 듯했다.그는 침을 몇 차례 삼키고서야, 온몸의 기력을 짜내듯 메마른 목구멍에서 무겁디무거운 말을 겨우 짜냈다.“미안하다.”김단이 잠시 굳어 서며 눈빛에 뚜렷한 놀라움이 스쳤다.그가 사과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곧 놀라움을 진정하고, 얼음벌에 조용히 피어난 작은 꽃처럼 씁쓸한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왜 사과하오?”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고 쉬어 있었다. “자옥정초를 얻지 못한 것이, 그대의 허물은 아니지 않은가.”최지습은 그녀 입가의 미소를 보며 가슴이 무엇에 세차게 부딪힌 듯 답답하게 아렸다.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낮고 눌린 목소리였다. “너의 마음이 가장 아플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위로의 한마디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옆에 늘어뜨린 손이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고, 손마디가 희게 질렸다.김단은 고요히 최지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어려 있는 후회와 난처함, 서툴지만 누구보다 무거운 자책을 또렷이 보았다.문득 그녀는 팔을 뻗어 그의 탄탄한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뺨을 단단한 가슴에 붙였다.옷깃을 사이에 두고도 또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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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2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숙희가 눈을 흘깃 김단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영칠, 우리 아씨가 너더러 무슨 일을 시키신 게냐? 어찌 그리 비밀스러우냐.”영칠은 숙희를 한 번 바라보고 약사발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이내 두 손을 늘어뜨린 채 곁에 서서 눈길을 거두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돌덩이 같았다.숙희는 답답해 속이 막혔으나 캐물어 보아야 소용없음을 알아 입꼬리를 삐죽 올리고 빈 사발을 들고 물러났다.시간이 흘러 해가 점점 치솟고, 정오가 가까워졌다.문득 편원 밖에서 다급함이 뒤섞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한 고함과 신음도 뒤따랐다.굳게 닫혀 있던 편원의 대문이 쾅 하고 밀쳐 열렸다.목설하와 목진강 등이 다시 들이닥쳤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강경함과 음침함은 전혀 없고, 오직 초조와 공포로만 가득했다.목설하는 낯빛이 백지처럼 질리고 이마엔 식은땀이 흐르며, 목진강은 발걸음이 허공을 딛는 듯 비틀거려 하인에게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목몽설도 뒤따랐으나 그는 멀쩡해 보였다.“단… 단이오.” 목설하의 음성은 분명한 떨림을 머금고,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관저 안에 갑자기 토하고 설사하는 자가 수두룩하고, 온몸이 찢기듯 아파 견디지 못하오. 명의를 몇이나 불렀으나 모두 속수무책이라 하오. 증세가 괴이하고 사납게 번져 급성 역병과도 같사온데, 부디 단이의 손으로 구명해 주시오.” 그의 뒤에 선 몇몇 장로 또한 허둥지둥한 낯빛으로, 아까의 거드름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김단은 방 안 태사의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들고 그들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마치 이미 이 광경을 예견하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아, 돌발 급환이옵니까.” 그녀가 옅게 말했다. “멀쩡하시던 분들이 어찌하여 일시에 급환이 나시었사옵니까. 혹여 양심에 꺼리는 일을 지나치게 저질러 응보를 받으신 것은 아니시옵니까.”이 말에 모두의 낯빛이 굳어졌다.근래 들어 일어난 일 하나하나가 모두 목씨 가문의 죄상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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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3화

“삼숙부님!”김단의 목소리가 문득 차갑게 가라앉아 옥반에 서리 알 굴러떨어지듯 울렸다.“진지는 아무렇게나 드실지언정 말씀은 함부로 하실 수 없사옵니다. 소녀더러 독을 써 해코지하였다 하시니 그 말씀에 근거가 있으시옵니까. 증거가 없으시면 그것은 모욕이옵니다. 제가 누구의 제자인지 잊으셨사옵니까. 저는 약왕곡 심묵의 제자이옵니다. 방금 하신 말씀은 곧 약왕곡이 독으로 사람을 해친다 몰아가시는 것이옵니다.” 그녀가 가늘게 눈을 좁히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순식간에 피어올랐다.“약왕곡의 백년 청예를 짓밟는 일이옵니다. 그 후과를 목씨 가문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사옵니까.”백년의 청예.그 몇 마디가 무쇠추처럼 목씨 사람들의 가슴을 내리쳤다.그들은 거의 확신했다. 독은 김단이 썼다고.아니었다면 어찌 그녀가 똑같은 말로 치고 들어오겠는가.약왕곡의 백년 청예를 목씨 가문의 백년 체면과 맞바꾸자고 하다니.좋다. 