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881 - Chapter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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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보지 마시오.”낮고 깊은 목소리에 김단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렸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멎어 있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했고 그제야 살아 있다는 감각이 천천히 돌아오는 것 같았다. 넓은 삿갓이 조심스레 그녀의 머리에 씌워졌고 챙이 넓어 세상이 어둑하게 가려졌다.“먼저 말 위에 올라가시오.”분명 최지습의 목소리였다. 김단은 어떻게 그의 품에 안겨 말 등에 올라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칼끝이 자신을 겨누었던 그 순간, 죽음을 직감했던 그 순간, 모든 감각이 새하얗게 날아갔다.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산속 움막 안에서 있었다. 모닥불의 따뜻한 기운이 퍼져오고 젖은 몸이 서서히 녹아들면서 비로소 이게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 이곳에는 최지습이 앉아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다섯 번째 도령이 경 씨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으며 숙희가 임학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이리 와서 앉으시오.”최지습이 가볍게 그녀를 불렀다. 김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닥불 쪽으로 다가갔다. 불빛에 손을 비추자 서늘했던 손끝에도 온기가 퍼졌다. 젖은 옷이 타닥거리며 마르는 소리가 귀에 스치자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최지습을 바라보았다.“도령님께서는 어찌…”그는 분명 변방에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이런 숲속에 나타난 것일까? 김단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다섯 번째 도령이 웃음을 터뜨렸다.“낭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오. 낭자가 떠나기 전, 전하께서 이미 우리에게 밀서를 보내셨소.”전하는 김단보다 훨씬 먼저 중전과 세자의 음모를 간파하고 있었다. 최지습은 밀서를 받자마자 다섯 번째 도령을 데리고 달려온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비를 피해 들르려던 폐사 근처에서 칼부림 소리가 들렸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가서 확인해 보다가 김단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운 좋게 낭자를 찾은 것이오.”도령이 웃으면서 말하자 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얼굴에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최지습은 지그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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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모닥불의 따스한 기운이 금세 움막 안을 가득 채웠다. 서늘했던 공기마저도 이내 온기를 머금었고 연이어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미소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며칠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자객들의 추격에 시달리던 불안과 두려움은 마치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했다.임학과 경 씨는 약을 다 바른 뒤 조심스레 모닥불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다섯 번째 도령은 품에서 기름종이에 곱게 싼 고기전을 꺼내어 하나씩 나누어주었다.“낮에 앞마을에서 산 것이오. 상하기 전에 얼른 먹자고.”다행히도 기름종이 덕분에 고기전은 빗물에 젖지 않았다. 고된 여정에 지쳐있던 일행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음식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들은 하나같이 허기에 지쳐 있었고 고기전을 손에 쥔 순간 아무 말 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움막 안에는 오직 음식 씹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김단 일행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저마다 가슴속에는 다른 파문이 조용히 일고 있었다.경 씨는 김단을 힐끗 바라보며 가슴 한편에서 따스한 감정이 번져나가는 걸 느꼈다. 병사는 본디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는 자리이다. 과거 최지습을 위해 그랬듯, 지금은 김단을 지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김단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임학 또한 김단을 향해 자꾸만 시선을 흘겼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김단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경 씨만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김단은 분명 경 씨만 데리고 멀리 떠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다시 자객들과 맞섰다. 어릴 적부터 쌓아온 남매의 정이 아직 김단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임학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는 너무 약했다. 몇몇 죽음의 사내들조차 온전히 상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만약 김단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그녀를 지킬 수 있겠는가?임학은 자신을 자책하며 손에 쥔 고기전을 크게 베어 물었다. 거친 한 입에 고기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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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정말 정확했소.”곁에 있던 경 씨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낭자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저세상 사람이었을 것이오. 그러니 응당 숙희 아가씨에게 깊이 감사드려야 마땅하겠지.”“아, 그런 뜻은 아닙니다.”숙희는 부끄러운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지만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은 끝내 감추지 못했다.