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091 - Chapter 1100

1188 Chapters

제1091화

윤하경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제가 갈게요.”사실 강한 그룹의 대표인 강현우가 직접 나설 만큼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기회에 그도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강현우는 윤하경을 한 번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이 일은 강한 그룹에서 관여 안 할게요. 하성 그룹에서 알아서 처리하세요.”그 말만 남긴 채 강현우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회의실을 나갔다. 아까 하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이미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윤하경은 고개를 숙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선을 거뒀다.강현우가 나가자 하석호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각 부서는 방금 논의한 내용대로 바로 대응해. 회의는 이만.”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나서야 하석호는 윤하경을 바라보며 물었다.“결정은 한 거야? 아까 강현우 얼굴 보니까 좀 언짢은 것 같던데.”“그 사람이 기분이 좋든 말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윤하경은 눈을 들어 하석호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전용기로 보내줘.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돌아올게.”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어.”윤하경은 곧장 하씨 저택으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꾸리고 옷을 갈아입었다.이 계절의 산속은 아직도 쌀쌀했다. 짐을 챙긴 윤하경은 하씨 가문 기사에게 공항까지 태워달라고 했고 지난번에도 함께 탄광에 다녀왔던 비서 도연지도 동행했다.윤하경을 본 도연지는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대표님, 또 뵙게 돼서 정말 좋아요. 진짜 보고 싶었어요.”윤하경은 부하직원들에게 권위적으로 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도연지는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고 따랐다.“조용하게 움직이자. 지금은 사고 현장을 수습하러 가는 거니까.”윤하경은 조용히 일러주었다.도연지는 아직 어리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그 말에 도연지는 움찔하며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죄, 죄송해요. 그냥 기분이 좋아서...”“기억해 둬. 현장에 기자들이 와 있을 거야. 우리가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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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2화

윤하경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도연지가 먼저 나섰다.“이분은 저희 하성 그룹 본사의 윤하경 대표님이십니다. 이번 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에 오셨어요.”그러고는 거칠게 덧붙였다.“물어본 것만 대답하시면 됩니다.”남자는 그 말을 듣고 윤하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더니 비웃듯 말했다.“윤 대표라... 지난번에도 본 적 있는 것 같네. 이런 큰 사고에 보낸 사람이 고작 여자 하나뿐이라니 하성 그룹에는 이제 남자가 하나도 없나 보지? 남자들은 다 숨고 여자 하나 앞세워 보낸 거야? 그쪽 그룹 대표는 어디 있는데?”이 말에 윤하경과 도연지의 얼굴에 동시에 굳은 표정이 스쳤다.도연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도연지.”윤하경이 고개를 돌려 도연지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렸다.그 시선을 읽은 도연지는 억울함을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고 눈을 부릅뜨고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도연지는 분을 못 이기고 발을 굴렀다.“대표님, 왜 저 말리는 거예요? 여자라고 무시하고 대표님까지 깔보잖아요. 너무하잖아요.”윤하경은 잠잠히 도연지를 보며 말했다.“말은 행동을 이기지 못해. 말만 백 마디 해봤자 실제로 보여주지 않으면 저런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아.”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현장 책임자 불러와. 지금 상황이 어떤지 확인해야 하니까.”도연지는 급히 자리를 떴고 윤하경은 현장 사무실로 들어가 사고자 명단이 담긴 자료를 펼쳤다. 이름 하나하나를 눈으로 짚어가며 외우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현장 사람들이 날 선 말을 해도 다 감수해야 했다.윤하경은 화낼 생각도 없었다.남의 아픔은 내 몸에 닿지 않으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윤하경은 그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책임자 노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가 윤하경을 보는 순간,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윤하경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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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3화