참으로 묘하다.이제 선택은 목씨 사람들 스스로의 몫이었다.이미 누더기처럼 헤어진 가문의 명색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피 묻은 생명을 구할 것인가.그리고 또 하나.감히 건드려선 안 될 그 세력, 약왕곡.목설하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아직도 떠들어대려는 목진강을 거칠게 붙들어 멈추고는 김단을 향해 깊이 몸을 숙였다.“단이, 삼숙부가 다급하여 정신이 혼미해 험한 말을 내뱉었소. 우리가… 우리가 응하겠소. 그대가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곧장 길을 터 주겠소. 결코 다른 말 없을 것이오.”목몽설도 다급히 거들었다.“단이, 가주께서 이미 분부하셨사오니 그 누구도 다시는 그대들을 막지 못할 것이옵니다.”김단은 이미 버티지 못해 바닥에 쓰러진 목씨 가문의 장로들을 한 번 훑어보고, 다시 목설하를 본 뒤 소매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종이 꾸러미 하나를 꺼내 숙희에게 내밀었다.“이것을 관저에서 가장 큰 물 항아리에 풀어라. 병이 난 자마다 한 그릇씩 마시게 하라. 향이 반쯤 탈 즈음이면 반드시 나을 것이다.”목설하는 환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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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4화

호위가 알리자 곧 우문호가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오늘 화려한 짙은 자색 비단포를 걸쳤고, 수려한 용모에는 옅은 음울과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가 서려 있었다.그의 눈빛이 최지습을 스쳐가며 노골적인 탐색과 경계를 띠었다.“김 낭자가 소한을 치료하려 하니 관저에 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대군자께서는 신분이 특수하니, 누가 통적매국의 죄를 씌운다면 내가 해명하기 어렵다.”뜻은 곧, 최지습은 들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최지습의 진한 두 눈썹이 깊이 모였다. 우문호가 고의로 그러는 것을 그는 알았다.이 둘째 황자 관저는 그가 이미 여러 차례 드나든 바 있다. 전에는 통적매국의 죄를 염려하지 않더니, 어찌 오늘에야 걱정한단 말인가.김단은 최지습에게서 거의 폭발하려는 분노의 감정과 자신을 걱정하는 근심을 느꼈다.그녀는 그가 검자루를 움켜쥔 손등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차가운 손끝이 그의 뜨거운 살결을 스치며 말 없는 달램을 전했다.“염려 마오. 나는 탈 없을 것이오.”지금 소한의 형세가 다급하니, 그녀는 반드시 곧장 들어가야 했다.최지습은 그녀 눈속의 결연을 바라보다가 목이 몇 차례 오르내리더니 끝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만사를 조심하거라. 나는 바깥에 있겠다.”이어지는 말은 삼켰으나, 우문호를 스친 그 차가운 눈빛에 담긴 위협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우문호는 최지습의 살의를 못 본 체하며 몸을 비켜 서서 김단에게 들라 손짓했다.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홀로 둘째 황자 관저의 문을 넘어섰다.두터운 관문의 문짝이 다시 닫히며 최지습의 염려 어린 시선을 가로막았다.최지습은 고개를 들어 둘째 황자 관저의 웅장한 현판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빛을 가라앉히고 곧 돌아섰다.김단이 다시 소한을 마주했을 때, 그는 넓은 침상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비단 이불이 길고도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몸을 덮고 있었다. 얼굴빛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입술에는 핏기라곤 없었으며, 숨결은 미약하고도 가빠 가슴의 오르내림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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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5화

심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결과가 뜻밖은 아니란 듯했다.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의서는요. 손에 넣으셨사옵니까?”영칠이 물었던 것과 한 치 다름없었다.김단이 미간을 찌푸렸다.“의서는 거대한 석벽에 새겨져 있어 가져올 수 없사옵니다. 베껴 적지도 못하였사옵니다.”심월의 미간이 순식간에 매듭지듯 얽혔고 눈동자에는 실망이 비쳐 올랐다.그러나 무엇인가를 억눌렀는지 잠시 후 결연한 기색으로 김단을 보았다. “그렇다면 제가 친히 약왕곡으로 돌아가 자옥정초를 약지 아래에서 가져오겠사옵니다.”김단은 잠시 멈칫했다.심월이 말을 이었다. “약왕곡까지 길이 머옵니다. 제가 경공을 펼쳐 주야로 달린다 하여도 왕복에 월여는 걸릴 것이옵니다.”이 말을 들은 김단은 마음이 다급해져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사형께서는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소한의 맥을 붙들겠사옵니다.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사옵니다.”심월은 그 약속에 한숨 돌린 듯 옅게 웃었다. “그렇다면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떠나겠사옵니다.”