“제가 맞추는 것도 잘하고 힘도 좋으니까 스승을 모시면서 제대로 무공을 배운다면 엄청난 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알고 보니 이 아이는 이미 마음속으로 무림 고수가 되는 상상을 한참 펼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경 씨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숙희 낭자가 원한다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소.”“정말입니까?”숙희의 두 눈이 반짝였다.“경 도령님께서 진짜로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경 씨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숙희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향해 두 번이나 있는 힘껏 절을 올렸다.“그럼 이제, 스승님께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그 광경에 경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렇게 쉽게 정하는 것이오?”숙희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어쨌든 절까지 했으니 이제 도령님은 제 스승이십니다. 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마세요!”“후회하지 않을 것이오.”경 씨는 쾌활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똑똑한 제자를 두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숙희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김단을 바라보았다.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김단에게 짐이 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그녀를 지켜주리라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밤은 점점 깊어갔고 움막 안의 공기는 한결 포근해졌다. 젖었던 옷가지들도 모닥불의 열기에 바짝 말라 사람들은 하나둘 편안한 자리를 찾아 쓰러지듯 눕거나 기대어 잠이 들었다.김단도 역시 숙희 곁에 기대에 눈을 감았지만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감정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소리 없이 움막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비는 이미 그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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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이튿날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김단 일행은 길을 나섰다.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인근의 작은 읍내에 도착했다. 연이은 도주와 전날 밤의 암살 위협으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조용한 마을에 머물며 이틀쯤 휴식을 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무엇보다 부상을 입은 임학과 경 씨를 생각하면 더는 무리할 수 없었다.여인숙의 작은 별채 안, 식탁에 둘러앉은 일행 앞에는 따끈한 밥상과 맛깔스러운 찬이 차려졌다.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말없이 젓가락만 놀렸다. 긴장이 풀리고 저마다 조심스레 웃음을 띠기 시작했을 때, 다섯 번째 도령이 감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큰일 났소. 나 어디 좀 다녀오겠소!”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헐레벌떡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어찌나 성급했던지 문짝이 덜컥거리기까지 했다. 절박한 그의 모습에 숙희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설마, 음식이 잘못된 걸까요?”김단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모두 같은 걸 먹었으니 음식 탓은 아닐 거다. 아마 어젯밤 찬 기운을 심하게 맞은 탓이겠지. 좀 이따 내가 진맥해보마.”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배탈 정도라면 그녀도 쉽게 다스릴 수 있는 병증이었다. 하지만 그때 임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군자가, 무슨 일 있습니까?”김단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최지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었고 눈빛에는 말 못 할 무거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김단은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겨우 배탈 하나 때문에 최지습이 저런 얼굴을 할리 없었다. 최지습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병영을 떠나기 전, 병사들 사이에 복통과 설사가 퍼지기 시작했었다. 너의 세 번째 도령, 네 번째 도령, 그리고 여덟 번째 도령도 모두 같은 증상을 보였지. 초기에 군의관이 처방한 약으로 병세가 완화되었었지만 병에 걸린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김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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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김단은 미간을 가볍게 찡그렸다. 그저 장난처럼 여겼던 증상이 생각보다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도령이 다시 돌아왔을 때 식탁 위의 음식은 이미 모두 치워진 뒤였고여인숙 안에는 김단과 최지습 둘만이 남아 있었다. 다섯 번째 도령은 한층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다 먹은 것이오? 그럼… 얼른 자야겠군. 아이고, 다리야…”최지습은 무거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여기 앉거라.”도령은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저항 한 번 없이 식탁 앞으로 이끌려갔다. “뭔데 그러십니까?”김단은 부드럽게 말했다.“도령님, 손을 좀 보여주세요.”“그래그래, 빨리 진맥해보고 약 좀 지어주시오. 이러다간 뒷간에도 못 앉아 있을 것 같소.”도령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온 마음을 김단에게 의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가늘고 섬세한 손길로 그의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손끝에 닿은 이질적인 맥박에 그녀의 미간이 깊어졌다.달랐다. 평범한 설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최지습을 바라보았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령은 그들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져 얼굴이 굳어졌다.“아니, 설마… 무슨 불치병이라도 걸린 것이오? 난 그냥 뒷간에 다녀온 것뿐인데. 단이, 이 도령을 놀래지 마시오. 난 아직 먹여 살려야 할 자식들도 있단 말이오.”또다시 고통이 몰려들었는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배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김단은 황급히 은침을 꺼내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도령님. 