중년 여성이 소리치자, 그녀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앞다투어 윤하경을 밀치며 소리쳤다.“내 아들 목숨 돌려내! 하성 그룹이 사람 잡은 거잖아! 안전 점검도 제대로 안 해서 이런 광산 사고가 난 거 아냐!”“맞아요!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건데요!”현장에 오기 전, 윤하경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닥칠 줄은 몰랐다.노 팀장이 급히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설득했다.“진정들 하세요! 아까 윤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회사에서 최대한의 보상과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족분들에 대한 배려도 회사에서 직접 챙긴다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아까 그 중년 여성이 노 팀장을 향해 매섭게 소리쳤다.“노 팀장도 그쪽에서 돈 받은 거 아니에요? 어떻게 저 사람 말을 믿으라고요!”윤하경은 이마를 짚으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여성이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끌며 밀쳐냈다.“나는 당신이 무슨 대표인지 그런 거 몰라!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내 남편만 돌려줘!”그 여자의 눈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고 며칠째 무너진 감정이 그녀를 온전히 집어삼킨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윤하경은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잠시 숨을 가다듬은 그녀는 손을 들어 조용히 외쳤다.“잠시만요, 모두 진정해 주세요.”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표적이 되어 있었다.급히 나온 탓에 함께 온 사람은 도연지와 경호원 두 명뿐이었고 그나마 경호원들은 구조 작업을 돕기 위해 따로 보낸 상황이었다. 윤하경은 사람 목숨이 먼저라 생각했고 이 자리에 경호원을 붙여두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었다.그런데 그 틈을 타서 유가족들이 몰려와 그녀를 에워싸고 마구 밀치기 시작했고 이를 막을 사람은 도연지와 노 팀장뿐이었다. 하지만 격분한 유가족 수가 너무 많아,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결국 윤하경은 사람들에 밀려 중심을 잃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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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4화

여자는 뒤돌아 윤하경을 노려보며 이를 갈듯 말했다.“나 혼자 죽을 줄 알아? 누군가는 꼭 같이 끌고 갈 거야.”윤하경은 도연지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우린 문제를 만들러 온 게 아니라 해결하러 온 겁니다. 이번 사고는 하성 그룹에서 책임지고 처리할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의 요구 사항은 밖에서 순서대로 대기하시고 한 분씩 들어오셔서 유 부장님께 말씀해 주세요. 모두 기록해서 정리할 겁니다. 그 후에는 변호사 입회하에 가장 합리적인 보상안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보상 협의를 정식으로 체결할 예정입니다. 최대한 여러분께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하겠습니다.”윤하경은 피가 흐르는 이마의 상처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강현우의 시선이 그녀의 상처에 머무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때, 아까 윤하경을 밀쳤던 여자가 작게 중얼거렸다.“말은 잘하네.”윤하경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강현우가 문가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의 있으면 변호사 부르세요. 변호사 비용은 회사가 낼 겁니다. 지금 당장 전부 나가세요.”강현우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는 방 안을 짓눌렀고 그 한마디에 마치 얼음장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강현우와 그의 보디가드들을 눈앞에 두고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조용히 물러났다.강현우는 얼굴에 분노를 담은 채 윤하경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윤하경은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연지에게 말했다.“너 먼저 나가 있어.”도연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렸다.“대표님, 상처가 꽤 깊어 보여요.”“조금만 처리하면 돼.”윤하경이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강하게 잡혀 끌렸다.윤하경은 자신을 끌고 가는 강현우를 노려보며 물었다.“어디 가는 거예요?”강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의무실로 그녀를 데려갔다.이번 사고로 인해 의무실은 지난번처럼 한산하지 않았다. 기존의 의사 외에도 구조대 소속의 의료진이 여럿 투입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윤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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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5화

