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은 그녀는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남자의 문을 두드렸다. 단지 복수를 위한 하룻밤이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윤하경은 경성 상류층에서 빼어난 미모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순진한 헌신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약혼자의 배신 이후 그녀는 더 큰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뜻밖에도 최상위 계층의 한 남자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하룻밤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차갑고 단호한 태도로 그녀를 지배하며 그녀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그의 집착은 그녀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갔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게 얽혔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도, 순간의 방황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며 그녀는 그의 숨겨진 진심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제 그녀는 선택해야 한다. 그의 집착에 휘말려 그의 세계에 갇힐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 벗어날 것인지...
View More윤하경은 잠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써 묻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진혁 씨, 혹시... 지유 씨랑 두 사람...”민진혁은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답했다.“네, 우리 사귀기로 했습니다.”그의 말은 솔직하고 당당했다. 원래부터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옆에서 그 대답을 들은 백지유는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수줍게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말했다.“저... 저 먼저 씻고 올게요.”도망치듯 욕실로 향하던 그녀는 전날 밤의 여파로 다리에 힘이 풀려 문 앞에서 휘청이며 넘어질 뻔했다. 민진혁이 재빨리 달려가 부축하자 백지유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황급히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민진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전화를 귀에 댔다.“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윤하경은 애써 속내를 감추며 물었다.“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시간 되면 잠깐 들를 수 있어요?”민진혁은 욕실 쪽을 흘깃 본 뒤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오늘은 좀 어렵습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대표님께 제가 일이 있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정리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윤하경은 눈치로 상황을 짐작하고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요. 전해 드릴게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본래의 질문을 꺼냈다.“그럼... 모성 쪽은 어떻게 됐나요? 하석호는 무사하죠?”“네. 멀쩡합니다.”민진혁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다친 것도 그냥 연기일 뿐입니다. 정리 끝내고 나면 따로 어르신 산소를 다시 모실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전하셨습니다.”“그렇군요.”윤하경은 안도하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지유 씨랑 푹 쉬세요.”전화를 끊은 윤하경은 마음이 복잡했다.그때, 닫혀 있던 서재 문이 열리며 강현우가 걸어 나왔다. 하룻밤을 고요히 보낸 탓인지 다시 예전처럼 절제된 기품이 돌아와 있었고 그의 주위는 여전히 차갑고 위압적인 기운으로 가득했
민진혁은 눈앞에 바짝 다가온 백지유를 보며 순간 몸이 굳었다. 그녀는 눈부시게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작은 얼굴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마치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아슬아슬했다.민진혁의 목이 천천히 움직였다. 삼키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긴장한 순간이었다.“지유야... 너 정말 나 좋아하는 거야?”백지유는 대답 대신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돌려 피했다.민진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잡아 돌리며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대답해. 정말 좋아하는 거냐고.”순간, 백지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또 저를 모욕하려는 거예요?”그녀는 울먹이며 목소리를 높였다.“나 오빠 안 좋아해요. 오빠는 나쁜 사람이에요. 제일 싫어!”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은 다시 막혔다.백지유의 눈이 커지며 놀람이 번졌다. 하지만 민진혁은 단호히, 그리고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깊어지는 입맞춤에 그녀는 결국 저항을 잊고 몸을 맡겼다.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작은 가슴이 터질 듯 뛰었고 낯선 달콤함이 퍼져갔다.사랑에 대해 책과 영화로만 배워왔던 그녀는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듯 민진혁의 움직임에 응답했다. 그 서툰 반응조차 민진혁의 안에 쌓여 있던 불씨를 단숨에 불태웠다.그는 뜨겁게 타오르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숨이 가빠오는 사이,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켜. 그러니까... 네가 지금 마음을 바꾼다면 아직 늦지 않아.”백지유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화가 나 울던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두려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얽혀 더 뜨겁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안고 속삭였다.“저...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살살 해줘요.”떨리는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두려움에 민진혁은 이를 꽉 물었고 곧 그녀를 안아 침실로 향했다.하얗고
“응?”민진혁은 갑자기 불린 이름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의아한 기색이 스친 순간, 백지유가 조심스레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민진혁은 순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그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용기를 얻은 백지유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면서도 더 깊숙이 다가갔다. 조심스레 그의 입술을 스쳐 지나가던 혀끝에 은은한 샤워 후의 향이 배어 있었다.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 민진혁은 한동안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나이 차도 있고 세상 경험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솔직하고 뜨거운 고백 앞에서는 심장이 통제 불능으로 뛰었다.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잡은 그는 어깨를 잡아 그녀를 떼어냈다.“지금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낮게 울린 목소리는 밤공기 속에서 더욱 거칠게 들려왔다.백지유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마치 갓 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뺨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아요. 제가 뭘 하는지.”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진혁 오빠, 저... 평범한 거 알아요. 하지만 오늘 이런 행동을 한 건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거예요. 충동적으로 한 게 아니에요.”그 진지한 눈빛을 마주한 민진혁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멈칫했다. 그러다 생각이 스쳐 지나간 듯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물었다.“설마... 날 이용해서 강현우 곁에 다가가려는 건 아니지?”“뭐라고요?”백지유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상처받은 얼굴로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오빠 눈에는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민진혁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다만... 네가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솔직히 믿기 힘들어서. 내겐 그저, 너무 터무니없는 얘기 같아서.”그 말에 백지유의 표정은 한순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금세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라 곧이라도 쏟아질 듯 흔들렸다.“맞아요. 저 잘못한 거 많아요. 현우 오빠에게도 안 될 마음 품은 적 있