말을 마치고는 단숨에 몸을 돌려 방을 나섰고, 이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방 안에는 김단과 혼절한 소한만이 남았다.적막과 짙은 약향이 공기를 메웠다.김단은 크게 숨을 들이켜 요동치는 의혹과 무거운 압박을 가라앉히고, 지니고 다니던 침갑에서 구요현망침을 꺼냈다.그녀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안정된 손끝으로 금침 한 매 한 매를 소한의 요혈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흐르는 물결 같은 동작에 사무친 전념의 기운이 실렸다.고요 속에 시간이 흘렀고, 이내 땀이 그녀의 이마를 적셨다.반 시진이 흐르자, 극도의 집중과 기력 소모 탓에 김단의 얼굴빛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마침내 마지막 금침을 정수리의 백회혈에 살짝 비틀어 넣는 순간, 침상 위 사람의 여린 속눈썹이 나비날개처럼 가볍게 떨렸다.이내 소한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몇 차례의 몸부림 끝에 서서히 가늘게 들추어졌다.흐릿하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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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6화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순간 김단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힘이 자신의 복부를 꿰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모든 기력이 빠져나가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으윽…” 짧고 고통 어린 신음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쥐어짜듯 흘러나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속 깊이 박힌 비수를 꽉 움켜쥐었다.그녀는 비수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복부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고,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을 찢기는 듯한 고통이 몰려와 그녀의 저항을 무의미하게 했다.손가락 틈새로 피가 흘러나왔다.선명하고 붉은 피가 그녀의 손을 따라 한 방울씩 바닥으로 떨어졌다.김단은 눈을 크게 떴다. 극심한 통증과 충격으로 인해 동공이 급격하게 수축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동자 안에 소한의 창백하지만 증오로 가득 찬 얼굴이 또렷이 비치고 있었다.어째서?그녀의 눈빛에는 의아함과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왜 소한이 그녀를 죽이려 하는 걸까?왜 그는 그녀를 이토록 증오하는가?기억을 잃은 게 아니란 말인가?그에게 있어 그녀는 낯선 사람이지 않은가?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그녀는 입을 벌려 말을 하려 했지만, 극심한 통증과 질식감에 목이 막혔다. 부서지는 듯한 숨소리만 간신히 낼 수 있었다. 모든 질문은 입 안에서 맴돌다 끝내 삼켜졌고, 극심한 고통에 촉촉해진 김단의 눈빛이 흔들렸다.소한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 극심한 고통과 질문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바늘처럼 그를 찔러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날카로운 통증이 그를 가슴을 스쳤고, 비수를 쥔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떨려왔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의 배에 칼을 찔렀을 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픈 걸까?더욱이 왜 그녀는 그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그녀와 그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다는 것을 그가 이렇게 빨리 기억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일까?아니면…애초에 그들 사이에 원한이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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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7화