강현우는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의무실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 긴장했고 손놀림도 자연스레 빨라졌다.윤하경은 조용히 시선을 떨군 채, 마치 맞은편에 서 있는 강현우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치료가 끝나자 윤하경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의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고 그 길로 바로 의무실을 나섰다.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몇 걸음 가지도 못한 순간, 문을 박차고 나온 강현우가 그녀의 팔을 휘어잡았다.윤하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향해 날카롭게 되물었다.“무슨 일이시죠?”강현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짙게 깔린 짜증이 그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하경아,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여기 일, 너나 석호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당장 나랑 같이 경성으로 돌아가자.”윤하경은 강현우보다 키가 조금 작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너무 간섭하시는 거 아니세요?”윤하경은 차분히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제가 기억하기로는 회의 때 대표님께서도 이 일은 전적으로 저희 쪽에서 책임지겠다고 하신 걸로 압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방해하지 마시고 돌아가 주시면 좋겠네요.”말을 마친 윤하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사실 강현우가 이곳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잠깐 놀랐었다.예전 같았으면 그런 모습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의 모든 마음을 한 사람에게, 특히 강현우 같은 사람에게 전부 걸어서는 안 된다는 걸.강현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멀어져가는 윤하경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손끝은 천천히 움켜쥐어졌고 얇게 다문 입술은 단단하게 일자로 굳어 있었다.그때, 뒤따라온 민진혁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대표님, 이제 돌아가셔야죠. 기상청에서도 곧 폭우 예보가 있다고... 그리고 회사 쪽에서도 대표님 복귀를...”강현우는 고개를 돌려 그를 차갑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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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6화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은 그런 윤하경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저릿하게 만들었다.살다 보면 ‘다음에 보자’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그 말이 마지막이 되는 경우가 많다.오늘 저 자리에 누워 있던 사람이 강현우였다면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하병철이 했던 말들이 문득 머릿속을 맴돌았다.윤하경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조용히 돌아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그 시각, 노 팀장은 윤하경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중, 흙탕물에 뒤덮인 채 돌아온 윤하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표님, 현장에 직접 나가셨던 거예요?”윤하경은 맥이 빠진 듯 고개만 끄덕였다.“왜요, 무슨 일이에요?”노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오늘 말씀하신 대로 희생자 유가족들 명단과 요구 조건 정리했습니다.”윤하경은 정신을 가다듬고 수건을 집어 손부터 닦은 뒤, 서류를 받아서 들었다.사실 이런 상황에서 유족 쪽에서 조건을 내걸면 보통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기 마련이었다. 윤하경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식적인 수준이었다.윤하경은 펜을 들어 몇몇 항목에 표시를 한 뒤 노 팀장에게 서류를 돌려주며 말했다.“여기 표시한 몇 분은 내일 오후 두 시에 사무실로 오시라고 해줘요. 직접 이야기 나눌 거니까. 그리고 이번 사고 원인도 조사해야 해요. 경찰 쪽에서 이미 수사에 들어갔다고는 해도 우리 쪽도 내부적으로 조사해야 하니까요. 생존자들 전부 불러서 진술 정리해 줘요. 저한테 꼭 필요해요.”노 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더 이상 보고할 게 없으면 나가보세요.”노 팀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려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그게... 윤 대표님.”“강 대표님이 아직 안 가셨습니다. 바로 옆방에 묵고 계세요. 혹시 특별히 챙겨야 할까요?”지금은 모두가 바쁜 상황이라, 노 팀장도 강현우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괜히 무시했다가 뒷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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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7화

윤하경이 고개를 들어 물건을 건넨 남자를 바라봤다.“그래요.”모두가 바쁜 상황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광산에서 의료실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윤하경은 우비를 입고 질척이는 진흙 길을 조심스레 걸어갔다.그러던 중, 숲을 지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번쩍하고 하늘을 가르는 번개의 빛을 따라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검은 실루엣 몇 개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윤하경이 멈춰 서자 그 남자들도 함께 멈췄고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감쌌다.윤하경은 바로 고개를 돌려 캠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빗줄기가 너무 거세서 제대로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점점 본래 가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대표님, 큰일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강현우는 방 안에서 화상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문 두드림 소리에 강현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민진혁에게 눈짓을 보내고 민진혁은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강현우는 고개를 숙이고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했다.“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계획안은 수정해서 다시 보내.”노트북을 닫고 막 일어서려던 찰나, 도연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윤 대표님이 실종됐어요!”강현우의 이마가 일그러졌다.“무슨 말이야?”도연지는 온몸이 흙탕물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며 급히 설명했다.“윤하경 씨가 현장 구조를 도우러 간다고 해서 밥이라도 챙겨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안 계셨어요!”강현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민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내가 사람 붙이라고 했잖아.”민진혁은 도연지의 말을 들으면서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다 수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지금 전화가 꺼져 있어요.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를 악물었다.“우리가 확보한 모든 정보, 하석호한테 넘겨. 그리고 당장 전 인원을 투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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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8화