제가 있습니다.”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리고 신속하게 그의 중환혈에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도령은 몸을 비틀며 애써 말을 이었다.“아이고, 안되겠소. 또 가야 할 것 같소. 진짜 이번에는 장까지 다 쏟아낼 것 같단 말이오.”그가 휘청이며 일어서려 하자 김단은 단호히 그의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움직이지 마세요. 곧 나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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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오태수가 제정신을 차렸다.“어디로 돌아가든, 혹여 밤을 세서 가야 한다고 하여도, 적어도 사,오 일은 걸립니다. 형님, 단이를 꼭 챙기셔야 합니다!”그렇지 않은 이상,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른다.최지습이 고개를 끄덕였다.셋째 도령을 제외하고, 부대에 독에 걸린 병사들도 있었다.빨리 돌아갈수록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은가.김단은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우선 다섯 째 도령의 독부터 살피겠나이다. 그리고 백도령을 따르겠사옵니다.”무리 몇몇은 상처를 입은 것뿐만 아니라, 독까지 걸려 위중하다.만일같이 움직인다면, 무리 전체의 행동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그리하여 그녀와 최지습 두 사람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제일 빠른 시진 안으로 변방에 도착할 수 있는 방도였다.김단이 그녀의 스승에게서 가져온 두 보따리 안에는, 제조가 끝난 약이 들어있다.허나 가져온 해독제는 끓어야 하며,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야만 했다.해독제를 끓이고 나서, 다섯 째 도령이 해독제를 마셨다.그의 몸에 있던 독이 해독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즈음에는,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 해진 뒤였다.숙희는 잔뜩 걱정하는 얼굴로, 김단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아씨, 이미 해가 졌습니다. 명일에 떠나시는 게 어떠십니까?”“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한 시진이라도 먼저 도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김단이 미소를 지은 채 숙희의 뺨을 어루만졌다.사실 그녀는 숙희가 자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경씨께서 중상을 입으셨어. 어젯밤부터 스승으로 모시기 시작했지 않았는 가, 잘 모시도록 해.그리고 다섯 째 도령도 이제야 독이 빠져나갔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해. 그리고…”말하는 도중에, 그녀의 시선이 숙희의 뒤로 향했다.임학은 김단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모양이다.그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나는 팔만 다쳤을 뿐 이야. 걷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 너와 같이 갈 수 있어.”그는 혹여 길에서 자객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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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이전에 그 믿음은 오직 그에게만 주어졌었다.어렸을 적에 김단은 그저 임학의 목을 잡으며,종종 ‘오라버니가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어찌하여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오라버니가 없는 것인가.그는 어찌하여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을 한없이 믿어주던 동생을 잃어버린 것인가.이러한 생각에 눈가가 붉어졌다.다섯 째 도령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김단이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던 일들을 떠올렸다.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결국 한마디도 위로하지 못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김단과 최지습은 계속 달렸다.그 다음 날, 두 사람은 읍내에 도착했다.역참에서 말을 바꾸었다.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셋째 날도 똑같았다.허나, 셋째 날에는 밤이 되어서도 말을 바꿀 수가 없었다.혹여 말이 달리다 죽을까 하여, 잠시 길가에 멈추어 휴식을 취했다.“자.”최지습이 모닥불을 피운 뒤, 품 안에서 전 하나,떡 하나를 꺼내어 김단에게 건네었다.김단은 건네 받기만 할 뿐, 먹지는 않았다.최지습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 두 마리 밧줄을 길가의 나무에 묶었다.몸을 돌았을 때, 김단이 난감한 표정으로 떡을 보고 있었다.잠시 생각하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명일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것으로 고르겠소.”그의 말에 김단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 씹지를 못하겠나이다.”며칠동안 같은 떡을 먹은 탓에, 이빨이 다 떨어질 것 같았다.최지습은 김단에게 다가가고는,그녀가 들고 있던 떡을 가져갔다.그리고는 말 등에서 수통을 꺼냈다.물을 떡에 여러번 붓고 나서야, 돌 같이 딱딱했던 떡이 그제야 부드러워졌다.“자, 우선 배라도 채우시오. 명일에는 말을 바꿀 수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오.”최지습이 떡을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김단이 떡을 건네받았다.그제야 나무 밑에 앉아, 한입 씩 베어 먹었다.떡의 겉표면은 부드러웠지만, 안은 딱딱하기 마찬가지였다.그 탓에 김단은 먹기에도 버거웠다.허나 말을 바꿀 수 있는 곳을 찾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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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김단은 최지습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는 묵묵히 모닥불을 보고 있었다.돌 같은 떡을 씹으며, 장차 군영에 도착했을 때의 일을 생각했다.돌궐이 연이어 독을 쓴 것을 미루어 보아, 또 다른 독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김단이 계속 독을 해독한다 한들,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서서히 갉아먹어, 남김없이 몸을 삼켜 버릴 것이다.적이 오면 장수를 내세우고 물이 넘치면 흙으로 막는 식의 틀에 박힌 대응술은 이곳에 먹히지 않는다.이전에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하는 독과, 이번에 복통을 일으키는 독은 시장에 나온 독과 달랐다.김단은 십중팔구 약왕곡에서 제조한 독이라고 생각했다.복통을 일으키는 독을 해독하고 나서, 꼭 약왕곡에 가야만 한다.이러한 생각에 잠시 졸음이 밀려왔다.