서늘한 살의와 극한의 공포를 내뿜는 어떤 한 형체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재빨리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바로 최지습이었다!그는 김단이 혼자 둘째 황자 저택에 들어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저택 후문으로 돌아가 호위병들의 눈을 피해 몰래 잠입했다.그런데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지는 것만큼 끔찍했다!“김단!” 분노와 놀라움이 뒤섞인 외침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망설일 틈도 없이, 최지습은 번개처럼 재빨리 움직였다. 천둥 같은 기세로 손바닥을 소한의 어깨에 내리쳤다!“우지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퍽!” 소한은 공격을 받고 공중으로 붕 날아가 침상에 세게 처박혔다. 그의 손에 있던 비수도 함께 뽑혀 나왔다!“촤악!” 비수가 몸에서 빠져나가자,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김단의 복부에서 뿜어져 나왔다. 피는 침상 휘장과 바닥에 튀었고, 몇 방울은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채 최지습의 얼굴에 닿았다.정말 끔찍한 광경이었다!극심한 통증에 김단은 일말의 버틸 힘을 잃고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갔다.최지습은 그녀가 바닥에 닿기 전에 긴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차가워진 몸을 떨며 피를 쏟고 있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김단! 단이 낭자! 버티시오! 날 보시오!” 최지습의 목소리에서는 낯선 떨림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는 한 손으로 피가 멈추지 않는 그녀의 상처를 힘껏 막고 지혈하려 했다. 뜨겁고 끈적한 피가 끊임없이 솟구쳐 그의 손바닥을 태우는 것만 같았다.다른 손으로는 그녀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의 품속에서 그녀의 몸은 빠르게 식어가며 가벼워지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김단은 그저 최지습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전례 없는 공포, 붉게 충혈된 눈동자, 그리고 목소리에 섞인 울음을 보며, 그녀는 끝내 손을 뻗었다.그녀는 피에 물든 손으로 최지습의 뺨을 조금씩 어루만졌다.그녀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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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8화

꿈속은 더욱 깊고, 혼란스럽고, 절망적이었다.그는 다시 햇살이 따사로웠던 어느 날의 오후로 돌아간 듯했다.바둑판 위에 검은 돌과 흰 돌이 흩어져 있었다.맞은편에는 김단의 맑게 미소 짓는 얼굴이 있었다. 그녀는 연노랑 봄옷을 입고, 머리에는 단출한 옥비녀를 꽂고 있었다. 몇 가닥의 잔머리가 볼가에 사랑스럽게 늘어져 있었다.그녀는 턱을 괴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바둑판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아이, 오라버니…” 그녀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교활함과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손을 뻗어 바둑판 위의 흰 돌 몇 개를 건드리며 말했다. “이 수는 무효! 방금은 제대로 보지 못했단 말입니다! 다시 두게 해주면 안 됩니까?”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한 꿀을 바른 듯 부드럽고 끈적했다.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애정 어린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낭자, 한 번 둔 수는 되돌릴 수 없는 법…”“딱 한 번만요! 제가 오라버니를 제일 좋아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는 혀를 날름 내밀고 재빨리 돌을 제자리로 옮겼다. 그러고는 마치 물고기를 훔치는 데 성공한 새끼 고양이처럼 웃어 보였다.햇살이 그녀의 긴 속눈썹에 떨어져 부채꼴 그림자를 드리웠다. 모든 것이 따뜻하고 평화로웠다.하지만 불길한 일은 갑작스럽게 닥쳐왔다.“쿵!” 옆에 서 있던 어린 몸종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마가 차가운 돌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선명한 붉은 피가 구불거리는 작은 뱀처럼 그녀의 머리 뒤에서 천천히 스며 나왔다.소한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휙 고개를 들었다.방금 전까지 고요하고 우아했던 정원은, 어느새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사방에는 시체뿐이었다!집안의 호위병, 하인, 정원사… 모두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핏자국은 돌바닥을 적셔 붉고 끈적끈적한 늪을 만들었다. 짙은 피 냄새가 죽음의 기운과 뒤섞여 그의 숨을 막히게 했다.그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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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9화