비는 이미 멎어 있었다.윤하경은 온몸을 떨며 추위를 견디다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구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하지만 한 걸음 뗄 때마다 다리에서 쏟아지는 통증은 칼로 찌르는 듯했다.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절벽 아래쪽에 작은 동굴이 하나 보였다.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윤하경은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후...”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윤하경은 겨우 숨을 고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온몸이 크고 작은 상처로 엉망이었다.가장 심각한 부위는 다리였고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운이 좋다면 단순 골절이겠지만 아니면...’윤하경은 동굴 안에서 희미한 바깥 빛을 바라보다, 서서히 밀려오는 허기와 냉기에 고개를 떨궜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른풀과 돌 몇 개를 모아 불을 피우려 했지만 연기가 적의 눈에 띌까 두려워 손에 든 나뭇가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겉옷 하나를 벗어 찢어낸 뒤, 응급처치 삼아 상처에 둘둘 감았다. 두 시간 넘게 걸은 데다 몸을 수습하느라 이미 온 기력이 다 빠져 있었다.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정신이 흐릿해진 윤하경은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에 빠져들었다. 기절한 건지, 잠이 든 건지도 모를 정도로.꿈속에서 윤하경은 강현우를 보았다. 그가 조용히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괜찮아, 무서워하지 마.”손을 뻗으려던 찰나, 그 뒤로 신인아가 나타났다. 신인아는 다짜고짜 윤하경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왜 강현우 오빠를 뺏어가? 왜 하필 너야? 오빠는 내 거야, 내 거라고!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아니야... 나 그런 적 없어... 아니야...”그 순간 윤하경은 비명을 지르듯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눈앞은 눈부실 정도로 새하얗고 낯선 천장이 시야를 채웠다.“대표님! 드디어 깨어나셨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연지가 윤하경 쪽으로 달려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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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9화

도연지는 입술을 꼭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윤하경에게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윤하경의 가슴속에는 더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좋아, 말 안 해도 돼. 그럼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지.”윤하경은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도연지가 말릴 틈도 없이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하경아!”하석호가 급히 들어왔다. 윤하경이 깨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정신 차렸구나.”윤하경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광산 사고 아직 정리 안 됐잖아. 현우 씨도 현장에 갔다고 들었는데... 혹시 봤어?”하석호는 눈빛이 잠깐 흔들렸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왔다.“급한 일이 있어서 경성에 먼저 올라갔어. 네가 다쳐서 이동도 어렵다니까, 나보고 대신 잘 보살펴달라고 하더라.”“진짜?”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짜야. 그리고 외할아버지 걱정하실까 봐 아직 말씀 안 드렸는데 알려야 할까?”윤하경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건강도 안 좋으신데 괜히 걱정만 끼쳐드릴 거야.”하석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근데... 현우 씨는...”윤하경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려 하자 하석호는 바로 말을 끊으며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광산 사고 조사 쪽에 새로운 진전이 있어. 그쪽은 걱정하지 마.”윤하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스쳤다. 윤하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석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조용히 말했다.“나 아직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나가봐야 해. 도연지가 여기 남아서 돌봐줄 거고 나중에 집에서 도우미 한 분 보내게.”“그래...”윤하경이 무언가 더 묻기 전에 하석호는 등을 돌려 병실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도연지가 다가와 물었다.“그...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제가 사 올게요.”그러더니 윤하경이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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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0화

“사모님 쪽도 오래는 못 숨겨요. 저한테 직접 전화를 할 정도면 곧 다 들통나겠죠.”하석호는 이를 악물었다.당시 제일 먼저 윤하경을 찾아낸 사람은 강현우였다.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윤하경과 강현우는 나란히 강물에 빠져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본 것은 단 하나였다.강현우가 정신을 잃은 윤하경을 물 위로 떠받쳐 구조대에게 넘긴 그 장면 그리고 강현우는 체력이 바닥나 결국 급류에 휩쓸렸고 그대로 실종되었다.봄이 되어 완전히 풀린 강물은 여전히 차고 거셌다. 누가 봐도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지만 아무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하석호는 그 소식을 들은 직후 곧바로 수색팀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열 시간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그는 고개를 들고 민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인력 총동원해서 수색하고 있어. 땅을 뒤집더라도 무조건 찾아낼 거야.”민진혁은 답답한 듯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하석호는 말을 이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 실종 소식을 절대 밖으로 새지 않게 막는 거야. 이거 퍼지면 강한 그룹 쪽이 바로 혼란에 빠질 거야.”“그래도... 큰 사모님한테는 알려야지. 그래도 그분은 어머니시잖아. 강현우 실종은 작은 일이 아니니까.”민진혁도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직접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속이 미칠 듯이 불편해졌다. 그래도 이대로 숨기다간 더 큰 화가 돌아온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민진혁은 낮게 중얼거리며 대답한 뒤, 또다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윤하경을 병원에 데려다준 뒤, 하석호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 들른 참이었다.윤하경의 상태가 안정되고 전반적인 방향이 정해지자 곧장 다시 광산 쪽으로 향하는 헬기에 올랐다....일주일 뒤.윤하경은 휠체어에 기대어 병실 밖을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지만 그동안 하석호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이때 황 집사 식사를 챙겨왔다.“하경 씨, 식사 시간이에요.”윤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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