잠시 뒤,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최지습은 떡을 다 먹고 나서야, 김단이 잠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손이 축 늘어져,쥐고 있던 떡 반쯤도 바닥에 떨어졌다.떡 위로는 작은 이빨 자국이 보였다.있는 힘껏 먹었다는 생각에 최지습이 미소를 지었다.이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그 탓에 모닥불의 불도 흔들렸다.주위에는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김단이 추운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최지습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김단에게 덮어 주었다.겉옷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 것일 까,김단이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밝은 달이 서서히 하늘 위로 올랐다.최지습은 김단이 기댄 나무 맞은 편 나무에 기대었다.그녀가 잠에 든 모습을 보면서, 그도 서서히 잠에 들었다.두 사람은 얼마나 잠들었는지 알 지 못했다.갑자기 칼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최지습은 퍼뜩 눈을 뜨더니, 거의 김단을 향해 몸을 던졌다.그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정확히 막아냈다.“슥슥” 이라는 소리에 김단도 깜짝 놀라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최지습의 옆모습이 가깝게 보였다.그제야 자신이 그에게 안겨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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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이렇게 해야만 김단을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허나 상대는 네 명뿐만이 아니었다.이내 몇몇 검은 옷의 사람들이 몰려와 싸움에 가세했다.최지습은 한 손으로 김단을 안고, 한 손으로 적의 공격을 막고 있었기에 몸짓이 빠르지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최지습을 조금도 따라 잡지 못했다.싸움이 한창 지나고 나서도, 김단은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오히려 몇몇 자객의 살을 베었다. 허나 모두 작은 상처에 불과했다.자객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동료들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소인들은 그저 금전을 받고, 액을 거두려는 자들일 뿐. 감히 대군마마를 거스르려는 뜻은 없사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군마마께서 그 여인을 내어 주신다면, 소인들도 사명을 다하고 물러 나겠나이다.”최지습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흘겨 보았다.“내가 그러지 못하겠다면 어찌하겠느냐.”“대군 마마께서의 무예가 출중하십니다. 소인도 당장은 대군마마를 건들 수 없사옵니다.”그리고는 싸늘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허나 대군마마께서는 남는 손이 하나이십니다.소인들이 머릿 수로 밀어붙인다면, 아무리 뛰어나신 무예를 가졌다고 하신들,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짐작 하옵니다.”자객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잠시 뒤에 또 자객들이 달려 올 것이다.그때가 되면, 최지습이 맞닥뜨려야 할 싸움은 이보다 더 위험해진다.자객의 우두머리는 최지습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믿었다.무장의 신분이기에,여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 전쟁터로 나가 적과 싸워야 하는 몸이지 않은가.죽는다 하여도, 응당 전쟁터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자객들 모두가 최지습이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허나 최지습이 코웃음을 쳤다.“이 몸을 죽이겠다? 고작 자네들이 말이냐.”정암과 같이 맞선 적들을 생각하면, 그의 힘을 빼 죽이기에는 한참 멀었다.최지습의 대답에 자객들의 심장이 철렁했다.“보아하니, 대군마마께서는 현명하신 분이 아니 신 것 같사옵니다.”그리고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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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최지습을 보자마자 안도했던 심장은, 그의 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들었다.달빛은 숲속까지 비추지 못했으나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그가 허공을 응시하는 초점 없는 눈동자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곧이어 김단이 손을 내밀어, 그의 눈 앞에 흔들었다.허나 최지습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림자는 볼 수 있소. 머지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소.”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단이 서둘러 최지습의 맥을 짚었다.그녀의 예상대로 독에 중독된 것이다.곧이어 최지습의 몸을 이곳저곳 더듬었다.그는 조금 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하늘까지 어두워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더하여 몸의 감각도 예민해졌다.그 탓에 김단이 그의 몸을 더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치셨나이다.”김단은 피가 묻은 손을 코에 가까이 갖다댔다.“피 비린내가 납니다. 아마도 상대방의 검에 독이 묻은 듯 하옵니다. 서둘러 은신처를 찾아, 치료부터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그녀는 말하면서 최지습을 부축했다.허나,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 줄 몰랐다.“왼쪽으로 가시오.”최지습이 입을 열었다.“작은 개울이 있을 듯 하오.”곧이어 김단은 그를 부축한 채로 개울로 향했다.비록 숲이 무성해도, 길이 가파르지도 않고, 울퉁불퉁 하지도 않았기에 걷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대략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김단은 개울가의 물 소리를 들었다.잠시 뒤, 숲 속에 숨어있던 개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김단은 기뻐하며, 최지습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최지습을 큰 바위 위에 앉혔다.곧이어 천 조각을 꺼내어 적신 뒤, 그의 상처를 닦아 냈다.그리고는 물었다.“도령께서는 개울가가 있는지 어찌 아셨나이까.”최지습은 상처 부위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느꼈다.그리고 김단의 치료를 따라, 상처 부위가 쿡쿡 쑤셔왔다.허나, 오랜 시간 전장에 누비었기에 이러한 고통쯤은 습관이 되었다.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팔 년이라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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