백지유는 하얀 끈 슬립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등에 흘러내려 그녀의 분위기를 순수하면서도 묘하게 아슬아슬하게 만들었다.소파에 앉아 있는 민진혁의 뒷모습을 본 백지유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조심스레 두 걸음 다가섰다.“진혁 오빠, 뭐 마실래요?”민진혁은 괜히 부끄러워 대충 대답했다.“아무거나 괜찮아.”백지유는 부엌으로 향해 투명한 유리잔에 오렌지 주스를 따랐다. 그러나 시선은 내내 민진혁에게 머물러 있어 주스가 가득 찼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주스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차가운 감촉에 그녀가 놀라 움찔한 순간, 뒤에서 민진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아? 다친 건 아니지?”백지유는 등에 닿는 뜨거운 체온과 단단한 가슴팍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가슴이 쿵쿵 뛰며 마치 어린 사슴이 날뛰는 듯했다.예전 강현우 앞에서는 늘 두렵고 긴장되기만 했는데 지금 민진혁 앞에서는 그와 다른 알 수 없는 설렘이 가슴 속에 피어올랐다.한참 고개를 떨군 채 머뭇거리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주스가 조금 흘렀을 뿐이에요.”백지유는 휴지로 서둘러 닦은 뒤 컵을 건네며 웃었다.“여기요.”민진혁은 그녀가 다친 데가 없는 걸 확인하고 컵을 받아서 들며 낮게 일렀다.“조심해. 혼자 사는데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곤란하잖아.”그의 말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 있었고 백지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소파에 앉았다. 백지유는 민진혁을 몰래 훑어보다가, 며칠 못 본 사이 그가 더 수척해진 듯 느껴졌다.피부는 건강한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고 얇은 회색 티셔츠는 그의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며 오히려 제 몸에 작아 보였다.팽팽히 당겨진 천 너머로 선명한 근육이 드러났고 단단한 팔과 어깨는 마치 한 번 휘두르면 뭐든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 순간을 상상하자 백지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가느다란 떨림을 보였다.민진혁은 그녀의 작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백지유는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갔다.강현우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고 윤하경은 그가 혼자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윽고 잠자리에 들려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또 다른 방문객이 찾아왔다.이번에는 민진혁이었다. 그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들어오더니 윤하경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형수님, 대표님은요? 전화를 몇 번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윤하경은 잠시 입술을 다물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오늘은 기분이 좀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일이면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아... 그렇군요.”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막 나가려는 순간, 윤하경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민진혁이 다시 돌아보자 윤하경은 한숨을 내쉬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돌아가서 쉬세요. 모성에서 있었던 일은 내일 제대로 얘기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아, 참...”윤하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덧붙였다.“아까 백지유 씨가 잠깐 들렀다 갔어요. 급한 일로 진혁 씨를 찾던데요.”민진혁은 순간 굳어졌다가 머리를 긁적였다.“아... 네. 알겠습니다.”윤하경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제야 자신이 놀림을 당하고 있음을 눈치챈 민진혁의 얼굴이 벌게졌다.“그... 형수님, 저...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갔고 윤하경은 그가 도망치듯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민진혁은 차를 몰고 강현우의 집을 벗어났지만 이미 백지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민진혁은 결국 곧장 백지유의 집으로 향했다.도착했을 때, 마침 막 샤워를 끝낸 백지유가 있었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했고 온몸에는 수건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진혁 오빠...?”백지유는 순간 얼어붙었다.“하경 씨 말씀으로는 오빠가 모성에 있다고 들었는데요?”작은 체
강현우는 백지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자 윤하경이 미소를 띠며 옆자리를 가리켰다.“아니에요. 마침 잘 왔네요. 우리도 막 먹기 시작했어. 여기 앉아요.”그러고는 곧바로 하인을 향해 말했다.“식기 좀 더 가져와요.”백지유는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그러면서도 조심스레 강현우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윤하경은 그 눈빛만 보고도 그녀가 강현우를 두려워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괜찮아요. 와서 앉아요.”윤하경은 웃으며 손짓했다. 백지유에게 윤하경은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그녀가 아니었다면 강현우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그랬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을 터였다. 그래서 처음에 조금은 사적인 마음이 있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누구나 완벽할 순 없는 법. 윤하경도 자신이 하는 일마다 계산 없이 움직이지는 않으니까.더구나 나중에 강현우에게 들었을 때, 백지유가 바란 건 그저 학업을 도와달라는 소망뿐이었고 다른 요구는 전혀 없었다.그걸 보면 본성은 착한 아이였다.“괜찮아요. 지유 씨가 현우 씨를 살려줬잖아요. 이제는 우리 식구나 다름없는데 뭘 그렇게 긴장해요.”윤하경은 가볍게 웃으며 직접 백지유를 의자 앞으로 이끌었다.하지만 막 자리에 앉자마자 강현우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난 다 먹었어.”백지유는 움찔하며 눈치를 보았다. 윤하경은 부드럽게 백지유의 손을 두드리며 달랬다.“괜찮아요. 오늘 현우 씨 기분이 좀 안 좋은 것뿐이에요. 신경 쓰지 말고 먹어요.”그러고는 반찬 하나를 집어 그녀의 앞에 올려주며 물었다.“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예요? 도움 필요한 게 있나요?”백지유는 다시 손을 저으며 고개를 숙였다.“아니에요. 전혀 그런 거 아니에요. 민폐 끼치려는 건 아니고요. 사실은...”“괜찮아요.”윤하경은 최대한 따뜻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예요. 부탁한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 아니에요.”백지유는 순간 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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