귓가에서 사내의 목소리와 김단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어떨 때는 원한에 차 있다가, 어떨 때는 앙큼하고 애교가 넘쳤다.어떻게 된 일일까?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끝없는 어둠이 다시 몰려왔다. 마치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모든 것을 완전히 집어삼켰다…둘째 황자 저택, 서재.우달이 소리 없이 서재로 들어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이내 앞으로 다가가 둘째 황자 우문호의 귓가에 무언가를 나지막이 속삭였다.우문호는 붓을 잡은 손을 살짝 멈췄다. 뽀얀 종이 위에 먹물이 번져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가늘고 긴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정말이냐? 소한이 정말 손을 썼단 말이냐?”“틀림없습니다.” 우달은 고개를 더욱 숙였지만, 어조는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 “소인이 직접 보았습니다. 소한이 비수로 김단의 복부를 찔렀는데, 그 정도가 매우 깊었습니다. 만약 최 대군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김단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대군이 진노하여 소한에게 한 방 먹여 중상을 입혔고, 곧장 피를 흘리는 김단을 안고 황급히 떠났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아무래도 얼마 전 심월이 소한에게 한 ‘세뇌’가 성공한 듯합니다.”우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찬 서늘한 옥패를 매만졌다.미간은 크게 찌푸려졌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날, 그는 소한이 기억을 잃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무심코 한마디 했다. “김단은, 네 놈의 가문을 몰살시킨 원수다.”그는 그저 김단을 약간 곤란하게 만들려 한 것이었지만, 상황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그가 소형을 ‘일깨워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우연히 심월이 의식을 잃은 소한의 침상 옆에 앉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한의 귓가에 무언가를 반복해서 속삭이는 것을 보았다.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몇 마디를 엿들을 수 있었다. “하늘로 치솟는 불길… 시체가 즐비하고… 모두 그 여자 때문이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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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0화

최지습이 온몸에 피를 묻힌 김단을 안고 의원으로 뛰어 들어오자, 의원 안의 환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여 늦게 나가 자신들도 김단처럼 온몸에 피를 뒤집어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진료를 보던 의원도 김단의 배에서 계속 피가 스며 나오는 걸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매우 재빨리 최지습을 이끌고 안쪽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방 심부름꾼에게 작은 침상을 내오라고 지시했다.“어서! 이 곳에서 눕히십시오! 조심조심!” 의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는 최지습이 거의 의식을 잃은 김단을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히는 것을 보았다.김단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얬고, 숨소리는 미약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어쩌다 다치신 겁니까?” 의원은 김단의 피 묻은 옷을 능숙하게 자르면서 다급하게 물었다.“비수에 찔렸소!” 최지습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되어 있었고,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미 약왕곡의 ‘회원단’을 먹였소! 그런데도 피가 멈추지 않소…”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려 원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최지습은 김단의 상처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피를 보며, 마치 무언가에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온몸이 차갑게 식어갔다.의원은 뒤집힌 살점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최지습에게 다급히 말했다. “어르신, 먼저 나가 계시지요! 여기에 계시면 소인이 시술하기가 어렵습니다!”옆에 있던 약방 심부름꾼이 다가와 최지습을 문밖으로 밀어냈다.최지습은 속이 타들어 갔다. 생기 없는 김단의 얼굴을 보며,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었으면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어도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억지로 꽉 쥐었던 주먹을 펴고, 김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약방 심부름꾼이 그를 문밖으로 밀어냈다.문이 닫히자, 시야가 차단되면서 최지습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그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두 발에는 납을 부은 듯 무거웠고, 숨을 쉬는 것조차 거대한 돌산에 깔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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